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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Ran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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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유령을 찾으러 내려왔다가 이 시체를 발견했다는 얘기지?”
“그렇습니다, 경위님. 그들은 기겁을 하며 하이 가로 올라갔고, 마침 앤드류스 순경과 순찰을 돌던 저랑 맞닥뜨리게 된 거죠. 처음에는 걔들이 장난을 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리버스는 더 이상 듣고 있지 않았다. 그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딱하게 됐군. 이런 험악한 꼴을 당하다니.” 그는 조례를 무시하고 청년의 머리를 살며시 만져보았다. 머리는 아직 축축했다. 피해자는 금요일 밤에 숨졌을 것이고 주말 내내 이렇게 매달려 있었을 것이다. 범인의 자취와 단서를 찾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어떻게 된 걸까요, 경위님?” “총에 맞았어.” 리버스가 벽에 튄 혈흔을 살펴보았다. “고속 라이플 같은 무기가 쓰인 것 같아. 머리, 팔꿈치, 무릎, 그리고 발목에 한 발씩 맞았군.” 그가 깊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식스 팩." --- p.25 “가르-비(Gar-B)는 이 도시, 아니, 이 나라에서 가장 거칠고 위험한 동네죠.” “당신 말대로 아주 험악한 곳이에요. 물론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요. 우리 성당은 그곳에 봉사 활동가 한 명을 보냈습니다.” “그에게 문제가 생긴 건가요?” “어쩌면요.” 리어리 신부는 남은 술을 마저 들이켰다. “사실 그건 내 아이디어였습니다. 그 동네에 폐쇄된 채 방치돼온 마을 회관이 하나 있는데 난 그걸 다시 열어 청소년 클럽으로 활용하고 싶었어요.” “가톨릭 신자들 전용으로?” “두 종교 다죠.” 그가 다시 등받이에 몸을 붙였다. “무신론자라도 다 받아들일 생각이었어요. 가리발디는 가톨릭 신자보다 신교도가 특히 많은 구역입니다. 우린 당국의 동의를 얻었고, 약간의 기금까지 조성해둔 상태였어요. 그러고 나서는 그곳 운영을 맡아줄 정력적인 인물을 찾아 나섰죠.” 그가 허공에 가볍게 주먹을 날렸다. “양측 간의 융화를 무난히 도모해줄 인물.” 그건 미션 임파서블일 텐데. 리버스는 생각했다. 이 계획은 10초 후 폭파됩니다. --- p.36 죄 통계만 훑어봐도 그게 헛소리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요. 저놈들은 휴전 상태에 접어들었을 뿐입니다. 한동안은 구역 분할 작업으로 바쁘겠죠. 외부에서 위협이 가해지면 함께 반격에 나설 거고요. 하지만 저런 평화가 얼마나 오래갈까요? 결국엔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가 피의 전쟁을 이어갈 겁니다. 각자 지켜야 할 게 더 늘어났을 테니까요. 말해봐요. 오늘 밤 당신 클럽에 가톨릭 신자가 몇 명이나 모였습니까?” 케이브는 고개를 젓느라 바빴다. “저는 경위님이 안쓰러울 뿐입니다. 계속 비꼬기만 하시잖아요. 경위님이 지금껏 하신 말씀 중 이치에 닿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비꼬는 게 아니라 당신이 순진해 빠진 겁니다. 저놈들은 당신을 신나게 이용해 먹고 있어요. 당신도 분명 그걸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일 뿐이잖아요.” 케이브의 볼이 다시 붉어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가 리버스의 복부에 힘껏 주먹을 꽂아 넣었다. 노련한 리버스도 불시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가 몸을 웅크리고 잠시 헐떡거렸다. 뱃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 느껴졌다. 물론 그것은 위스키 때문이 아니었다. 멀리서 아이들의 환호성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마을 회관 지붕 위에서 자그마한 형체들이 폴짝폴짝 뛰어댔다. 리버스는 지붕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가 힘겹게 허리를 폈다. “이게 모범을 보이는 겁니까, 케이브 씨?” 그는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케이브의 턱에 펀치를 날렸다. 젊은 남자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마을 회관 쪽에서 더 큰 환호성이 들려왔다. 지붕에서 내려온 가르-비의 아이들이 두 남자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번스가 차에 시동을 걸고 축구 경기장을 가로질러 돌진해왔다. 다행히 순찰차가 간발의 차이로 먼저 도착했다. 아이들이 일제히 차의 뒷유리에 빈 캔을 집어던졌다. 번스가 브레이크를 잡자 리버스가 황급히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 과정에서 무릎과 팔꿈치가 긁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순찰차는 차도를 향해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다. --- p.88 “그는 옷장 문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철사 옷걸이들만 잔뜩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신문이 깔려 있었다. 