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확대되고 있는 사이, 미국에서는 민주당의 케네디 행정부가 새로 들어섰다. 지엠의 지지자였던 케네디는 베트남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전임자의 정책을 그대로 물려받은 그는 미국의 목적이 남부 베트남의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수차에 걸쳐 강조했다.

케네디는 1961년 5월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부통령을 사이공에 보내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특수부대 요원 400명의 파견도 결정했다. 훗날 공개된 미국 국방부의 비밀문서에 의하면, 이때 북부 베트남에 대한 내부 교란공작도 함께 지령되었다. 또한 사이공 정부군을 확충하고 미군 장교가 이들에게 게릴라전에 대비한 훈련을 시키게 했다. 케네디의 이런 개입 확대는 이전 ‘도미노 이론’에 따라 동남아시아의 공산화를 막자는 것이었지만, 1949년 민주당 정부의 중국 대륙 상실 책임이라든가 그의 취임 전날 흐루시초프가 한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지지 연설 및 그 자신의 쿠바 침공작전 실패 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결국 베트남의 공산화는 그에게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는 남부 베트남의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다.

아이젠하워가 1961년 초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 남부 베트남에 있던 미 군사요원의 수는 875명이었으나 1963년 말에는 1만 6,263명으로 늘어났다. 당시 미국의 원조는 매년 4억 달러 정도였으며 사이공 정부군의 병력은 24만 3천 명에서 51만 4천 명으로 증가했고 미 군사원조사령부도 설치되었다. 당시 미군 수뇌부는 미군의 파병을 요청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증가는 파병 요청을 부분적으로나마 수용한 결과였다.

미군은 자신들이 훈련시키고 지원하는 사이공 정부군에게 정글 속의 베트콩을 공격케 하면서 적을 농민과 분리시키는 작전도 병행하여 1962년 봄에는 전략촌(Strategic Hamlet) 계획이 실시되었다. 지엠 정권은 이 계획에 매우 열성을 보여 1년 후인 1963년 봄에는 3,225개의 전략촌이 건설되었다. 전략촌 계획이란 베트콩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요새화된 촌락으로 농민들을 이주시켜 농사에 전념케 하고 복지시설을 확충하여 그들의 지지를 얻자는 것이었다. 이 계획의 저변에는 농민들이 베트콩에 동조하는 것은 자의에서가 아니라 테러의 두려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전략촌 계획은 현실적으로는 문제점이 적지 않았다. 우선 농민들의 베트콩에 대한 동조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지엠 정권에 대한 반발 때문이기도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는 농민들 대다수가 거의 반강제적으로 이주했고 새로운 촌락에서 자력으로 집을 지어야 하는 부담이 따랐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물자는 미국이 무상으로 원조하게 되어 있었지만 부패한 관리들이 원조 물자를 중간에서 착복하는 바람에 그만큼 농민들의 부담이 컸던 것이다. 셋째로는 지방관리들이 중앙정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전략촌을 늘리는 데만 혈안이었지 이주 농민들의 정치적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베트콩이나 그들의 동조자들도 쉽게 전략촌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63년 봄 사이공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대부분의 전략촌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베트콩은 세력이 확대되어 남부 베트남의 44개 성(省) 중 42개 성의 상당수 촌락에서 공공연히 세금을 징수하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아직 베트콩이 지엠 정권에 정면 도전하여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1963년 1월 사이공 서남쪽 60km 지점에 위치한 업 박 이란 촌락에서 남베트남 정부군과 베트콩 사이에 최초의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졌다. 병력과 화력의 절대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정부군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케네디 행정부는 낙관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1963년 4월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는 “우리는 전쟁에 이기고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가 하면 워싱턴 일각에서는 전쟁에 대한 회의론도 일기 시작했다. 업박 전투 직후 사이공을 방문하고 귀국한 맨스필드 상원의원은 8년 간의 노력과 20억 달러의 원조는 어디에 갔는지 베트남의 독립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것 같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맨스필드만이 아니라 행정부 내에서도 지엠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 과연 결정적 승리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이 제기되었다. 지엠의 독재정치와 친족 등용 및 관리들 사이에 만연한 부패 등은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던 베트남인들까지도 점점 더 민족해방전선 쪽으로 기울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케네디 행정부로 하여금 더 이상 지엠을 옹호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했다.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지엠의 불교도 탄압이었다. 5월 8일 후에(Hu?에서 부처님 오신날을 경축하는 불교도들의 시가행진이 당국에 의해 저지를 당하자 평화스런 행진이 반정부시위로 변했다. 지엠은 군대를 투입하여 진압하려 했지만 질서를 회복하기는커녕 오히려 폭력을 유발시켜 시위대 중 몇 명이 정부군의 발포로 사망했다. 게다가 6월 11일에 틱 꽝 득 스님의 분신자살 모습이 생생히 전세계로 전달되면서 국제여론은 지엠 정권의 야만성을 규탄하고 나섰다. 곤경에 처한 케네디 행정부는 지엠의 불교도 탄압을 완화하도록 요청하는 동시에 지엠에게 동생 뉴 부부를 정권에서 배제하도록 권유했다. 미국의 태도 변화를 감지한 남베트남 군부 내에서는 쿠데타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대두되었다. 그러나 지엠의 지속적인 이간정책으로 서로를 믿지 못하고 또 워싱턴의 지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어 군 장성들은 이를 현실화시키지 못했다.

