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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죽은 자들은 목마름으로 괴로워한다
1. 육체적 무관심 2. 애석한 일 3. 백만장자 4. 챔피언과 그 무리 5. 죽어 쓰러지다 6. 흑인 키신저 7. 먼 여행 8. 엘모 9. 하인들 중 왕 2부 응골로(N'GOLO) 10. 마법사들 11. 경기장으로 가는 길 12. 선수 대기실 13. 오른손 주먹을 앞세우다 14. 외줄 위에 서다 15. 사형집행자의 노래 16. 비가 내렸다 17. 새로운 시작 18. 다카르에서 일어난 소동 19. 세 번 패배한 운 좋은 사내 |
Norman Kingsley Ma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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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사람인 작가는 자신을 글로 쓰는 나쁜 버릇이 있다. 본 일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글로 썼다. 평론가들은 짜증을 냈다. …… 이번 시합을 주제로 쓰는 작품은 주인공을 누구로 할지 고민했지만, 이는 넘치는 문학적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독자로부터 관심을 끌까 싶어서였다. 만일 긴 산문체 글에서 주인공을 막연히 작가라거나 여행자 또는 탐방기자라고 하면 재미없을 것이다. 마치 어떤 여자와 오래 함께 살면서, 그 여자를 그저 ‘아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재미없는 일이다. 뉴욕으로 돌아온 노먼은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으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머리가 텅 비어, 자기 이름을 쓰지 않으면 주인공도 없는 글을 써야 할 판이었다. 이렇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 익명의 목소리를 내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
--- pp. 54~55 흑인을 억제하는 것이 사회적 전통이라면, 정치적 이상을 가진 미국 흑인들은 혁명적인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다. 자신만의 교도소에 갇혀 견디다 보면 삶의 방식은 권투선수처럼 변해 간다. --- p. 69 점점 더 커지는 의문이 있다. 그는 여전히 역사적 인물이 되려고 안달이 난, 낮이고 밤이고 떠들어대는, 루이빌에서 온 젊은이에 불과한가? 아니면 그는 다른 누구보다 비범한 사람이자 20세기의 선지자가 되어가는 길목의 끝에 있으며, 자신이 가르칠 수 없거나 설득하지 못하는 내용이 분노와 두려움으로 목소리에 드러나는 걸까? --- p. 117 내가 뭘 하려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 미국 사람들은 권투선수를 그다지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죠. 권투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뛰어넘으려고 내가 권투를 한다는 걸 사람들은 몰라요. 권투를 함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멋있어 보이려고 싸우는 게 아닙니다. 여러 가지를 바꾸고 싶을 뿐이에요. …… 나는 내가 조지 포먼을 두들겨주고 주먹으로 세계를 정복해도 우리가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는 걸 압니다. 나는 내가 이 모든 걸 뛰어넘고 그 이상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 pp. 118, 316 그는 대기실에 있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좋아. 밀림의 대결을 할 준비를 해보자고.” 그는 맞은편에 있는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분디니.” 그는 소리를 크게 질렀다. “오늘 밤에 춤 한번 출 거지?” 그러나 분디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기실에 슬픈 기운이 감돌았다. “내가 하는 소리 안 들리나 보지?” 알리가 소리쳤다. “우리 춤 한번 출 거지?” “우린 춤을 추고 또 출 거야.” 진 킬로이가 울적한 듯 말했다. “우린 춤출 거야.” 알리가 말했다. “우린 멋진 춤을 출 거라고.” --- p. 241 노먼이 보기엔 알리가 이길 리가 없었다. 알리가 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부정하는 사람은 오직 알리뿐이었다.…… 시합 결과는 이미 정해졌고 바뀔 리가 없다. 만일 알리가 겁을 집어먹고 시합에 임한다면 창피스러울 정도로 빨리 끝날 터였다. 만일 알리가 용감하게 싸운다면 약간 다를 것이다. 포먼 주변 사람들 분위기로 볼 때, 알리가 용감하게 덤벼든다면 시합은 약간 더 재미있게 진행될 것이다. 알리는 한두 라운드 정도는 우세할 수 있을 것이고, 빠른 움직임으로 맞서 싸우면서 점수를 얻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이어갈 수는 없을 것이 뻔했다. --- p. 142 양 선수 모두 나머지 일 분 삼십여 초 동안 채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요새처럼 변해 버린 좁은 공간에서 포먼은 일제사격을 퍼붓듯 연이어 네 번, 여섯 번, 그리고 여덟 번에서 아홉 번까지 주먹을 날렸다. 