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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서장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스토아 철학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생애 2. 스토아 철학 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명상록』 제1권 제2권 제3권 제4권 제5권 제6권 제7권 제8권 제9권 제10권 제11권 제12권 |
Marcus Aurelius Anton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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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든지 행동하려는 그 순간에 죽음이 다가왔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라.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결코 그대를 나쁜 길로 인도하지 않을 테니까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인간의 일 따위에는 무관심하다면, 신도 없고 신의 섭리도 없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신은 존재하고, 또한 인간의 일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신은 그대에게 악에 빠져들지 않는 능력을 주었다. 만약 누군가 그대의 삶에 해악을 입히려 하면, 신은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 속에 모든 수단 방법을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을 악하게 만들지 않은 신이 어째서 인간의 생활을 악하게 만드는 것일까?
무지로 인해 신이 그런 해악을 간파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또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할 능력이 없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분명히 죽음과 삶, 명예와 불명예, 고통과 쾌락, 부와 빈곤 등이 생겨난다. 그런 모든 것은 우리를 더 선하게도 또는 더 악하게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선인이나 악인이나 가리지 않고 동등하다. 따라서 그런 것들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p.41~42 ‘내가 태양을 보고 있다’는 것을 직접 알고 있는 경우, 나는 서로 무관하지 않은 두 가지 다른 것을 직접 알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분명하리라. 한편에는 내 앞에 태양을 나타나게 하는 감각소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 감각소여를 보고 있는 것이 있다. 내 앞에 태양을 나타나게 하는 감각소여에 대한 나의 직접지와 같은 직접지는 모두 틀림없이 직접 아는 사람과 그 사람이 직접 알고 있는 대상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된다. 직접지의 하나의 예가 내가 직접 알 수 있는 직접지일 경우(예컨대 내 앞에 태양을 나타나게 하는 감각소여에 대한 나의 직접지를 내가 직접 아는 경우와 같이), 내가 직접 알고 있는 사람이 나 자신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태양을 보고 있다는 것을 직접 알고 있을 때, 내가 직접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은 ‘감각소여를 자기 자신이 직접 알고 있다’는 것이 된다. 나아가 우리는 ‘내가 이 감각소여를 직접 알고 있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 만약 우리가 ‘나’라고 말하는 어떤 것을 직접 알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이 진리를 알겠는가. 게다가 이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는 다소 영속적인 사람, 즉 오늘도 어제와 변함이 없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가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본성이 무엇이든 간에, 아무튼 태양을 보고 감각소여를 직접 알고 있는 것을 반드시 직접 알아야만 할 것 같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의 특수한 경험과 대립되는 우리의 ‘자기’를 직접 알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는 난해하여 어느 쪽이든 복잡한 논의를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자신에 대한 직접지가 ‘아마도’ 있는 것 같다 하더라도 반드시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p.57~58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와 부서져도 끄떡없이 버티고 서서 노한 물결을 달래는 바위처럼 살라. 하필이면 내가 이런 변을 당하다니, 이 얼마나 불행한가! 아니, 그 반대이다. 오히려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슬퍼하지 않고 현재에 압도당하거나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는 행복한 것이다. 그대가 당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일에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불행으로 생각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행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떠한 일이 인간의 본성에서 벗어나지 않을 경우 그 일을 불행이라고 말하겠는가? 자연의 본성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인간의 본성에는 어긋나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대는 자연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일어난 일이 그대가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가? 또 그것이 정의, 관대함, 절도, 신중함, 솔직함, 겸손함, 독립심 등 본연의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막고 있는가? 앞으로 어떤 문제에 부닥쳐 불행하다는 생각이 마음을 괴롭히면 다음과 같은 법칙을 적용하라. “이것은 불행이 아니다. 오히려 꿋꿋이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라고 말하라. ---p.78~79 미래의 일로 걱정하고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미래가 현재가 될 때,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는 바로 그 이성으로 미래의 일도 훌륭하게 처리해 낼 수 있다.---p.126 성공할 가망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연습하라. 연습 부족으로 인해 다른 모든 일에는 무력한 왼손도 말고삐를 잡는 일만은 오른손을 훨씬 능가한다. 그것은 왼손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그 일을 연습했기 때문이다. ---p.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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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철인황제의 사색과 체험에서 우러나온 고뇌의 걸작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제25권에서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살펴본다. 이 책의 원제는 ‘Meditation’이다. 『명상록』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 황제의 입장을 떠나 사색하는 한 사람의 생활인, 그리고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 철학자로서 자신의 사상과 체험을 토대로 쓴 에세이로서 그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스스로 인생을 올바로 살기 위하여 경계하고 깨우치는 목적으로 쓴 일종의 수기인데, 자신의 결함을 경계한 것, 행한 일을 반성하고 스토아적 입장에서 스스로에게 충고한 것, 귀감이 될 만한 다른 사람의 글을 발췌한 것 등으로 그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이 글은 그때그때 체험에서 우러나온 단상(斷想)들을 틈틈이, 즉 전시(戰時)의 진중이나 정사를 돌보는 사이에 쓴 것이며, 어릴 때부터 익혀 온 수사학의 재능을 십분 발휘한 아름다운 문장이라 평가된다. 아우렐리우스의 사상은 그가 평생을 두고 연구하고 고민했던 스토아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신,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갖가지 삶의 국면을 굳건한 사상적 바탕 위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흔히 『명상록』은 스토아 철학의 진수를 설명한 것으로도 평가되고 있으며, 에픽테토스의 『어록(語錄)』과 함께 고대의 명저로 손꼽히고 있다. 『명상록』은 어떤 초기 편집자가 12권으로 분류했었는데, 첫째 권을 제외하고는 내용이 뒤섞여 있어서 각 권의 내용을 만족할 만하게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요점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제1권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로부터 배우게 된 교훈이 겸손하게 언급되어 있다. 제2권은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제3권은 진정한 자유인 신에 대한 복종에 대해, 제4권은 기회의 부재에 대해, 제5권은 운명과 역할에 대해, 제6권은 내면적 삶의 절대적인 중요성에 대해, 제7권은 충동의 억제와 자기 만족의 추구에 대해, 제8권은 마음의 평정에 대해, 제9권은 자발적인 의지와 인간을 지배하는 운명에 대해, 제10권은 개인의 주변 환경과 그에 관한 성찰에 대해, 제11권은 이타주의(利他主義)에 대해, 제12권은 죽음의 초월에 대해 쓰여 있다. 제1권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터득한 것이 아니고 조상, 부모, 스승, 신들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여기서 그의 겸손함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자기가 처한 위치, 상황, 환경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는 생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제2권부터는 『명상록』의 본론이라 할 수 있는데,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않은 단편적인 글들이라 내용이 다소 중복되고, 또 축약된 말들이 있어서 어려운 곳도 있으나 앞에서 스토아 철학에 대한 개괄적인 해설을 읽었다면 아마 별무리 없이 읽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