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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서론

1. 원죄의 전제로서, 동시에 그 원죄의 기원에까지 소급하여 설명하는 것으로서의 불안
(1) ‘원죄’의 개념에 관한 역사적인 시사
(2) ‘최초의 죄’의 개념
(3) 순결의 개념
(4) 타락의 개념
(5) 불안의 개념
(6) 원죄의 전제로서, 동시에 그 원죄의 기원에까지 소급하여 설명하는 것으로서의 불안

2. 점진적인 원죄로서의 불안
(1) 객관적인 불안
(2) 주관적인 불안

3. 죄의식이 없는 죄의 결과로서의 불안
(1) 무정신성의 불안
(2) 운명의 방향으로, 변증법적으로 규정된 불안
(3) 허물의 방향으로, 변증법적으로 규정된 불안

4. 죄의 불안, 혹은 개체에 있어서의 죄의 결과로서의 불안
(1) 악에 대한 불안
(2) 선에 대한 불안(악마적인 것)

5. 신앙의 힘으로 구원의 징검다리가 되는 불안

역자 후기

■ 부록 키에르케고어의 생애에 대한 짧은 이야기

저자 소개 2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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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en Aabye Kierkegaard

쇠렌 키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버지 미카엘 페더르센 키르케고르와 어머니 아네 쇠렌다테르 룬 키르케고르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엄격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부친으로부터 철학적 상상의 즐거움을 배우며 동부 시민 학교에 다녔다. 키르케고르는 그곳에서 라틴어와 역사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그 후 성장하여 1830년 아버지 미카엘과 형 페테르의 권유에 따라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신학부에 들어간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키르케고르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기독교는 광기’라고 말하고 기독교와 멀어진다. 그러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버지 미카엘 페더르센 키르케고르와 어머니 아네 쇠렌다테르 룬 키르케고르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엄격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부친으로부터 철학적 상상의 즐거움을 배우며 동부 시민 학교에 다녔다. 키르케고르는 그곳에서 라틴어와 역사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그 후 성장하여 1830년 아버지 미카엘과 형 페테르의 권유에 따라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신학부에 들어간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키르케고르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기독교는 광기’라고 말하고 기독교와 멀어진다. 그러다 대학 생활 도중 그의 관심은 신학에서 문학으로, 문학에서 다시 철학으로 옮겨갔다. 그는 지적 생활을 동경해 문학 · 음악 · 오페라 등을 가까이하고 산책을 즐기며 사상을 키웠다. 27세 되던 1840년 코펜하겐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레기네 올센을 만나 청혼한다. 다음 해 1841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결혼에 환멸을 느끼고 이유를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레기네에게 했던 청혼을 파기한다. 그 후로 키르케고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녀와의 결별 이후 키르케고르는 여러 가명을 사용해 『이것이냐 저것이냐』 『공포와 전율』 『불안의 개념』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거의 모든 작품을 가명(假名)으로 발표하고 발표한 작품이 자기가 원저자라고 밝혀진 후에도 계속 가명을 사용했다. 그가 모든 작품에 ‘단독자(單獨者)’를 이상적 인간형으로 삼는다. 그는 객관적인 진리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자기’라는 개체로서의 작은 인간, 둘도 없는 오직 하나의 인간, 이것이 그에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라는 단독자의 가장 절실한 혼(魂)의 문제를 파헤치고 기독교인들의 허위와 죄악을 비판하고 기독교의 정화를 위해 힘썼다. 그러다 가명으로 책을 출판했던 것이 탄로나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사람들에게 큰 비난을 받는다. 그 후 자신이 가명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던 이유를 신문에 기고하고 덴마크 기독교 사회를 비난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저작 활동을 하고 평생 직업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1855년 10월 2일 42세 때 거리에서 쓰러져 프레데릭 병원에 입원하고 11월 11일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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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키에르케고어 협회를 설립하였다. 키에르케고어의 저서인 『공포와 전율』을 비롯하여 『이것이냐 저것이냐』, 『반복』, 『불안의 개념』, 『그리스도교의 훈련』, 『순간』, 『현대의 비판』, 『죽음에 이르는 병』, 『관점』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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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128*188*30mm
ISBN13
9788996606918

