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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학문적 인식에 관하여… 11
서론… 61 의식… 73 Ⅰ 감각적 확신, ‘이것’과 ‘사념’… 73 Ⅱ 지각, ‘사물’과 ‘착각’… 83 Ⅲ 힘과 오성, ‘현상’과 ‘초감각적 세계’… 96 자기의식… 123 Ⅳ 자기확신의 진리… 123 1. 자기의식의 자립성과 비자립성, 주인과 노예… 131 2. 자기의식의 자유, 스토아주의와 회의주의와 불행한 의식… 140 이성… 161 Ⅴ 이성의 확신과 진리… 161 1. 관찰하는 이성… 168 1) 자연의 관찰… 170 2) 순수한 상태에서 외적 현실과 관계하는 자기의식의 관찰·논리학적 법 칙과 심리학적 법칙… 204 3) 자기의식이 자신의 직접적인 현실과 맺는 관계, 인상학과 골상학… 210 2. 이성적인 자기의식의 자기실현… 237 1) 쾌락과 필연성… 244 2) 마음의 법칙과 자만의 광기(狂氣)… 249 3) 덕성과 세계행로… 257 3. 절대적으로 실재하는 개인… 265 1) 정신적인 동물의 왕국과 기만, 또는 ‘사태 그 자체’… 267 2) 법칙을 제정하는 이성… 283 3) 법칙을 음미하는 이성… 288 정신… 296 Ⅵ 정신… 296 1. 참다운 정신, 인륜… 299 1) 인륜의 세계, 인간의 법칙과 신의 법칙, 남성과 여성… 300 2) 인륜적 행위, 인간의 지와 신의 지, 죄책과 운명… 312 3) 법적인 상태… 324 2. 자기에게서 소외된 정신, 교양… 328 1) 자기에게서 소외된 정신의 세계… 331 ⑴ 교양과 현실의 교양세계… 332 ⑵ 신앙과 순수한 통찰… 358 2) 계몽사상… 365 ⑴ 계몽과 미신의 싸움… 367 ⑵ 계몽의 진리… 390 3) 절대적 자유와 공포… 397 3.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 도덕성… 405 1) 도덕적 세계관… 407 2) 치환… 416 3) 양심, 아름다운 혼, 악과 악의 사면… 426 Ⅶ 종교… 454 1. 자연종교… 461 1) 빛… 462 2) 식물과 동물… 464 3) 공작인… 465 2. 예술종교… 469 1) 추상적인 예술작품… 472 2) 살아 있는 예술작품… 480 3) 정신적인 예술작품… 485 3. 계시종교… 498 Ⅷ 절대지… 525 헤겔의 사상과 『정신현상학』… 542 게오르크 헤겔 연보… 577 |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G. W. F. 헤겔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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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과 거짓이 서로 대립한다는 섣부른 생각이 굳어지면 굳어질수록 사람들은 보통 기존의 철학 체계를 놓고 찬성과 반대 중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침으로써 이 체계에 대해 설명할 때에도 다만 참과 거짓 가운데 어느 한쪽을 가려내는 데 그치고 만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여러 철학 체계의 차이를 진리의 점진적인 발전으로 보지 않고 거기서 오로지 모순만을 발견한다. 이는 봉오리가 사라지고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봉오리가 꽃에 의해서 부정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같은 논리로 열매가 열리면 꽃은 식물의 거짓된 존재가 되어 결국 식물의 진리는 꽃에서 열매로 옮겨 간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저마다의 형식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은 모든 형식이 유동적인 성질을 띰으로써 동시에 유기적인 통일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되는 까닭에, 이들은 서로 배척하기는커녕 오히려 모두가 하나같이 필연적인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전체의 생명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 p.12 현상(現象)은 생성과 소멸인데, 이것 자체는 생멸의 단계를 넘어선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여 생동하는 진리의 현실 및 운동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는 모두가 도취 상태에 빠져 있는 디오니소스 축제의 흥분의 도가니와 같은 것이어서, 누구든지 이에서 벗어나 홀로 자신에게 돌아간다 해도 곧 다시 이 도취 상태로 돌아와 자신을 잃어버리므로 이 도취는 전체가 투명하고 단순한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 진리의 운동이라는 법정에서는 더 이상 정신의 개별적인 형태나 특정한 사상이 독자적으로 존립할 여지는 없으며 모두가 부정되고 소멸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와중에도 이것들은 동시에 적극적이고 필연적인 요소를 이루고 있다. 정지해 있는 듯이 보이는 전체적인 운동 속에서 나타나는 이러저러한 차이나 특수성은 내면화된 기억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여기서는 존재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고 자기를 아는 것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된다. --- p.40~41 ‘이것’의 또 다른 형식인 ‘여기’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여기’는 ‘나무’라고 하자. 