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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너무나 일상적인
2003년 계간 『문학?판』을 통해 등단한 늦깎이 시인 김승강 씨의 시집 『흑백다방』이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김승강의 시들은 매일매일 마주하는 삶, 너무 낯익어서 사소하고 무감하게만 느껴지는 일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평범하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고 그 안의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이 시인이지만 김승강 시인은 도무지 시가 나올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상상력을 가동한다. 예를 들면 “삼겹살을 구워먹고 있는데” 나타난 “파리 한 마리”를 보고, “내가 삼겹살을 구워먹는다고 누가 소문을 냈을까 / (……) / 바람이 파리에게 소문을 낸 게 틀림없다. / 바람은 파리에게 내가 삼겹살을 구워먹는다고/귀띔해준 대가로 무엇을 받았을까”(「삼겹살과 파리」)라고 짐짓 시침을 떼며 일상적 상황에 숨어 있는 시적 재미를 찾아낸다. 그런가 하면 통닭 한 마리를 “수습”하고 남은 뼈를 쓰레기통에 버렸더니 그것을 고양이가 다시 “수습”하고, 뜯어진 쓰레기 봉투를 아내가 거듭 “수습”하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쓰레기차가 수거해가는 상황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쓰레기수거차의 종소리가 / 가까이 들렸을 때 / 아내는 부엌에서 도마를 두드리고 있었고 /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었다. // 자동차 밑을 전전하던 고양이 / 텅 빈 도로에 나와 / 잠시 그쪽을 향해 묵념했을 것이다.”(「수습」) 시인은 이렇게 사소하고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작아지는 나날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작아지는 나날들’을 이미지로 조형해내는 능력과 그 안에서 보여주는 삶에 대한 통찰은 결코 ‘작지’ 않다. 이층집 남자가 베란다에 나와 매트리스를 털고 있다. 나는 새벽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내 몸에 앉았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다시 숲으로 돌아갔다. 아래층집이 커튼을 내린 채 아직 잠들어 있다. 맞은편 집이 먼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한다. 창문이 드르륵 열리자 이층집 남자는 안으로 얼른 들어가버린다. 골목길로 자동차가 한 대 급히 지나간다. 포장길 위로 잠시 먼지가 일어난다. 도둑고양이 한 마리 도로를 가로질러 골목길에 웅크린 자동차 밑으로 몸을 숨긴다. 해가 뜨자 지렁이들이 포장도로 위로 일제히 먼 길을 나선다. 슈퍼마켓 김씨가 수도꼭지에 고무호스를 연결하고 방금 자동차가 지나간 길을 향해 물총을 쏘아댄다. 이층집 여자가 대문을 나서며 출근하고 있다. 나는 새벽산책에서 돌아와 샤워를 한다. 내 어깨 위에서 새들의 길이 지워진다. ―「작아지는 나날들」 전문 “내 몸에 앉았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 다시 숲으로 돌아갔다”는 구절의 이미지는 “내 어깨 위에서 새들의 길이 지워진다”는 마지막 행의 이미지와 수미일관한 풍경의 리듬을 형성함으로써, “방금 자동차가 지나간 길을 향해 물총을 쏘아대”는 ‘슈퍼마켓 김씨’의 행위와 맞물려 ‘지워지는 길’의 이미지를 한층 견고하게 조형할 수 있게 된다. 그 길은 갈수록 초라해지고 마모되어가는 누추한 삶의 여정을 암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해가 뜨자 지렁이들이 포장도로 위로 먼길을 나선다”에서 보이듯, 저 길 위에서 죽을 운명을 타고난 미물이 제 혼신의 힘으로 기어간 어떤 흐릿한 흔적들처럼 말이다. 이렇듯 우리 삶 어디서나 마주칠 듯한 일상의 풍경을 시인은 세밀한 관찰을 통해 독특한 시적 풍경으로 바꾸어놓는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보편적인 삶의 무늬와 흔적 앞의 시 「작아지는 나날들」에 등장하는 “먼길을 나서”는 “지렁이”는 또 다른 시에서 삶과 죽음, 잉태와 소멸을 동시에 살고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 입이면서 똥구멍이고 / 똥구멍이면서 입인 / 자궁(子宮)이면서 자(子)인, / 피막 속에 갇힌 아이인 / 핏덩이 아이를 감싼 피막인 지렁이”(「지렁이」) “특히 지렁이, / 태어나지 못한 내 욕망의 주자들 / 불임의 길 위로 나왔다 / 짓밟혀 으깨지는, 혹은 말라죽는,”(「기는 것들」) “지렁이가 기어가고 있다. //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가 길을 가고 있다. /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가 가는 길을 태어난 내가 가고 있다. / 태어난 내가 무덤으로 가는 길을 / 태어나지 않은 자가 자궁으로 가고 있다. / 태어나지 않은 자의 자궁으로 가는 길과 / 태어난 내가 무덤으로 가는 길이 중복된다.”(「지렁이의 길」) 시인은 지렁이의 꿈틀거림을 보면서 온전히 꽃피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욕망을 읽고, 무덤의 길과 잉태의 길이 중복되는 것이 우리들 삶이라는 인식에까지 이르게 된다. 일상과 존재의 미세한 기미들을 포착하여 삶의 통찰로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솜씨가 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개별 사물과 존재들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토대로 거기에서 어떤 보편적인 삶의 무늬와 흔적을 읽어내는 시인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다. 김승강 시인은 ‘시집을 펴내며’에서 “내가 한 마리 수컷으로 태어나 먹고·마시고·싸고·하는 동안 / 나에게 몸 바친, 나를 통해 버려진 것들의 / 운명을 생각한다. // 하루에 생각한 것들을 여기 모았다. / 하루살이의 일기라고나 할까”라며 자신의 시를 겸손하게 소개한다. 그 ‘하루살이의 일기’는 일상이 시로 꽃피는 놀라움을 보여준다. 또한 “엑스레이를 찍으면 골다공증을 앓고 있을 / 정겨운 이름 흑백다방”처럼 삶의 쓸쓸함과 덧없음을, 존재의 허약함과 부끄러움을 담담히 노래하고 있는 시집의 어조와 시선이 앞으로 이 시인의 행보를 더욱 주목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