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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첫출발
야등이 출세 토굴 속의 아이들 학예회의 영웅 도깨비 이야기 프락치 선생님 먼 세상으로 천사를 찾아서 새로운 대결 그리운 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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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해식의 진짜 실력은 수업 시간에 나타났다. 녀석은 우리 교실과 낯이 선 외톨이임에도 불구하고 수업 시간에는 모든 질문에 혼자 대답하고 혼자 질문을 도맡아서 했다. 녀석은 많은 걸 알았고 필요한 부분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 바람에 다른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벙어리 노릇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어 시간에도 녀석은 제일 먼저 손을 들고 국어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녀석의 낭독은 다소 느렸다. 녀석이 읽고 났을 때 뒤에서 어떤 녀석이 견딜 수가 없었던지 내 등을 두드리며 속삭였다. "야, 병수. 가만 있을 거야? 한번 멋지게 해 보라구." 그제서야 나는 용기가 솟아났다. 사실, 내가 그 도시 녀석에게 대항할 거라곤 국어 책 낭독밖에 없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나는 책을 정확하게 읽지 않고 오직 번개처럼 빨리 읽는 재주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재주를 누구도 칭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이것이나마 보여 주는 게 우리 반의 체면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p.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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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절망은 아직 이르다. 나는 우물로 달려갔다. 우리집 우물은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우물이었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면 5분 이상이나 시간이 걸렸다. 두레박이 커서 그걸 들어올리는 데 내 힘이 모자랄 정도였다. 나는 끙끙거리며 물을 퍼 올려서 얼굴을 씻기 시작했다. 얼굴도 잘 씻지 않고 다니는 아이라는 걸 사람들의 기억에서 며칠 사이에 지워 버리고 싶었다. 특히 나에 대한 담임 선생의 그런 인상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얼굴을 씻고 또 씻었다.
그때 세숫대야의 물속에 천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천사는 내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얼굴도 깨끗하게 씻고 복장도 깨끗하게 하고 나온다면, 자기는 무대에서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병수 네가 웬일이냐? 죽어라고 안 하던 세수를 다하게." 뒤돌아보니 계숙이 누나가 우물 옆에 와서 서 있었다. 누나는 멀리서 내 행동을 줄곧 지켜보다가 뭔가 수상쩍어 다가온 것이다. ---p. 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