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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서론 제1부 큰 포부를 품은 고창 청년 제1장 출생과 성장 제2장 새 학문 연마 제3장 청운의 큰 꿈 제4장 신학문의 수용 제5장 귀국과 중앙학교의 인수 경영 제2부 민족운동 실천과 경제·언론창달 집념 제1장 3·1 혁명의 추진과 민족운동 제2장 경성방직의 창설과 민족경제 달성의 의지 제3장 동아일보의 창간과 언론창달 제4장 민립대학의 설립운동 제5장 국산품 애호운동의 전개 제6장 신간회의 애국운동 참여 제3부 민족대학 인수운영과 인재육성책 제1장 구미 교육계의 학습탐사 제2장 보성전문학교의 인수 확장 제3장 안암골의 웅자와 인재육성의 집념 제4장 보전 교장 시절의 대일 항전 제4부 한민족 광복과 정국 운영 제1장 민족의 광복과 한민당의 창당 제2장 미군정에의 참여와 동아일보의 중간 제3장 민족의 지도자 고하 송진우의 피살과 인촌의 한민당 당수 피임 제4장 독립정부 수립 구상의 구체안 제5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정치력 발휘 제1장 대한민국 정부수립의지 제2장 총선의 실시와 한민당의 참여 제3장 민주국민당으로의 확대 발전 제4장 6·25 한국전쟁과 피난 제5장 부통령 시절의 국리민복 추구 제6장 반독재 호헌운동의 전개 제7장 환도와 민주화에의 투신 제8장 민족지도자의 최후 제9장 인촌의 친일파 혐의문제 변정(辯正) 결론 참고문헌 연보 가계도 찾아보기 저자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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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떠오르는 현대사의 인물 인촌 김성수
이 책 『대한민국 부통령 인촌 김성수 연구』는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1891~1955)의 65년간의 일생을 각종 내외자료에 의거하여 학술적으로 연구한 일관성 있는 학술연구서이다. 그동안 인촌에 관련된 저술이 동아일보사에서 펴낸 것만도 대략 5권에 이르고 있으나 그것은 거의가 복수의 필자가 모여 분담, 공저 형식으로 꾸며진 일화, 회고, 경험, 강연 중심적인 소개서이다. 따라서 이번에 시도된 인촌 연구는 단독 저자 명의의 인촌에 관한 일관된 심층연구서로, 단일 연구로서는 최초의 시도이다. 저자는 인촌을 존경하던 한 역사학도로서 여러 가지 관련 학술논문을 집필, 발표하였으나 일관된 저술은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내외의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 분석, 비판하고 종합하여 연구를 착수한 지 몇 년 만에 이 책을 간행하여 학계에 보고하게 된 것이다. 민족 교육가, 기업가, 언론인, 정치가로서의 인생이 민족의 현대사 위에 펼쳐진다 인촌 김성수는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여 줄포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16세 때 이웃의 고하(古下) 송진우(宋鎭禹)와 창평의 한 개인 학숙에서 내외의 신학문을 공부하며 청운의 큰 꿈을 키워나갔다. 그들은 신학문을 배워야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문화를 잘 지키며 효율적으로 이를 육성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인촌과 고하는 지인의 조력을 받아 파격적으로 일본행을 단독 결심하고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며 18세 때에 도일하였다. 인촌은 와세다대학을 24세 때 졸업하고 고하는 메이지대학을 나왔다. 이 시기는 외세의 도전이 극심하였던 침략과 불운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인촌은 그가 다니던 학교의 창설자와 일본 근대화 선각자의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 사립학교를 인수할 뜻을 가지고 귀국하여 이를 물색하던 중 25세 때 중앙학교를 인수 확장하여 크게 키워나갔다. 그는 경성방직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발전시키려 시도하였으며, 1920년 4월 1일 화동에서〈동아일보〉를 창간하여 언론창달의 큰 임무를 수행하여 오늘날의 대신문사로 거듭나게 하였다. 동시에 인촌은 민립(民立)대학을 설립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으며, 국산품 애호운동에도 동참하였다. 또한 신간회(新幹會)운동에도 동참하여 고향 동지 근촌 백관수 등과 민족운동에 이바지하였다. 인촌은 민립대학을 설립하기 위하여 교육, 문물견학 학습차 구미 학습답사를 강행하여 이를 토대로 구미의 저명한 대학들을 살피고 약 2년만에 귀국하여 중앙학교장에 취임함과 동시에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고려대)를 인수 확장하였다. 1945년 8월 우리민족이 광복되자 인촌은 국민대회 준비회를 조직하고 일찍이 우익정당인 한국민주당을 창당하여 고하를 그 대표로 앞세우며 자신은 일개 당원으로 민족우익진영의 최초의 정당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미국에서 33년 만에 돌아온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을 도와서 대한민국을 세우고 다시 건국의 일을 도왔다. 그는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고수, 유지하고 그에 따라 민주공화정체를 신정부의 정치목표로 삼아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는 신정부 수립의 최고 공로자로서 그 임무수행에 여념이 없었다. 인촌은 미군정에 참여하여 여러 가지 민주국가의 기초를 다졌으며〈동아일보〉를 폐간 5년 만에 중간하여 언론창달의 위업을 계속, 신장하였다. 1951년에는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에 선출되어 1년여 동안 국리민복에 전념하였으나 이승만의 독재가 날로 더 자심해지자 자진 사퇴하여 반독재투쟁을 전개하였다. 인촌 김성수의 65평생은 나라사랑과 겨레를 위해 공적인 사실을 먼저 내세우는 공선사후의 고귀한 일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촌은 포용력 있는 교육가, 기업가, 정치가였다. 그가 건국에 기여한 공로는 매우 적극적이었고 최우선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뒤에서 조력자로 남아 통일된 나라의 평범하고 떳떳한 국민이 되는 것이 그의 소박한 희망이기도 하였다. 일련의 불굴의 인품은 공선사후(公先私後), 신의일관(信義一貫), 담박명지(淡泊明志), 자립자강(自立自彊) 사상에서 출발한 인촌의 특유한 유교적 원형사상 체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런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인촌상은 교육부문, 산업부문, 언론부문, 인문사회문학 부문, 자연과학 부문, 공공봉사 부문 등 6개 부문에 걸쳐 시상하고 있다. 이번 제23회 인촌상 시상식은 2009년 10월 9일 5시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털볼룸에서 거행되며, 이 책의 저자인 이현희 선생은 이날 시상식에서 인촌 김성수의 일생에 관해 강연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