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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Jacques Rouss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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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이 사나운 아이는 손에 닿는 것은 모두 깨뜨려버린다. 그럴 경우 화내지 말고 물건들을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어라. 아이가 좋아하는 가구를 부수었을 때는 서둘러 다른 가구를 갖다주지 말고, 그것이 없어져서 받는 불편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가 자기 방의 창문을 깨뜨리거든, 바람이 밤낮으로 들이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아이가 여러분께 끼치는 불편에 대해 투덜대지 말고, 아이가 먼저 불편을 느끼게 한 다음 한참 후에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유리를 갈아끼워 주어라.
만약 또다시 유리창을 깨뜨리면, 그때는 방법을 바꾸어라. 아이를 향해 무뚝뚝하게, 그러나 화는 내지 말고 이렇게 말하라. ‘유리는 내 것이다. 내가 힘들게 끼웠으니까 유리가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창이 없는 어두운 방에 가둔다. 이 뜻밖의 태도에 놀라 아이는 큰 소리로 울고 소란을 피울 것이다. 그래도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으면 아이는 지치게 되어 태도를 바꾸게 된다. 그리하여 하소연을 하고 끙끙거린다. 그때 하인이 나타나게 한다. 그 개구쟁이는 내보내달라고 부탁을 할 것이다. 이때 하인은 그저 ‘저도 역시 보호해야 할 유리창이 있어요.’라고 대답하고 가버린다. 마침내 아이가 지루해서 못 견디고 그 일을 반성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때 누군가를 통해 다시는 유리를 깨지 않겠으니, 이제는 내보내달라고 사정하도록 아이한테 귀띔해주도록 하라. 그러면 아이는 여러분에게 내보내달라고 할 것이다. 여러분은 아이에게 다시는 창문을 깨뜨리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 그 제안을 당장 받아들여라. ‘잘 생각했다. 그러면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좋지. 그렇게 좋은 생각을 왜 좀더 일찍 못했을까!’ 아이에게 그의 약속에 대해서 다짐을 요구하지 말고, 엄숙한 선서라도 행하듯이 그 약속을 신성하고 깨뜨릴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고,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도록 껴안아주며 곧 제방으로 데리고 가라. 아이는 이러한 약속의 맹세와 그 효력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으리라 생각하는가? 이미 버린 아이가 아니라면 이런 일을 당하고도 일부러 계속 창문을 깨뜨리는 아이는 결코 없을 것이다. --- p.9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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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대답은 언제나 신중하고 간결하고 확고하여 망설이는 빛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대답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더 위험한 일임을 어른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거짓말로부터 비롯되는 위험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 선생이 학생에게 단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교육의 효과는 완전히 상실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언제까지나 숨길 수 없는 것은 일찍이 가르쳐줌으로써 아이들의 호기심이 자극되지 않도록 하든지, 또는 위험이 따르기 전에 그것을 만족시켜 주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이때 여러분이 학생에게 취해야 할 태도는 그들의 특수한 처지, 그가 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환경 등을 고려해서 무엇이건 우연에 맡겨두지 않는 일이다. 만일 여러분이 성의 차이를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숨길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열 살 전에 그것을 가르쳐주도록 하라. 나는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매우 점잖은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사물의 진짜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려고 너무 세련된 말을 쓴다거나, 아이들이 곧 알게 될 텐데도 일부러 돌려서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라면 품행이 단정한 사람은 언제나 솔직한 태도를 보여주지만, 악덕에 더럽혀진 상상력은 귀를 예민하게 만들고 표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만든다. 단순한 말씨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피해야 할 것은 저속한 관념이다. 인간에게 수치심은 천부적이지만 아이들은 느끼지 못하며,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수치심은 악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악을 알지도 못하고 또 알아서도 안 되는 아이들이 어떻게 그 결과인 수치의 감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이에게 수치심이나 정숙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이 세상에 수치스럽거나 부정한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셈이고, 아이들에게 그러한 것을 알고자 하는 욕망을 일깨워주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멀지 않아 아이들은 모든 것을 알게 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최초의 불꽃은 어김없이 감각의 불꽃을 재촉하는 것이다. 얼굴을 붉히는 자는 이미 죄를 지은 것이며, 진실로 결백한 자는 어떠한 것에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 p.248~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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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은 고아로 태어나 현명한 가정교사에게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여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식으로 쓰여진 교육개혁론이며, 문명비평론이기도 하다. 교양 소설 형식의 교육론인 에밀 속에는 루소의 모럴리스트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고 지식 중심이 교육보다는 인간교육론, 체육, 인격 도야를 포함하는 폭넓은 교육을 중시하는 사상과 정념 교육을 중시하는 루소의 독특한 교육론이 피력되어 있다.
그가 서문에서 “독자는 교육론이라기보다는 어느 한 환상가의 몽상을 읽는 기분일 것이다”라고 밝혀놓은 것처럼 이 작품은 유토피아적 세계관, 비현실적, 이론적 성격을 풍기고 있다. 루소가 에밀과 그의 평생을 통해 다루었던 주제는 인간회복이었다. 인간은 자연상태 아래서는 자유롭고 행복하고 선량했지만 인간 스스로가 만든 사회제도나 문화에 의해 부자연스럽고 불행한 상태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시 한번 참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여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밀』에서 루소는 ‘교육은 자연이나 사람이나 사물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우리가 지닌 능력과 기관이 내적인 발전은 자연이 주는 교육이다. 이 발달을 이용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인간에 의한 교육이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갖가지 사물에 대해 우리들 자신의 경험에 의해 얻게 되는 것은 사물들로부터 오는 교육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자연, 인간, 사물, 이 세 스승에 의해 교육된다. 이 세 가지 의 가르침이 서로 모순된다면 제자는 그릇된 교육을 받을 것이며 이 세 교육이 모두 일치되어 같은 목표를 지향할 때 그 학생은 자기 목표를 향해 정진할 수 있고 그 결과 원만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라고 밝혔다. 이 세 가지 교육은 현재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