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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김지혜
열림원 200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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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판 시

책소개

목차

시집을 펴내며

1부 이층에서 본 거리
이층에서 본 거리
그런 것이 아니다
가수는 천국의 계단을 노래하고
여기가 어디입니까
목련이 지고 있다
소금 낙타
밀랍 병원
불가해한 계단
거부할 수 없는 소리
부재
이마와 관자놀이께 사이
폴라로이드 사진
중국집에서
화환들
꿈꾸는 거지
투신
덜컹거리는, 흔들거리는

2부 어떤 고백
어떤 고백
심장
그믐
우물에 대하여
당신의 시사회
입속의 해골
이팝나무를 찾아서
부엉이 경쇠
이미 가본 곳


낚시꾼
일요일
독거미
서대문 일기#1
서대문 일기#2
서대문 일기#3
서대문 일기#4
서대문 일기#5

3부 오후에 온 편지
어둠의 강
구름에 대하여
빛, 관 속으로
한 마리 거대한 울음
곡선에 대하여
베팅
격렬함에 대하여
흉곽의 사랑
시간의 화첩
어떤 의자
청평사 가는 길

현장
간장꽃

窓이 바닥에 놓여 있다
오후에 온 편지
그날 아침, 열린 문
時失里

해설- 젊은 구도자의 명상, 여덟 개의 화두/ 하창수

저자 소개

저자 : 김지혜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재학중이다. 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이층에서 본 거리」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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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6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225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0635040

출판사 리뷰

곡선적 시간을 건너가는 젊은 구도자의 눈물겨운 행보

강퍅한 도시 뒷골목을 끌어안고 한 시인이 걸어간다. 그가 가는 길은 도시의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그가 건너가는 곳은 근대적 시간이 만들어낸 순차적인 하루가 아니다. 그가 몸을 빌린 ‘낙타’의 지난한 순례는 일상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는 기이한 세계의 어떤 곳이다. 이제 낙타는 사막을 건너지 않는다. 이미 사막보다 더 사막 같은 현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신기루들이 둥둥 떠다니는 녹색 전철 안을 낙타는 자박자박 걸어간다. 온갖 허깨비들의 난무와 소금으로 변해버린 시간의 손톱, 머리카락, 눈물. 젊은 그는 이 모든 것을 지나가는 중이다. 김지혜 시인의 이러한 걸음을 더욱 주목하게 하는 것은, 도시의 공간에서 나선형을 그리는 곡선적 시간을 통과한다는 것.

전철 차창에 빳빳하게 날 서 있는 두 눈, 두 눈 속에서 대롱거리며 울고 있는 목젖, 목젖에 맺혀 어디로도 달아나지 못하는 저 짜디짠 외마디, 차창에 맺힌 무수한 허깨비와 허깨비와 허깨비들의 절규 같은 나선을 본다 시침과 분침의 양팔을 끌어당기며 한정 없이 굴러가고 있는 불씨와 불덩이들, 슬픔은 슬픔이라서 슬픈 것이 아니라 지나갔거나 지나는 중이거나 지나갈 것이기에 아픔이라는 듯 혹을 짊어진 낙타들이 톱니처럼 타박거리는 그곳
- 「소금 낙타」부분

도시는 시인에게 기이한 세계의 속살을 드러내는 구도의 공간이다. 그는 울음의 안쪽, 기다림의 안쪽, 빛의 안쪽을 들여다본다. ‘욕실 벽을 타고 넘어오는 욕지기 소리’는 가래를 쏟고 있는 대상이 사내인지 사막인지 ‘기형의 별들이’ 쏟아지는 타클라마칸의 어떤 밤인지 ‘벽 속에서 흐느끼는 사내’는 그렇게 울고 있고, 골목에서 잠들었거나 죽었거나 하는, 모시바람의 어떤 노파는 순간의 정점에 놓여 있다. ‘늙은 암캐처럼 미동 없는 두 눈’이다. 그는 노파가 놓인 그 자리에서 ‘헛것’을 본다. 암흑 속에서 살아나는 본질의 끔찍함을 본다.
이제 시간은 덧셈의 계산법이 아니라 숨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며 그의 고백은 그 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음지 깊숙한 곳에 물이 흘러와 고인다 물은 여자가 흐느낀 시간, 시간이 흘러와 고인다 고여 깊어진다 시간은 콜타르를 칠한 벽처럼 고요하다 그 벽에서 기적처럼 만삭의 달이 둥실 떠오른다 수면 밑에서 달이 빙그레 웃는다 달이 숨쉴 때마다 여자가 사과처럼 웃으며 흔들린다 그러나 그대, 기어코 탐욕스러운 손아귀를 밀어 넣는다 달을 거칠게 움켜쥔다 여자의 심층이 뿌리부터 요동친다 조금만 더 들어온다면 죽여버릴 테야 그러나 그대, 달을 움켜쥔 그대가 이젠 시간이다 그대의 억센 힘이 달을 일그러뜨린다 여자가 파닥파닥 몸을 뒤튼다 우물이 덜컹거린다 시간의 물이 주워 담을 수 없는 속도로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그대 손아귀에 쥐어졌던 달이 온데간데없다 달이 사라지자마자 그대의 손이 뼈를 드러내며 타들어간다 여자가 고사목 음색으로 낄낄거린다 다 죽여버릴 테야 여자의 아랫도리가 삽시간에 뻣뻣해진다 우물이 강퍅한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달도 손아귀도 요동도 없는 바닥, 시커먼 짐승 한 마리 가만히 누워 있다 그 짐승이 다리를 벌리자 이윽고 물이, 물이 차오른다
-「우물에 대하여」전문

