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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망가 섬의 세 사람
여신의 돌 알바트로스의 밤 새장, 앰플, 구토 청색 LED 덧붙이는 말 |
Yu Nagashima,ながしま ゆう,長嶋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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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망가 섬에 가서 에로 만화를 보자.
그런 기획이 통과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다 흥에 겨워 나온 소리였다. “에로망가 섬에 가면 좋겠네요.” 와하하하하. “거 괜찮겠네!” 아하하하하. H사의 이자와는 항상 ‘와하하’라고, 사토는 ‘아하하’라고 웃는다. 둘이서 쉴 새 없이 에로망가, 에로망가 하며 큰 소리로 연호하니 건너편의 여자 손님이 수상쩍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럴싸하게 기획서를 꾸며 제출했더니, 표지를 보자마자 편집장이 ‘으흐흐’ 하고 웃었다. 오른쪽 끄트머리에 스테이플러를 찍-었다고는 하지만 몇 페이지 안 된다-은 기획서를 넘겨보며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흐흐흐’ 하고 웃는다. 이 양반의 경우, 웃는다고 해서 마냥 좋아하는 거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멍청한 자식!” 하고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처럼 갑자기 성질을 내는 경우도 있다. “나쁘지 않은데?”라는 말을 듣고서도, 오케이라고 바로 인지하지 못했다. 사토와 구보타가 근무하는 '게임 통신'은 콘솔 게임 잡지 중 최고의 판매부수를 자랑한다. 게임계의 최신 정보뿐 아니라 서브컬처적인 터무니없는 기획도 판매에 일조하고 있다. “업무를 미리 마쳐두고 다녀와.” “어, 진짜 보내시려고요?” 이 기획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나 할법한 말이 본인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오히려 편집장이 자신이 의견을 냈다는 양 장난기 어린 얼굴로 팔짱을 끼고 사토를 올려다봤다. 실실 웃으며 업무는 제대로 해놓고 가라고 거듭 말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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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 출장? 한가로운 여행? 아니면… 도피?
이유야 어찌 됐든, 우리는 에로망가 섬에 와 있다! 남태평양의 평화로운 섬나라 바누아투 공화국에는 일본어로 ‘에로 만화’라는 뜻을 가진 ‘에로망가’ 섬이 실존한다. 대대적으로 히트한 게임에 등장하여 일본인들에게 갑자기 알려진 이 수상한(?) 섬에 사토, 구보타, 히오키 등 게임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세 사람이 ‘에로망가 섬에서 에로 만화를 보자!’라는 수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도착한다. 눈부신 이국의 햇살과 아름다운 풍광, 원주민들의 순박한 성품에 흠뻑 빠져버리는 세 문명인. 그러나 사토와 히오키는 사실 일본에 커다란 고민거리를 하나씩 남겨둔 채다.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한 두 사람은 에로망가 섬의 평화로움에 매료되어 그만 ‘이곳을 도피처로 삼아 눌러앉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자신들을 환대해주는 순박한 현지인들과 친해지게 되면서 사토는 자신이 보기에 평화롭기만 한 이곳의 환경이 실은 가혹한 재난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고, 히오키는 자신의 도피가 친절한 이곳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하게 된다. 결국 짧은 도피를 마치고 다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는 두 사람. 그들의 앞에는 하나도 변한 것 없는 답답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러나 어떠랴. 현실 속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마음은 이미 에로망가 섬에서 깨끗이 치유되었으니! 제목과 동명의 에피소드이자 이 책을 대표하는 작품인 『에로망가 섬의 세 사람』은 대단한 인물이 등장하거나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님에도 시선을 이끄는 강렬한 흡인력을 가진 작품이다. 이 묘한 긴장감은 전쟁 후에 버려진 폐허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원초적인 욕망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근미래적 분위기의 단편 『여신의 돌』과 환상 소설적 설정과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인상적인 『알바트로스의 밤』, 일상 속 작은 편린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관조하게 되는 전개가 절묘한 관능 소설 『새장, 앰플, 구토』, 그리고 『에로망가 섬의 세 사람』에서 이어지는 에피소드로서 이 책의 대단원을 따스하게 마무리하는 단편 『청색 LED』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유지되고 있다. 이 작품집에서 나가시마 유는 현대인들이 꿈꾸는 작은 일탈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언제나 잔잔한 일상을 간결한 문체로 담아내어 온 작가 자신의 일탈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의 일탈이라는 것은 결국 잠시 동안의 이색적인 경험이자 시간일 뿐, 그것이 일상을 대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들은 그 짧은 시간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일상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재발견을 인도하는 것은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지극히 사소한, 그러나 실은 중요한 일상 속의 무언가이다. 나가시마 유는 일상 속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그러나 평소에는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는 아주 작은 요소까지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특유의 관찰력과 탁월한 묘사력으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을 법한 마음 속 상처를 세심하게 건드리고, 또 치유해 나간다.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자신만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무언가를 문장으로 재구성해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들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로 채워져 있는지를 재발견하게 해주는 나가시마 유의 문학적 감수성은 마땅한 차세대 기수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일본 문학계에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쿠타가와상, 오에 겐자부로상 수상에 빛나는 일본 문학계의 젊은 기수 나가시마 유를 주목하라! 국내 일본 문학 시장을 보면 한때 대세를 주도하던 대형 작가들의 네임밸류나 화려한 수상 경력도 어느새 빛이 바랜 경향이다. 특히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그야말로 ‘하루키 아니면 장르 소설’이라고 말할 정도로, 순수 문학 작품들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아쿠타가와상과 오에 겐자부로상 등 굵직한 상들을 연속 수상하며 일본 문학계의 차세대 기수로 주목받고 있는 나가시마 유의 작품집이 연이어 소개되는 것은 다양한 일본 문학의 스펙트럼에 목말라 있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대단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종이보다는 LCD 모니터를 더 자주 접하게 된 디지털 시대의 현대인들은 문학 작품을 고를 때에도 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시나 수필 등 느림의 미학을 가진 장르는 점차 쇠퇴해가고, 소설에 있어서도 자극적 소재와 스피디한 전개를 특징으로 하는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 세태 속에서 등장한 나가시마 유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게임 등 서브컬처적인 소재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문학성을 인정받는 젊은 작가이다. 그는 나이 먹기를 거부하는 현대인들의 입맛에 딱 맞는 소재를 사용하여 독자의 친근감을 유도한다. 그러나 문학적 스타일이나 완성도 또한 정통 문학 못지않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측면을 완벽하게 융화시켜 수준 높은 한 편의 소설로 완성시키는 것-그것이 일본의 비평가들과 독자들이 나가시마 유를 주목하고, 또 사랑하는 이유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