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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창시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 4

1부

6년이나 살았는데 / 12
송림동 91의 87·1 / 14
송림동 91의 87·2 / 16
쉬고 있는 자전거 / 18
전도관 / 20
지게차 특급 / 22
흥미헤어라인 / 24
고양이들! / 26
고양이 홀로 남아 / 28
골목들 / 30
송림성결교회 1 / 32
송림성결교회 2 / 34
송림동 전도관 / 36
이사 가는 고양이 / 38
사라지는 화분 / 40

2부

바른재개발과 송림주택조합 / 42
가스 메타 / 44
떠난 집 / 46
유성철물설비 / 48
이런 개 같은 경우가 / 50
전도관 이야기 / 52
자그마한 공터 / 54
까치 온 날 / 55
풀들, 우거지다 / 56
현금 청산자 / 58
경진네바느질 / 60
제물포교회 / 62
장로회 제물포교회 / 64
짭짤한 부수입 / 66
버려진 가구들 / 68

3부

송림동의 슈퍼가 전부 망한 이유 / 72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74
쓰레기봉투 앞에서 / 76
이번 감기에게 / 78
나은이네 집 계단 / 80
공손한 밥그릇 / 82
쌈지공원 은행나무 / 85
갓난아기 / 86
고양이 식사 / 88
영화 촬영집 대문 / 90
참, 이쁜 화분 하나 / 92
골목이 골목을 물고 / 94
가지 고추 상추 화분들 / 96
시간의 역사 / 98
무단투기 감시 카메라 / 100

4부

부동산에 미친 나라 / 104
주담대 / 106
개집 / 108
사이를 살다 / 110
송림동 재개발 현황 / 112
이발관 대 미장원 / 114
창조주 위에 건물주 / 116
개발을 하더라도 / 118
쓰레기 수거 거부 / 120
이사 비용을 받다 / 122
보유세 / 124
부동산에 미친 국민 / 126
계단들 / 128
도원피아노 / 130
경고문 / 132

해설
공간이 시를 불러 말하길,(정우영) / 135

저자 소개 1

Cheo Jong-cheon,崔鐘天

음력 1952. 5. 2 생.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1986년 [세계의 문학] 여름호와 1988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눈물은 푸르다』(2002)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2007) 『고양이의 마술』(2011) 『인생은 짧고 기계는 영원하다』(2018) 『그리운 네안데르탈』(2021) 『골목이 골목을 물고』(2024)를 썼다. 육필 시집 『용접의 시』(2013), 산문집 『노동과 예술』(2013) 『창세기의 진화론』(2025)이 있다. 2002년 신동엽창작기금(현 신동엽문학상), 2012년 오장환문학상을 수상했다. 2025년 7월 18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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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64쪽 | 128*205*20mm
ISBN13
9788966551866

책 속으로

골목도 인상이 각각이다.
곧게 쭉 뻗은 골목은 조용하고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지만 구불구불한 골목은 이야기가 있다.
저기쯤에서 꼬마 하나가 맨발로 걸어 나올 듯하고
혹 무슨 쓰레기라도 있으면 귀신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더하여 내놓은 화분이 두어 개 있다면
걸어 들어가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송림동 골목들은 하나같이
계단을 하고 있다. 꺾인 무릎들
방 안에도 계단이 있고 계단은
다시 계단으로 이어진다.
인생을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다
미끄러지거나 추락한 사람들이
마치 살구가 먹을 사람이 없어 떨어져
옹기종기 모이듯이 모여 있는 집들.
사람이 한창일 때는 이렇게도 살았나 보다.
지금은 어린이 보기가 어렵다.
어린이가 없는 골목들이 무료한 시간을 재는 듯
하늘도 굽어보는 산동네 송림동.
---「골목들」 중에서

내가 세 들어 살던 송림동 91의 87에서
한참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거기 아담하고 조그마한 공터가 있다.
무너지고 있는 담으로 둘러싸인
측백나무에 덩굴이 얽혀 있는
햇빛이 잘 들이치는 이곳
엄마 아빠에게 야단맞은 아이가
조용히 훌쩍이기 좋은 곳이다.
부부싸움에 박살난 것 같은
그릇 조각들이 햇빛에 눈을 부릅뜨고는
나를 뻔히 쳐다보고 있다.
아이들이 없어도 너무 없어
나라도 앉아 있어 보자고 의자를 주워 와
던지니 척 정자세로 앉는다.
돌아가는 바람이 참 싱그럽다.
가난한 동네에 아이들이 많다고 하던데,
이곳 송림동은 가난한 동네는 아닌 듯하다.
-「자그마한 공터」 중에서

예끼, 이 사람아
염치인지 체면인지 좀 있어 봐라
어이구 춥네요
잠깐만 앉았다 가도 될까요
그러고 들어와 앉은 지가
며칠째인가 벌써
이제는 아주 주인 행색이야
좋게 말할 때 나가게나
그동안 잘 먹고 잘 입히고
약까지 사다 먹이고
할 만큼은 해줬지 않나
내, 겨울 코트 입혀서
부축해 줌세그려
옳지, 그렇게 나가서
옆집 그 옆집
대머리 홀랑 까진
전당포 주인 있잖아, 왜
그 양반한테 신세 지고 있으라고
가끔 재채기로
저당 잡아 놓은 양심 풀어놓으라고
귀띔도 좀 하게나
어서 가보시게
---「이번 감기에게」 중에서