그러나 내가 돌아서면 이 진리는 사라지고 다른 진리로 바뀌면서, ‘여기’는 나무가 아니고 ‘집’이다. 이때 ‘여기’라는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기’는 집이나 나무 따위가 사라지는 동안에도 계속 그대로 존속한다. ‘여기’는 집이나 나무와는 무관한 것이다. 여기서도 역시 ‘이것’은 매개된 단일한 것, 즉 보편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이렇듯 감각적 확신 속에서 그 대상의 진리가 보편적인 것임이 밝혀진 이상, 이 확신의 본질을 이루는 순수한 ‘있다’는 존속하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있다’가 아니라 부정과 매개를 본질로 하는 ‘있다’여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우리가 흔히 ‘있다’고 사념하는 것이 아닌 추상 또는 순수한 보편자라는 규정을 지닌 ‘있다’로서 존속한다. --- p.76 의식 속에서 ‘돌의 낙하’가 진리인 것은 돌이 무게를 갖기 때문이며, 그렇게 무게를 가짐으로써 돌 자체가 지구와 절대적으로 본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관계가 낙하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때 의식은 법칙의 존재를 경험하고 있지만 이 법칙을 개념으로서도 지닌다. 이 두 가지 사정이 하나로 합쳐짐으로써 비로소 법칙은 의식 속에서 진리가 된다. 법칙이 법칙으로서 타당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현상 속에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그 자체가 개념이기 때문이다. --- p.176 원래 선한 인간의 본성이 또 역시 어쩌다 과도한 쾌락에 빠져들어 해를 입는다는 성질도 지니며, 또는 오히려 인간의 개성에는 또 역시 그 피안도 갖춰져 있어서 그는 자기 자신을 초월해 벗어날 수도 있고 스스로를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인간은 그렇듯 도를 넘는 행위를 적절히 제한할 수 있는, 아니 오히려 일정한 범위를 초월해 벗어나는 가운데서도 자기보존을 꾀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인 이성을 갖추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의식의 힘이다. --- p.382 자기의식을 지닌 정신이 자신이 곧 의식의 대상이자 형태임을 자각하여 자기통일을 이룰 때에는, 의식이 결여된 직접적인 자연 형태와 정신의 혼합체는 순화되기에 이른다. 형태나 말이나 행위에 나타나던 이 괴물은 사라지고 정신적인 형태가 마련되면서 외면은 안으로 향하고 내면은 스스로 밖으로 나와 자기표현을 하게 된다. 이제 사상은 사상에 알맞은 형태로 사상을 낳고 스스로를 유지해 나가는 명확한 존재로 변모한다. 이 정신을 지닌 존재는 바로 예술가이다. --- p..468~469 여기서 마침내 정신은 궁극의 형태를 갖춘다. 이는 자신의 완전하고도 진실한 내용에 자기라는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그 개념을 실현하는 동시에 바로 이 실현된 상태 속에 자기의 개념을 굳게 지키는 정신으로서, 이것이 바로 절대지이다. 이것은 정신의 형태 속에서 자기를 아는 정신 또는 개념적인 지이다. 진리는 자체적으로 확신과 완전히 일치할 뿐 아니라 그 스스로 자기확신의 형태를 띤다. 다시 말하면 진리는 지의 정신에 대하여 그 정신이 자기를 안다는 형식으로 현세에 존재한다. 진리는 내용이지만 이것이 종교 속에서는 아직 자기의 확신과 일치해 있지는 않았다. 내용과 확신이 일치하기 위해서는 내용이 자기라는 형태를 띠어야만 한다. 이렇게 될 때 실재 자체인 정신이 의식에 대한 존재의 장에 나타나서 대상의 형식을 띠고서 본질 그 자체인 개념이 되기에 이른다. 이 존재의 장 속에서 의식에 나타나는 정신 또는 같은 의미로 의식에 의해 이러한 장에서 생겨나는 정신이 바로 ‘학문’이다. --- p.532~533 현실에 존재하는 정신이 학문보다 더 풍부하다고는 할 수 없을망정 정신의 내용이 학문보다 빈약한 것은 아니다. 의식의 온갖 형태가 단계적으로 나타나는 형식 속에서 학문의 순수한 개념을 인식하는 것은 개념의 실재성을 드러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면으로 보면 학문의 본질을 이루는 개념은 학문에서는 사유의 단순한 매개체로 정립되어 있으면서 스스로 매개하는 온갖 요소를 서로 분리해 놓는 가운데 그 내적인 대립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 p.539 지(知)라는 것은 자기를 알 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부정적인 면이나 한계도 아는 것이며, 자기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자기를 희생할 줄도 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자기희생을 통하여 외화된 정신은 순수한 자기를 곧 자기 바깥에서의 시간의 경과로 직관하는 동시에 자기의 존재를 공간적으로도 직관하면서, 그 자신이 정신으로 생성되어 가는 과정을 자유롭고 우연적인 사건의 형식으로 표현한다. 이때 정신의 공간적인 생성이란 바로 ‘자연’으로서, 여기에 정신은 직접 살아 있는 모습으로 생성된다. 