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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스트, 시인 김규동 | 김규동기념사업회
문곡(文谷) 김규동 선생에 대한 추억과 회포 | 이동순 1. 김규동의 대표 시 25편 나비와 광장 고향 보일러 사건의 진상 전쟁은 출렁이는 해협처럼 기적소리는 추억을 그리는 화가 텔리타이프의 가을 남한(南韓)과의 대화 죽음 속의 영웅 의식의 나무 내면의 기하학 이카로스 비가(悲歌) 두만강 가족 두보(杜甫)로부터 온 편지 기다림 걸어다니는 이순신 아침의 시 전설 빛살 속에서 바다 느릅나무에게 육체로 들어간 진달래 밤의 불덩어리 해는 기울고 오장환이네 집 2. 평론가들의 김규동 새롭게 읽기 시선과 응시의 충돌: 김규동 초기 시의 구조화 원리 | 오형엽 공동체 회복과 시적 방법론: ‘전쟁 은유’와 ‘기억의 시학’을 중심으로 | 나민애 영웅의 모험, 그리고 탈향과 귀향: 김규동과 하이데거 | 임동확 현대성의 흔적과 현실성의 징후: 김규동 시집 『죽음 속의 영웅』을 중심으로 | 김종훈 김규동 후기 시의 문학사적 의미 | 유성호 김규동이 본 김수영 | 김응교 전후 시에 나타난 ‘나비’ 이미지 연구 | 김유중 김규동의 『새로운 시론』에 나타난 주제 고찰 | 맹문재 3. 5주기 추모문집 『죽여주옵소서』 추모문집 엮은이의 말 | 김정환·김사인 1부 시와 시인의 기억 | 문인 28인 2부 평론: 1950년대 ‘모던보이’ 김규동, 그리고 그의 ‘귀환’ | 임철규 3부 시인의 모습 김규동 시인 연보 선친 회상 | 김현?김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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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기적도 이미
승천하여버린 지 오랜 유역- 그 어느 마지막 종점을 향하여 흰나비는 또 한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대결하여본다. ---「나비와 광장」중에서 그럴 때마다 새하얀 광선을 쓰며 전쟁의 언덕을 올라오는 어린 나비들은 믿기 어려운 네온사인의 영상(影像) 속에 마그네슘처럼 투명한 아침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전쟁과 나비」중에서 손을 씻고 기다리자 사고의 흔들림과 이동을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소멸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하나의 죽음 속의 불씨를 위해 지하의 기계소리로부터 빠져나와 죽음의 고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생에 뒤엉킨 모순의 눈물을 귀중히 간직하고 오 차디찬 현실의 허무를 부감(俯瞰)하자 탈출의 용기는 죽음 속의 영웅들 가슴에 남아 있는 유일한 혈흔 고독의 깊은 가슴에 검은 날개는 스스로 기쁨에 넘쳐 퍼덕인다. ---「죽음 속의 영웅」중에서 바다는 뿌리째 동요했으나 조금치도 경박하지 않았다 억만년의 삶을 살았으되 그저 젊고 튼튼하여 모든 걸 그 속에 품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과 역사와 우리들의 미래 아니 우리의 통일조차 그 속에 품고 끝간 데 없이 둥글게 돌아나아갔다 아득히 또 늠름히 오직 하나되기 위해 밀고 당기며 쉬임없이 일어서는 흰 파도 우람한 통일의 바다여. ---「통일의 바다」중에서 나무 너 느릅나무 50년 전 나와 작별한 나무 지금도 우물가 그 자리에 서서 늘어진 머리채 흔들고 있느냐 우리 집 가족사와 고향 소식을 너만큼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이제 아무 데도 없다 (…) 죽기 전에 못 가면 죽어서 날아가마 나무야 옛날처럼 조용조용 지나간 날들의 가슴 울렁이는 이야기를 들려다오 나무, 나의 느릅나무. ---「느릅나무에게」중에서 통일이 오면 할 일도 많지만 두만강을 찾아 한번 목놓아 울고 나서 흰머리 날리며 씽씽 썰매를 타련다 어린 시절에 타던 신나는 썰매를 한번 타보련다. ---「두만강」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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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스트이자 민족문학가 김규동
김규동(1925~2011)은 함경북도 출신 시인으로 1948년 스승 김기림을 찾아 단신 월남하여 교사, 언론인, 출판인으로 활동하며 1950년대에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썼다. 박인환, 조향, 이봉래 등과 함께 ‘후반기’(後半期) 동인으로 활동하며 서정 기조의 기존 문단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1970년대부터는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에 가세하며 모더니스트로서 리얼리즘과 민족통일 지향의 시세계로 접근했다. 2000년대에는 실향 시인으로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년의 깨달음과 융합하여 잔잔히 기록했다. 김규동은 해방과 전쟁과 분단을 모두 겪은 세대로서 자신의 시에 선 굵은 증언과 깨끗한 슬픔을 담아낸 시인이다. 그는 역사의식을 심화시키기 위해 현실 세계를 견고하게 인식하고 그려낼 수 있는 시 형식을 찾고 시를 썼다. 그런 김규동의 작품과 삶을 조명하는 『귀향』은 지금의 독자에게 전쟁과 분단의 현실을 새롭게 체감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한다. 