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HAN,SEUNG-WON,韓勝源, 호 : 해산海山
한승원의 다른 상품
|
서시
황혼의 비낀 빛살 아래 집 한 채 짓습니다. 전신주의 벌이줄 감으며 올라가는 하늘수박 덩굴이 타고 가는 소라고둥의 나선 같은 태극의 끝 그 시원의 숲 속 옹달샘에 빠져 있는 달 바가지로 걸어가지고 히들거리며 암자로 달려왔다가 사라져버린 그 달 때문에 슬피 울다가 죽어간 스님, 대취하여 강물 속의 달 건지려다가 익사한 이태백을 기리는 달 긷는 집. --- p.9 |
|
무위사에서 만난 구름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 당신은 무위사 텅 빈 마당에서 선승처럼 구름 한 장 턱으로 가리키며 겹겹이 껴입은 옷에 갇혀 있는 나를 풀어주었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바람처럼 훨훨 날아다니라고. --- p.39 |
|
사물에 대한 물활론적 상상력으로 꽃피우는 ‘만유(萬有)’와의 대화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 세모시처럼 희어진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고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십시오.” 한과 샤머니즘, 그리고 불교가 융합된 원초적 생명력의 세계를 그려냄으로써 인간의 욕망으로 얼룩지고 자연과 불화하는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 세계를 비판, 조명하는 데 주력해온 소설가 한승원이 자신의 네번째 시집 『달 긷는 집』(문학과지성사, 2008)을 발표했다. 물리적으로 고희를 바라보고 있고, 문단에서 보낸 세월이 40년을 훌쩍 넘어섰지만 그의 문학적 열정은 주된 장르인 소설을 쓰는 틈틈이 시 창작의 욕망을 부추겨 이번 시집에 이르고 있다. ‘꽃, 무위사에서 만난 구름, 토굴 다담, 사랑하는 나의 허방, 고향의 달’이란 제목 아래 「서시」를 포함 총 71편의 시를 실었다. 소설가로, 대하장편을 붙들고 긴 호흡의 다작의 작가로 더 많은 생을 살아온 그는 이번 시집 『달 긷는 집』을 통해, 자신의 시적 세계의 출발점을 밝히고 있다. 이를테면 그가 지금껏 한 편 한 편 써온 “작은 손거울”에 비견되는 작품들이 모든 사물을 되비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것, 사물들이, 꽃들이,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감상할 수 있게 한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이고 시라는 생각 말이다. 일찍이 한승원의 첫 시집 『열애일기』(1991)에서 문학평론가 김주연은 “한승원의 문학은 어떤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시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를 중심으로 해서 떠도는 저 귀기 어린 공간은 서사 문학이 흔히 보여주는 행동과 논리의 세계라기보다, 한 맺힌 영혼들의 울음과 노래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비평한 바 있다. 그래서 한승원의 시집은 그의 문학의 본질을 속살 오롯이 드러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직전 시집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1999)를 펴낸 지 근 10년 만에 묶게 된 이번 시집에도 역시 한승원 문학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바다와 꽃, 불교적 색채가 주요하게 역할하고 있다. 흔히, 한승원의 무의식이 숨 쉬는 거대한 상징이 ‘바다’라면, “모든 샤먼들의 중심 표상이자 환생의 꿈”(김주연)의 상징이 ‘꽃’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꽃>편에 맨 처음 이름을 올린 시편에는 대지와 공중에 얼굴 디미는 꽃이 그저 꽃일 수 없는 이유를, 꽃의 고유한 생명력과 개성과 함께 쉽게 읽을 수 있게 한다. 더불어 몸에 큰 병을 앓고 나서 이제 마음 한 자락 누구에게라도 허허롭게 내어주고도 아쉬울 것 없는 듯한 시인의 고백으로 하얗게 샌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평론가 김춘수의 지적처럼, 이번 시집에서 한승원은 유난히 살아온 시절의 기억들을 구체적 사물들과 꽃에 하나하나 투영하며 대화와 회고로 되새기고 있다. 그리하여 사물의 존재성 혹은 고유성을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에 눈 뜨는 것이라는 자신의 깨달음을 스스로 확인해간다. 살면서 찾아드는 번민과 고통 어린 기억은 그렇게 시인을 위로하고 또 가볍게 한다. 이어 시 「무위사에서 만난 구름」에서는 불교적 구도의 세계에서 아련한 그리움과 환각, 그리고 무위의 마음 한 자락을 다시 지상으로 가져와 “바람 경전 구름 경전” 등으로 슬며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때로는 개인과 역사의 아픔을 ‘상처’와 ‘슬픔’ 대신 드문 ‘웃음’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화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