그는 ‘존재의 망루’ 밖에 게워지는 ‘천 년 전의 어떤 고백, 만 년 전의 어떤 비명’을 듣는다. 기이한 모든 소리들은 입속에 사는 해골의 영혼을 번역하는 구관조에 의해 극단의 고백으로 바뀐다. ‘진실의 맨 낯을 회피해온 자’들은 해골과 구관조의 존재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녀의 입속에는 해골이 들어 있어요 그녀가 입을 벌리면 뼈들이 덜그럭거리며 웃음을 터뜨려요 불필요한 관념들이 떨어져나간 두개골의 소리는 청명해요 한적한 절간에서 몸을 퉁기며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말하는 風磬 소리예요 그러나 어떤 이는 그 웃음소리를 비난이나 조롱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뼈의 웃음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자의 불행이죠 그는 자신의 악취와 구토의 세월을 경멸하며 지나온 자예요 그 속으로 들어가 함께 썩어 들어가기를 기도해본 적 없는, 늪을 모르는 자이죠 아니 늪을 빠져나오지 못한 자예요 악취도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악취의 음악이 뼈를 울린다는 사실을 그는 결코 몰라요
-「입속의 해골」부분

그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공간, ‘서대문’에 사는 날개 부러진 사제의 일상적 시간들을 고백한다.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제는 끝끝내 현실적 시간으로부터 탈주한다. 남아 있는 여자와 아이들은 극도로 깊어진 절망과 고통의 힘으로 새로운 날개를 갖게 된다. 천 년의 세월 동안, 그들은 나무와 바다가 되고 불이 되었으며 언덕이 되었다. 바다에서 날아오른 새들은 모든 사물이 교합하는 그 순간을 가로지르며, ‘태양이 사라진 자리, 어두워지는 사위 속에서’ 마지막 날개를 버린다.

그러므로 젊은 시인이 눈물겨운 구도자의 행보로 들어선 마을은 현실적 시간이 사라진 ‘時失里’이다. ‘태초의 모든 빛’이 들어온 마을, ‘후루룩 온 길 모두 지우고 돌아서는’, ‘열꽃의 몸 섞어 만개한 적 있던 지금 여기라는 幻 ’ 속에서 시인은 새로운 시간을 살기 시작한다. ‘풍 맞아 입 돌아간 이 땅의 피부 안쪽 깊숙이/ 심층부터 곪고 있는 이 땅의 내장 속으로 한없이’ 들어가면서. 차가운 사막, 도시의 일상을 통과하는 그는 ‘火’의 손길로 세계의 곪아터진 안쪽을 어루만지며 꿋꿋하게 견딘다.

그는 직선적 세계를 떠나 ‘곡선으로 구부러’ 지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고 있다. 빛의 한 본성이 어둠이듯이, 그는 안쪽을 보고 있는 중이다. 화려한 도시의 공간, 합리와 이성의 얼굴을 하고 달려가는 억압적인 현실의 시간들, 그리고 곳곳에 도사린 일상의 끔찍함과 반복성은 젊은 그를 걷게 한다. 길 위에서 묵묵하게 걷고 있는 젊은 그의 고백을 우리는 이 시집에서 들을 수 있다. 내밀하고 기이한 세계의 안쪽을 비추는, 어둠을 품은 빛의 고백을.

내가 온전히 당신이 되고
당신이 온전히 내가 되는 날
나뉜 심장이 하나로 포개어지는 그날
우리의 詩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

몰락해도 좋으리

안녕, 내 딸아

-「時失里, 回」 부분

추천평

그는 빛의 한 본성이 동굴임을 발견한다. 그곳이 아무리 화려해도, 아무리 빛나도, 어떤 상업적 존재들로 바글거려도, 그에게는 단지 어두울 뿐인, 모든 위선을 지우려고 화려하게 불을 밝혔을 뿐인, 가증스런 빛의 동굴이다. 그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란 암흑인 빛 속을 날아다니는 박쥐들뿐이다. 그 속에서 ‘나’는 혼자가 된다.
-하창수 해설 「젊은 구도자의 명상, 여덟 개의 화두」중에서

시집 『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가운데는 권태와 우울 같은 일상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시적 자아가 도처에 해체되어 누워 있다. 또 지하보도 벤치에 둥그렇게 모여든 누추한 잠벌레들이 있는가 하면 언젠가 한날한시에 완성될 완벽한 퍼즐판인 거리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세부의 기이함들을 축으로 그려지면서 작품 겉문맥에 내파된 의식의 편린들로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층의 거리에서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그려낸 김지혜 시인의 내면 풍경…… 거기에는 아픈 그러나 새로운 젊은 감성이 있다.
-홍신선(시인, 동국대 교수)

비유컨대, 이 시집은 흑백의 사진첩이거나 극사실의 화첩이다. 하지만, 젊은 날의 독사진이나 옛 애인의 초상처럼 아름다운 컷을 찾기는 어렵다. 대개는 한참을 들여다보아야 면면을 알 수 있는 단체사진이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의 그림이다. 밀고 당기는, 자빠지고 쓰러지는, 넘어지고 일어서는 존재들 혹은 집단의 풍경이다. 모여서 우는 익명의 얼굴들이다. 모여서 썩고 있는 사물의 표정들이다. 김지혜의 시들은 시간과 공간, 생명과 무생명의 거대한 커넥션에 떠밀리는 우리네 삶의 긴박한 질서를 세필(細筆)로 보여준다. ‘자업(自業)’의 막막함과 ‘공업(共業)’의 아득함을 깨닫게 한다.
-윤제림(시인,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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