미친 듯 무겁게 쿵 하고 떨어지는 주먹은 마치 두꺼운 나무 문이 세게 닫히는 듯했고, 폭탄처럼 몸통에, 번개처럼 머리에 떨어졌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계속 주먹을 날리던 포먼은 물러서 숨을 돌린 다음 다시 달려들었다. 다시 달려든 포먼은 눈앞에 있는 몸통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로켓을 발사하고, 힘껏 때리기를 반복했고, 팔을 망가뜨리고, 양팔 틈을 파고들어서 갈비뼈를 공략하고, 깊게 파내고 더 깊이 파낸 다음 다이너마이트를 땅에 묻고, 상대를 들어 올리듯 올려 치고, 후려치고, 때리고, 무력화하고 비틀거리게 했다. 거대한 굴착기인 포먼은 미쳐 날뛰는 염소를 잡으려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반면 알리는 양 주먹을 머리 위로 올리고 팔꿈치로 옆구리를 가린 채 서서 갈대 끝에 앉아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는 메뚜기처럼 흔들리며 얻어맞았다. 로프는 폭풍에 날리는 이불보처럼 펄럭거렸다. --- pp. 278~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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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챔피언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세기의 대결,
럼블 인 더 정글(정글에서의 사투 Rumble in the Jungle). 퓰리처 상 수상작가 노먼 메일러가 쓴 그 역사적인 도전과 승리의 기록. 실재하는 사건이나 인물 중심의 뼈대에 작가 자신의 관점을 통한 해석이나 상상력의 살을 붙여 주관적 현실을 묘사, 소설화했던 ‘뉴저널리즘’ 문학의 선구자이자 퓰리처 상 2회 수상에 빛나는 노먼 메일러의 르포르타주 문학 『파이트』가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되었다. 『파이트』는 61전 56승(37KO) 5패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긴 도전자 무하마드 알리와 KO율 92.7%의 ‘무패 철권 챔피언’ 조지 포먼의 1974년 역사적인 헤비급 챔피언 결정전 ‘럼블 인 더 정글’(정글에서의 사투 Rumble in the Jungle)의 생생한 관전기이자 뉴저널리즘 문학의 진수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왜 무하마드 알리인가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미국의 권투선수. 1942년 1월 17일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태어났다. 흑백 갈등이 첨예했던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에 거침없이 저항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백인 사회에 적대감을 표출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고, 블랙 무슬림에 가입하여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본명 캐시어스 마르셀러스 클레이 2세를 ‘흑인 노예’의 이름이라며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가 되었다. 열두 살 때 자전거를 훔쳐간 도둑을 때려주기 위해 권투를 시작한 후, 아마추어 권투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총 여섯 번의 켄터키 골든 글러브 타이틀, 두 번의 내셔널 골든 글러브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땄다. 그의 아마추어 전적은 105전 100승 5패였다. 1960년 첫 프로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1963년까지 19전 19승 15케이오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 당시 알리의 주먹에 쓰러진 이들은 토니 에스퍼티, 짐 로빈슨, 도니 프리먼, 윌리 베스마노프, 더그 존스, 헨리 쿠퍼, 소니 뱅크스, 알레한드로 라보란테, 아치 무어 같은 선수들이었다. 1964년 소니 리스턴을 7회 케이오승으로 꺾고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징집영장이 발부되자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는 말을 남기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대가로 챔피언 벨트를 빼앗긴다. 그사이 챔피언 벨트는 ‘무패 철권’의 복서 조지 포먼에게 넘어갔고, 1974년 아프리카 중부 내륙의 자이르공화국(현 콩고민주공화국)의 킨샤사에서 ‘럼블 인 더 정글’이라 불리는 세기의 대결 후 헤비급 세계 챔피언 자리를 되찾았다. 잠시 신예 리언 스핑크스에게 챔피언 벨트를 빼앗겼지만 리턴 매치에서 승리를 거둬 세 번이나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최초의 선수가 된다. 