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1. 첫 번째 표적 : 이민자들 2. 두 번째 표적 : 표현의 자유와 시민 민주주의 3. 애국주의와 애국법 Ⅰ,Ⅱ 4. 감시사회의 도래 5. 닫힌 정부 : 실종된 정보의 자유 6. 대통령의 정보공개의 거부 : 행정특권 7. 전쟁과 전쟁보도 8. 맺음말 찾아보기 |
|
애국주의와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분위기 속에 신보수주의라는 극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걸고 전 사회를 거대한 감시통제 시스템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국가안보의 이름 아래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적 권리와 자유를 엿듣고 학생들의 이메일을 뒤지며, 단지 수상하다는 의심만으로 몇 달씩 이민자들을 감금하면서 가족과 변호사의 접견조차 허용하지 않는 으스스한 공안정국이 자리를 잡아갔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뜯어고쳐 정보기관과 수사기고나의 권한을 무한대로 넓혀갔고,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를 연상케 하는 감시통제 시스템 속에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점차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지경으로 빠져들었다. 지난 1970년대의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경찰국가'가 21세기 세계 최강대국이자 최선진국이라는 미국땅, 아메리카에서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내고 있었다.
--- 머리말 중에서 |
|
9.11 테러가 바꿔놓은 미국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로 유명한《뉴욕타임스》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미국의 역사를 9.11 테러 이전과 9.11 테러 이후로 나누어 설명한 칼럼집《경도와 태도》로 지난 해 자신의 세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비단 프리드먼에게뿐 아니라 미국의 수많은 학자와 관리 및 언론인들에게 9.11 테러는 미국의 200여 년 역사를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뉘게 하는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었다. 21세기는 9.11 테러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의 보복 전쟁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선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812년 이후 처음으로 본토 공격을 당한 미국은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와 안전(safety)을 증진한다는 명목으로 국내에서도 대대적인 테러와의 전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전쟁은 시작됐지만 누가 적인지, 그 적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출몰하는지, 도대체 그 실체가 있기는 한 것인지에 대해 미국 정부는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실체도 흔적도 없는, 증오와 공포라는 이름의 적을 색출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매카시 선풍을 능가하는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단지 9.11 테러의 범인들과 외모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또 회교도이거나 아랍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증오범죄(hate crime)의 대상이 되고 수사기관의 체포 대상이 되는 일이 미국 전역에서 벌어졌다. 부시 대통령의 전쟁노선을 비판하거나 슬쩍 비꼬기만 해도 여지없이 반역자라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많은 비판적 지식인들이 직장을 잃었고 연주자들은 무대를 잃었다. 9.11 테러 공격으로 무너진 것은 세계무역센터(WTC) 빌딩만이 아니었다. 국가안보를 앞세운 광기 앞에서 지난 300년 동안 미국 사회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요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밑받침이 되어 준 기본적 가치들이 큰 손상을 입어야 했다. 그 가운데서도 ‘자유 중의 자유’(freedom of freedom)로 불려 온 ‘표현의 자유’(freedom of expression)는 테러와의 전쟁의 와중에 최우선 가치로 등장한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 앞에서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애국주의와 국가안보의 이름 아래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억압적 분위기에서 신보수주의라는 극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전 사회를 거대한 감시 통제 시스템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영장도 없이 무고한 시민의 전화를 엿듣고 이메일을 뒤지며 단지 수상하다는 의심만으로 몇 달씩 이민자들을 감금하면서 가족과 변호사의 접견조차 허용하지 않는 으스스한 공안정국이 자리를 잡아갔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뜯어고쳐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의 권한을 무한대로 넓혀갔고 조지 오웰의《1984년》에 나오는 ‘빅 브라더’를 연상케 하는 감시 통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점차 형체를 찾아보기 어려운 위기에 빠져들었다.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내에서도 사상의 자유공개 시장에 대한 공감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정부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억압적 분위기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단지 부시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언론사 칼럼니스트가 일자리를 잃는 일까지 벌어졌다. 인종과 종교를 이유로 하는 차별도 눈에 띄게 심해졌다. 개인의 존엄성과 사상의 자율성보다는 집단적 가치와 목표가 우선시되는 무겁고 숨막히는 분위기가 미국 사회를 짓눌렀다. 이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고 확대하기 위한 지식인 사회의 노력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미국의 지난 역사는, 이와 같은 현상이 이례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혁명전쟁 이후 역사의 주요 고비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발생해 온 것임을 생생히 보여준다. 20세기 들어서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과 걸프전쟁 등을 거치면서 미국은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와 표현의 자유(freedom of expression)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의 충돌과 대립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미국이 자랑하는 자유와 평등은 결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갈등과 진통 속에 힘겹게 축적돼 온 사회적 합의에 다름 아닌 것이다. <책의 구성과 주요 내용> 이 책의 연구 대상은 9.11 테러 공격 이후 미국 사회의 각 영역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표현 행위를 겨냥해 정부 혹은 민간 차원에서 나타난 다양한 양태의 억압 그리고 이에 대응한 각계의 비판과 반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근대 미국의 역사 속에 나타나는 유사 사례들 그리고 미국 연방대법원의 기념비적 판결을 통해 확립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법적 원칙들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개별적 사안에 담긴 보편적 논점들을 찾아내고 이에 대한 법적 정치적 가치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이 같은 연구는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 이제 새로운 시민 민주주의 시대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기에 머물러 있는 한국 사회에서 언론을 비롯한 시민사회 각 주체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표현 행위가 정부나 정치권 혹은 다른 민간 그룹의 부당한 간섭과 억압으로 인해 봉쇄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정치적, 철학적 원칙을 수립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