책 속으로

원죄의 개념은 과연 최초의 죄의 개념과 동일한 것일까? 그것은 ‘아담’의 죄, 곧 인류의 타락과 동일한 것일까? 사람들은 가끔 그렇다고 이해해 왔다. 따라서 원죄를 해명하는 과제는 곧 ‘아담’의 죄를 해명한다는 과제와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 사유는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의 탈출로를 선택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해명을 해보려고 사람들은 하나의 공상적인 전제를 내세우고, 타락의 결과로서 그 전제가 상실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그들에게 유리했던 것은 모사된 그런 전제와 같은 상태가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가 자진해서 인정한 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상실될 수 있는 그러한 상태가 과연 일찍이 존재하였느냐 존재하지 않았느냐 하는 점은 전혀 별개의 의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 상태의 존재 여부야말로 그들이 그것을 상실하기 위해서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다.--- pp. 43~44

그렇다면 원죄의 개념과 최초의 죄라는 개념의 구별은, 개인은 죄에 대한 그의 근원적인 관계를 통하여서가 아니라, 오로지 아담에 대한 그의 관계를 통하여서만 원죄에 참여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아담은 다시금 공상적으로 역사 바깥에 놓이게 된다. 이때 아담의 죄는 과거보다 이전의 것, 즉 과거완료형인 것이다. 그러나 원죄는 현재적인 것이고 죄성이다. 그리고 아담만이 죄성에 물들어 있지 않은 유일한 인간이다. 왜냐하면 죄성은 아담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담의 죄를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원죄의 본질을 그 귀결을 통해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원죄에 관한 설명은 사유를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 p.45

우리가 ‘객관적인 불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사람들은 우선 저 순결의 불안에 대해 생각이 미치게 될 것이다(이 순결의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을 생각할 때, 자기 자신 안에서의 가능성의 반성이다). 이에 대하여 사람들이 “우리는 지금 다른 단계의 연구에 도달하였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도 그것은 충분한 해답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객관적인 불안이라는 구별은 실로 주관적인 불안에 대한 대립을 전제하고, 아담의 순결한 상태에 있어서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주관적인 불안이란 개체의 죄의 결과로서 개체 안에 생긴 불안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불안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시 논급하기로 하겠다.) 그러나 주관적인 불안이 이러한 의미로 취해지는 경우에는, 객관적인 불안과의 대립이라는 입장은 사라지고, 따라서 불안은 그 본래의 모습, 즉 주관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불안과 주관적인 불안의 구별은 세계와 후대의 인간들의 순결상태를 고찰하는 장소에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 pp. 108~109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피조물이 타락 속에 빠졌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마찬가지로 자유는 그릇된 사용이 정립됨으로써 비로소 정립되는 것이지만, 가능성의 반영과 연루 전율을 피조물 위에 던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또 인간은 종합이고 이 종합 속에서 그 양극이 정립될 뿐 아니라 그 대립의 한쪽 극단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이전보다도 훨씬 첨예화하였다고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이런 모든 것이 심리학적인 연구의 분야에서는 그 거처를 찾아볼 수 없다. 그것들은 오히려 교의학에, 즉 속죄의 교리에 속한다. 속죄를 설명함으로써 심리학은 죄성의 전제를 설명하는 것이다.피조물에 있어서의 이러한 불안을 우리는 정당하게 객관적인 불안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이 불안은 피조물에 의하여 산출된 것이 아니고, 아담의 최초의 죄로 말미암아 감성이 죄성으로 떨어지고, 죄가 계속 세상에 들어오는 한 감성이 잇따라 더욱 죄성으로 떨어짐으로써 전혀 다른 빛이 피조물 위에 드리워져서 산출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견해가 이런 의미에서 역시 얼마나 눈을 똑바로 뜨고, 감성 그 자체가 죄성이라고 하는 합리주의적인 주장을 억제하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죄가 이 세상에 온 후에, 그리고 죄가 이 세상이 올 때마다 감성은 죄성이 된다. 그러나 감성은 죄성이 되는 것이지 본래부터 죄성인 것은 아니다. 프란츠 바더는 여러 차례 유한성과 감성 그 자체가 죄성이라는 명제에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전혀 반대쪽인 펠라기우스주의에 빠지고 만다. 왜냐하면 프란츠 바더는 그의 개념규정 속에서 인류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았기 문이다. 인류의 양적인 증가라는 규정에 있어서는(따라서 비본질적이다) 감성이 죄성이다. 그러나 개체 자신이 죄를 정립함으로써 다시금 개체가 감성을 죄성으로 만들지 않는 한 개체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감성이 죄성은 아닌 것이다.--- pp. 112~113

