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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 1부, K- 문화, 대한민국의 비교감수성 1장 K- 입시, 미래를 꿈꾸게 할 수 있는가 - 김정희 2장 시지프스 2023 - 엄윤진 3장 우리는 왜 피곤한가 - 이인숙 4장 ‘ㄹ(리을)’ 별곡 순례 - 최양국 5장 챗GPT의 돌멩이 수프 끓이기 - 해달 2부 K-콘텐츠, Z세대의 상실감수성 6장 누구도 가보지 못한 미지(未知)의 세계 - 김민정 7장 삶이 이렇게나 고단하다니 ― 뉴진스 NewJeans의 ‘디토 Ditto’에 열광하는 허무주의(자)들 - 이지혜 8장 〈벌새〉: 청소년 여성의 피로한 삶과 폭력의 다층성 - 서곡숙 9장 구독하는 관계 - 한유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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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사면 살수록, 시지프스의 바위는 더 커지고 무거워진다. 소비가 주는 순간의 기쁨을 느끼는 대가로 빚의 노예가 된다. ‘하고 싶은 일’보단 ‘해야 하는 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해 일상이 더 팍팍해진다. 이렇게 되면 일상은 다양한 관계에서 비롯한 여러 의무와 갚아야 할 빚만 있는 ‘감옥’과 같은 곳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일상은 오늘의 시지프스들에게 내리는 형벌이 된다.
---「시지프스 2023」중에서 우리는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니 말뿐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바쁜 늪에 빠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민족을 놀기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말이 이제는 일하기 바쁜 민족으로 바뀐 지 오래인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은 고된 노동도 놀이로 승화시키는 지혜로운 민족이었다. 특히 혼자가 아닌 모두 같이 노는 공동체 문화 속에서 역할과 책임, 그리고 배려와 인정을 나눌 줄 아는, “같이”라는 의미의 가치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아름다운 민족의 후손들이다. ---「우리는 왜 피곤한가」중에서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그들은 다른 작가를 찾았다고 했다. 그 작가의 이름은 챗GPT. 키워드 몇 개 주니 1분 안에 이야기를 뚝딱 만들어 내더라, 이야기 100개 만드는 건 일도 아니겠더라, 어쩌고 저쩌고. 망설이고 있던 주제에 빈정은 또 상해서 그의 말을 끊고 톡 쏘아주었다. 그래서, 나 잘렸다고? 지금까지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질 직업들 어쩌고 하는 기사들을 건성으로만 봐왔다. (...) 그런데 “여러분,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챗GPT의 돌멩이 수프 끓이기」중에서 문제는 이것이었다. 말하자면 ‘안전’에 대한 결핍이 욕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진정제’로는 진정되지 않는 ‘피로’와 ‘불안’이 현대인의 삶 속에 떠돌고 있었다.지난 몇 년간 우리의 삶은 너무 많이 불안했다. 안전하지 못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또 실패할 것이다. 모든 게 중지될 것이다. 허무로 돌아갈 것이다. 라는 요지의 불안을 적어도 나의 선택 때문에 느끼고 싶지 않은 게 당연했다. 그게 고작 영화나 드라마 혹은 음악을 고르는 정도의 사소한 선택이라고 해도 그랬다. ---「삶이 이렇게나 고단하다니 ― 뉴진스 NewJeans의 ‘디토 Ditto’에 열광하는 허무주의(자)들」중에서 아이돌 팬덤은 스스로를 불가촉천민으로 여긴다. 사회적 시선 때문이다. 어리면 어린 대로,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여자여도, 남자여도 마찬가지다.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취향 앞에선 모두 걸림돌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오히려 냉대받기에 팬덤 내부는 공동체로서 더욱 공고화된다는 점이다. 동일한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대감이 형성되고, 아이돌 팬덤으로서 소속감을 얻게 된다. ---「구독하는 관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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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감이 좀체 가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욕망이 크지 않은데도, 무리하게 일하지 않았는데도, 누구를 시샘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왜 이리 피로할까요? 범람하는 성공학 책들이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경영자”라고 말하지만, ‘피로사회’의 연구자인 철학자 한병철은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착취자이다”라며, ‘피로’ 이후 휴식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그는 성과사회의 과잉활동, 과잉 자극에 맞서 사색적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의 의미를 역설합니다. 무위의 가치를 중시하는 한병철은 피로가 가진 긍정적인 측면을 봅니다. 피로하게 되면, 과잉활동의 욕망을 억제하며, 긍정적 정신으로 충만한 자아의 성과주의적 집착을 완화하게 되고, 피로한 자아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유아론적 세계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K-피로는 확연히 다릅니다. 도무지 피로감이 멈추지 않습니다. 급격한 경제발전, 무한경쟁, 성과주의, 비교문화… K-피로에 대해 이미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진단과 해법을 제시해 왔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는 것이 어쩌면 우리 사회에 ‘피로’를 가중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년 사이 드라마와 영화를 1.5배속이나 2배속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한 곡의 노래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가 사라지는 주기도 고작 며칠을 넘기지 못합니다. 영화를 차치하더라도 유튜브마저도 길고 지루한지 쇼츠 동영상이 인기입니다.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작은 휴식을 찾아간 곳에서 우리는 또 한 번의 ‘피로’를 경험합니다. 자극적이고 빠른 템포의 콘텐츠들 가운데 웨이브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는 너무나도 느리고, 그래서 유독 튀는 드라마입니다. 힐링 드라마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힐링’이 아닙니다. 극 중 주인공 박하경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서 애써 쌓은 돌탑을 보고, 속으로 한마디 툭 내뱉습니다. ‘발로 차버리고 싶다.’ 돌탑을 쌓는 가슴 졸임은 온 정성을 다해 탑을 쌓은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위태로운 돌탑을 향한 박하경의 속말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힐링에 집착해왔다는 것을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열심 없는 힐링’, ‘힐링 없는 힐링’… 『우리는 왜 피로한가』의 9명의 저자도 박하경과 같은 마음입니다. K-피로에 대한 아홉 편의 글이 또 다른 이름의 ‘피로’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피로합니다. 이 책으로 조금이라도 누군가의 ‘피로’를 덜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