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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장 서론 제2장 호구제도의 형성과 농촌문제 제3장 개혁기 인구이동과 1980~1990년대 호구관리 정책 제4장 2000년대 호구제도개혁 논의와 배경 제5장 중국 농민공의 계층분화, 도시주민화, 주변화 제6장 결론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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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농민공은 도시에 거주할 수 없는가
2004년 중국의 다른 성(他省) 도시에 취업한 농민공(農民工: 이농민)은 약 1억 2천만 명으로, 13억 중국인구의 약 10%, 농촌 노동력의 약 24%에 해당한다.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인구가 도시에서 시민권(都市戶口)없이 임시직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은 정치?사회적인 불안정을 유발할 수 있다는 면에서 사회주의체제 유지에도 위협적일 수 있다. 왜 중국의 농민공은 도시에서 비공식적으로 체류하며 법적으로 시민 자격을 획득할 수 없는가? 그 이유는 바로 중국식 사회주의 유산인 호구제도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계획경제체제가 형성되는 시기인 1958년 마오쩌둥(毛澤東)식 사회주의건설을 위해 호구제도를 만들었다. 모든 중국 국민은 출생지에서 발급되는 호구에 따라서 ‘농업호구’와 ‘비농업호구’로 나누어졌다. 이에 따라 중국의 도시와 농촌 간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만들어졌고, 도시-농촌이라는 이원구조가 형성되었다. 호구제도는 자유로운 인구이동을 금지하는 중국만의 독특한 국민통제제도라 할 수 있다. 호구제도의 목적은 도시로의 비합법적인 인구유입을 통제하여 도시인구의 증가로 인한 정부의 사회경제적 비용부담의 증가를 축소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1950년대 말부터 사회주의적 시스템의 기초라 볼 수 있는 ‘도시의 단위제도,’ ‘농촌의 인민공사 조직’이 만들어지고, 단위에 속한 시민에게만 식량 및 주택 배급 등 다양한 사회복지혜택을 제공했다. 호구제도는 1978년 개혁 이전 농촌에서는 인민공사(人民公社), 도시에서는 단위제도(單位制度)와 결합되어, 농촌과 도시 간의 인구이동을 엄격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호구제도의 형성 배경 및 그 역할을 마오쩌둥식 경제발전전략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또한 호구제도가 중국 국민을 정치사회적으로 통제하고, 경제적으로 희소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시민과 농민간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했는지를 ‘사회통제’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현재 중국의 농촌문제는 호구제도로 인한 도농 간 불평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 농민공, 중국 경제발전의 성공과 실패의 양면 중국 호구제도와 인구이동은 중국적 특수성을 보여 주는 사회주의적 제도와 산업화 과정에서 도입된 시장화, 사유화와 같은 자본주의적 요소 사이의 충돌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중국 경제발전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주제이다. 또한 이 연구는 개혁기 도시와 농촌의 변화와 문제를 동시에 보여 줄 수 있다는 면에서 개혁기 중국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체제 등장 후 농촌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경제발전 방식이 ‘선 경제성장 후 분배’에서 ‘경제성장과 균형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되면서 인구이동 및 농민공 문제는 최근 중국에서 가장 큰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 연구주제는 고도성장하는 중국의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도 필요하다. 저자는 중국의 호구제도와 인구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후 10여 년 이상 이 주제를 연구해 온 만큼, 중국의 농민공 현실에 밀접하게 접근하고 있다. 중국 경제성장의 그늘 및 중국식 경제발전의 특징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주제를 연구하게 된 저자는 “많은 중국학자와 도시의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농민공들을 만나면서 개혁기 성공과 실패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3. 인구의 대이동은, 사회주의적 ‘제도’와 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닌 ‘시장’ 간의 충돌 개혁 이후 시장화, 사유화로 1980년대 중반부터 인구이동 금지라는 ‘보이지 않는 벽’에 서서히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비합법적인 인구이동이 사회문제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설날 기간 광저우(廣州) 기차역에 귀향하려는 농민공 인파가 몰려 교통전쟁이 발생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발표에 따라 개혁개방정책에 가속도가 붙자 연해 주요 도시 및 대도시에서 농민공이 급증했다. 