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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의 敎訓
觀花 牛耳洞의 晩秋 電車의 一 分間 불상한 生活 秋窓 隨筆 달밤에 故國을 그리우며 童話를 쓰기 前에 어린? 기르는 父兄과 敎師에게 敎友 ? 한 사람을 맛고 異域의 新年 夢幻의 塔에서 少年의 指導에 關하야 나그네 잡긔장 1 나그네 잡긔장 2 나그네 잡긔장 3 어린이 讚美 뭉게구름의 비밀(秘密) 이러케 하면 글을 잘 짓게 됨니다 사라지지 안는 記憶 방송해 본 이약이 二十 年 전 學校 이약이-내가 小學校에 入學하든 ? 二十 년 전 學校 이약이-상투에 일흠 붓치던 ? 二十 년 전 학교 이약이-벌거숭이 三百 명 二十 년 전 학교 이약이-강제로 머리 ?기든 ? 힘부름하는 사람과 어린 사람에게도 존대를 함니다 내가 제일 창피하였던 일-外三寸 待接 便紙 騷動 나의 어릴 ? 이약이 내가 第一 辱 먹든 일 朝鮮의 學生 氣質은 무엇인가 ? 한 가지 尾行當하든 이약이 兒童 裁判의 效果 宣傳 時代? 兒童 問題 講演 資料 演壇 珍話 ? 잇서도 學校에 안 보내겟소 豪放한 金燦 銀파리 1 銀파리 2 銀파리 3 銀파리 4 銀파리 5 銀파리 6 銀파리 7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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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느 학교 사무실에 가서 학생들의 作文 지은 것을 보닛가 문뎨는 ‘春’인데 이것저것을 모다 뒤저 보아도 모다
…嚴冬雪寒은 어느듯 지나가고 春三月 好時節이 來하니 我等은 大端히 愉快하도다. 桃李花는 滿發하고 蜂蝶은 춤을 추니 平和한 樂園이로다…. 서로 약속하고 쓴 것가티 이러한 글들이엿슴니다. 족음 다르대야 엄동설한을 三冬 大寒이라 하고 春三月 好時節이 陽春 三月로 변하엿슬 ?이지 별로 다른 것이 업섯슴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마음이 퍽 섭섭하엿슴니다. 엇더케 그러케 六十 名 학생이 봄에 대한 생각이나 늣김이 고러케 ?가틀 수가 잇겟슴닛가 가튼 봄이라도 ?이 피닛가 조와하는 사람도 잇겟지만 어느 해 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이 잇는 사람이면 어머니 생각이 나서 봄을 슯흐게 생각하는 사람도 잇슬 것이고 봄은 되엿지만 아버지 병환이 계신 사람이면 ?구경할 ?도 한편에 근심하는 마음이 업지 안흘 것임니다. ? ?가티 봄이 좃타 하더라도 ?이 피닛가 좃타거나 졸업을 하닛가 좃타거나 운동을 하기 조흐닛가 좃타거나 그 생각에는 사람에 ?하서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만흘 것임니다. 그런데 그 남다른 자긔의 생각 그것이 글에는 귀중한 것인 줄 모르고 왼통 남이 쓰는 文字만 春三月 好時節이닛가 유쾌하거니 무어니 하고 느러만 노흐니 누가 그 글을 닑고 그 사람의 속을 리해는 고사하고 어림치고 짐작이나 해 볼 수 잇슴닛가. 그런 글은 아모 소용업는 붓작란에 지나지 못하는 것임니다. 그런고로 글은 짓는 것(?미는 것)이 아니고 쓰는 것임니다. 생각이나 늣김을 고대로 쓰기만 하는 것임니다. 짓거나 ?미거나 하면 그만 그 글은 망치는 것임니다. ---「이러케 하면 글을 잘 짓게 됨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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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 1899∼1931)은 ‘어린이의 아버지’, ‘아동 문화 운동의 선구자’, ‘아동 문학의 개척자’로 널리 알려진 한국 현대 아동 문학사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런 상징성은 그의 사상적 면모조차 오로지 어린이를 찬미한 동심 천사주의(童心天使主義)자로, 실천적 아동 교육자로, 소년 운동을 주도한 민족주의자로 각인되었다. 곧 그는 1931년 7월 타계한 직후 『어린이』지에 특집으로 꾸며진 ‘방정환 선생추도호’(9권 7호, 1931. 8) 이후 지금까지 한국 아동 문학 논의의 출발점에 선 선각자의 일면만 부각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실제 면모는 일반에 잘 알려진 것보다 폭넓다. 그의 문학적 행적은 아동 문학의 범주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고, 사상적 면모 또한 동심 천사주의(童心天使主義)나 민족주의 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는 어떠한 검열에도 위축되지 않고 전 장르에 걸쳐 활발히 활동한 진정한 문학인이었으며,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도 그 어떤 특정 이념·사상에 물들지 않고 천도교란 종교로 초월하여 ‘人乃天主義下에 絶對 平等’(『천도교회월보』 126호)을 실천한 사회 운동가였다. 그래서 그는 일제에 ‘주의인물(注意人物)’로 낙인 찍혀 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와 미행당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한 그의 면면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여러 지면에 다양하게 발표된 일종의 수필류이다. 방정환이 쓴 수필류의 글도 그의 글쓰기 양식처럼 다양하다. 형식 면에서 서간문, 감상문, 수상문, 신변잡기, 논(論), 풍자 만필 등 다기할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개인적인 자기 고백에서 일상생활, 문학, 교육, 예술, 종교, 사회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그러나 소견, 견문, 체험, 감상 등을 다양한 형식으로 쓴 그 수필류에 공통점이 있다면 겸손한 태도로 아는 사실을 꾸밈없이 진실하게 이야기하고자 한 진술 방식이다. 그도 「선전 시대?」(『별건곤』 30호, 1930. 7)에서 “내가 남의 일을 쓰는 것이 안이라 내가 내 일을 쓰는 것이면 세상에 이보다 더 확실 분명한 일이 업슬 것임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리석은 일일망정 내 일을 내가 쓰는 것이니 확실한 일인 것만은 사실임니다”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방정환의 수필에는 그의 성장 과정, 생활 태도, 성격, 사회에 대한 인식 등 인간적인 면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이에게 친근감을 더해 준다. 방정환의 수필을 형태별로 대별하면 사색, 깨달음, 동정, 실수담, 사회 풍자 비판, 일신상의 처지와 형편 등을 고백하는 주정적이며 주관적인 글과 논(論)의 성격을 지닌 보다 전문적이며 객관적인 글이 있다. 전자의 글은 자신의 성장 배경, 활동 상황과 그때의 정황, 자연이나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 일신상의 처지와 형편 등을 진솔하게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후자의 보다 지적이며 객관적인 글은 학생, 여성, 부형, 교사들을 위한 것으로 계몽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글들 속에서 우리는 방정환의 글쓰기 의식을 뚜렷하게 엿볼 수 있다. 누구보다 이 나라와 어린이를 사랑했던 방정환의 글쓰기는 ‘새 문화 건설에 큰 힘’을 보태고자 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