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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
이진우
arte(아르테)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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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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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prologue 우리는 왜 더 이상 삶의 의미를 묻지 않는가

01 결단하는 낙타는 사자가 된다 바젤을 떠나며
02 희극이 되어버린 비극 니체의 사람들
03 음험한 바다와 냉혹한 고산 사유의 공간
04 선악의 저편에서 다채로운 정적을 듣다 베네치아의 아침놀
05 허무주의의 탄생 렌처 하이데의 하늘
06 영원회귀의 통찰 질스 마리아의 차라투스트라
07 파도로 나아가는 광대 펙스 계곡의 그림자
08 두 발로 하는 사유 고독의 샤스테
09 미래 철학의 향유 에즈의 춤추는 철학자
10 욕망하는 인간의 발견 속물의 니스
11 신을 믿는 무신론자 토리노에서 스러지다
12 전복의 망치가 남긴 상처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의 광기

epilogue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삶의 수많은 가능성

니체 생각의 키워드
니체 생애의 결정적 장면

참고 문헌

저자 소개1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우크스부르크 대학교 철학과 전임강사,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총장,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니체 철학 최고의 권위자로 니체가 그랬듯 인간 실존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답을 찾고 있다.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 『한나 렌트의 정치 강의』 『니체: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의심의 철학』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고, 『공산당 선언』 『인간의 조건』 『글로벌 위험사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우크스부르크 대학교 철학과 전임강사,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총장,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니체 철학 최고의 권위자로 니체가 그랬듯 인간 실존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답을 찾고 있다.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 『한나 렌트의 정치 강의』 『니체: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의심의 철학』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고, 『공산당 선언』 『인간의 조건』 『글로벌 위험사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철학으로 사유하는 힘을 전하고 있다.

『개인주의를 권하다』에서는 나를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회 속에서 개인주의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모든 판단의 중심에 나를 놓는 개인주의자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며, 진리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스스로 자기 삶의 진리가 되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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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4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520g | 135*210*30mm
ISBN13
9788950974114

책 속으로

여운이 있는 여행은 우리를 서서히 바꾼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질문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의도와는 다르게, 또 어떤 때는 정반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름답다. 니체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체에 관한 책을 덮고 그가 걸은 길을 걸으면서 그를 경험하는 것이 더 나은 것도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길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니체를 발견할 수 있다.
---「에필로그」중에서

그런데 우리가 니체를 찾는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놓지 않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살고 있으면서도 진정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을 때 니체는 우리에게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온다.
---「프롤로그」중에서

니체는 짧은, 너무나 짧은 삶의 순간에 영원의 낙인을 찍고자 했다.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을 위한 긴 여행, 그것이 니체의 유목민적 방랑의 길이다. 그 길의 시작과 끝에는 고통을 당하는 ‘나’와 고통을 통해 본래의 자기를 찾고자 하는 ‘나’가 있다. 우리는 그 여정에서 우리가 무한히 반복되는 수많은 존재 중 하나라는 비극적인 인식을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에게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하나의 축복일까 아니면 비극일까?
---「1장: 결단하는 낙타는 사자가 된다」중에서

만년설로 호수는 더욱더 어두워진다. 어찌 보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하얀색 높은 산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연둣빛 초원으로 잠시 변했다가 검푸른 호수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고, 또 어찌 보면 호수의 기운이 알 수 없는 검은 미로에서 빠져나와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다. 산에 오르지 않으면 이 절묘한 색의 조화를 어떻게 보고 느낄 수 있겠는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대립과 조화.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는 알프스를 실제 체험하지 않고서는 니체의 철학을 오롯이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장: 희극이 되어버린 비극」중에서

니체는 산에서 바다로 간다,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금방 떠나진 않았지만 늘 가슴에 품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불현듯 떠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여행도 사실은 오랜 기간 가슴속에서 숙성을 거친 것이다.
---「3장: 음험한 바다와 냉혹한 고산」중에서