사회주의 통치체제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호구제도는 개혁기 중국 전체 인구의 약 10%에 달하는 비공식적 인구이동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인구이동은 사회주의적 ‘제도’와 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닌 ‘시장’ 간의 충돌이라 볼 수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 시작된 시장화, 사유화라는 자본주의적 요소는 중국에서 경제개혁의 범위를 넘어 사회변화, 더 나아가 정부정책 및 제도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필자는 시장화, 사유화가 사회주의적 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붕괴시켜 왔는지를 호구제도의 개혁과정을 통해 보여 준다. 첫째, 개혁기 ‘비공식적 인구이동’을 주도해 온 ‘농민공’이란 어떤 특징을 지닌 사회집단이며, 다른 나라의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농민과 비교할 때 어떤 면에서 중국적 특수성을 보이는지 소개한다. 둘째, 사회주의적 특징이 반영된 호구제도와 자본주의적 요소인 시장경제의 확산으로 나타나는 사회변화와의 충돌을 중국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왔는지 살펴본다. ‘쇼크요법’을 선택했던 구소련이나 동구와는 달리 중국은 ‘점진적 개혁’ 원칙 아래에서 사회주의 유산(호구제도)을 유지한 채 제도와 시장의 충돌을 해결하는 중국개혁의 특수성을 보여 주었다. 셋째, 2000년대 호구제도 개혁이 급진전된 배경을 시장화, 도시화, 농민공에 대한 행정적 통제 약화, 농민공의 집단적 저항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특히 계획경제 시대 중국사회를 통제하는 주요 사회제도였던 호구제도가 2000년대 ‘개혁 혹은 폐지 논쟁’의 위기로까지 몰린 배경은 무엇인가? 2000년대 중국 각계에서 호구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어떤 담론이 형성되었는가? 개혁기 사회?경제적 변화가 호구제도 개혁에 어떤 작용을 했는가? 라는 의문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4. 농민공은 왜 도시빈민화, 주변화되고 있는가 2000년대 호구제도 개혁 및 농민공에 대한 차별정책 폐지의 결과 농민공이 불법체류자 신분을 탈피하여 도시 주민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면 중국의 농민공은 도시 주류 사회에 편입되어 시민으로 정책해 가고 있는가? 이 책은 호구제도 개혁에도 불구하고 농민공들이 ‘시민’으로 동화 혹은 통합되지 못하고 ‘주변화’되는 이유를 고찰한다. 즉, 첫째, 농민공과 시민 간의 차별정책이 일부 폐지되고 있으나 여전히 시민과 농민공은 불평등하다. 둘째, 농민공은 시민이 기피하는 3D업종에 종사하며 도시 빈민이 되고 있다. 셋째, 도시 외곽의 농민공 집중거주지를 중심으로 고립되어 거주한다. 넷째, 사회, 문화적 차별로 인한 농민공들만의 고립된 사회관계를 형성한다. 농민공의 주변화에는 호구제도의 제약보다 단위제도로 인한 경제적 빈곤, 고립된 거주 공간, 사회적 빈곤이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후진타오 체제가 등장한 후 2003년부터 호구제도 개혁이 급진전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경제발전전략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후진타오 정부 이전에는 선부론(先富論)에 입각하여 경제발전을 강조한 반면, 후진타오 정부는 2005년부터 “조화로운 사회 건설”(和諧社會建設)이라는 신발전관을 제시하여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균형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발전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농촌 및 농민문제가 최우선 정책과제로 부각되었고, 농촌문제 해결방안으로 도시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거시적 정책의 변화로 인해 인구이동을 금지하여 도시화를 막아 왔던 호구제도의 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또한 2004년부터 농민 및 농민공들의 시위가 대규모, 폭력화되자 중국정부는 농촌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속적 성장 및 사회주의체제 유지가 힘들다는 인식 하에서 호구제도 개혁 및 농민공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국정부의 제도적 통제 밖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인구이동이 사회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경우, 고도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호구제도와 인구이동’은 사회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