외화된 정신인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동안 자신의 존립을 영원히 외화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주체를 수립해 나가는 운동이기도 하다. --- p.539~540 현실계에 형성되는 정신의 왕국은 하나의 정신이 다른 정신을 대체하면서 저마다 기존의 정신세계를 인수하는 가운데 잇달아 탄생한다. 이렇게 이어지는 탄생에서 목표가 되는 것은 정신의 깊은 심연을 계시하는 것이니, 바로 이 심연이야말로 절대개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시는 이 정신의 심연을 폐기하여 밖으로 확장하는 것이고 또 이 자기의 내면에 있는 자아를 부정하는 것인데, 이런 부정성은 그 개념의 외화인 실체를 나타낸다. 여기서 계시는 외화가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를 외화하여, 확장된 공간 속에 있으면서 또한 정신의 심연에 자리하여 자기에 머물러 있는 그 개념을 시간적으로 나타낸다. 목표가 되는 절대지, 즉 스스로가 정신임을 아는 정신은 그의 도정에서 온갖 정신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어떻게 그의 왕국을 완성해 왔는지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그런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일단 우연의 형식을 띠고 나타나는 자유로운 정신적 존재의 측면에서 보면 ‘역사’이고, 개념적인 체계의 측면에서 보면 ‘현상하는 지의 학문’이다. 이 양자를 종합하면 개념적으로 파악된 역사가 된다. 그리고 이 역사야말로 절대정신의 기억이자 골고다의 언덕이며, 생명 없는 고독한 정신을 절대정신으로서 왕좌에 받들어 놓은 현실이자 진리이며 확신이다. --- p.540~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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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인류의 철학적 자서전으로 자리매김하다
헤겔의 이른바 예나 시대(1801~07)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헤겔 최초의 주요 저작인 『정신현상학』은 나폴레옹 군대가 예나에 입성한 날인 1806년 10월 어느 날 한밤중에 탈고되어 편집을 거치다가 1807년 4월 밤베르크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정신현상학’이란 일차적으로 ‘의식의 경험학’인 바, 이는 우리의 의식이 여러 경험을 통하여 진리를 파악해 가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이다. 연대적으로나 체계적으로나 헤겔 사상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며 유럽철학사에서 손꼽히는 고전의 하나이다. 헤겔은 이 책에서 정신이 감각적 확실성에서 출발해 과학적 오성[지성], 이성적 사회의식, 종교 등의 단계를 차례로 거치며 끝까지 올라가 끝내는 절대지(絶對知)인 완전한 자각에 이르는 길을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헤겔은 역사에 나타나는 여러 의식형태와 사상을 그 발전에 있어서 비판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여 자연과학적인 개념 형성 말고도 예술·종교·국가·소유(財産), 사회적인 여러 관계, 도덕 등 온갖 문제를 다루었다. 그의 책이 2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끊임없이 읽히고 논의되는 까닭은, 충만한 사상과 생생한 문장이 지닌 매력과 동시에 변증법의 논리가 훌륭하게 전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신현상학』은 ‘인류의 철학적 자서전’과 다름 없다. 변증법의 보고(寶庫)로 불리다 헤겔은 인식이나 사물은 정(正)·반(反)·합(合)의 3단계를 거쳐서 전개된다고 생각했으며, 이 3단계적 전개를 변증법이라고 했다. 정(正)이란 그 자신 속에 실제로는 모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그 모순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단계이며, 반(反)이란 그 모순이 자각되어 밖으로 드러나는 단계이며, 이처럼 모순에 부딪침으로써 제3의 합(合)의 단계로 전개해 나간다. 이 합의 단계는 정과 반이 종합.통일된 단계이며, 여기서는 정과 반에서 볼 수 있었던 2개의 규정이 함께 부정되면서 또한 되살아나서 통일된다. 즉 지양(止揚)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존재에 관해서도 변증법적 전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존재 자체에 모순이 실재한다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변증법은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별한 논리로 여겨진다. 오늘날 변증법은 헤겔적 의미에서의 변증법과 마찬가지이다. 판단의 부정을 추리에 의해 긍정으로 바꾸는 것이 이른바 헤겔의 변증법이다. 그러므로 진리(개념)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해서 주어의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그 목표가 된다. 