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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사는 맛 축 생일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내버려두기-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와 함께 유영하는 마음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내 몸은 내가 없이도, 최선을 다해-사뮈엘 베케트의 『포기한 작업으로부터』를 지나 불시착 나는 이제 첫 문장을 쓰다 낭만을 빌려주는 노인 당신을 위해 글을 쓰지 않으며-잭 런던의 『마틴 에덴』에 부쳐 사멸하는 것들의 비명을 듣는다 소나무가 있는 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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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아.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었지.
빈 그릇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이내 헛웃음이 나왔다. 그를 걱정하느라 불안해했던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져서가 아니라, 옆집 사람이 귀여워서. 마치 내가 사 온 귤처럼 귀여워서. 옆집 사람은 잘 울고 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서럽게 울다가도 비 오는 날이 되면 짬뽕을 챙겨 먹는 것은 잊지 않는 사람이구나. 그 별것 아닌 사실이 나를 웃게 했다. ---「사는 맛」중에서 그는 글을 썼고, 쓰지 않아도 될 때조차 글을 썼고, 그렇게 써야만 소설가로 살 수 있다고 믿었고, 그러다가 지쳐 아무것도 쓰지 못할 때는 자신을 미워했다. 좋은 글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으면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며 자신을 다그쳤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큰 기대를 자신에게 걸고 있었다. 예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소설가로서, 선생으로서, 딸로서, 친구로서, 어른으로서, 시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는 할 수 없는 일도 늘 할 수 있다며 자신을 격려했다.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내버려두기」중에서 -서울에서 혼자 지내다 보면 너무 외로워.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외롭다는 말이 너무도 정직하게 다가와서. 지금껏 나는 그 말을 밖으로 뱉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외롭다는 사실조차 외면하면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수영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아니, 정확하게는 수영선수가 되면서부터 늘 그랬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물의 저항을 뚫고 혼자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니까.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유영하는 마음」중에서 불에 익어가는 빵, 그로부터 퍼져 나오는 따뜻한 온기가 피부에 느껴졌다. 느낄 수 있으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음. 사랑하는 이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먹고 자는, 그렇게 또 다른 이를 사랑하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이 삶은 말이 되는 걸까. 삶과 죽음에 하나의 마음을 모을 수 있다는 것만큼이나 허구에 가까운, 허구에 가까운, 허구에 가까운. 그래도 나는 식사를 할 때마다 그를 잊지 않았다고. ---「서로 마주 보고 앉아」중에서 나는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바다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너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너는 바다에 가서 매운탕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너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바다를 떠올린다. ---「불시착」중에서 “어쨌든 혹평에 상처받고, 심심풀이 땅콩처럼 씹히는 일들에 상처받고, 그렇게 내 몸과 영혼은 너덜너덜해져가고…… 그것도 모자라, 제 소설이 마음에 안 든다며 두개골을 깨버리겠다고 저를 위협하는 사람도 있었다니까요! 소설가는 정말 극한 직업이야!” ---「나는 이제」중에서 도대체 오늘 내가 뭘 한 걸까? 뭔가 하려고, 뭔가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오랫동안 소설을 쓰지 못해 괴로워하던 서이제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를 이해하게 될까 두려웠다. 안 돼, 안 돼.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첫 문장을 쓰다」중에서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마틴 에덴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오늘 마틴 에덴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먼 길을 왔는데 자기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서 객석에 앉아 계속 기다렸다고……. 아니, 이런 바보 같은 마틴 에덴 씨……. ---「당신을 위해 글을 쓰지 않으며」중에서 솔이는 우리 집에서 행복했을까. 아니면, 사람 손을 타는 게 오히려 답답했을까. 인간의 손에서 하루라도 더 사는 게 좋은 건지, 하루를 살아도 산과 들에서 자유롭게 사는 게 좋은 건지, 아직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이대로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나무가 있는 땅」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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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마음에 다가가다
