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그녀들의 메르헨
2. 검은 나나의 꿈 3. 나는야 폴짝 |
김민정의 다른 상품
|
공포와 혐오로 일그러진 세계
죽음의 순간까지 멈추지 않는 극단적인 자기 혐오
김민정 시의 당황스러울 만큼 극단적인 감각은 먼저 화자의 자신에 대한 혐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폐 한가운데에 식칼을 대고 살 껍질을 훌러덩 뒤집어 내가 날 까버린다 서둘러 군불을 지피고 그 위에 석쇠를 달궈 내가 날 통째로 얹는다 지글지글 내가 날 굽는 냄새가 피어오르자 해골들과 부위 모를 뼈다귀들이 앞다투어 모여든다 석쇠 위에 고여 있던 핏물이 선지로 돌돌 말아 빚은 완자처럼 지져져 더욱 쫀쫀해진 내가 날 엿가위로 한 입 두 입 잘라 굽는다 따각따각 아귀 터지게 턱 벌리는 해골들에게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을 바싹 태워 먹여준다 오일 바른 상아같이 매끈매끈한 뼈다귀들의 몸에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을 파스처럼 붙여준다 불가에 모여 앉은 해골들과 뼈다귀들이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을 먹고 입고 점점 나로 살쪄간다 일곱의, 열넷의, 스물의, 스물일곱의 제각각의 내가 날 쳐다보며 나야 나야 손을 흔든다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들을 다 트림하고 나로 자란 그대들이 방방마다 걸린 액자 속으로 걸어들어가 찰칵찰칵 기념촬영을 한다 내가 날 잘라 구워 먹고 난 달궈진 석쇠 위에는 열세 개의 꽃삽만이 꽃게처럼 익어가고 있다 ―‘내가 날 잘라 굽고 있는 밤 풍경’ 부분 시의 화자에게 과거는 끔찍할 뿐 어떤 추억도 생산하지 않는다. ‘성장’은 희망과는 무관하고 현재는 여전히 피칠갑을 하고 있다. 김민정 시의 화자는 이처럼 괴로운 과거와 현재를 지나 결국 죽음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죽음은 “짬뽕국물 속에서 퍼즐조각처럼 갈가리 쪼개진 내가 송장헤엄을 치고 있다”와 같은 구절에서 보듯이 희극적으로 표현된다. 죽음의 순간까지 화자는 자기 자신에게 조소를 보낸다. 악몽의 기원으로서의 엽기적인 가족 풍경 김민정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에 빈번히 등장하는 가족의 풍경에 주목해야 한다. 가족은 김민정 시에 나타나는 들끓는 거리와 세상과 내면의 악몽이 발원하는 곳이자 그 악몽이 압축되어 있는 곳이다. 이미죽은내가 잠든 엄마아빠의 이부자리 속을 파고든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를 국자로 떠와 차례차례 변기에 담근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잠옷을 벗기고 속옷을 벗기고 바리깡으로 몸에 난 모든 털을 깎는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를 깨끗이 물에 헹구고 탈수기에 넣어 탈탈 말린다 이미죽은내가 쇠도끼로 엄마아빠의 머리뼈와 종지뼈를 쳐내 그걸 고아 프림색 국물을 우려낸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살을 조근조근 손톱깎이로 뜯어 홈을 판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뜯긴 살집에 손을 넣어 큼직큼직하게 살점을 떼어낸다 이미죽은내가 떼어낸 살점을 조물조물 납작납작 주물러서 국솥에 떨어뜨린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깎아놓은 털에 말간 뇌수액을 붓고 끈적끈적한 혈장을 버무려 양념장을 만든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발라놓은 뼈에 비계칠을 하고 불을 붙여 국솥의 아궁지를 달군다 이미죽은내가 링거바늘로 뽑아둔 엄마아빠의 피로 국물 간을 맞춘다 이미죽은내가 엄마아빠의 살수제비가 팔팔 끓고 있는 국솥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살수제비 끓이는 아이’ 부분 이러한 엽기 가족의 모습은 시집 여기저기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죽은 내가 부모에게 가하는 극단적인 행위, 몸의 저속하고 저급한 것들을 동원해 독자의 감각 기관에 충격을 가하는 방법은 무척 직접적이다. 그런데 김민정 시에 나타나는 가족의 해체와 부친 살해 욕망은 흔히 이야기하는 ‘가부장적 질서’와 ‘억압적 초자아에 대한 저항’이라는 지적인 해석으로는 다가가지 못하는 그 너머에 있다. 여기에 김민정 시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 어떤 계산도 적극적인 자기 의식도 배제된 날 것 그대로의 문법, 정신분석이나 사회학 성정치학으로 해석할 수 없는 거칠고 노골적인 직설법, 이것이 김민정 시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황량한 내면을 당차게 횡단하는 펑키적 발성법 박정대 시인은 가혹하고 냉혹한 현실을 희극적이고 만화적으로 노래하는 김민정 시의 ‘펑키적 발성법’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시적 징후와 정신적 근종’을 읽어낸다. 그녀는 ‘우리들 누구나의 이야기, 가장 뻔한 옛이야기’를 몰고 두구둑 두구둑 입으로 말을 달려와 우리들 잠든 심장의 세탁기를 찔러대며, 가장 뻔한 이야기를 가장 뻔하지 않게, 건건드러지게 들려준다. 그것은 바로 한 시대를 통과하는 예민하고 섬세한 시인의 정신적 근종으로서의 냉혹한 내면 풍경이다. 그녀는 ‘말도로르의 노래’를 ‘크라잉 넛’의 창법으로 소화한다. 나는 그녀의 발성법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시적 징후와 정신적 근종을 읽는다. 보여지는 풍경은 냉혹하고 가혹하지만 보여주는 방법은 만화적이며 희극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펑키적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운 화법으로 노래함으로써 오히려 황량한 내면의 풍경을 당차게 횡단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폐허가 폐허를 극복하듯, 고독이 고독을 치유하듯 말이다. ―박정대(시인) 이 언어들은 불경스럽고, 그 불경스러움은 노골적이다. 아마 이 노골적인 불경(不敬)을 어찌해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시집의 화자들에게 자기 자신과 모든 인간 관계와 세상 전체는 거의 개선이 불가능할 만큼 극악하다. 극악한 이미지들은 아버지에서 발원하여 엄마와 가족과 화자 자신을 물들이고, 결국 세상 전체로 퍼져 나간다. 서서히, 아버지는 확대된다. 아버지는 자꾸 자란다. 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다 덮어버린다. ―이장욱 해설 ‘그 여자의 악몽’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