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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사스런 폐허의 매력 2. 문학의 절실성
3. 로마의 휴일 4.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요 작품 해설_송희복 작가 연보 |
李炳注, 호: 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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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양복 차림은 어색하다. 어색하긴 하지만 양복을 입고 있다는 것, 즐겨 입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어색한 유럽인이다. 어느덧 우리들은 어색한 그대로 유럽인이었다. 유럽인이 되고 나서야 동양에의 회귀를 생각하게 되었다. 유럽에선 찾을수 없는 보물이 동양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공자와 장자, 사마천을 그 본연의 가치로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가 유럽인이 되어야 했다는 사실엔 애달픈 진실이 있다. ---p.21
여행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로마네스크하게 물든다. 윤리적 결벽감, 도덕적인 자제력이 다소 이완되기 마련이다. 켈리도 그런 기분이었는지 모른다. 동양의 남자가 백인의 여자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그만큼 백인 여자도 동양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것일까. 그런데 그 호기심이 본고장에 있을 땐 행동으로 발현되지 않고 꺼져버리는 것인데 결벽성과 자제력이 이완되는 여로에선 거리낌 없이 호기심의 불꽃이 타오를 수 있는 것이다. ---p.48 끊임없이 학생데모가 있었다. 반체제 운동이 있었다. 가차 없는 탄압이 있었다. 형무소는 반체제 인사들로 만원이 되었다. 이러한 사태가 거듭되어 이윽고 부마사태가 발생하고, 그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박정의 대통령은 충실한 부하라고 믿고 중앙정보부장이란 대임을 맡긴 김재규에 의해 살해되었다. 결국 술수를 다해 그는 자기의 묘혈을 판 꼴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사건의 후유증으로 정국은 혼미하고 광주사태 같은 참담한 비극이 터지고 말았다. 그것을 나는 로마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나는 로마에 와 있는 것인가. ---p.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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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이병주를 로마로 보냈다
《잃어버린 시간을 위한 문학 기행》의 첫 번째 작품인 〈호사스런 폐허의 매력〉은 1971년에 로마에 가게 된 내력과, 로마 문명을 바라보는 관점이 자유로운 필치로 서술되어 있다. 그가 로마에 가게 된 데는 불법적이고 초헌법적인 3선개헌을 감행하려는 박정희 정권이 겁 없이 글을 쓰는 반체제 지식인을 선거 기간 동안에 외국에 추방하는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 덕분에 그는 불가능해 보였던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다. 로마의 폐허를 감상한 이병주의 감회는 남달랐다. 지적 성찰은 폐허에 대한 아름다움과 역설의 현란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글 행간에는 자조적 성찰이 배어 있기도 하다. 한국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경주와 부여의 폐허가 떠오른 것이다. 경주와 부여의 폐허가 로마의 폐허에는 못 미쳐도 우리에게는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감회였다. 생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근대교육, 즉 황민화 교육이 결국 유럽화였고, 그러고 나서야 동양에의 회귀를 생각하게 됐다는 데에 한탄한다. 동양 신사와 백인 여성의 문학적 교류 두 번째 작품 〈문학의 절실성〉은 이방인들과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로마에서 갓 스물의 대학 1년생인 마크를 만나고, 그의 어머니인 켈리를 소개받는다. 켈리는 여배우 에버 가드너를 닮은 요염한 풍정의 중년 여인이다. 문학을 애호하는 교양 있는 미국의 여인과 한국의 중년 작가가 만나 자연스럽게 문학에 관한 얘깃거리를 주고받는 장면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이병주는 여인이 구사하는 언어 수준이 매우 소피스티케이트하고 치밀했다고 표현한다. 두 사람이 괴테, 셰익스피어, 안톤 체호프의 문학작품을 두고 벌인 토론은 무척 인상적이다. 또 하나의 ‘로마의 휴일’ 세 번째 연작 〈로마의 휴일〉은 마치 영화처럼, 그가 백인 여성으로서 유부녀이기도 한 켈리와 제3국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나 벌인 불륜 행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 자신이 여성을 의식하게 되었던 때를 떠올리다 초등학생 시절 때 여고생을 짝사랑했던 첫사랑을 회상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병주의 불륜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얘깃거리이지만 문학이라는 틀 안에서 수용할 법한 내용이다. 마지막 작품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요〉는 결말에 해당한다. 정치범으로서 왜 그가 감옥에 갔는지에 대해 타이프 용지 100장 정도의 분량을 써 보낸다. 그가 신문사 주필로 재직하고 있을 때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는데 그 세력이 과거 논설을 들추어내어 그를 불온한 용공주의자로 지목해 투옥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나라의 성원 대다수가 민주적 인격과 능력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가능하다”라는 소신을 갖게 된다. 그의 정치에 대한 관념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잡문에서 이병주 따를 자 아무도 없다! 본 에세이에서 엿볼 수 있듯, 이병주의 삶은 매우 극적이었고 그의 사상도 다양했다. 친일은 아니지만 일본 문화에 우호적이었고, 좌파 논객은 아니지만 약간의 무정부주의자적 면모도 보여주었으며, 정치에서는 본질적으로 리버럴했다 해도 만년에는 좀 우경화의 성향을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권력과 늘 맞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살아오면서 일제, 좌익, 박정희 등의 정치권력과 만났으나 결정적으로 순응하지도 투쟁하지도 않았다. 그의 이런 삶과 정신이 하루 1,000여 매를 써내는 초인적 다작으로 연결되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위한 문학 기행》이다. 혹자는 대체 이 글의 장르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논픽션 산문적 글쓰임에도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다소 부정적 관점에서 보자면 잡문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작가 중 잡문에서 이병주를 따를 자 아무도 없다. 이것이 문단의 평이다. 그의 잡식성 글쓰기는 경지에 도달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그의 산문을 읽다 보면 한 시대가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