타인의 자리에서 세계를 바라보기 서이제의 소설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알아내기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삶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에 가깝다. 「사는 맛」의 화자는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웃의 울음소리를 걱정하다 귤을 한 아름 사 들고 귀가하고, 「축 생일」에서는 늘 자신을 돌봐온 엄마의 시간을 돌아보며 엄마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어도 그가 살아온 시간과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마음을 돌아보려는 태도가 두 작품을 잇는다. 내가 친구를 한 명씩 사귀어가는 동안, 엄마는 친구를 한 명씩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일과 가사 노동을 동시에 감당했기 때문에. 혹여 그게 아니라면 금전적인 문제나 성격 문제로 싸웠기 때문에.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질병이나 죽음으로 인해……. 그래서 나는 엄마의 친구가 되고 싶다. 평생 동안 함께할 유일무이한 친구가 되고 싶다. 진숙이, 우리 진숙이.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_「축 생일」 이와 같은 관심은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 다른 존재의 자리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도로 이어진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에서는 식당 테이블이 그곳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갈 대화와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의 풍경이 사물의 시선을 통해 낯선 의미를 얻는다. 익숙한 공간을 인간이 아닌 존재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작가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일상의 면면을 드러낸다. 자리 바꾸기는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나는 이제」와 「첫 문장을 쓰다」에서는 소설가 서이제와 배우의 자리가 뒤바뀌고, 작가는 스스로를 허구 속에 들여놓으며 자신과 타인,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흔든다. 타인의 자리에 서보는 상상은 완전한 이해를 보장하지 않지만, 자기가 알지 못했던 생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게 한다. 서로 다른 존재의 시선과 이야기를 오가는 이 작품집은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몸은 살아간다 의지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조건 우리는 과연 자신의 의지대로만 살아갈까. ‘내 몸은 최선을 다해’라는 제목은 마음과 몸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수록작 「내 몸은 내가 없이도, 최선을 다해」는 사뮈엘 베케트의 『포기한 작업으로부터』를 경유하며 몸과 의식의 관계를 살피고, 「낭만을 빌려주는 노인」은 육신과 감각을 잃은 존재의 시선으로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되묻는다.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몸과 더는 당연하게 여길 수 없는 육신을 통해, 두 작품은 우리가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는 조건을 새로이 바라보게 한다. 구르면 구를수록, 나는 더욱더 빨라져 더 멀리, 아주 멀리, 나아가게 되었다. 굴러가며 돌부리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온몸이 박살 나는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멈출 수 없었다.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아무런 의지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아갈 수 있었다. _「내 몸은 내가 없이도, 최선을 다해」 이 질문은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다시 나아갈 수 있는지로 이어진다. 「유영하는 마음」의 화자는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중단한 뒤 직장에서도 퇴직을 권고받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한때 수영선수였던 그에게 물은 몸을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다시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 된다. 몸의 변화와 함께 자신이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세계도 달라진 것이다. 낯선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막다른 상황에서도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개인의 몸에서 시작된 질문은 「사멸하는 것들의 비명을 듣는다」에서 역사의 시간으로 확장된다. 임진강을 화자로 내세운 이 작품은 강의 시선으로 인간의 비극과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슬픔을 바라본다. 역사와 시간이 남긴 흔적은 한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으며, 인간의 경험만으로 세계를 온전히 설명할 수도 없음을 일깨운다. 이렇듯 『내 몸은 최선을 다해』는 인간의 의지와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이어지는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품이다. · 작가(서이제)의 말 글을 쓰며 만난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그들의 책에 도움을 받았다. 내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에게 도움을 받았다. 짧은 소설이라는 형식에 도움을 받았다. 여러 도움을 받아,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던 불안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편으로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말을 온갖 방법으로 써왔음을 깨닫는다. 글을 쓰기 힘들 때는 쓰기가 힘들다고 쓸 수 있다. 글쓰기는 늘 그런 식의 모순을 범한다. 역설을 가능케 한다. 그게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