세상에는 준비하지 않고 우연히 찾아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 있다. 30년 전 베네치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계획했었다. 어느 곳을 들르고, 어디에서 식사를 하고, 언제 쉴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짜놓은 치밀한 일정표. 베네치아에 서 받은 인상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목적과는 달리 나의 기억에 남은 것은 미리 공부한 것뿐이었다. 이번엔 아무 준비 없이 베네치아에 와 있다. 숨 막히는 무더위가 현기증을 일으킨다. 이미지의 현기증. 베네치아는 갑자기 하나의 이미지로 다가오고, 수많은 변신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
---「4장: 선악의 저편에서 다채로운 정적을 듣다」중에서

우리는 이제껏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찾았던 것은 아닐까? 자기 자신을 철두철미하게 탐색하다 보면 결국 이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여유 자체, 아름다움 자체, 풍요로움 자체를 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4장: 선악의 저편에서 다채로운 정적을 듣다」중에서

니체는 고뇌하는 사람에게는 염세주의에 대한 권리가 없다고 딱 부러지게 말한다. 염세주의에 빠져 이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어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삶에 대해 더 이상 고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뇌하는 사람에게 너무 염세적이 되지 말라는 것은 쓸데없는 말이다. 삶의 의미를 철저하게 탐색하기 위해서 필요한 고뇌의 공간은 어디일까. 삶에 낯설고 적대적이기까지 한 환경을 겪지 않고서는 우리는 삶의 저 심오한 밑바닥을 인식할 수 없다.
---「5장: 허무주의의 탄생」중에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감을 받았다는 수를레이 바위가 산책로가 끝나는 곳 어딘가에 있다고 하니 주위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30분 정도 걸었는데도 커다란 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사상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영원회귀 사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호숫가의 벤치에 앉아 니체의 문장 하나를 붙잡고 깊이 명상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런 생각도 수를레이 바위에 대한 호기심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영원회귀 사상의 단초를 제공한 바위라면 어딘가 대단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6장: 영원회귀의 통찰」중에서

자기 자신을 극복하려면 우선 자신에게서 가장 경멸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물을 줄 알아야 한다. “경멸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경멸스럽기 짝이 없다”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만큼 부끄러운 것도 없다. 자신을 경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뛰어넘을 꿈과 동경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가슴에 반짝이는 별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삶과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사랑, 창조, 동경, 별이라는 낱말들이 낯설게 들린다면, 그 사람은 마지막 인간임에 틀림없다. 아무런 목표 없이 그날그날을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7장: 파도로 나아가는 광대」중에서

사상에도 높은 산과 깊은 심연이 있는 것일까. 그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 걸친 위험한 줄을 탄다. 니체는 스스로 다짐한다. 결코 주위를 돌아보지 말라! 그것이 최선의 용기다. 너의 뒤에는 어떤 길도 보이지 않는다. 그 어느 누구도 너의 뒤를 따라올 수 없다. 발을 내디디기만 하면 길은 곧바로 지워지니까..---「8장: 두 발로 하는 사유」중에서

니체가 산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영감을 얻고 바닷가에서 그것을 완성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대인은 기존의 선악관이 지배하는 육지에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넓은 바다를 무서워한다. 새롭고 낯선 가치를 혐오하기까지 한다. 우리가 선악의 저편으로 넘어가려면 우리의 육지를 떠나야 한다.---「9장: 미래 철학의 향유」중에서

니체가 바라보고 있는 대양이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서 침묵하고 있다. 우리가 본래의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 니체와 함께 떠난 길에서 어떤 자기를 찾았는지 역시 모를 일이다. 우리는 이 길에서 자신만의 니체를 발견하고, 자신이 발견한 니체와 함께 고유한 자기를 발견한다. 어떻게 사람은 본래의 자기가 되는가? 이 물음은 본래의 자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니체가 말한 것처럼 나에게 가장 먼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자기 발견의 길을 떠나지 못한다.

