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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스 파시즘
진중권
개마고원 2001.07.31.
베스트
여성/젠더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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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말하면 죽인다? 침묵하면 죽는다! - '여성 해방' 안 된 사회의 인간은 여전히 노예다 /노혜경
2. '문인 신비주의'와 '생식 신비주의' - 문인 사회의 존립 근거에 대한 의혹 /이명원
3. '진보 상업주의'와 '문화 특권주의' - '박남철-반경환 사건'과 백낙청에 대해 /강준만
4.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 『월장』사건과 군사문화적 집단 폭력 /진중권
5. '우아한' 폭력과 그 점잖은 공모자들 - 학습되는 무력감, 재생산되는 폭력, 대물림되는 절망 /시타
6. 흑기사는 없다 - 남성의 불안과 왜소한 자아, 그리고 폭력성 /정승화
7. '죽이고 싶은 여자'가 되는 법 - 군가산점제 논란에 나타난 남성지배 문화 /권김현영
8. 가부장적 테러와 수치심의 심리전 - 피해자 보복문화의 퇴행성 /김현수
9. 적(敵)은 여성 내부에도 있다 - 남근주의적 보복행위에 동참하는 여성들 /김진희

저자 소개 1

陳重權

전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비평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귀국 후 각종 토론과 방송에서 사회 비판 평론가로서 활동하면서 중앙대학교와 동양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저서로는 『미학 오딧세이』『춤추는 죽음』『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천천히 그림읽기』『시칠리아의 암소』『페니스 파시즘』『폭력과 상스러움』『앙겔루스 노부스』『레퀴엠』『빨간 바이러스』『조이한·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춤추는 죽음』『놀이와 예술 그리
전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비평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 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귀국 후 각종 토론과 방송에서 사회 비판 평론가로서 활동하면서 중앙대학교와 동양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저서로는 『미학 오딧세이』『춤추는 죽음』『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천천히 그림읽기』『시칠리아의 암소』『페니스 파시즘』『폭력과 상스러움』『앙겔루스 노부스』『레퀴엠』『빨간 바이러스』『조이한·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춤추는 죽음』『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첩첩상식』『호모 코레아니쿠스』『한국인 들여다보기』『서양미술사』『컴퓨터 예술의 탄생』『진중권의 이매진Imagine』『미디어아트』『교수대 위의 까치』『정재승+진중권 크로스(공저)』『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공저)』『진보는 어떻게 몰락했는가』 등 다수가 있다.

진중권의 다른 상품

저자 : 진중권 외
노혜경
시인이자 부산대학교 강사. 저서로는 시집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뜯어먹기 좋은 빵』과 『한국 서술시의 시학』(공저)이 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이자 『비평과전망』 편집위원. 저서로는 비평집『타는 혀』가 있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서로 저널룩 『인물과 사상』시리즈와 『김대중 죽이기』『이미지와의 전쟁』『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 등이 있다.

진중권
문화비평가이자 『아웃사이더』 편집주간. 저서로 『미학 오딧세이』『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춤추는 죽음』이 있다.

시타
현재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와 여성주의자 모임인 '델타 페미니스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승화
영페미니스트 출판기획 『달과 입술』편집장. 저서로 『나는 페미니스트이다』가 있다.

권김현영
사이버 마초를 근절하기 위한 사이트 '시스터본드'에 참여했으며 저서로 『20세기 여성사건사』(공저)가 있다.

김현수
사는기쁨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빈곤가족과 일하기』『가정폭력 가해자와 집단프로그램』을 곧 출간할 예정이며, 번역서로 『인터넷중독증』이 있다.

김진희
주부이자 출판기획 편집자로 일하면서 월간『인물과 사상』에 글을 연재하는 등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7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5548670

책 속으로

창비가 개혁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앞서 인용한 박윤규의 글을 매우 감동적으로 읽었는데, 그가 글을 "개인적으로 제 완곡한 표현이 백낙청 선생님 개인의 위엄에 손상을 드린 일이 있다면, 그 또한 제 본래의 의도는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며 글을 마칩니다"라고 마무리짓는 걸 보고선 고개를 다소 갸우뚱거렸다는 걸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다음과 같은 의문 때문이었다. 백낙청 선생님 개인의 위엄은 손상을 받으면 안 되는 건가?
정서의 다수결주의로 보자면 나의 이런 생각은 매우 위험하고 어리석은 생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겠다. 나는 창비 스스로 이젠 창비의 신화를 깨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기득권을 더 이상 누려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혁과 진보와 전혀 무관한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 위해 극우 신문과도 평화공존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리고 그걸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려 하는 창비에게서 무슨 개혁과 진보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박남철-반경환 사건에서 보듯, 무자비한 인권유린에 대해 침묵하면서 창비 출신 문인을 위한 변명에만 열을 올리는 백낙청에게서 무슨 개혁과 진보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 pp.86-87