바로 그곳에서부터 김규동의 ‘귀향’은 시작될 것이다.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 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 돌진의 방향을 잊어버리고 피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 기계처럼 작열한 심장을 축일 한 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 어린 나비의 안막을 차단하는 건 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 진공의 해안에서처럼 과묵한 묘지 사이사이 숨가쁜 Z기의 백선과 이동하는 계절 속- 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燐光)의 조수에 밀려 흰나비는 말없이 이즈러진 날개를 파닥거린다 하얀 미래의 어느 지점에 아름다운 영토는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 화려한 희망은 피고 있는 것일까 신도 기적도 이미 승천하여버린 지 오랜 유역- 그 어느 마지막 종점을 향하여 흰나비는 또 한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대결하여본다. · 김규동, 「나비와 광장」 전쟁의 아픔에 함몰되지 않는 역사의식, 김규동의 모더니즘 함경북도 종성 출신 김규동은 경성고보에서 스승 김기림을 만난다. 의대에 진학했던 김규동은 22세에 평양종합대학 조선어문학과로 편입했고, 1948년 1월 스승 김기림을 만나러 월남한다. 김기림의 소개로 노량진에 있는 중학교에서 교사로 2년 동안 일하던 그는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서울로 진군해오는 인민군을 목도한다. 그렇게 김규동은 한국에 남아 전후 모더니스트로서 ‘후반기’ 동인을 거쳐 문명 비판의 시를 주로 쓰기 시작했다. 『귀향』에서는 이 시기 김규동의 작품과 삶에 대해 오형엽, 김응교, 김유중, 맹문재 교수가 이야기한다. 오형엽은 도시의 우울과 방황, 전쟁의 상처, 종교에 대한 회의 등에 대해 노래하던 초기 김규동의 시세계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오형엽의 글을 통해 김규동 초기 시의 미학적 특이성과 방법론을 알 수 있다. 김응교는 김규동이 영향을 주고받은 동시대 시인 중 김수영에 주목한다. 김규동과 김수영, 두 시인은 어떻게 만났고, 어떤 문우였으며 서로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두 시인이 함께 공유한 지평을 살펴보는 김응교의 글을 통해 한국문학사의 중요한 단면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유중은 다른 시인들과 김규동의 유사성을 발견한다. 박봉우, 전영경과 김규동이 공통적으로 분단 현실을 아쉬워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 ‘나비’ 소재를 자주 동원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전후 한국이라는 특수한 시대 상황에서 ‘나비’라는 소재와 이미지가 어떤 형태로 한국문학에 등장했고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김규동, 박봉우, 전영경의 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김규동은 시인이면서 비평가였다. 맹문재는 1950년대 김규동이 모더니즘 시 운동뿐만 아니라 비평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에 집중한다. ‘후반기’ 동인이 해체되고 모더니즘 시 운동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김규동은 비평 활동을 통해 모더니즘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맹문재는 김규동의 비평집 『새로운 시론』을 중심으로, 서구의 모더니즘과는 달랐던 김규동의 모더니즘이란 무엇인지 밝혀낸다. 손을 씻고 기다리자 사고의 흔들림과 이동을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소멸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하나의 죽음 속의 불씨를 위해 지하의 기계소리로부터 빠져나와 죽음의 고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생에 뒤엉킨 모순의 눈물을 귀중히 간직하고 오 차디찬 현실의 허무를 부감(俯瞰)하자 탈출의 용기는 죽음 속의 영웅들 가슴에 남아 있는 유일한 혈흔 고독의 깊은 가슴에 검은 날개는 스스로 기쁨에 넘쳐 퍼덕인다. · 김규동, 「죽음 속의 영웅」 부분 문학 사조보다는 공동체 회복을 지향한 시인 김규동 시인에 대한 논의는 그의 시세계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살피는 방식으로 많이 진행됐다. 전기는 모더니즘 문학, 후기는 민족주의·리얼리즘 문학으로 나눈 것이다. 하지만 김규동은 모더니즘도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분단을 극복하려는 것도 모더니스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리얼리즘이냐 모더니즘이냐의 구분보다 김규동에게 선행되었던 것은 더 구체적인 사회, 공동체, 민족애 등이었다. 이것을 김규동의 시적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김규동의 작품을 분석한 평론가들은 그의 전 시기를 아우르는 공통분모를 발견해낸다. 