이후 플로이드 패터슨, 조 프레이저, 켄 노턴 등의 선수들과 여러 차례 경기를 치른 후 통산 전적 61전 56승(37KO) 5패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기고 1981년 은퇴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명언이 나올 정도로 가볍고 경쾌하며 빠른 몸놀림을 구사했던 알리 스타일의 권투는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고 묘사되었고, 심지어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1998년 유엔개발계획(UNDP) 친선대사로 임명, 1999년 BBC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선정 ‘세기의 스포츠맨’이 되었으며, 2005년 유엔 오토한 평화상 등을 수상했다. 1984년 파킨슨 병 진단을 받고 현재까지 투병 중이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성화 점화 주자로 나섰으나 오랜 기간의 투병으로 비대해진 몸과 멍한 표정, 쉴 새 없이 떨리는 두 손, 그리고 힘겹게 내딛는 두 발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변해 버린 모습에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작품에서 ‘노먼’ 혹은 ‘작가’라는 인물로 자신을 객관화하여 화자로 등장하는 노먼 메일러는 무하마드 알리를 1963년 라스베이거스 듄스 호텔 카지노 주사위 탁자 앞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도박의 칩 개념조차 몰랐던 알리에 대해 작가는 키가 크고 마른 데다 신경질적이고 젊은, 하지만 소니 리스턴과의 대결을 앞두고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는 ‘무지렁이 촌놈 권투선수’로 기억한다. 하지만 개종과 동시에 ‘흑인 노예’의 이름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가 되고, 베트남전 징집영장 거부로 인해 챔피언 벨트를 빼앗기는 등, 여러 사건들 이후 커다란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된 알리는 일약 흑인 이슬람교도들의 선구자이자 인종 차별이 공공연하게 행해졌던 당대 미국 백인 주류 사회에 반기를 든 흑인 저항 세력들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이제는 ‘천재이자 현명한 사람’, ‘문학계의 챔피언’으로 불렸던(작가는 이 부분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노먼 메일러가 오히려 알리를 취재하고자 하는 여러 기자들 틈에 끼어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프리카 오지에서의 취재를 결심하는 데는 흑인 유명 인사 알리에 대한 작가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관심도 있었지만 노먼 메일러 자신의 권투에 대한 애정도 큰 몫을 했다. 메일러는 50년대에 장인으로부터 권투를 처음 배운 후, 헤비급 챔피언 호세 토레스에게 본격적인 권투 수업을 받고 정기적으로 권투장을 찾았던 권투광이었다. 뿐만 아니라 ‘남성성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졌던 권투는 노먼 메일러에게 성, 인종 등의 문제로 각종 사회세력들이 첨예한 갈등 양상을 띠었던 당대 미국의 ‘정신 분열’적인 측면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메타포이자 “문학적인 제분기에 넣을 소중한 알곡”이었다. 실제로 메일러는 경기 취재 전부터 이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기획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끌 것인지 (세속적인) 그 방법을 고민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현명한 사람인 작가는 자신을 글로 쓰는 나쁜 버릇이 있다. 본 일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글로 썼다. 평론가들은 짜증을 냈다. …… 이번 시합을 주제로 쓰는 작품은 주인공을 누구로 할지 고민했지만, 이는 넘치는 문학적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독자로부터 관심을 끌까 싶어서였다. 만일 긴 산문체 글에서 주인공을 막연히 작가라거나 여행자 또는 탐방기자라고 하면 재미없을 것이다. 마치 어떤 여자와 오래 함께 살면서, 그 여자를 그저 ‘아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재미없는 일이다. 그렇게 시합이 있기 7주 전 연습경기 때부터 시작된 경기 취재의 기록은 두 선수 사이의 신경전뿐 아니라 각 선수에게 오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대전료를 지불하면서까지 경기를 유치한 자이르공화국(현 콩고민주공화국) 모부투 대통령의 독재 정권 상황, 인간을 ‘존재’가 아닌 ‘힘’으로 보았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반투 철학에 대한 노먼 메일러 자신의 지적인 통찰까지 엄청난 스펙트럼의 다채로운 스케치를 담고 있다. 럼블 인 더 정글(정글에서의 사투 Rumble in the Jungle), 그 숨 막히는 결전의 순간 1974년 자이르공화국 킨샤사 알리 측 선수 대기실. 항상 “사방의 벽들아, 내 위대함을 알아다오.”라고 외치듯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승리를 장담하던 알리와는 달리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사형장에 끌려가기 직전 죄수의 감옥 같다. 무기 없이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가장 무서운 존재, 케이오로 쓰러져 있는 선수에게도 마지막 확인 사살을 잊지 않았던 잔혹한 복서 조지 포먼과의 경기에서 노쇠한 전 챔피언 알리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알리 측 사람들까지도. 