이번 박남철 사건은, 그 자신이 의도한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 여성을 매도하기 위해 문학이 사사로운 무기로 동원되고, 그것을 문학권력자들이 묵인하고, 나아가 그 어떤 여성 문인도 거기에 맞서 김○○ 시인에 대한 옹호나 배려를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문단적 상황, 이는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말의 타락이 어디까지 왔나를 알려 주는 정말로 놀라운 문학적 상징이자, 한국 여성이 처한 현실이 실제로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극히 페미니즘적인 상징이다.
'말'하기 시작한 여성에 대한 응징으로서의 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여성 자신이 만들어가는 데 대한 조직적 방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성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성 이미지를 관리하고 독점하려는 '말'의 억압인 셈이다.

성폭력이 주된 응징 수단이 되는 지배전략 아래서는 남성에 의해 제시된 숙녀와 탕녀라는 두 종류의 여성만이 사회 내에 나름의 지분을 지니고 살아남는다. 자신의 여성성을 순치시켜 남성들과 공존할 능력을 지닌 여성이거나, 남성을 위한 성의 대상이거나. 이 두 종류의 여성상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여성억압이라는 토대 위에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문학을 통해 끈질기게 제시해온 바로 그 여성 이미지들이다. 오로지 성의 두 효용인 생식과 쾌락이라는 두 분야에 얌전히 종사하는 여성들에게만 이 사회 내에서 생존의 길이 보장된다. 원래 하나인 사랑의 두 측면을 강제로 분리·외화시키는 남성의 통치전략은 이렇듯 여성을 여성 자신과 대립하게 한다. 남성지배 사회의 견고한 식민지인 여성은, 사회나 남성에 의해 직접적으로 강제될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사회와 문학이 부과하는 여성 이미지를 수납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식민화되기 때문이다.

--- pp.29-30

우리 사회에서 학습된 절망, 강요된 침묵의 메시지는 참으로 강력하다.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이를 즉시 발설하거나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문제제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에 대해 먼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너무나 철저하게 학습받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곳에 갔을까?" "내가 왜 술을 마셨을까?" "내가 왜 그 사람을 믿었을까?"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이렇게 "내가 왜…?"로 시작되는 무수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에서 싸움을 시작한다. 이것은 무슨 이상한 유전자가 여성들의 염색체 속에 들어 있어서가 아니라, 성폭력 사건을 발설하는 순간 어떤 질문을 받게 될지를 다른 여성들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가를 심문한다. 평소의 '행실'이 어땠는가? 담배를 피우는가? 주량은 얼마나 되는가? 사건 당시 옷차파림은 어땠나? 가해자와 왜 동석했나? 가해자가 폭력을 휘둘렀나? 휘둘렀다면 얼마나 강압적이었나? 정녕 성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나? 정말 최선을 다해 저항했나? 등등.
도대체 이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내가 그 자리에 가지 않았으면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아니 애초에 내가 그 가해자와 모르는 사이였다면 성폭력을 피해갈 수 있었단 말인가? 물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심문하는 이런 어이없는 상황은 다른 어떠한 범죄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도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스스로 '내가 그러한 성적 접촉에 동의한 적이 있는가'의 여부가 아닌 '내가 왜 그 곳에 갔고 왜 술을 마셨고 왜 가해자와 친하게 지냈는가'를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성폭력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애초에 무엇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극심한 혼란과 자아 존중감의 파괴를 결과한다는 점에서 진정 폭력 그 자체이다.

