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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情無限
造化無窮 喜方寺 行 道中記 紅島의 海女 耽羅 風光 가야 할 山河?金剛山 나의 고향 得春記 눈[雪]의 追憶 어머니·마누라·며누리 老人讚 나의 文學靑年 時節 自由夫人 秘話 ‘정지용 시 특집’이 남긴 비화 이광수에 대한 세평(世評) 무애와 노산의 놀라운 기억력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
鄭飛,본명 : 정서죽(鄭瑞竹)
金裕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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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백 년같이 긴 고장이었다.
밤마을 놀이는 겨울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었다. 질화로를 끼고 등잔 아래들 둘러앉아 마을군들은, 제각기 돌아가며 옛말 추렴을 해 가는 것이었다. 구미호(九尾狐)가 꽃같이 예쁜 색시로 변해서 남의 집 귀동자(貴童子)를 호려다가 간(肝)을 빼먹었다는 무시무시한 옛말을 듣고는, 밖에 오줌 싸려도 못 나가고 쩔쩔매다가 기어코 어른들의 웃음거리가 되면서 주발에다 대고 오줌을 싼 것도 그런 밤의 일이었다. 효녀 심청이 이야기도, 열녀 춘향의 이야기도, 유관장(劉關張) 삼 형제의 이야기도, 모두 그런 밤에 얻어들은 지식이었다. ---「흙눈[雪]의 追憶」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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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수필 「산정무한」은 일반인들에게 필자 정비석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하겠다. 신문 연재 당시부터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던 그의 소설 『자유부인』(1954)이 던진 충격파가 너무도 강렬했기에, 그의 이름 뒤에는 으레 대중소설가, 통속소설가라는 명칭이 따라붙곤 했다. 그러나 수필가로서의 그가 남긴 글들은 이러한 대중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단지 일면의 진실일 뿐이라는 사실을 적시해 주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그가 쓴 「어머니·마누라·며느리」나 「노인찬」 등 수필류의 글들을 훑어보면 의식 내면에 꽤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질서에 대한 감각도 아울러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이런 사실만으로 곧장 그가 의도적으로 글의 종류에 따라 다른 성격의 글을 썼다고 단정해서는 곤란할 것 같다. 수필이란 어차피 내면 의식과 정서를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양식인 까닭에 그 공간 속에서 소설로는 다 담을 수 없었던 속 깊은 이야기들을 펼칠 기회나 여유를 얻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반의 이해처럼 그는 분명 상업성에 바탕을 둔 대중소설가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에 앞서 예술성과 교양, 지적 수준을 겸비한 전문 문필가의 한 사람임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소설가나 시인이 수필을 쓸 경우, 창작 활동 틈틈이 짬을 내어 쓴 여기(餘技) 정도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비석의 경우 소설 창작에 들인 공만큼이나 수필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흔적이 글 곳곳에서 드러난다. 문장의 정확성이나 자연스러움은 물론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당연한 의무겠지만, 그의 수필에는 독자들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간직되어 있다. 그러한 분위기는 대체로 특유의 감각적인 비유 및 수사법의 활용과, 효과적인 단절과 비약을 통해 글의 흐름과 방향을 조절할 줄 아는 문체론적인 효과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 그의 글은 수필로서 지녀야 할 제반 요소들을 망라한 교과서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