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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책소개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군말
님의 침묵(沈?)
리별은 미(美)의 창조(創造)
알ㅅ수 업서요
나는 잇고자
가지 마서요
고적한 밤
나의 길
? ?고서
예술가(藝術家)
리별
길이 막혀
자유정조(自由貞操)
하나가 되야주서요
나루ㅅ배와 행인(行人)
차라리
나의 노래
당신이 아니더면
잠 업는 ?
생명(生命)
사랑의 측량(測量)
진주(眞珠)
슯음의 삼매(三昧)
의심하지 마서요
당신은
행복(幸福)
착인(錯認)
밤은 고요하고
비밀(秘密)
사랑의 존재(存在)
?과 근심
포도주(葡萄酒)
비방(誹謗)
‘?’
님의 손ㅅ길
해당화(海棠花)
당신을 보앗슴니다

복종(服從)
참어주서요
어늬 것이 참이냐
청천한해(情天恨海)
첫 ‘키쓰’
선사(禪師)의 설법(說法)
그를 보내며
금강산(金剛山)
님의 얼골
심은 버들
낙원(樂園)은 가시덤풀에서
참말인가요
?이 먼저 아러
찬송(讚頌)
논개(論介)의 애인(愛人)이 되야서 그의 묘(廟)에
후회(後悔)
사랑하는 ?닭
당신의 편지
거짓 리별
?이라면
달을 보며
인과율(因果律)
잠?대
계월향(桂月香)에게
만족(滿足)
반비례(反比例)
눈물
어데라도
?날 ?의 님의 얼골
최초(最初)의 님
두견새
나의 ?
우는 ?
타골의 詩(GARDENISTO)를 읽고
수(繡)의 비밀(秘密)
사랑의 불
‘사랑’을 사랑하야요
버리지 아니하면
당신 가신 ?
요술(妖術)
당신의 마음
여름밤이 기러요
명상(冥想)
칠석(七夕)
생(生)의 예술(藝術)
?싸옴
거문고 탈 ?
오서요
쾌락(快樂)
고대(苦待)
사랑의 ?판
독자(讀者)에게

엮은이에 대해

저자 소개 1

韓龍雲, 만해, 한유천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백담사 등지를 전전하였고, 이때를 전후해서 세계여행을 계획하였다.

1894년 동학군에 가담하여 투쟁하다 실패했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 수년 간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근대적 교양서적을 읽어 서양의 근대사상을 접했다. 1904년(26세)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목하니 노릇을 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7세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서 득도. 백담사에서 전영제사全泳濟師에 의하여 수계受戒. 백담사에서 이학암사李鶴庵師에게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수료. 29세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선안거(최초의 禪수업)를 성취하였다.

30세 강원도 유점사에서 서월화사徐月華師에게 『화엄경』을 수학하였고 4월, 일본의 시모노세키, 교토, 도쿄, 닛고 등지를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였다. 도쿄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였으며, 10월, 건봉사 이학암사에서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하였다. 31세에 강원도 표훈사 불교 강사에 취임하였고 1910년(32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1년(33세) 박한·진진웅·김종래·장금봉 등과 순천 송광사, 동래 범어사에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 조약 체결을 분쇄하였다. 1913년(35세)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하였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발행하였다.

1914년(36세) 『불교대전』을 범어사에서 발행하고 1917년(39세) 『정선강의 채근담』을 신문관에서 발행하였고 항일 투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2월 3일 밤 10시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정돈석擬情頓釋이 되어 진리를 깨치고, 오도송을 남겼다. 1918년 청년계몽운동지 [유심]지를 창간했다. 1919년(41세) 3.1운동을 주도,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고 공약삼장을 첨가하였다. 1923(45세)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지원하는 강연을 하였다.1924년 불교청년회 회장, 총재를 역임하였다.

