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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晟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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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달에는 물로 된 돌이 있는가? 금으로 된 물이 있는가? --- 파블로 네루다, 「遊星」 불 끄고 자리에 누우면 달은 머리맡에 있다. 깊은 밤 하늘 호수에는 물이 없고, 엎드려 자다가 고개 든 아이처럼 달의 이마엔 물결무늬 자국. 노를 저을 수 없는 달은 수심 없는 호수를 미끄러져 가고, 불러 세울 수 없는 달의 배를 탈 것도 아닌데 나는 잠들기가 무섭다. 유난히 달 밝은 밤이면 내 딸은 나보고 달보기라 한다. 내 이름이 성복이니까, 별 성 자 별보기라고 고쳐 부르기도 한다. 그럼 나는 그애 보고 메뚜기라 한다. 기름한 얼굴에 뿔테 안경을 걸치면, 영락없이 아파트 12층에 날아든 눈 큰 메뚜기다. 그러면 호호부인은 호호호 입을 가리고 웃는다. 벼랑의 붉은 꽃 꺾어 달라던 수로부인보다 내 아내 못할 것 없지만, 내게는 고삐 놓아줄 암소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산다. 오를 수 없는 벼랑의 붉은 꽃처럼. 절해고도의 섬처럼, 파도 많이 치는 밤에는 섬도 보이지 않는, 절해처럼. --- pp. 2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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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왜 나는 자꾸 40대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전에 고등학교 때 한참 정치에 꿈이 부풀어 있을 때, 국회의원 딸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학 갓 들어가 예술이니 사상이니 미쳐 있을 때, 유명화가의 전시회에서 심오한 질문을 해댔다. 화가는 한참 쳐다보더니 쌩까버렸다. 다시는 글 안 쓴다고 군대에 가서는, 한참 뜨고 있던 여류시인에게 오밤중에 전화를 했다. 그녀가 정중히 전화를 끊었을 때, 그때도 참 부끄러웠다. 그러나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 들어가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 pp.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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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기와 브레이크 페달을 번갈아 밟을 때처럼 내 글쓰기가 지나친 갈망과 절망으로 울컥거리기만 할 때, 평소에 좋아하던 다른 나라 시에 말붙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내 관심사는 인용된 시를 빌미로 하여, 대체 나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맘때, 한참 억지를 부리고 난 아이처럼 멋쩍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말로 시를 옮기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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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원에서 펴내는 시인선 <문학·판 | 시>의 두 번째 시집으로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이 출간되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2003년 6월에 출간된 『아, 입이 없는 것들』에 이은 작가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100편의 시는 모두 우리말로 번역된 외국 시인들의 시를 읽고, 그 독서에서 출발하여 씌어진 시들이라는 점에서 좀 별나다. 시의 제목 밑에 인용된 외국 시인들의 시에서 떠올린 단어나 문장, 이미지, 또는 주제나 세계관을 가지고 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예를 들면 "울음 울며 크게 자란 / 나의 모든 돌과 함께"라는 파울 첼란의 시구는 시인에게 우선 괴로울 고(苦)자를 떠올려주고, 뒤이어지는 "붕대로 머리 싸맨 아폴리네르처럼 이끼 낀 돌이 있다. 애초에 괴로울 '苦'자를 닮은 돌, 이미 괴로웠던 것 아니고 무작정, 무한정 괴로울 돌. (……) 그러나 돌은 이끼 낀 제 움집에서 빠져 나올 생각이 없다. 온몸이 집이라면 당신은 어느 문으로 나오겠는가."라는 시인의 말은 한자 '苦'의 형상에서 비롯된 은유들로 읽힌다. 그리고 그것은 세월의 더께 속에 갇힌 인고(忍苦)의 나날과 함께 출구 없는 삶의 문 앞에 문득 마주선 시인의 마음, 그 막막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인용된 시 구절들이 시인의 욕망을 일깨우고 시인의 욕망이 그 말들의 증식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거듭되는 생의 운명과 화해하고자 하는 열망 이성복 시인이 첫 시집에서부터 줄곧 보여준 삶과 화해하고자 하는 열망, 이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운명과 화해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은 이번 시집에도 이어진다. 시인에게 온갖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생의 풍경은 처연하면서도 속되다. 생을 거듭 살아도 생명 가진 것들의 운명은 변함이 없으며, 초월이나 결정적인 구원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 위안과 구원의 표상이었던 어머니조차 "내 종아리에 달라붙어 피를 달라" 하는 "검은" 어머니로 형상화된다. 즉, 우리가 생에 던져지는 순간 '이별'하게 되는 어머니, 그래서 생사를 관통하는 시간의 배후에 항상 음화로 존재하는,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인 것이다. 하늘의 무서운 새가 내 어머니 물고 간다. (……) 어쩔꼬, 하늘 깊은 둠벙에 내 어머니 빠지신다. (……) 비름박 마른 씨레기 같은 어머니 이제 안 보이신다. 이 세상과의 화해를 갈망하는 시인의 사유방식은 선(禪) 수행의 화두 잡기와 유사하다. 그것은 선수행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철저한 부정의 정신이다. 시인은 '나'의 모든 선입견과 집착을 내려놓고 처음인 듯 삶의 풍경 하나하나를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대립적인 것들은 서로를 부정하면서 되비추고 되비추면서 부정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나는 너의 이름을 끊는다.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끊을 수 없는 것을 끊겠다는 집념의 어리석음. 내 어리석음만큼의 길이와 굵기를 가진 너의 이름. (……) 네 이름은 네 환상이 내 환상을 끊어내는 자리. (……) 네 환상이 내 환상을 똥누는 자리. (……) 그래서 '분별'과 '분별하지 않음' 사이를 가로지를 수밖에 없는 삶의 양상은 끝없이 허기를 부르고, 허기는 또다시 열망을 낳는다. 이 시집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허기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셈이다. 내려놓아도 이내 마음속에 되살아나는 열망, 그것은 덧없는 환(幻)이겠지만, 그 환의 힘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