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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프롤로그
2. 상인 이야기: 나나이반다크(730∼751년) 3. 병사 이야기: 세그 라톤(747∼790년) 4. 목부 이야기: 쿰투그(790∼792년) 5. 공주 이야기: 타이허(821∼843년) 6. 승려 이야기: 춧다(855∼870년) 7. 기생 이야기: 라리슈카(839∼890년) 8. 비구니 이야기: 먀오푸(880∼961년) 9. 과부 이야기: 아룽(888∼947년) 10. 관리 이야기: 자이펑다(883∼966년) 11. 화가 이야기: 둥바오더(965년) 12. 에필로그 참고문헌 소개 화보목록과 출처 통치자 연표, 730-960 옮긴이의 덧붙임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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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슈카는 돈벌이 능력이 줄어들수록, 집에서 젊은 기생들을 훈련시키고 수양어미와 잡담을 나누면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수양어미의 후계자로 이 기방을 물려받으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리슈카는 제자들을 무척 좋아했는데, 특히 한 소녀는 비파 연주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쿠차 음악은 중국에서 더 이상 인기를 얻지 못했다. 실크로드에서 수입된 문물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당쟁시대에 중국인들이 자국에서 생겨난 전통을 재발견하고 진흥하게 되면서 쿠차 음악도 인기를 잃게 된 것이다. 하지만 주막과 식당들은 서역에서 온 여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꽃 같은 용모의 서역 기생이 술 데우는 그릇 옆에 서서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웃는다. 살이 비치는 비단옷 차림으로 춤을 추면서 그녀가 묻는다. “다른 데로 가진 않겠죠? 취하기 전에는 설마 가지 않겠죠?” 880년 가을, 반란군이 수도를 향해 북진해 오고 있다는 소문이 시내에 퍼졌다. 중국 남부에서는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반란은 흐지부지 끝나거나 결국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그후의 세금 인상은 민중의 불만을 가중시켰다. 파산한 농부들은 반란군에 가담해도 잃을 게 없었다. 하지만 100년 전의 안록산의 난 이후 당나라 조정을 심각하게 위협한 반란은 없었다. 장안 주민들은 반란에 대한 소문에 익숙해져 있었다. 더구나 이번 반란에 대해서는 그 소문이 874년부터 요란하게 퍼져 온 터였다. 그러나 반란군이 수도에 들어오는 것을 정부군이 좌시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반란군이 수도로 통하는 마지막 고개를 넘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에도 여전히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반란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파견된 정부군은 불행하게도 쓸모가 없었다. 수도에 주둔해 있는 부대는 부잣집 자제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대신 병역을 떠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돈을 받고 병역을 대신하는 사람들 중에는 병자도 많았다. 결국 이 오합지졸은 반란군에 완패했고, 반란군은 거침없이 수도로 진군했다. --- pp.197-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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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학을 접목시킨 새로운 형식의 역사서
『실크로드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형식이 독특하다. 굳이 기존의 역사서술 방식으로 비유한다면 통사(通史)와 열전(列傳)을 결합시켰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책은 역사서임에는 틀림없지만, 구성 자체가 대단히 문학적이다. 맨 앞과 맨 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는 것이 그러하고, 또 10명의 각기 다른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앞사람의 이야기가 다음 번 사람의 이야기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때로는 앞사람과 뒷사람의 인생이 절묘하게 교차되기도 하면서 250년의 실크로드 역사를 촘촘하게 엮어 나간다. 그래서 독자들은 실크로드나 유목민족 또는 중국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어렵지 않게 마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연작소설을 읽는 것처럼 감동적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이 다른 중국 역사서나 실크로드 관련서와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했던 여성의 삶을 완벽하게 역사화했다는 점이다. 개중에는 우리의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내용도 적지 않다. 예컨대 당시 법률에 합의이혼이 명시되어 있었으며 과부의 재혼도 허용되었다. 19세기의 노라보다 무려 1천년이나 앞서서 먼저 당나라의 한 여인은 자기 성격상 도저히 시집살이는 할 수 없다며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기 위해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한다.