1925년(47세)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하엿다. 1927년(49세) 1월 신간회를 발기하였으며, 5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에 뽑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931년(53세) 월간 [불교]지를 인수하였고 청년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53세) 조선불교 대표인물 투표에서 최고득점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한용운 422표, 방한암 18표, 박한영 13표, 김태흡 8표, 이혼성 6표, 백용성 4표, 송종헌 3표, 백성욱 3표, 3표 이하는 생략. 불교지 93호에 발표됨). 1933(54세) 유숙원씨와 재혼하였고, 이때를 전후하여 『유마힐소설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벽산 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몇 분의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지었으며, 이때 총독부 돌집을 마주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짓도록 하였다.

1940년(62세) 『불교』지 2월호에 『유마힐소설경』 연재를 시작하였고, 1943년(65세)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였다. 1944년(66세) 6.29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입적하였으며 유해는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용운은 불자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민중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1운동에 가담하고 독립선언서를 공개하여 낭독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는데, 기존의 시조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를 취했으며,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는 언어와 서민적인 시어 활용으로 민중정신을 반영했다. 독립을 향한 열망, 자연 등을 ‘님’으로 표현했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화법으로 검열을 피하기도 했다.

한용운의 다른 상품

역자 : 이선이(李善伊)
경희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1999년에 <만해시의 생명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에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96년에 대한불교 조계종이 주최하는 문학의 해 기념 ‘불교문학 현상 공모’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하여 창작 및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서서 우는 마음≫(1998), 연구서 ≪만해시의 생명사상 연구≫(2001), 평론집으로 ≪생명과 서정≫(2001), ≪상상의 열림과 떨림≫(2005) 등이 있으며, 만해 한용운 관련 논문으로는 <만해의 불교 근대화 운동과 시집 ≪님의 침묵≫ 창작동기>, <만해문학의 탈식민주의적 인식>, <萬海詩와 當代詩의 영향관계에 대한 일고찰>, <‘문명’과 ‘민족’을 통해 본 만해의 근대이해>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2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79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62281859