그는 옷장 문을 닫았다. 시선이 침대와 옷장 사이의 카펫으로 돌아갔다. 카펫의 가장자리가 지저분한 창문 밑 굽도리널(방 안 벽의 밑 부분에 대는 좁은 널빤지)을 덮고 있었다. 리버스는 웅크려 앉아 고정되지 않은 카펫의 끝부분을 살며시 잡아당겨보았다. 살짝 들린 카펫 밑으로도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하지만 손끝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매트리스도 들추어보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침대 스프링과 카펫뿐이었다. 진공청소기가 미치지 못한 부분에는 먼지와 머리카락 덩어리들이 나뒹굴었다. 그가 일어나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벽을 힐끗 보았다. 블루-택을 떼어낸 곳마다 벽지가 조금씩 뜯겨나간 상태였다. 그는 그 작은 패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벽지에는 길게 두 줄, 뭔가가 떨어져 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페넌트가 걸려 있던 자리였나? 그래, 맞아. 압정이 박혔던 구멍도 보이고. 페넌트는 압정으로 고정시킨 고동색 끈에 걸려 있었다. 페넌트는 이 자국들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된 흔적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밑에 드러난 안감 종이는 깨끗했다. 접착테이프가 최근에 떼어졌다는 뜻이었다. 리버스는 두 줄로 길게 벗겨진 부분을 손끝으로 훑어보았다. 8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두 줄은 역시 8센티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정사각형의 얇은 무언가가 붙어 있었던 것 같았다. 리버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 p.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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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복마전 같은 현실
“이 거대한 음모의 정체는?” 페스티벌 무드로 달아오른 한여름의 에든버러. 어느 날 잔혹하게 고문을 받고 살해당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조사를 위해 리버스 경위는 스코틀랜드 수사반으로 파견되지만, 그를 맞이하는 동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수사 끝에 피해자의 신원이 악명 높은 조직 보스의 아들로 밝혀지는데, 리버스는 시체의 몸에 남은 흔적에 주목한다. 범인들은 왜 이렇게까지 잔혹한 흔적을 남겼을까? 한편 경찰이 사건의 단서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사이, 잔혹한 살인이 연달아 벌어진다. 관광객들로 꽉 들어 찬 도시에 테러가 예고되고 리버스마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는데…… 과연 이 거대한 음모의 정체는 무엇인가? 경찰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무법천지의 거리 가르-비에서 리버스는 동료들과 함께 사건의 전말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복마전 같은 현실, 페이지를 끝까지 넘겨야 알 수 있는 뜻밖의 진실. 대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언 랜킨의 철학적 물음 1990년대 초, 이언 랜킨은 스코틀랜드의 파벌주의와 종교 갈등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무대로 펼쳐지는 스릴러를 구상하게 된다. 여섯 번째 리버스 컬렉션인『치명적 이유』는 그 탐구의 결과물이다. 전작들에 비해 어둡고 묵직하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 깊이를 갖추었을뿐더러 누아르의 향기로 가득하다. 이번 작품에서, 필생의 숙적이라 할 만한 리버스 경위와 악명 높은 조직의 보스 ‘빅 제르’ 캐퍼티의 관계에는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결코 친해지기 어려운 관계이지만 각각 딸과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두 사람은 서로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서로를 향한 증오가 흔들리는 순간, 깊은 곳에서 우정 비슷한 감정이 피어난다. 마치『레 미제라블』의 장발장과 자베르의 관계를 현대식으로 변주한 듯하다.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복잡다단하게 얽혀간다고 하니, 계속 지켜볼 일이다.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다. “이것이 멋진 우정의 시작일 것 같군.” 『치명적 이유』는 대의(大義)라는 것이 어떻게 인간을 잠식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잔혹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 대의라는 이름의 괴물이 곳곳에서 살육을 일삼는 요즘, 이언 랜킨은 과연 그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다분히 철학적이다. 과연 인간이 먼저인가? 대의가 먼저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