송림동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 앞에도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은 방 뒤로 이어진다.
가파르게 치닫는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깎여 나갔을 무릎들. 이 계단은 역설적이다.
맨 밑의 계단이 맨 위의 계단보다 등급이 높다.
그 등급을 따라 집의 가격이 다르다.
저 위에서 밑으로 내려와
시금치나 대파 한 단 사 들고
오르기도 웬만한 일은 아니겠다.
경사가 50도 가까운 계단도 많이 있다.
이 가파른 계단을 아이들은 다다다다
신나게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조심조심
나는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을 보면 신이 나는데
이런 계단을 뛰어오르는 아이들을 보면 어떨까?
아마 흉내를 내 보다가 지치고 말겠지?
그럼 대파 시금치 심부름은 꼬마들이 했을까?
심부름 값을 톡톡히 받았을까?
송림동 언덕에 부스럼처럼 돋아난 계단들
얼마 안 지나면 포클레인이
그 강철 혀를 놀려 다 핥아먹을 것이다.
포클레인의 식성은 엄청난 것이다.
계단으로 만들어진 송림동이 사라져 간다.
재개발 깃발 아래 짓이겨지는 송림동.
몇 년 뒤면 으리으리한 아파트가
거만하게 버티고 있을 것이다.
계단은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다.

---「계단들」 중에서

출판사 리뷰

감상도 연민도 없이 골목이 되다

‘부동산에 미친 나라’ 대한민국은 살아 숨 쉬는 송림동 골목을 포클레인의 먹성을 앞세워 해체해버렸다. 그래서 너도나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짧지 않았던 해체의 과정을 최종천 시인이 세밀하게 포착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큐멘터리식으로 하지만 단지 고발이 아니라 생명력을 복원하는 방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무너지고 있는 담으로 둘러싸인
측백나무에 덩굴이 얽혀 있는
햇빛이 잘 들이치는 이곳
엄마 아빠에게 야단맞은 아이가
조용히 훌쩍이기 좋은 곳이다.
부부싸움에 박살난 것 같은
그릇 조각들이 햇빛에 눈을 부릅뜨고는
나를 뻔히 쳐다보고 있다.
_「자그마한 공터」 부분

이 작품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돌아가는 바람이 참 싱그럽다./ 가난한 동네에 아이들이 많다고 하던데,/ 이곳 송림동은 가난한 동네는 아닌 듯하다.” 아이들이 많아서 가난한 동네가 아니라는 이 진술은 역설(paradoxa)이다. 사실 “아이가/ 조용히 훌쩍이기 좋은 곳”이지만 지금은 “돌아가는 바람이 참 싱그”러울 뿐이다. 아이들이 없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최종천 시인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남루들을 숨기지 않는다. 남루마저 삶의 단면이기에 그럴 것인데, 늙어감만 있고 아이들은 없는 가난한 동네이기에 그 남루는 너무도 쉽게 눈에 띄게 마련이다. 하지만 최종천 시인은 섣부른 감상에 빠지지도 않고 연민을 통해 자기 우월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그 자신이 송림동 골목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떼어 팔아 준 주인 할머니 보일러도
결국에는 도둑질이었다는 것.
나는 그 보일러 떼어 팔아 주고 주인 할머니
7만 원 내가 3만 원을 챙겼다.
유성철물설비 집에서 몽키와 스패너를 빌려 썼다.
_「유성철물설비」 부분

재개발 과정에서 버려지다시피 한 물건을 떼어다가 팔아먹은 사실을 천연덕스럽게 고백하면서, 그 도둑질에 ‘유성철물설비’도 어차피 공범이라는 유머는 시적 화자가 송림동 골목에 사는 다른 존재들과 “서로 어깨를 걸고”(「골목이 골목을 물고」)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너스레다. 최종천 시인의 이번 시집은 ‘부동산에 미친’ 천민적인 대한민국 자본주의에 대한 직격이면서도 시인이 먼저 분개하거나 시인 자신을 순결한 영역에 두지 않으려는 솔직하고 담백한 태도가 이룬 드문 성취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는 생황에 복무할 때 가장 좋다.”

시인의 말

부천에 살면서 인천에 있는 인천제철로 밥벌이를 다니다가 인천 송림동 산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한 가지 기대가 있었다. 막상 어린이는 몇 안 되고 노인들만 많았다. 뉘엿뉘엿 지는 해 같은 얼굴을 한 할머니들 사이에서 참 평안하게 6년여 동안을 살았다.

부천을 떠나던 그때가, 살고 있던 주공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던 때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들리는 말은 갈수록 재건축이 불가능하게 되어간다고 한다.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나에게 아파트를 산 사람은 재건축을 기대하고 샀을 것이다. 재건축비가 급상승할 것이라는 상상은 해보았다. 송림동 빈집들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집 잃은 고양이들이 많다. 사료를 대 주는 데가 있어서 그런지 길냥이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인 것 같다. 이제 100년 넘었다는 쌈지공원의 은행나무도 많은 대추나무들도 고양이들도 이사를 가야 한다. 사는 동안 정들었던 사물과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에 거대담론은 없다. 소박한 시집이다. 시는 생활에 복무할 때 가장 좋다. 집들이 철거되고 나면 잡초가 무성한 동산이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은 부동산에 미쳐 있는 나라다. 그러나 막상 그런 생각을 많이 말한 것은 아니다.

추천평

최종천은 고리타분하지 않다. 마음 들키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는, 한 세계가 내게로 와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안다. 송림동으로 보면 최적의 시인을 만난 것이다. 현대에 밀려 송림동의 근대는 저물어 가지만, 최종천의 시들이 있어 완전히 바래진 않을 것 같다. 당장 나만 해도 익숙한 듯 낯선 이 공간에서 오랜 시간 흥겹게 머물렀다. 공간의 필법이 공감이라는 뜻한 바를 이루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 해설 「공간이 시를 불러 말하길,」 중에서 -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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