(본문 pp. 234∼35) 실크로드를 무대로 살아갔던 10인의 열전(列傳) 이 책은 8세기 중반에서 10세기 말까지 약 250년간의 실크로드 역사를 다룬다. 이 기간은 실크로드가 동서 육상 교역로로 가장 번영을 누렸던 시기이며, 중국사에서 당대(唐代)와 거의 일치한다. 지은이는 이 250년이라는 시간과 중앙아시아 및 중국이라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결합시켜, 그 안에서 명멸해 간 10명의 인물과 그들의 동시대인의 이야기를 통해 실크로드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데, 그 치밀한 구성과 극적인 재미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역사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유는 철저하게 사료에 바탕을 둔 사실성(史實性)과 객관성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프롤로그」에서 잘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지은이는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실크로드의 전사(前史), 곧 8세기 이전 유목민족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열 사람의 이야기가 각각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전개되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 명의 주인공은 대부분 둔황 문서나 지난 수십년 사이에 발견된 자료들에서 발굴해 낸 사람들이다. 1. 사마르칸트와 당나라 수도 장안을 오가며 장사하는 낭만적인 상인 나나이반다크(730-751). 2. (적군의 장수인) 고선지 장군의 무용담을 후배 병사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티베트 병사 세그 라톤(747-790). 3. 중국에 팔 조랑말 떼를 몰고 다니는 목부(牧夫)였으나 티베트와의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전사한 위구르인 쿰투그(790-792). 4. 정략결혼의 제물이 되어 투르크(돌궐) 카간에게 시집가는 당나라 목종(穆宗)의 누이 태화공주(821-843). 5. 중국 우타이(五臺) 산으로 순례여행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장안에 도착하는 카슈미르의 승려 춧다(855-870). 6. 기생이 되어 군대를 따라 전전하다가 장안에서 생활하던 중 그만 황차오(黃巢)의 난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고향 쿠차로 돌아간 금발의 기생 라리슈카(839-890). 7. 어린 나이에 불가에 귀의하여 승방 주지로 생을 마감하는 둔황의 비구니 먀오푸(880-961). 8. 독실한 불교신자이며, 묵묵히 인생의 고통을 감내하는 둔황의 과부 아룽(888-947). 9. 역법(曆法)에 조예가 깊고 불심이 돈독해 뭇사람들로부터 칭송을 얻은 둔황의 관리 자이펑다(883-966). 10. 둔황 석굴을 장식하는 데 평생을 바친 화가 둥바오더(965). 이상 열 명의 인물들은 결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인들이 아니다. 온갖 세파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힘겹게 일생을 산 보통사람들이다. 공인된 역사가 “승리자의 역사, 지배자의 역사”라고 한다면 실크로드 주변의 역사는 중국사의 일부가 되거나 아니면 주인 없는 역사가 되어버리고 말겠지만, 지은이는 20세기의 100년 동안 새롭게 발견된 자료들과 연구성과를 집약하여 공인된 역사에서 잊혀진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실크로드의 진정한 주인이며, 이들의 삶이야말로 참다운 역사임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당시 사람들의 기본적인 의식주는 물론이고 여성들의 머리모양, 신혼부부의 첫날밤 풍경(p. 234), 결혼풍습, 사막에서 말과 낙타의 중요성까지 그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들의 물질생활의 밑바탕에는 그것을 지탱해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바로 종교가 그것이다. 그래서 종교는 실크로드의 교역물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값진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8세기∼10세기) 실크로드 주변에는 많은 종교―불교·이슬람교·조로아스터교·마니교·네스토리우스교 등―가 있었지만, 단연 돋보이는 종교는 불교였다. 우리의 불교 신앙도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을 생각한다면 당시 불교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지은이는 독자들이 시대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시의 제도와 정치적 사건에 대한 설명을 적재적소에 삽입시켜 흥미를 더한다. 저 유명한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를 비롯하여, 안루산(安祿山)의 난, 황차오(黃巢)의 난, 많은 정복전쟁과 같은 정치적 사건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조세제도, 사법제도, 토지소유관계 등을 빠짐없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을 끄는 대목은 고구려인의 후손으로 당나라 최고의 장군이 된 고선지(高仙芝)―지은이는 고선지를 ‘Korean’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의 무용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