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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文學’에의 轉身
文·酒의 벗들 思親記 나의 文學 소년 時代 나의 雅號 靑春·돈·座右銘 어머니 回想 春宵抄 새 女性美 女性語 ‘四柱’라는 것 ‘先行詞’說 ‘마아’란 말 ‘말띠’의 迷信 原稿料 ‘國寶’辨 ?腹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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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尺 三 寸의 短軀를 가진 이 十二 세 幼兒의 ‘新郞’이 말을 타고 곁마을로 장가들러 갔는데, 式이 끝나고 사랑에 자리를 정하자, 그 마을의 讀書 年少輩들이 신랑에게 어서 한턱 내놓기를 재촉하는-기실 ‘글싸움’을 挑戰하는 소위 ‘單子’란 것을 들였것다. 그 글을 받는 대로 신랑이 척척 對句를 제겨내야 무식하다는 ‘초달’을 면하는 격식이다. 벽두에 그들의 인사에 가로되,
月出高. ‘달이 높이 떴다’고 錯解해서는 안 된다. ‘鄕札’, 逐字 訓·音讀으로 ‘달나고’[달라고!], 요샛말로 “Give us something to eat and drink”라 함이다. 어린 ‘신랑’이 붓을 들어 對句를 재겼으니, 가로되- 日入於. 무론 이것도 정직히 ‘해가 들었다’ 함이 아니요, 역시 그 마을式 ‘鄕札’로 ‘날들어’[날더러?], 곧 내가 주인이 아닌데 하필 날더러 달라느냐, “Why should you ask me?”란 소리다. 다음 그들의 둘째 번 보내온 ‘메씨이지’는 前보다 좀더 難解하였다. 言有馬. 이 석 字가 破字임과 ‘馬’가 ‘午’임에 相到하여 제대로 ‘許’ 字[한턱을 허락하라]로 풀이하기는 약 半 分을 요하였으나, 그 對句는 그 절반의 시간이 걸렸다. 天來의 ‘煙士披里純’(‘인스피레이슌’-그 즈음 읽었던 梁啓超의 <飮氷室文集>에서 내가 驚異로써 맨 처음 배웠던 ‘英吉利’語)이 번개처럼 나타났던 것이다. 곧 붓을 들어 對句를 써 내던지니, 가로되- 物無牛. ‘物’ 字에 ‘牛’가 없으면 ‘勿’, 곧 [말라!]는 뜻이다. 마을의 挑戰者 제군들이 이를 보고 문득 빛을 잃고 혀[舌]를 맺[結]아 모두 도망친 것은 무론이다. ---「나의 文學 소년 時代」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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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무애 양주동은 생전에 세 권의 수필집을 남겼다. 첫 수필집은 1960년 발간한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이고, 두 번째 수필집은 1964년 발간한 『인생잡기(人生雜記)』, 세 번째 수필집은 1981년에 발간한 『지성의 광장』이다. 이들 수필집에는 인생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드러내는 에세이에서부터 일상생활의 사소한 이야기를 제시하는 미셀러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여 준다. 그의 수필이 지닌 소재는 매우 다양한 편인데,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술, 문학, 학문, 가족, 여성 등이다. 또한 그의 수필은 유머와 위트가 빈번하게 등장하면서 읽는 즐거움을 배가해 준다. 양주동에게 술은 인생의 낭만과 문학의 열정을 매개하는 소종한 존재다. 첫 번째 수필집의 제목을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라고 붙인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애주가였는지 짐작케 한다. 수필집의 제목처럼 그의 인생에서 문학과 술은 평생의 동반자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수필에는 또한 한시나 향가, 고려 가요 등 고전 시가에 대한 애정이 진솔하게 드러난다. 그는 어린 시절에 이미 중독이라고 할 만큼 한문 문장을 좋아해서 높은 수준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고전 문학 연구자로서의 감회 등에 대한 에세이들도 우리 수필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 주었다. 양주동의 수필에서 가족은 삶의 활기와 안정을 담보해 주는 소중한 존재다. 그의 수필 가운데는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과의 가정생활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 편이다. 또한 여성 혹은 여성관과 관련된 내용도 자주 드러난다. 그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근대적인 여성관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서구적인 학문을 공부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또한 일생의 반려자인 아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조혼 제도에 대해 큰 반감을 가졌다. 이렇듯 양주동의 수필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형식이나 표현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우선 그의 수필에는 지적인 요소와 낭만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를테면 어떤 작품은 역사와 지식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 주고, 어떤 수필은 유머, 위트와 같은 요소들로 글의 윤기를 더해 주고 있다. 그의 수필은 또한 낭만적이어서 인간적 감정과 예민한 감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주기도 한다. 앞의 소재 가운데 술, 문학, 가족과 관련된 것은 낭만적인 성격을, 학문이나 여성관에 관련된 것은 지적인 성격을 지닌다. 양주동의 수필은 또한 고전 고금의 유명한 시나 경구들을 자주 인용하는 특성을 보여 준다. 그는 자신이 시 창작을 했던 시인이고 문학 평론가로도 활동을 했으니 수필 작품 속에 시가 인용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의 수필처럼 시를 빈도 높게 활용한 사례는 우리 현대 수필의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선구적인 면이다. 산문 장르인 수필에 시적 운기(韻氣)를 불어넣어 줌으로써 감칠맛을 더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