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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 1951년에 출간된 전체주의의 기원은 아렌트의 첫 저서다. 미국에서 유대인 학살 소식을 접한 아렌트는 “이 있을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이해란 잔악무도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이해란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무모한 낙관주의를 표시하는 것도 분별없는 절망을 외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정치적·정신적 세계의 모든 전통적 요소가 어떻게 그 고유한 가치를 상실하고 인간적인 목적을 파괴하는 데 쓰이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작용한 은밀한 메커니즘을 발견해야 한다는 확신을 표현하는 것뿐이다.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은 단순한 역사기록서가 아니라 현실을 능동적으로 살았던 아렌트의 삶처럼 살아 꿈틀대는 사상서다. 아렌트는 역사적 사실을 인과론적으로 기술하는 데서 벗어나 정치적 자유라는 대주제를 일관되게 역설하고 있다. 전체주의의 배경을 이해하고 이 절대악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임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조건인 ‘자유’를 지키는 길이다. 인간의 기원 절대악의 구렁텅이에서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다 아렌트는 유대인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이라는 근대적 근본악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철학자로서 그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사유했다. 그에게 “어떻게 근본악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철학적 화두였다. 인간의 조건은 전체주의의 기원과 정신의 삶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적 여정에서 관심을 놓지 않은 ‘근본악’을 깊이 탐구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의의는 세계에 관해 단순히 관조하고 성찰하는 형이상학적 전통을 넘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실천철학적 방향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그의 다른 저작들처럼 인간의 조건은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 작품만큼 엇갈린 평가를 받은 정치이론서는 거의 없다. 우선 ‘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s)에 관한 논의와 사회적 관심에 대한 분석으로 아렌트는 대다수 좌파에게 인기를 잃었다. 그러나 행위에 관한 설명은 다른 급진주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1960년대 학생 운동 시기에는 인간의 조건이 참여 민주주의의 교본으로 취급되었다. 인간의 조건에서 가장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은 인간 탄생성과 시작의 기적을 상기시키는 메시지다. 우리의 사멸성을 강조하는 하이데거와는 대조적으로 아렌트는 새로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세계에 태어난다는 사실에서 인간사의 믿음과 희망이 계속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운명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미래의 독자들은 이 비범한 책에서 다양한 주제를 찾아내 발전시킬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을 해부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난 뒤 유대인 학살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졌을 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렌트도 처음에는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믿지 못했다. 그러던 중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붙잡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렌트는 예정되었던 대학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이렇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탄생한 것이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면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언급했다. 이는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사실적인 어떤 것,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악행의 현상 자체를 나타내고자 만든 용어다. 이때 악행은 악행자의 어떤 특정한 약점이나 병리학적 측면 또는 이데올로기적 확신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없는 것으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징은 ‘천박함’이라고 할 수 있다. 행위가 아무리 잔혹하더라도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악행자는 일종의 ‘불능성’마저 지니는데, 이것은 어리석음이나 멍청함과는 차원이 다른 ‘사유의 불능성’(inability to think)이다. 이 역시 재판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한때 자기가 의무로 여겼던 것이 이제는 범죄로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히만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곧바로 새로운 규칙을 마치 외국어 단어를 외우듯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