출판사 리뷰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으로 출간하는 한국 근현대문학은 작품이 처음 발표된 대로 현대에 살려내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초판본을 그대로 싣고자 했습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이 1926년에 출간한 시집 ≪님의 침묵(沈?)≫은 한국 근대시사에 있어서 기념비적 시집의 하나다. 이 시집이 우리 근대시사에서 기념비적 의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 기인한다.
우선, 시집 ≪님의 침묵≫은 이 땅에서 근대적인 자유시가 창작되기 시작한 이래 형이상학적 사유를 자유시라는 형식 속에 녹여낸 최초의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심오한 불교적 사유에 시적 인식이 닿아 있어, 우리의 근대 자유시에 철학적이며 명상적인 깊이를 불어넣어 주었다. 시인 한용운은 관념적인 철학과 사상을 예술적 형상으로 미학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사상의 정서화라는 근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집은 핵심적인 시어인 ‘님’의 상징적 의미가 단순히 연인, 조국, 절대자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역동적인 존재 양상들로 확대되면서 밀도 높은 상징성을 갖는 상징 시집의 한 지평을 열어젖혔다. 시인은 소멸과 생성, 부재와 현존, 이별과 만남, 현실과 초월의 변증법적 극복 과정을 시어 ‘님’으로 상징화함으로써, ‘지금 여기’가 아닌 초월적 세계를 향한 절절한 시적 염원을 노래한다. 이를 통해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모습을 시적으로 감지함으로써, 이 시집은 인간의 종교적 심성을 드러내는 상징시의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집은 서구로부터 상징주의가 이 땅에 유입되어 자유시 창작을 고무한 이래, 상징시편으로 일정한 미학적 완성도를 획득한 최초의 시집이라는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되어 있는 개별 시편들은 상호 유기적 연관성을 보이는 구조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 여타의 다른 서정 시집과 구별된다. 이 시집에는 총 8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서시에 해당하는 <님의 침묵>에서 종시에 해당하는 <사랑의 ?판>에 이르는 전편의 시에 ‘님’과의 이별과 만남이 극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각기 독자적인 의미영역을 갖는 개별 시편들은 내적으로 상호 연관성을 가지며 시집 전체가 한 편의 사랑의 드라마를 구성해 낸다. 이처럼 우리의 근대시사에서 시집 ≪님의 침묵≫은 연작시 형식을 개별 시편이 내면화해 예술적 형상화에 성공한 최초의 시집이라는 독특한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시집 ≪님의 침묵≫ 이전에 발간된 근대적인 개인 시집으로는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1923), 주요한의 ≪아름다운 새벽≫(1924), 변영로의 ≪조선의 마음≫(1924), 노자영의 ≪처녀의 화환≫(1924), 박영희의 ≪흑방비곡≫(1924),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 정도가 전부다. 이들 시집이 주로 단편적인 주관적 정서를 자유로운 운율에 담아낸 것에 비해, 시집 ≪님의 침묵≫은 하나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변주하는 연작시적 성격을 보임으로써 주관적인 서정시가 가지는 정서적 울림의 폭과 깊이를 한층 넓고 깊게 만든 대표적인 시집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해 한용운은 이 문제적인 시편들을 왜 창작하게 되었을까? 시인은 시집의 자서(自序)에 해당하는 <군말>에서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 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창작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 진술로 볼 때, 시집의 창작 동기는 다분히 문학의 계몽적 기능에 기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길을 잃은 어린 양에 대한 연민이란 어린 양을 바르게 인도하고자 하는 목자(牧者), 즉 지도자 내지는 선각자가 갖는 소명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용운이 시집 창작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욕망한 것은 아니었다. 후기인 <독자(讀者)에게>에서 그는,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압헤 보이는 것을 부?러함니다/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에 나를 슯어하고 스스로 슯어할 줄을 암니다.’라고 말한다. 시인이 말하는 슬픔의 구체적인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이 시집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시인 자신을 포함한 민족 전체가 직면한 부끄러운 현실과 연관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시집의 자서와 후기(後記)로 추측해 보면, 이러한 부끄러운 현실에 대한 직시가 시집 창작의 내적 동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는 문단 활동을 한 바도 없으며, 당시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분주했던 그가 자유시 창작에 열정을 갖게 된 직접적인 이유를 짚어내기는 어렵다. 다만, 이 무렵 한용운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보면 시집 ≪님의 침묵≫을 창작하게 된 까닭을 조금은 이?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은 열아홉의 나이에 구한말의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를 몸소 체험하고자 가출을 감행했다. 여기저기를 떠돌던 그는 다시 귀향해 아들 하나를 얻었으나 25세가 된 1905년 불교에 귀의해 정식 승려가 된다. 승려가 된 그는 삼십대의 대부분을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산중에 유폐된 조선 불교를 근대화하고 대중화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한다. 이 과정에서 점차 한용운은 식민통치하에서 고통 받는 민족의 현실에 눈뜨게 되고 따라서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 사십대 초반의 한용운은 각계의 민족대표들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하고 이로 인해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도 했다. 