--- pp.120-121

대한민국 젊은년들이 다 그렇지 머... 특히 돌대가리 빡아 성격장애자 추녀 페미들.. 거짓말 안하고 이런 짓거리 하는 년들 남자한테 못 본 꼴 당했거나 가정환경에 문제 있는 년들이다.... 아님 얼굴이 못생겨서 언제나 남자들의 조롱 속에 살아온 그런 년들이다.. (……)

아무리 생각해도 『월장』의 글을 읽고 정상적인 사람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이런 것이다. 가령 그 텍스트를 공감하는 사람은 킥킥 웃으며 "맞아, 맞아"라고 할 것이며, 찬성도 반대도 안 하는 사람은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하며 그냥 넘어갈 것이다.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시니컬하게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나 너무 지나친 일반화 아닙니까?" 혹은 유머러스하게 "아가씨들, 에이, 너무 그러지 마셔." 혹은 진지하게 "월장 편집진 여러분, 과장이 지나친 거 아닙니까? 재고해 보십시오." 그리고 '클릭'을 해서 다른 사이트로 서핑을 떠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보일 반응들의 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던가. 가벼운 코멘트 정도로 넘어갈 일이 졸지에 성난 예비역들의 집단난동 사건으로 비화하지 않았던가. 해프닝도 이런 해프닝은 다시 없을 게다. 이 사태의 이상함, 요상함, 괴상함 혹은 기이함, 기괴함, 그로테스크함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 pp.110-112

출판사 리뷰

성폭력의 배후에 드리워진 파시즘의 그림자!
성차별이나 성폭력은 분명 '인권'의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절차적 · 외형적 민주주의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왜 성폭력(성희롱) 사건이 보다 자심하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성폭력 사건이 묻혀버리지 않고 드러났을 때 그 정리·해결의 과정에서 필히 나타나는 '피해자 재보복'의 행태가 어떤 터밭에서 가능하게 되는지, 그리하여 이를 방조·조장하는 구조의 밑바탕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파헤쳐 보려는 시도이다. 군가산점제 논란, 여성 100인위의 성폭력 가해자 실명공개 사건, 부산대 웹진 {월장} 사건, KBS노조 부위원장 성폭력 사건, 박남철-반경환의 여성시인 모독 사건 등에 대한 사례연구를 통해 방치된 사각지대에서 자라난 한국 남근주의의 정체를 해부해보고자 한 것이다.

'침묵'으로 드러나는 남성권력의 부패
시인 박남철과 평론가 반경환에 의해 창작과비평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자행된 한 여성 시인에 대한 성적 모독은 그야말로 혐오와 모멸감의 극단을 경험케 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성폭력이 일부 '무식한' 남성들의 무모한 공격인 양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치부되어왔지만, 이번 사건은 (최고의 지성인이라 할 문인들조차 가세한) 남성권력에 의한 집단적 성폭력 방조마저 가능한 우리 사회의 밑바탕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인 것이었다.

성폭력은 일종의 계급폭력으로서 "지배의 위계질서를 수립하기 위하여 여성 전체를 소수자의 지위로 소외시키는 무기"이며, 특히 이 사건은 "'말'하기 시작한 여성에 대한 응징"으로서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여성 자신이 만들어가는 데 대한 조직적 방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성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성 이미지를 관리하고 독점하려는 '말'의 억압인 셈"이라고 노혜경은 지적한다. 그 증거로 문단권력의 이해할 수 없는 '침묵'을 들고 있다. 또한 이명원은 이에 대해, '문학 신비주의'의 한 변종으로서의 '문인 신비주의'와 가부장적 남근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생식 신비주의'(남성권력의 '힘에 대한 숭배'와 '자아의 허약성')로써 한국 문단권력자들의 비겁한 침묵을 비판한다.

박남철-반경환의 언행은 소위 최고의 지성인이라 할 문인들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으며, 인권유린의 현장이 된 창작과비평사의 어정쩡한 태도 역시 '한국 진보의 산실'이란 이름을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강준만은, "이번 박남철-반경환 사건에서 보듯, 무자비한 인권유린에 대해 침묵하면서 창비 출신 문인을 위한 변명에만 열을 올리는 백낙청에게서 무슨 개혁과 진보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고 물으면서, 진보와 실천을 표방했던 창비가 이제는 "본말이 전도된 '진보 상업주의'에 빠져 있으며 그 당연한 귀결로 권위주의적 패거리주의도 매우 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월장>에 대한 '싸나이'들의 사이버 테러와 관련해, 우리 군사문화와 성폭력 간의 함수관계를 분석한 진중권 역시 "폭력은 다수의 묵인 속에서 비로소 저질러질 수 있는 것이다. 폭력은 더 이상 행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묵인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남성우월주의의 초라한 근거, only penis!
성폭력의 문제는 소위 '운동사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님은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를 둘러싼 사태나 KBS노조 부위원장 성폭력 사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조직'과 '대의'라는 기치 아래 '내부 민주주의 문제'가 적극 개진되지 못하는 현실 그 자체가 여전히 '성차별' 따위는 후순위의 문제라는 투쟁시절의 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남성지배 사회'나 성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성함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운동사회'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들을 입막음하는 침묵의 카르텔은 한층 더 강고하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는 <이제는 말하자, 운동사회 성폭력>이라는 토론회를 계기로 결성되었다. "이제는 말하자"라니, 토론회의 제목이 참으로 슬프고 처절하다. 성폭력을 '해결하자'도 '근절하자'도 아닌, '말하자'는 제안으로 출발해야 했던 것이다.(-시타)

