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집을 펴내며
뭉게구름 그림자 여울에서 돌의 맛 여울이 歌王 백만년이 넘도록 맺힌 이슬 人魚에 대한 상상 물뱀 백세주병이 버려져 있는 해질녘 열목어 물허벅 아지랑이 피서지에서 부두의 오후 화분 비 분류법 물방울무늬 넥타이를 맨 익사체 무지개 砂丘에서 죽뻘 조개껍질 중생대의 뼈 재 위의 들장미 태양의 납골묘 도마뱀 거울 거울과 눈 자연 고요한 새장 검은 돌 돌부리 멸치와 고행자 텔레비전 바보성인에 대한 기억 공터의 소 기암괴석 앞에서 아무 일 없었던 나 구름들 가을 잠자리 붉은벽돌집의 가을에 달과 도마 비둘기의 벽화 기러기 반 마리 자살의 풍경 검은 고양이 가난한 사람들 붕괴되는 사과 시치미떼기 끈 두엄 휘발 범눈송이 멍게 수평선 落照 고요 櫓 해설: 시선의 시학 - 성민엽 |
崔勝鎬
최승호의 다른 상품
|
열림원에서 새롭게 기획한 시인선 <문학판 | 시>, 그 첫 권으로 최승호의 시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가 출간되었다. 최승호 시집에 이어 김록 시인의 <광기의 다이아몬드>와 이성복 시인의 <달의 이마엔 물결무늬 자국>이 10월 중순에 출간될 예정이다.
열림원은 2001년 계간 <문학판>을 창간하면서 우리 문학 공간에서 새로운 문학적 판 한마당을 벌이겠다는 뜻을 펼쳐보였는데 이러한 의지의 연장으로 <문학판 | 시> <문학판 | 소설> <문학판 | 평론>이라는 단행본 시리즈를 기획하여 지난 3월 최윤의 장편소설 <마네킹>을 출간한 바 있다. 최승호 시인은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 <텔레비전>으로 2003년 제3회 미당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되었다.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을 넘어선 견자의 상상력> 최승호의 이번 시집은 <모래인간(2000)>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그의 열한 번째 시집이다. 그동안 펴낸 열 권의 시집을 통해 맑고 깨끗한 감성과 절제의 언어, 도시화 산업화 사회에서의 소외, 세속도시의 욕망에 대한 비판, 생태학적인 관심, 소멸과 무(無) 등 존재의 근원에 대한 허무주의적 탐색 등 다양한 시적 면모를 보여주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전작의 그 모든 주제들이 중첩되면서도 거기에서 한발 더 내디딘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시집은 ‘물의 시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물 이미지로 가득하다. 시인은 흘러가는 물을 통해 인간의 삶과 문명과 자연에 대한 특유의 견자적인 시선을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한계 속에 살다 무한 속에 죽을 것이다 / 그러면 좀 억울하지 않은가 / 우리는 무한을 누리다 한계 속에 죽을 것이다”(<수평선> 부분) “시는 흘러가고 / 독자는 건너가는가”(<櫓> 부분) <시선의 시학> 문학평론가 성민엽은 ‘본다’는 것과 ‘시선’을 이번 시집에 나타난 시적 상상의 핵심으로 보고 그 ‘시선’을 네 가지로 패턴으로 나누어 해석하였다. 첫 번째 패턴은 대상에 대한 주체의 관찰의 시선이다. 그 시선은 기본적으로 비판적이지만, 그 너머의 긍정적인 것으로까지 확대되는데 이때 시선의 본질적 속성은 “걸림 없는 맑은 시선”이다. “번쩍거리는 유리들의 복도 사이에서 / 걸림없는 맑은 시선으로 재를 들여다보며 // 적어도 건조된 재에는 더 이상 불길한 욕망들이 없다는 것을 / 우리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태양의 납골묘> 부분) 두 번째 패턴은 “걸림없는 맑은 시선”에 탈이 났을 때의 시선으로 이때 대상을 보는 주체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들장미는 재 흘러내리는 / 철로변에 있었다 / 그것은 피사체가 아니었다 / 마음은 사진기계가 아니었다 /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 들장미라는 말이 떠오르기 전에 / 들장미가 있었다 / 그것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었다 / 나는 향기로운 한 송이 인간이 아니었다”(<재 위에 들장미> 부분) 세 번째 패턴은 자기 자신을 보는 자기 응시의 시선으로 보다 온전한 자기 응시는 거울을 통해 가능하다. “문득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다가 / 껄껄껄 웃을 만큼 / 낙천적인 해골은 누구인가?”(<거울> 마지막 연) 네 번째 패턴은 주체와 타자 사이의 분별조차 사라진 시선으로 타자의 시선들 앞에서 주체는 불안하다. “나는 늘 불길해지는 미래의 오늘로 이끌려온 것 같다 / 뭔가 좋아질 것 같았던 / 그러나 불안의 아가리만 더 크게 벌어진 / 오늘”(<끈> 부분) 이 불안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시인은 인식의 전도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존재를 타자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드는 반죽화를 시도한다. 그것은 더 이상 시각에 의해 감시되지 않는 물렁물렁한 세계로 긍정과 부정을 넘어서 있다. “마네킹과 콘크리트와 鐵筋의 도시에서 / 물질적 반죽으로 부풀어오르고 싶은 비 / 옷에 스미고 살에 닿으면서 / 분비되는 나의 진액들과 뒤섞이는 비” (<비 분류법>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