하지만 알리 자신만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마치 주문을 외우듯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그 분위기를 전파하고자 애썼다. 두 육체가 맞붙어 이루어내는 몸의 향연, 20세기 몸의 예술 권투. 가볍고 경쾌하며 빠른 몸놀림, 자신의 몸으로 쏟아지는 공격도 가장 적은 움직임으로 처리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위해 필요한 만큼의 주먹만을 날리며 완벽한 공격과 수비의 조화를 이룬 예술 권투를 구사했던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는 일종의 아름다운 춤이었고, 즐거운 자신만의 소명이자 기쁨이었다. 비록 자신이 응원하는 쪽이 대부분 졌다는 징크스 때문에 대놓고 알리를 응원하는 일조차 조심스러워했던 작가 자신조차 경기 전에는 알리의 실패를 단언했지만. 그리고 드디어 공이 울렸다. 같은 극의 자석처럼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공격의 기회만을 살피던 순간, 번개처럼 날아간 알리의 오른손 스트레이트! 일 인치나 반 인치 차이로 승부가 결정되는 권투경기에서 거의 모든 자세에서 왼손보다 목표까지 최소한 한 걸음 이상 거리가 먼 오른손 주먹으로 경기를 시작한 선수는 이제껏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어 파괴적인 주먹을 퍼붓는 조지 포먼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그리고 그때부터 모두의 예상과는 다른 경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링 정 중앙을 차지하고 이리저리 날래게 움직이며 공격과 수비를 조화시키는 권투의 정석과는 달리 한번 몰리면 빠져나오기 힘든 코너로, 그리고 로프로 자꾸만 파고들어 가는 알리. 그의 생각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경기의 결과는? 무하마드 알리 그가 추구한 변화와 도전, 권투 그 이상의 권투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 두 흑인의 권투 시합. 하지만 알리와 포먼은 피부색이 같을 뿐 신념과 가치관에 있어 완벽한 대조를 이루는 양극이었다. 백인 전용 레스토랑에서 출입을 통제당한 후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을 강에 버려버리는 등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흑인 민권 운동에 앞장서며 백인 종교인 기독교 대신 흑인 이슬람교로 개종하며 본명까지 버린 알리에게 포먼은 자본주의 미국 사회의 백인들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궁극적인 목표가 흑인 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던 알리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미국 국기를 흔들어대며 미국을 경멸하는 말조차 못하게 했던 포먼은 권투경기의 상대 선수로서뿐 아니라, 이념과 신념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백인들의 시선을, 같은 인종이지만 자신의 움직임에 동조하지 못하고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극적인 흑인들의 시선을 바꾸고 개혁하는 것. 그 험난한 고난과 투쟁의 여정 중간 지점에 1974년 자이르공화국 킨샤사에서의 역사적인 경기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깃발과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작은 시작은 바로 유대인이자 미국 남성이었던 노먼 메일러 작가 자신에게서부터 출발한다. “흑인을 더 알 수 있는 중요한 열쇠였고, 흑인들의 감성과 심리 그리고 사랑을 푸는 또 다른 열쇠”인 권투를 보면서 “오만함과 의미도 없이 떠들어대는 모습, 민족차별적인 옷차림, 늘 떠들어대는 정열, 기묘한 오르간 소리, 마치 미국에서 소외당한 쓰레기를 뭉쳐놓은 듯한 구역질나는 자존심”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던 (미국) 흑인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적개심이 인간을 ‘존재’가 아닌 ‘힘’으로 보는 아프리카 반투 철학과 뒤섞이며, 조금씩 과거에 자신이 흑인들에게 가졌던 애정이 되살아나고 “흑인들이 가진 신비로운 비범함”을 깨닫게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폭력적인 삶에 대한 이해까지도. 그리고 언제나 자신은 위대하고 다른 사람은 형편없다고 깎아내리기 일쑤였던 떠버리 알리에 대한 생각도 그와의 인터뷰, 경기 모습을 스케치해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메일러는 작품 마지막 부분에 흑인 지도자 엘리야 무하마드의 후계자 루이스 파르라한의 의미심장한 연설문을 옮겼다. 마치 검은 키신저로서의 무하마드 알리를 예견이라도 하듯. 비록 1981년 은퇴 몇 년 뒤 파킨슨 병 진단을 받은 후 오랜 기간 투병으로 거동도 불편하고 예전의 날랜 퓨마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없지만 노먼 메일러가 우리의 가슴과 머리에 남긴 그 도전과 승리의 역사는 무하마드 알리, 그를 영원히 새로운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영웅’이자, 흑인 대통령 후보가 선전하고 있는 지금의 미국 흑인들을 있게 한 ‘선구자’로 기억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