이렇게 여성들에게 강요되어온 '침묵'은 남성권력의 자발적 '침묵', 즉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사회적 방관과 조장을 통해 구조화된 것이며, 그 밑바닥에는 여성을 열등한 집단으로 간주하는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이것이 얼마나 강고한지 일부 여성들조차도 이에 전염되어 있다는 김진희의 지적을 보라.) 별 생각 없이 우리 사회의 대부분 남성들이 소위 '싸나이'적 정체성 앞에서 간단히 무릎꿇고 마는, '싸나이'라는 정체성에 자발적으로 동화되는 이러한 상황은 그것이 여성에 대한 '싸나이'의 우월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하, 열등한 것들. 너희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주아주 열등해. 원래 남자들 보다 열등하게 태어났어. (…) 월등한 내가 봤을 때 너넨 수억 년을 진화해야 대화가 될 정도가 될 것 같다."(부산대 웹진 <월장> 자유게시판에 올려진 글 중에서)

물론 '싸나이'들의 우월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빈자리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과 보복 속에는 여자를 지배하지 않고는 자기 확인이 안 되는, 그래서 오히려 자신의 왜소함을 웅변하고야 마는 남성들의 일그러진 자아"(-정승화)와, 때로 전형적인 가해자 심리전(피해자 모욕주기, 가해자들의 패거리 심리 궐기시키기, 수치심 전염시키기 등)으로 "우리 모두를 공범의식과 원죄의식에 빠뜨리는 것에 익숙한 파렴치"(-김현수)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남성우월주의의 근거 위에 덮인 먼지를 떨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고작 '페니스'뿐인 것이다.

왜 페니스 '파시즘'인가
이회창 아들의 병역비리 사건이 있었을 때 상류층의 병역비리에 대한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제대군인지원법을 강화하는 안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이것은 남성들끼리의 거래에 문제가 생겼을 때 희생자로 사회적 약자들을 방패로 사용하는 비열한 수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권김현영)

남성우월주의에 근거한 성폭력이 사회적으로 방조되는 파시즘적 요인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노혜경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여성의 성에 대한 폭력적 지배를 용인하거나 조장함으로써, 남성들은 단지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자신보다 약한 자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약자에게 강자로부터 받은 억압을 해소할 수 있다." 따라서 집단적 성폭력의 방조는 단순한 여성억압의 차원을 넘어선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는, 궁극적으로는 남성 내부의, 힘에 근거한 위계적 구조를 고착화함으로써 파시즘적 사회로 가는 기름진 토양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理性)에 대한 극단적 불신이란 '반합리주의', 인간불평등에 대한 확신, 폭력성에 대한 둔감함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파시즘과 한국 남근주의는 그 얼마나 닮아 있는가.

우월성을 주장하며 페니스를 곤두세우고는 있지만, 그건 차라리 '파시즘'이란 유령의 손아귀에 붙들려 옴짝달싹 못하는 급소로서의 페니스에 불과하다는 게 필자들의 주장이다. 그리하여 '싸나이'들도 스스로에게 기만당하고 있는 셈이다. 남성지배 구조가 타파되지 않는 한, 그들 역시 스스로의 왜곡된 정체성에 발목잡힌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남성들은 약하거나 악하다. 어쩌면 그들의 성기처럼. 남성성의 상징인 그것은 곧잘 여성을 정복 또는 공격할 수 있는 무기로 둔갑하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의 피부 중 가장 연약한 조직으로 이루어진, 가장 다치기 쉬운 작은 살덩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쩌면 남성들의 위협도 이처럼 보잘것없는 허장성세인지 모른다. 실제보다 커 보이고 싶고 힘있게 보이고 싶어하는 점에서도 그 둘은 닮았다.(-정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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