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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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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대학과 대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으며 국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계간 『문학/판』에 시 5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데뷔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피아노 악어』와 『말뚝에 묶인 피아노』, 인문학을 바탕으로 쉽고 편안하게 클래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쓴 음악 에세이 『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 노래를 통해 시대정신과 대중의 욕망을 해석한 문화연구서 『노래의 시대』, 유서 깊은 예배당이 간직한 문화와 역사를 돌아보며 삶의 가치를 탐색한 『예배당 순례』 등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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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3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09쪽 | 172g | 128*205*20mm
ISBN13
9788970634920

출판사 리뷰

혼자 지키는 집,
늪으로 변해버린다
땀이 거머리처럼 머리 밑을 기어다니고
눅눅한 공기가 배밀이를 하며 들어온다
수초가 슬금슬금 살을 뚫고 자라난다

피아노 뚜껑을 연다
쩌억, 아가리를 벌리며 악어가 수면 위로 솟구친다
여든여덟 개의 면도날 이빨이 덥석 양팔을 문다
숨이 멎는다
입에선 토막 난 소리들의 악취
손가락은 악어새처럼 건반 위를 뛰어다녔는데
놈은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내동댕이친다
물 깊이 물고 내려가 소용돌이 일으킨다
수압에 못 이긴 삶은 흐물거린다

대궁 아래 숨어 있는 눈망울
나는 수초 사이 처박혀 한없이 불어 터진다
어디선가 웅성거림 들려오는데
핏물 흥건한 이곳으로
물거품이 궤적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죽어라 헤엄치다 돌아본 늪엔
수련이 가득
구설수처럼 피어 있다

- 「피아노 악어」전문

‘혼자 지키는 집’이라는 고립된 공간, 피아노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들의 향연이 한 마리의 악어로 우리 앞으로 ‘솟구친다’. 연주를 하는 손가락은 악어새처럼 건반 위를 뛰어다니고 입에서는 소리들이 토막난 채 악취를 풍긴다. 악어가 된 피아노와 강렬한 음계들은 시인과 독자들을 수압에 못 이긴 삶을 건너 음악적 시간으로의 순간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고통스러운 소리의 향연이 끝남과 동시에 검은 악어의 늪에는 수련이 피고, 어둠 위에 구설수처럼 다글다글하게 피어 오른 이상한 희망의 모습은 생생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
피아노에 대한 감각적인 시선은 또 다른 시 「검은 밤」에서 오롯이 빛난다. “검은 장의사들이 관을 메고 나타난다/이미 몸속에 제 묘비명을 새긴 자의 관을/그들은 뚜껑을 열고 주술을 건다/굴촉성인 영혼은 꿈틀거린다”로 시작된 이 시는 피아노 연주회와 장례식 풍경과의 이미지 결합을 시도한다. 정적에 휩싸인 무대와 연주자들의 복장, 검은 피아노,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태양의 배를 타고 하늘을 건”너고 “금관과 허리 드리개 부장품들”을 발굴하며 “순장되었던 삶들이 공중을 선회하”는 일종의 제의의식인 것이다.
이렇게 음악과 사물이 결합한 상상력은 풍성하게 부풀어오른다. “바흐의 파르티타를 켜면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다가선다/가지에 내려앉은 새떼/선창을 하자 새들은 화답하듯 노래를 이어간다/밑동이 통주저음을 울리고/현악기의 빠른 활 놀림처럼 나뭇잎들 요동친다/분침이 되어 자라는 가지와/팔락거리는 초침들이 터질 듯 푸르게 시간을 부풀리는 나무”(「나무」)에서 보이듯 따뜻하게 부풀어오른 시간들은 삶의 빛과 어둠을 생명력이 가득한 태양의 시간으로 함께 불러들인다.


우리들은 태양에 눈이 먼 채로 신방에 들었다 하늘을 뒤덮은 다족류의 붉은 벌레들, 흰 옷과 고리 건 새끼손가락으로 기어올랐다 첨벙첨벙 물속으로 뛰어들어도 맨살에 달라붙는 흡혈귀 태양, 돌로 찧으면 붉은 것이 뭉클 터져 나왔다

우리들의 천국엔 휘묻이한 햇살들 잎 틔우고 미운 점 까맣게 박혀 할딱이던 산나리, 과수원에서는 홍옥들 두근두근 익어가는 소리 들려왔다 태양은 스피커처럼 아, 아, 아, 아, 끈끈한 파장을 흘려 우리들을 묶고……

-「나의 천국」부분

모든 것을 흰빛으로 증발시킬 듯한 강렬한 태양은 삶과 죽음이 일치되는 지극히 순수한 순간을 창출한다. 눈부시게 환한 이 절정의 순간은 이 시에서 ‘신방’과 동일시된다. 태양의 강렬하고 끈끈한 생명력은 ‘다족류의 붉은 벌레들’이나 ‘흡혈귀’ 같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비유를 통해 강조된다. 빛나는 태양이 환기시키는 강한 생명력은 서영처의 시에서 종종 이와 유사한 감각과 관능을 유발한다.

-이혜원 해설 「공명(共鳴)과 공생(共生)」중에서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시인은 “아기 잇몸 뚫고 하얀 꽃잎 돋아나”(「태양, 물 위의 연꽃들」중에서)는 원초적인 생명력에 이르러 더욱 넓어진다. 이 자유로운 시선은 자연과 도시의 이분법적인 대립을 넘어서서 새로운 “숨소리”를 찾아낸다. 하나의 공간 안에 공존해 있는 자웅동체로서의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의 비의가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은 다음과 같은 시를 세상에 내놓았다.


상하수도와 가스관, 통신케이블 관
누군가 지하에서 불어넣는 숨소리로 도시가 울고 있다
묘지마다 부풀어오른 봉분들의 긴장 좀 봐
달리는 자동차 우는 아이들 굴착기의 굉음,
빌딩의 막대그래프가 춤추며 출력을 그려댄다
파이프오르간이다
아픈 짐승들처럼 먹구름 몰려오고
고층아파트는 오디오 스피커처럼 늘어서서
하모니를 뿜어낸다
도시의 거대한 뿌리,
지하철이 철컥철컥 옥문을 잠그며 지나간다

-「파이프오르간」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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