이는 주어가 술어 속에서 부정되는 데 그치는 술어의 논리가 아니라 그 부정을 통해서 주어를 회복하려는 논리이다. 따라서 주어가 회복될 때까지 모든 진리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며, 이 과정이 더 이상 과정이 아니게 되는 순간에 비로소 절대지가 나타난다. 이때 주어와 술어, 실체와 주관, 대상과 인식은 완전히 일치한다. 이 변증법적 과정의 전체적인 전개는 넓게 보자면 역사이자 의식의 편력이며, 개인으로 보자면 그의 자기형성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철학은 반드시 학문이어야만 하는가 - 헤겔 사색의 위대함 헤겔은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이려고 했다. 인간의 자기형성 과정은 곧 인간의 역사이다. 교양이니 교육이니 자기형성이니 하는 단어의 느낌으로 본다면 그것은 개개인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의 전개 또는 자기형성이 곧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바로 개인과 인간 일반과 학문이다. 이들 세 요소가 하나로 통합되었을 때 비로소 『정신현상학』이 성립된다. 개인이 자기형성을 하는 것, 역사가 전개되는 것, 게다가 동시에 이것이 철학이라는 학문의 경지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 이 세 가지가 하나로 결합되어 통일성 있는 전체로서 전개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기형성은 개인의 것인 동시에 인류 전체에 속하는 세계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면서 또한 개인의 자기형성과 통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개인의 마음이 역사에 직접 공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철학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일은 웬만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도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굳이 그런 일을 감행했으니, 이는 참으로 엄청난 시도이다. 면밀하고 깊이 있으며 광범위한 사색, 깊고 넓은 학식을 하나로 종합하는 위대한 힘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을 그는 해냈다. 그 끝없는 고투에서 배어나는 깊고도 넓은 사색의 위대함이 우리에게 강하게 호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현상학』은 철학사상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손꼽히게 된 것이다. 위대한 철학적 사색이니만큼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누구든지 철학적 문제를 탐구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정신현상학』에서 삶의 진실을 배우다 헤겔철학의 출발점이자 헤겔철학이 지향했던 목표는 ‘삶을 배우는 것’이었다. 아무런 매개도 없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좁은 인식에 틀어박혀 버리면 그 이상의 전개는 없다. 인생행로에서 때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때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자신과 대립하는 부정적인 것과 마주쳐 스스로를 상대화하면서, 더 나아가 전체를 전망하면서 통일적인 파악으로 향해 나아가는 삶의 방식. 그것은 ‘내일이 없는 희망보다도 절망의 내일을 지향하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그리고 지향해야 할 자아를 피안에 상정하면서 그것을 목표로 어려움이나 자기부정을 견디며 나아간다면 반드시 새 지평은 열리게 되리라는 것을 헤겔의 변증법은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정신현상학』에는 자연 그대로의 의식이 참다운 앎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영혼이 그 본성으로 보아 꼭 지나쳐야 할 통과역(영혼 형태의 연결)을 통과하여 정신으로 순화해 가는 경로이다. 의식은 놀이에 정신이 팔리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처를 입으면서 겨우 되돌아오는 수모를 몇 번이고 겪게 된다. 이 의식의 모험이 바로 인류가 걸어온 앎의 역사를 더듬는 일이며 동시에 개인의 의식이 단순한 깨달음에 지나지 않는 감각적 확신에서 이성의 절대확신(정신)으로 자기변신 여행이기도 하다. 우리는 헤겔의 논의가 끝나는 곳에서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하는 절대긍정의 기쁨을 맛보게 될 터이며,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짐이었던 삶의 양면성 가운데 온전한 나를 세우는 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든 끝이든 우리는 살아 있는 역사를, 살아가야 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배우게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