감옥에서 그는 변호사를 대지 말 것, 사식(私食)을 넣지 말 것, 보석을 요구하지 말 것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시종일관 이 원칙을 지켜나갔으며, 투옥 중에 전향서를 제출하면 사면해 주겠다는 일제의 회유를 끝까지 거부하며 만기 출옥까지 정신의 훼절(毁折)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이처럼 강경한 자세로 어둠의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그에게도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을 되돌아볼 내성의 시간은 필요했을 것이다. 사십대 중반을 훌쩍 넘긴 시인이 삶과 역사, 종교와 사상을 진지하게 다시금 성찰해 보는 바로 그 순간에 시집 ≪님의 침묵≫이 놓여 있다고 하겠다. 이 시집이 보여주는 일종의 정신적 원숙미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실상 이 시기 대부분의 자유시는 이십대 초중반의 젊은 청년 문사들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자유로운 시형 속에 청춘의 내적 방황과 슬픔을 담아내는 것이 시단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러나 시집 ≪님의 침묵≫은 마흔일곱이라는 원숙한 중년의 나이에 씌어졌으며, 선승인 시인이 험난한 시대고(時代苦) 속에서 체득하게 된 삶의 깨달음들을 시적 자양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 사유의 깊이는 동시대 청년시인들의 시와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사십대 중반에 이르러 한용운은 경성에서의 활동을 잠시 접고 홀연히 강원도 내설악의 오세암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그는 선적 직관력을 보다 명징하게 하고 정신적 정진을 위해 중국 당나라 상찰선사(常察禪師)의 선화(禪話)인 ≪십현담(十玄談)≫에 주를 붙이고 이를 나름대로 해석한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를 집필한다. 이러한 내적인 자기정련이 있은 이후에 한용운은 백담사로 내려와 여름 한철을 보내며 시집 창작에 몰두한다. 시집 ≪님의 침묵≫은 1925년 8월 29일 밤에 최종 탈고된 것으로 시집 말미에 밝혀져 있다.
그렇다면 시인이 이 시집에서 드러내고자 한 시적 주제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이 시집의 주제는 ‘님’의 상징적 의미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표면적으로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님’과의 이별 상황에 처해 있다. 이별은 ‘님’의 침묵을 강요하는 시대에 대한 비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침묵하는 ‘님’을 통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시적 화자는 부재를 통해 사랑의 진정성을 발견해 나간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조아하야요.’(<복종(服從)>)라는 시적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언제나 표면적인 의미 너머에 있다. 따라서 한용운에게 있어서 이별은 곧 만남이고 님은 곧 나다. 그에게 진정한 자유가 복종이듯이 침묵은 곧 노래다. 따라서 ‘님의 침묵’은 ‘나의 노래’이고 ‘나의 침묵’은 ‘님의 노래’가 된다. 이 역설(paradox)의 논리가 이 시집 전체를 이끄는 시적 논리이자 시인이 삶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역설은 표면적으로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그 이면으로는 삶의 본질적인 이치를 포착해 내는 가장 중요한 시의 표현기법이다. ‘님은 갓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님의 침묵>)라는 역설적 표현에는 이별에 처한 화자가 느끼는 슬픔의 깊이와 함께, 이 슬픔에만 머물지 않고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극복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시적 화자에게 역설로서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매개가 바로 ‘님’이다. 또한 동시에 ‘님’은 나와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일깨우는 절대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시집의 주제 의식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진실한 사랑의 존재 방식에 대한 시적 추구에서 찾아진다. 한용운의 시세계에 대해 존재론적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적 무의식이 되고 있는 도저한 부재의식이 식민지 시대라는 시대 상황과 결부된다는 점에서 이 시집은 민족의 운명과 해석의 지평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시집 ≪님의 침묵≫이 단지 식민지 시대에 대한 시적 응전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시집은 인류사의 보편적 주제인 사랑의 문제로 역사와 철학과 사상의 시적 승화를 이루어냄으로써 시간의 마모를 견디는 예술적 영원성을 획득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은 당시 조혼 풍습에 따라 열네 살의 나이로 결혼하고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속가를 버리고 떠나 승려가 되었으며, 오십대에는 다시 재혼해 딸 하나를 얻었다. 이처럼 그의 삶에는 속세를 등지는 비정함과 환속해 세속적 삶과 함께하는 다정함이 공존한다. 가출과 방랑, 출가와 투옥 등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만해 한용운은 선승으로서의 깨달음을 향한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한용운의 삶은 뭇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또한 아프다는 재가승려 유마힐의 삶을 닮아 있다. 실제로 만년에 접어들어 그는 ≪유마힐소설경강의≫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그의 대승적인 삶의 자세는 시인, 선승, 독립운동가라는 어느 한 면에 그를 가두어 두려고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위대한 삶이 그러하듯, 그는 언제나 전체이자 온몸인 삶으로 어두운 식민지 시대의 ‘약한 등불’이 되고자 했다. 그 꺼지지 않는 희망의 빛이 시집 ≪님의 침묵≫ 속에서 환하고 아름다운 시적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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