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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는 이들에게―권기철
머리글 제1권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1고찰: 충족 이유율에 따른 표상, 경험과 학문의 목적 제2권 의지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1고찰: 의지의 객관화 제3권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2고찰: 충족 이유율에 근거하지 않는 표상, 플라톤의 이데아, 예술의 대상 제4권 의지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2고찰: 자기 인식에 도달한 경우의 생에 대한 의지의 긍정과 부정 쇼펜하우어의 생애 철학에의 꿈 학문의 완성 결실의 날들 저무는 빛속으로 쇼펜하우어 연보 |
Arthur Schopenhauer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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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이것은 살아서 인식하고 있는 모든 존재에 해당하는 진리이다. 이 진리를 반성하고 추상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며, 인간이 실제로 그렇게 의식할 때 인간의 철학적 사유가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태양을 알고 대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단지 태양을 보는 눈이 있고, 대지를 느끼는 손이 있음에 불과하다.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는 표상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는 자기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인 인간이라고 하는 표상자와 관계함으로써만 존재한다.
--- p.37 우리가 여기서 고찰하고 있는 표상만으로서의 세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최초의 눈이 열렸을 때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이러한 인식의 매개 없이 세계는 존재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 이전에는 세계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또 그러한 눈이 없다면, 즉 인식 밖에서는 그 이전이라는 것도 시간이라는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에 시작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작이란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 p.69 단지 내 앞에 ‘표상’으로서만 존재하고 있는 세계의 의미를 탐구하거나 인식 주관의 단순한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표상 이외의 것일 수도 있는 것으로 옮겨가는 것은, 실제로 탐구자 자신이 순수하게 인식만을 하는 주관(몸은 없이 날개만 가진 천사의 머리)이라고 한다면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탐구자는 그러한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말하자면 세계 속의 ‘개체’로서 존재하고 있다. --- p.142 현상에 대한 의지의 관계는 완전히 이유율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의지인 것이 한편으로는 표상으로서 존재하는데, 그것이 현상이다. 그 자체가 의지인 것도 현상으로서는 현상의 형식을 형성하고 있는 법칙에 따른다. 그래서 모든 운동도 아무리 의지의 현상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원인을 갖고 있으며, 그 운동은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 대해 보편적인 것이 아닌, 즉 그것의 내적 본질이 아닌 ‘개별적’ 현상에 대한 원인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 p.187 현상은 매우 다양하지만, 물자체로서 의지는 하나이다. 이것을 인식해야 비로소 자연의 모든 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탄할 만하고 지극히 명확한 유사성과, 동시에 주어지지는 않더라도 결국 동일종의 변종이라고 생각되는 것과 같은 종족의 유사성이 이해되는 것이다. --- p.204 숭고함에 대한 감각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과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 아름다움의 경우는 순수한 인식이 투쟁 없이 우리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객관의 아름다움, 즉 그 객관의 이데아 인식을 쉽게 만드는 성질이 의지와 의지에 사용되는 관계들의 인식을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에서 멀어져 인식의 순수주관으로 남게 하며, 자신의 의지에 대한 추억까지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 p.252 아름답고 사상이 풍부한 사람은 적어도 가능한 한 자기 사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현세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고독을 줄이려 노력하고, 언제나 가장 자연스럽고 감춤이 없으며 자기 심정을 소박하게 표시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정신이 빈곤하고 뒤죽박죽되고 생각이 외곬인 사람은 억지스러운 표정과 모호한 말투로 꾸며대고, 사소하고 보잘것없고 따분한, 또는 흔히 있는 사상을 어렵고 젠체하는 상투어로 메우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아름다움의 위엄이 모자란다고 해서 이 모자람을 옷으로 보충하고자 야만스런 장신구, 금붙이, 깃털, 주름 잡힌 옷깃 장식, 커프스, 외투 등으로 자신의 초라하고 추한 인물을 감추려고 하는 사람과 같다. --- p.282 의지의 객관성에서 최고 단계인 이데아를 나타내고 인간의 노력과 행위의 연관을 통해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 시의 커다란 주제이다. 