나민애는 김규동의 작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조와 이념을 넘어 ‘공동체 회복 지향’이 계속됐다고 이야기한다. 김규동이 공동체 회복을 지향했다는 평면적인 사실 진술을 넘어 그것의 양상과 특이성에 주목한다. 작품을 분석하며 전기에는 ‘전쟁 은유’, 후기에는 ‘기억의 시학’이라는 방법을 통해 공동체 회복을 이야기해왔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새하얀 광선을 쓰며 전쟁의 언덕을 올라오는 어린 나비들은 믿기 어려운 네온사인의 영상(影像) 속에 마그네슘처럼 투명한 아침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 김규동, 「전쟁과 나비」 부분 김규동의 시적 개성이 전 시기에 이어져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더니즘 시에서 리얼리즘 시로 전환되었던 시기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김종훈은 이러한 전환기에 있는 김규동의 시집 『죽음 속의 영웅』을 대상으로 ‘현대성의 흔적’과 ‘현실성의 징후’를 살펴본다. 특히 고유명사의 성격 변화, 가족과 주변인 역사와 기억의 도입 등 김규동 시의 상반된 특성이 상호침투적으로 융합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고향을 두고 온 지 스무 해 오늘밤 어둠 너머 고향서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전보가 와도 우린 못 가네 이북친구는 기차가 없어 못 가네 함경도는 멀어서 누님이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이 죽었대도 가보지 못하네 여보게 사람 좋은 남도친구 이북사람 이북사람 그러질 말게 가슴이 꺼지네, 바닷속 같으네 캄캄한 갱(坑) 속 같으네 오늘 밤은 아무 말도 건네질 말아주게. · 김규동, 「남한(南韓)과의 대화」 부분 내면에서 이루어낸 김규동의 귀향 김규동은 1962년부터 침묵을 지키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군사정권이라는 억압체제가 등장한 직후부터 시작된 침묵은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시세계를 열어갔다. 이러한 변화는 장기화되는 분단 현실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실향민이기도 한 김규동은 시대 상황에 대한 지성적 통찰과 서정적 개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게 된 것이다. 임동확은 그의 자발적 남행과 귀향을 영웅의 모험으로 해석한다. 김규동의 자발적 남하는 스스로를 실향민·난민으로 격하시키는 사건이기에,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는 영웅적 결단이라는 것이다. 그의 일생이 고독과 소외감 속에서 미래적 삶에 대한 성찰과 성장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더욱 영웅적 행적과 닮아 있다. 임동확은 이 지점에서 김규동을 하이데거가 말한 ‘궁색한 시대의 시인’에서 ‘민족적 차원의 시인’으로 변화한다고 설명한다. 바다는 뿌리째 동요했으나 조금치도 경박하지 않았다 억만년의 삶을 살았으되 그저 젊고 튼튼하여 모든 걸 그 속에 품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과 역사와 우리들의 미래 아니 우리의 통일조차 그 속에 품고 끝간 데 없이 둥글게 돌아나아갔다 아득히 또 늠름히 오직 하나되기 위해 밀고 당기며 쉬임없이 일어서는 흰 파도 우람한 통일의 바다여. · 김규동, 「통일의 바다」 부분 유성호는 김규동의 시가 분단 극복을 위한 연대를 실천해나가는 것에 주목한다. 반공 이념에 갇히거나 보수화되지 않고 끝끝내 분단을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과 의지를 마지막까지 보여준 점에서 김규동 시의 문학사적 의미를 찾는다. 유성호는 김규동의 시가 소리 높여 외치는 절규가 아니라 내면으로 가라앉은 침잠의 목소리라고 말한다. 비유와 상징의 언어보다는 해방과 전쟁, 분단을 모두 겪은 세대로서의 증언적 속성이 강한 김규동의 시는 문학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김규동의 시세계는 거대한 ‘향수’ 그 자체이고, 후기 시는 귀향 의지로 충만해 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어머니와 고향 품에 안기지 못했다. 하지만 고향이 단순히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의 귀향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김규동의 일생과 작품세계는 미래로 나아가는 동시에 근원으로 돌아오는 귀향의 시간이었다. 그는 타향살이 중에도 가장 깊은 내면에서 숭고한 지혜와 정신을 나타내는 어머니와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 너 느릅나무 50년 전 나와 작별한 나무 지금도 우물가 그 자리에 서서 늘어진 머리채 흔들고 있느냐 우리 집 가족사와 고향 소식을 너만큼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이제 아무 데도 없다 (…) 죽기 전에 못 가면 죽어서 날아가마 나무야 옛날처럼 조용조용 지나간 날들의 가슴 울렁이는 이야기를 들려다오 나무, 나의 느릅나무. · 김규동, 「느릅나무에게」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