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여신의 알몸
2.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3. 우리 시대의 현모양처 4. 명징한 정체성 5. 혼몽 6. 노각 7. 사금파리 8. 명백한 현실 도피 9. 유대의 의미 10. 바람의 신 11. 존재의 크레바스 12. 매미 허물 13. 생은, 참으로 끔찍한 반복 14. 님아 님아 줄 조심해라 15. 달밭골의 세 여자 16. 무당개구리 17. 두려움의 정체 18. 국수 방망이에 밀린 반죽 19. 선택 20. 유수 21. 팔자타령 22. 좁쌀만치만 보고 갈게 23. 개떡 같은 정 24. 고추 25. 매미 허물 같은 26. 성공의 뒤안 27. 오 자유여 28. 회개와 용서 29. 죄 30. 삶과 죽음의 충동 31. 별들의 대화 32. 귀환 33. 물의 말 |
박정애의 다른 상품
|
어미가 밭에 일을 나가며 두 누이들은 언제나 종이의 차지였다. 환은 언제나 제 볼 일이 먼저여서 어미에게 동생들을 돌보겠다고 대답은 찰떡같이 해놓고도 누가 놀자고 부르면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하긴 환이 집에 붙어 있는 것이 누이들에게 좋을 것도 없었다. 어머니가 나눠 먹으라고 지어둔 밥은 언제든지 환이 먼저 솥을 차고앉아 양껏 퍼먹은 다음에야 아우들 셋이 밥풀 구경이라도 할수 있었다.
고구마나 오이 같은 군입질거리는 아예 싹쓸이해버려, 저녁은 고구마나 삶아서 때워야겠다 생각하고 돌아온 어미가 기함을 하게 했고, 찬장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대개는 오일장에 다녀오던 님이가 주고간 갱엿이나 박하사탕은 그것이 몇 개든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환의 입으로 들어갔다. 이도 저도 없는 날이면 쌀을 긁어 쌀이라도 오도록오도록 씹어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가 환이었다. --- p.159 |
|
님이는 예지와 윤아 둘 다 조금도 덜 소중하거나 더 소중하지 않은 딸들이라고 생각했다. 님이가 그녀의 두 딸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형성되어 왔고 형성될 유대는, 죽은 권개동과 그의 네 아들들 사이에서의 유대보다 질적으로 월등히 견고했다. 이 두가지의 유대가 가부장제 사회의 의미체계에서 가지는 중요성의 정도는 물론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후자가 대를 잇는 유대관계인 반면 전자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를 잇는다는 것의 의미는, 혹은 대를 이음으로써 한 사람이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자신의 윗대와 아랫대를 분명히 함으로써 너무나 짧고 허무하고 불확실한 이승의 삶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는 의미일까. 그래서 씨받이도 하고 씨내리도 하고, 뼈다귀를 따지고 관향을 따지고 적서를 따지는 것일까
--- p.100-101 |
|
그녀는 낯선 운명 속에 자신을 방기하고 싶다. 그것이 운명에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윤아의 전략이었다. 운명에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 하나는 보육원 원장 처럼 신의 섭리를 믿는 것이다. 신은 당신의 쓰임새에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 윤아도 시의 쓰임새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다. 윤아의 앞날은 신의 계획에 따라 예정되어 있다. 신의 충실한 종인 윤아는 신의 뜻을 추종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시련도 신의 계획에 합치되는 시험이자 단련일 뿐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 p.38-39 |
|
계곡으로 가는 갈 옆 우묵한 자리에 들어선 새집. 이제 얼마있지 않아 저 집에서 늙은 여자와 젊은여자 , 늙지도 젊지도않은 남자가 만날것이다.젊은 여자와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남자는 늙은 여자를 이모라고 부르겠지. 이모야, 이모야,이모야.너무 불러 닳아지도록 그 이모를 부르며자랐던 한 시절이 있었지.
윤아는 달밭골 계곡에서 걸음을 멈춘다. 서울서 짐 싸들고 내려와 사흘 남짓, 윤아가 한 일이라고는 달밭골의 계곡에 발을 담그고 나무와 풀벌레와 돌멩이와친해진 것뿐이다. 윤아는 늘앉던 너럭바위 위에 앉는다. 평평하여 앉기 좋은 바위이다. 차고 맑은 물이 윤아의 벗은 발을 간질이며 소왈소왈 말을 건다. 물의말. 윤아는 손바닥 가득물을 떠 달아오른 얼굴에뿌린다.물이 눈 속에도 들어가고 입 속에도 들어간다. 물방울 어린눈으로 보는 천지간은, 온통 물빛이다. --- p.313-314 |
|
3천만원 고료 제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지난 3월말 마감한 제6회 한겨레문학상에는 모두 90여 편이 응모해, 두 달 에 걸친 공정한 예심과 본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4편 가운데 만장일치로 박정애의 <물의 말>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예심은 소설가 은희경, 김남일, 문학평론가 권성우, 백지연 씨가, 본심은 소설가 현기영, 문학평론가 황광수, 황현산 씨가 맡았다. <물의 말>은 여성적 생명력의 화신과 같은 '님이'를 중심으로 여성 삼대의 수난과 투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식민지와 해방과 전쟁과 학살과 저항과 해체의 시대를 살아온, 아니 주로는 그 시대의 뒤안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상처의 역사이면서 범 여성성의 역사이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은 총평에서 이념적 지양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와 폭넚은 시야에 이끌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웅숭깊은 맛과 해학적 경쾌함이 갈마드는 문체와 토착어의 생동감으로 우리를 사로 잡았다. 시대와 관념의 질곡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기에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현실감을 띠게 되는 전통적 여성성, 그 내면의 풍요로움이 거의 자연에 육박하고 있다. 그것은 한 세대를 격해 새로운 현실과 충돌하면서 다채로운 색깔들로 분화된다. 작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 '님이'의 편지로 마무리하면서 느슨하게, 그러나 분명한 희망을 가지고 영성성의 다양한 파편들을 효과적으로 추슬러냈다." 당선 소감에서 밝혔듯이 작가의 문학과 존재의 뿌리는 페미니즘이지만, 90년대 한국소설을 풍미한 그런 페미니즘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저의 페미니즘은 어머니 세대와의 단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저력을 계승하는 데서 옵니다. 어머니 세대의 희생과 헌신이 가족주의의 틀 안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향해 열릴 때 페미니즘의 소중한 자신이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완서 선생처럼 오래, 열심히 쓰고 싶다"는 작가의 포부처럼, 침체된 우리 소설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작가의 활동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