본디 경험이나 역사는 인간을 가르치기는 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잡다한 인간들의 행동양식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즉 경험과 역사는 인간의 내적 본질을 깊이 통찰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상호 간의 행동을 경험적으로 알리고, 거기에서 자신의 태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규칙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 p.299 우리의 걸음이란 끊임없는 파멸이 방해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우리 육체의 삶이란 지속적으로 보류되어 있는 사멸에 불과하며, 언제나 죽음이 미루어져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 p.370 행복이란 모두 소극적인 것에 불과하며, 본질적으로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영속적인 만족이나 행복은 있을 수 없고 언제나 고통 또는 결핍에서 해방시켜 줄 뿐이다. 그 뒤에는 새로운 고통이 생기거나 무기력, 헛된 갈망, 권태 등이 뒤따르게 된다. 이것은 세계와 인생의 본질을 충실히 비추는 거울인 예술, 특히 시에서도 증명된다. --- p.380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이런 관점에 서서 영속적으로 삶을 긍정하고 있다. 세계는 이 긍정의 반영으로서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 속에 떠 있는 무수한 개체를 껴안고 무한한 고뇌를 짊어지고 생식과 죽음 사이를 끝없이 방황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어떠한 측면에서도 불평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의지는 자신의 비용으로 이 대비극과 대희극을 상연하고, 스스로 이것을 관람하기 때문이다. --- p.392 ‘선’이란 그 개념에 따르면 상대가 있는 것, 따라서 모든 선도 본디 상대적이다. 왜냐하면 선은 무엇을 요구하는 의지에 대한 관계 속에서만 그 본질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대선(Absolutes Gut)’이란 모순이다. ‘최고선(summum bonum)’도 모순이다. --- p.452 자살은 의지의 부정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의지에 대한 강렬한 긍정 현상이다. 왜냐하면 부정의 본질은 삶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향락을 두려워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 p.4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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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나의 인생의 표상이다!”
“이게 무슨 뜻이람. '세상은 나의 표상이다'! 어쩐지 알쏭달쏭 좀 거창한 말이잖아. 세계는 내가 보는 대로만 존재한다. 나는 세계 속의 일부이고, 세계는 내 바깥에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 쇼펜하우어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묘한 말을 했을까? '표상'이란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마음속에 그리는 것이다. 인간은 진짜 태양을 직접적으로는 모른다. 밝기, 크기, 온도를 통해 태양을 상상할 수는 있다. 내가 보는 태양은 나만의 것. 왜냐면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태양은 '나의 태양', 즉 '나의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세상은 나의 표상이다'라는 뜻이야. 같은 것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측면을 보고 있는지도 몰라.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보면 전혀 다른 세계로 비춰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단 말이야.” 위대한 철학가이자 명문장가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가 1814년부터 5년 동안 틈틈이 써내려간 철학체계가 1818년에 완성되었다. 그것은 ‘나의 모든 철학은 한 마디로 말해, 세계는 의지의 자기 인식이다’였다. 쇼펜하우어는 하루 빨벽 그 논문을 출판하고 싶어 라이프치히에 있는 브로크하우스 출판사로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강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나의 이 저서는 하나의 새로운 철학체계입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이지요. 기존에 존재하는 옛날 철학을 재탕해 새롭게 서술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 어떤 사람도 생각해내지 못한, 고도로 응집된 사고로 쌓아올린 책이 될 것입니다.” 이때 쇼펜하우어의 나이는 30살이었다. 브로크하우스는 그의 열의에 이끌려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그즈음 칼스바트에 체류하던 괴테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여기 드레스덴에서 4년 이상 걸린 작업이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표지가 붙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제가 이 지방에서 일상 작업의 성과물이 아닌, 제 생애의 성과물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사상뿐 아니라 손꼽히는 문장가로도 유명하다. 쇼펜하우어의 스승이자 평생친구인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그의 문체와 표현의 경쾌함에 주목하여 칭찬을 아까지 않았다. 그의 글은 지금도 학교 작문시간에 모범으로 사용되고 있다. 죽어야 하나? 살아야 하나? 인생문제 삶의 지혜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적 염세주의는 세상을 냉엄한 직관으로 통찰하여 얻은 것이다. 