미국과 군부의 변화를 포착한 뉴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불리한 국면을 전환시키려고 했다. 그는 민족해방전선과 하노이에 접근하여 베트남의 중립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의 시도는 처음에는 조심스러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대담해졌다. 뉴의 이런 시도가 어떤 의도에서였는지 명확치는 않지만 미국의 압력에 대한 반발인 동시에 미국이 결코 남베트남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음에 틀림없다.

불교도 탄압과 뉴의 시도로 인해 케네디 행정부는 이제 지엠까지 제거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미국이 남베트남 군 장성들의 쿠데타를 지지할 것이라는 암시로 케네디는 1963년 9월 처음으로 지엠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10월 초에는 상품 수입 보조금의 지불을 중단하고 뉴의 특수 부대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삭감하는 등 지엠 정권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지지를 확인한 장성들은 곧 자신들의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1963년 11월 1일 밤 쿠데타군은 대통령 관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지엠과 뉴의 국외추방을 원했던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두 사람은 이튿날 아침 살해되었다. 쿠데타 성공 후 군사혁명위원회가 조직되고 의장에는 즈엉 반 민 장군이 취임했다. 그로부터 3주 후인 11월 22일 케네디가 텍사스 주 달라스에서 암살되면서 미국의 베트남 정책은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슨 부통령이 떠맡게 되었다.

지엠과 케네디의 죽음으로 미국은 베트남 정책을 재검토할 기회를 얻었으나 존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 취임 직후 전임자의 정책노선에 따라 사이공 정부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미국의 목적은 남베트남 정부와 국민들이 공산주의와 싸워 이기도록 돕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963년 12월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보고는 존슨의 결의가 말처럼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남베트남의 현상황은 매우 불안정하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2∼3개월 안에 공산당이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맥나마라는 그 원인을 새로운 군부 지도자들의 불화와 지도력 부재에서 찾고 있다.

사실 민 장군을 수반으로 하는 신정부는 통치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민 장군은 미국의 점증하는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일시 베트남의 중립화에 동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12월 중순 국방장관이 직접 베트남의 군부 지도자들에게 “미국은 베트남의 중립화를 위한 어떠한 시도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로 취임한 존슨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의 민 장군에게 보낸 신년 메시지는 중립화 모색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뜻을 담고 있었다.

남베트남 지역의 중립화는 공산당에 의한 전복과 다름이 없습니다. ……미국은 귀하와 귀국의 국민들이 공산세력들과의 의로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베트남 내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과 물질적 지원은 승리의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미국의 압력과 더불어 혁명위원회 위원들이 서로 반목을 일삼자 통제력을 상실한 민 장군은 정치보다 개인적인 관심사에 더욱 열중했다. 자연히 민심은 신정부로부터 멀어져 갔다. 1964년 1월 30일 응우옌 카인 장군은 새로 쿠데타를 일으켜 2월 7일 민 장군을 형식상의 수반으로 하는 신정부를 수립하고 자신은 수상이 되었다. 미국은 곧 신정부를 승인해 주긴 했지만 카인이 자주 당파를 바꾼 이력 때문에 그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남부의 사태 추이를 살피고 있던 하노이 정부는 1963년 12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남부에서의 전쟁을 적극 지원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보고 하노이 정부군의 남부 침투와 미군에 대한 직접 공격 등을 의결했던 것이다. 미군의 즉각적인 반격이 뒤따르겠지만 사이공 정부와 군대가 큰 타격을 입으면 미국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하리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이는 하노이 정부의 계산 착오였다.

사이공 정부를 믿을 수 없었던 미국은 이제 베트남 문제를 직접 떠맡기로 했다. 하노이 정부의 결정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63년 12월 존슨은 미 군사 고문의 수를 증가시켰다. 이는 사이공 정부에 군사적 활력을 불어넣어 베트콩 봉기에 적극 대처하려는 것이었다. 이어서 1964년 1월에는 북베트남에 대한 정찰비행과 남베트남 특공대의 북부 해안지대 기습공격 등과 같은 비밀작전을 승인했다.

그럼에도 남부의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어두워져만 갔다. 미국측 군사정보에 의하면 농촌의 거의 절반이 베트콩의 영향 아래 있었고 전략촌은 와해되기 직전이었다. 한편 베트콩의 사이공 정부군에 대한 공격은 군대의 사기를 급격히 떨어뜨리고 민족해방전선의 선전공세는 대도시의 노동자와 학생들의 반정부시위를 더욱 고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