---「12장: 전복의 망치가 남긴 상처」중에서

출판사 리뷰

니체의 삶과 사유의 공간, 알프스와 지중해를 체험하다
병든 몸을 치유하고 영혼의 기후를 찾기 위해 떠난 길에서 니체가 발견한 자아와 세계

‘신은 죽었다’는 신처럼 떠받들던 단일한 가치의 상실, 즉 허무주의의 도래를 선언한 것이다. 니체의 경고대로 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따를 만한 절대적 가치가 없다는 수동적 허무주의로 빠질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찾겠다는 능동적 허무주의로 선회할 것인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즉 만족할 것인가, 극복할 것인가의 선택지가 우리에겐 있다. 주어진 것을 노예처럼 감수하는 ‘마지막 인간’, ‘최후의 인간’이라면 굳이 방황할 필요가 없다. 니체의 여행은 끊임없는 의심과 질문으로 점철된 시행착오의 시간이며, 또한 성장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진우 교수는 니체가 스스로를 유배한 곳을 따라 걸으며 바로 그 시행착오와 성장의 순간순간을 목격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니체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화려함에 도취하지 않고 깊은 내면으로 침잠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프랑스 니스에서는 번잡함 속에서 속물의 근성을 파악한다. 알프스를 낀 스위스의 질스 마리아에서는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감을 받은 바위가 있다. 그리고 니체가 발작을 일으킨 토리노까지, 방랑의 시간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지도가 된다.
세상의 온갖 문제를 뛰어넘은 것 같은 해발 1,800미터 고산 지대에서 니체가 깨달은 것은 이 세상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영혼회귀 사상의 뿌리는 책상에 있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이 삶을 반복해도 좋을 만큼 하루를 충만하게 살 것, 비극까지 포함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것. 이 결심이 선다면 그 순간 니체가 여름이면 올랐던 서늘한 고산과 겨울이면 거닐었던 따뜻한 바다가 펼쳐진다. 니체가 말한 영혼의 기후란 비단 자연환경의 그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기가 이루어놓은 상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혹은 삶을 긍정하는 태도 등 더 높은 차원으로 영혼을 끌어올릴 수 있는 토양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본래의 내가 될 수 있는가”
니체가 삶을 엮고 사상을 잉태한 곳에서 우리 자신의 길을 발견하다

니체는 평생 두통과 위통 등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뇌질환으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도 극심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얻은 바젤 대학 교수 자리도 당대 음악계 거장 바그너와의 친교도 그를 안심시키거나 붙들어놓을 순 없었다. 병든 몸을 치유하려면 사유를 더 맹렬히 해야 한다고 믿었던 니체는 생각하기 알맞은 장소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안정된 삶을 떠나 위험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건강한 삶을 발견했다. 니체가 추구한 위험한 삶이란 잘못된 장소, 금지된 장소에 들어와 있다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생각 없이 열심히 일하며 명성이나 돈을 좇는 노예라면 몰라도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주인은 그런 곳에서 살 수 없다. 자각이 있다면 이제 답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틈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진우 교수는 자기가 서 있는 일상의 장소에서 한 번쯤 탈출할 것을 권한다. 공간은 삶의 양식뿐만 아니라 사유의 방식도 결정한다. 공간의 변화라는 그 의도적 방랑의 전과 후에 얻은 결론이 동일하더라도 그 질은 사뭇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그 사람이 머무른 장소를 언급하지 않고는 그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바젤에 머무를 때의 니체와 알프스를 오르내릴 때의 니체는 같은 인물이 아니었다. 이 책은 공간을 중심에 둔 니체 읽기다.
이제까지 당연하다고 믿었던 가치관, 신성시했던 세계관에 물음표를 붙인다면 그 사람은 니체주의자라고 이진우 교수는 말한다. 자기 삶에 균열이 인다면, “나는 어떻게 본래의 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품을 수 있다면 이 책의 효용은 충분하다. 그 사람의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내가 너희에게 같은 모험을 하길 권하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또는 같은 고독을 권하리라고. 왜냐하면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길들’이 그것을 초래한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위험, 우연, 악의와 악천후 중에서 그에게 닥치는 모든 것을 그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길을 갖고 있다.”(니체, ??유고(1885년 가을~1887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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