즉, 흔히 염세주의에서 느껴지듯 삶을 비관하며 모든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삶을 염세적으로 통찰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 염세적이며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되, 그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예리한 시선을 잃지 않았던 쇼펜하우어의 지혜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깨어난다. 독자들은 직관이 번뜩이는 그의 냉철한 인생철학에서 삶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 쇼펜하우어 지성이 담긴 역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제1부와 제3부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부와 제4부가 의지로서의 세계를 다루었다. 제1부와 제2부에서 인식에 대하여 존재하는 세계는 ‘나의 표상’ 즉 보인 세계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것을 인식하는 주관은 의지이며, 표상으로서의 현상세계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되는 사물 자체가 곧 의지라고 하였다. 그것은 칸트와 플라톤의 인식론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또 제3부와 제4부에서는 각각 미학과 윤리학을 다루었다. 현상하는 세계의 연관과 생성을 초월하여, 영원하면서도 세계의 진리에 도달하는 것으로서 예술, 특히 음악을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다. 또한 살려고 하는 맹목적인 의지의 충동을 초월하여, 인도의 베단타철학과 결부하여 금욕과 정적을 구하고 제시하였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1814년부터 1818년까지 5년 동안 써내려가, 그의 나이 30세에 완성된 작품이다. 이때 쇼펜하우어 철학체계의 근본도 확립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저서에 들어 있는 사상에 대해 변경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844년 그가 낸 속편도 이 작품의 보완작이며 확장판이다. 여기에서 쇼펜하우어는, 존재하는 세계는 ‘나의 표상’, 즉 보이는 세계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것을 인식하는 주관은 의지이며, 표상으로서의 현상세계를 낳게 하는 원인이 되는 사물 자체가 곧 의지의 표출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미학과 윤리학도 다루고 있는데, 현상하는 세계의 연관과 생성을 초월하여 세계의 진리에 도달하는 것인 영원한 예술, 특히 음악을 높이 평가하였다. “음악은 어디에서나 이해받을 수 있는 참으로 일반적인 언어이다. 그 때문에 음악은 모든 나라와 모든 시대를 통해 끊임없이 화제가 되어왔고, 풍부하고 깊은 의미를 전해 주는 선율은 지구상 어디든 닿을 수 있다. 선율은 두뇌에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지만, 마음에는 많은 것들을 전해 준다.” 이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 찬 곳! 그 불행을 알아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직접적인 목적은 괴로움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염세적 철학가로 잘 알려진 그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았을까? 평생 독신으로 살며 인간의 본질과 정체에 대해 탐구하며 살아간 그에게 이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그러나 삶을 진실로 대면하면 불행으로 가득 찬 삶이라도 그만큼 더 진심으로 웃을 수 있다! 삶이 고통이기에 그 고통을 제대로 알아야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은 오늘날의 염세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삼라만상의 실체를 ‘의지’로 파악하고 생에 대한 고통을 포착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설명한 쇼펜하우어에게서 인생에 대한 지혜의 정수를 얻는다. 죽음과 사랑의 철학 세기의 지성을 사로잡은 쇼펜하우어의 천재성! 쇼펜하우어의 천재성은 키에베케고르, 톨스토이, 체호프, 바그너 등 세기의 지성을 사로잡았다. 바그너는 자신의 악극시『니벨룽겐의 반지』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쇼펜하우어에게 자필 헌사를 보냈다. 또한 키에베케고르는 쇼펜하우어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는바, 그의 일기 속에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감동과 공감을 보이는 다양한 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가 간행한 소책자에도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나 있다. 또 톨스토이는 쇼펜하우어를 인간들 중에 가장 천재적인 인물이라며 격찬했다. 톨스토이의 서재에는 쇼펜하우어의 초상화만 유일하게 걸려 있었다고 하며, 톨스토이의『안나 카레니나』와 하디의『테스』처럼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직접 등장하는 것도 있다. 쇼펜하우어의 영향력은 20세기에도 계속되어 체호프, 버나드 쇼, 사뮈엘 베케트, 릴케나 T. S. 엘리엇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불문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읽었기 때문에 철학자가 될 결심을 했으며, 비트겐슈타인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철학을 시작하였다. 프로이트는 심리분석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억압 메커니즘은 자기보다 쇼펜하우어에 의해 먼저 설명되었다고 했으며, 융은 그의 저서에서 쇼펜하우어에 관해 여러 번 언급했다. 이렇게 쇼펜하우어의 영향이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 쇼펜하우어가 사람이 놓여 있는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는 보기 드문 통찰력과 문필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21세기의 첫 무렵에도, 그의 영향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