어떠한 개체도 어떤 역사적인 연결 안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법칙의 귀결은 예나 마찬가지로 지금도 타당하다. 단지 그리스도교는 저 ‘보다 많이’에서 우리들 자신이 넘어 나올 것을 가르치고, 그것을 하지 않는 인간에 대해서는 그대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리는 점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감성이 ‘보다 많이’로 규정되어 있는 바로 그 까닭으로 인해서, 정신이 이 ‘보다 많이’의 책임을 떠맡아야할 경우에는 정신의 불안이 더욱 커진다. 여기에서 야기되는 그 극단의 현상은 죄에 대한 불안은 죄를 낳는다는 무서운 현상이다. 만일 사악한 욕망이라든가 음욕 따위가 개체에게 나면서부터 부여된 것이라고 하게 되면, 양의성(이 양의성으로 인해서 개체는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순결할 수도 있다)을 잃고 만다. 불안의 무력상태 속에서 개체는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그럼으로 인해서 개체는 죄가 있기도 하고 순결하기도 한 것이다.

--- pp. 142~43

출판사 리뷰

과연 지금 이 시대는 “불안”과는 인연이 없는 시대일까?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나도 눈부신 현대문명의 외관에 현혹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자신을 망각하고 자신의 정신적인 내면성을 상실하고, 피상적인 현상에 자기 자신을 저당 잡힌 채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실상이 아닐까?

2011년 도서출판 치우는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인간을 고뇌하며, 당대 유럽 철학의 정점을 달리던 헤겔에 대항에 실존철학의 기초를 닦은 위대한 철학자 키에르케고어가 저술한 『불안의 개념』이야말로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반성의 촉매제가 되고 현대를 살며 방황하는 영혼들이게 한 가닥 빛줄기가 될 것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철학사상 이 『불안의 개념』만큼 변증법 신학이나 실존철학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책을 찾아보기 힘들뿐더러, 이 책만큼 차분하면서도 격정적이고, 그러면서도 고요한 귀기가 서린 책도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바로 키에르케고어가 ‘불안’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파고들어 개념을 정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체 실존을 부각시키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데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기 위해 그는 더욱 ‘불안’을 통하여 ‘죄’를, 그리고 다시 ‘원죄’를 부각시키기며 논지를 한층 깊은 수준으로 심화시켜 나간다. 키에르케고어의 위대함은 이렇게 집요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탁월한 집중력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편 이 저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키에르케고어가 이 책의 첫머리에서 헤겔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헤겔의 논리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업은 키에르케고어가 존재와 믿음의 사유를 실행하는 데에 있어서 극복하지 않을 수 없는 첫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덴마크는 물론이고 유럽 전체의 정신계는 헤겔의 사상이 너무나도 짙게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키에르케고어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전혀 먹혀들어갈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3월에 출간된 그의 저서 『공포와 전율』에서도 밝힌 바 있다. 그렇기에 그는 집요할 정도로 헤겔의 논리주의를 반박해나갔다. 이 맨발로 가시밭길을 걷는 것 같은 과정에서 그는 헤겔을 극복하였고, 그럼으로써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 그의 이런 정열이 있었기에 그는 근대사상사에서 불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후대들이 자기 존재를 찾아나감에 있어 든든한 길잡이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도서출판 치우에서는 2011년의 기획으로 키에르케고어의 주요 저작들을 매달 1편씩 소개할 예정이며, 3월 『공포와 전율』, 4월 『불안의 개념』을 출간한데 이어, 다가오는 5월의 출간 예정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마지막으로, 쇠얀 키에르케고어Søren Kierkegaard는 키르케고르, 키에르케고르, 키르케고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키에르케고어 학회에서는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키에르케고어의 이름을 덴마크 원어 발음과 가장 유사한 쇠얀 키에르케고어 하나로 통일함이 바람직하다고 결정하였으며, 도서출판 치우와의 협력을 통해 앞으로 출간될 도서에 쇠얀 키에르케고어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쇠얀 키에르케고어의 이름을 기억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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