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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지성을 위한 로마제국 쇠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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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여는 글_《로마제국 쇠망사》는 어떤 책인가

1부 번영하는 로마제국[1~2세기]
01 뛰어난 황제들의 등장
공화정의 몰락, 제정의 시작 |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약점 | 오현제와 양자 계승 원칙 | 혈통 계승시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02 광대한 영토를 지키는 강력한 군대
훌륭한 군인을 양성하는 방법 | 엄격한 규율 | 주둔지 건설 노역 | 도로 건설 노역 | 군대 배치도

03 로마제국의 통합과 경제적 번영
종교의 통합 | 언어와 신분의 통합 | 증가하는 교역 |상공업을 통한 부 축적

2부 광대한 영토를 지키는 강력한 군대
01 군대에 좌우되는 제위
막강한 압력 집단이 된 군대 | 개혁을 싫어하는 군대 | 군인황제시대에 단명한 황제들 | 군사적 능력은 제위로 가는 지름길

02 누적되는 재정 적자
돈으로 사는 군대의 충성심 | 돈을 마련하기 위한 황제들의 노력 |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변칙 | 납세자를 증가시키기 위한 변칙

03 커가는 적국의 힘
로마제국이 부러운 게르만족 | 강력한 프랑크족과 알라마니족 | 끈질긴 고트족 | 페르시아, 로마제국의 두려운 적 | 최초로 적에게 생포된 발레리아누스 황제

3부 로마제국의 분열[4~6세기]
01 동서로 나뉜 로마제국
사등분하여 통치하기 |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황제들 | 두 동강으로 나누어 물려준 제국 | 페르시아의 공격 | 서고트족의 공격 | 훈족의 공격 | 허약한 로마군

02 서로마제국의 몰락
마지막 황제의 폐위 | 서로마제국의 영토를 차지한 종족들 | 서로마제국의 몰락과 그리스도교의 관련성 | 서로마제국의 몰락 원인

03 서로마제국의 폐허 위에 세워진 왕국들
성장하는 프랑크 왕국 | 프랑크 왕국의 성장 배경 | 이탈리아를 차지한 동고트 왕국

4부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비잔틴제국[6~11세기]
01 영토 팽창과 수성을 위한 노력
벨리사리우스의 아프리카 원정 | 벨리사리우스의 1차 이탈리아 원정 | 벨리사리우스의 2차 이탈리아 원정 | 이슬람 세력의 영토 팽창 | 콘스탄티노플을 수성하다 | 영토 재탈환을 위한 노력 | 황제 바실리우스 2세의 영토 팽창 | 사적 성공의 원인

02 재정의 건전성 키우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재정 지출 | 자영농 증가와 세수 확대 정책 | 대토지 소유자의 증가로 인한 재정 악화 | 상공업의 발달 | 상공업의 위축 | 상공업의 쇠퇴

03 다양한 문화의 발전
고대 로마제국의 법 |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로마법대전》 |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이후 편찬된 법전 | 성상 숭배를 둘러싼 교리 논쟁 | 성령의 발현을 둘러싼 교리 논쟁 | 독특한 예술 양식의 발전

5부 쇠퇴하는 비잔틴제국[11~15세기]
01 아군에서 적군으로 변한 십자군
셀주크튀르크족의 성장과 십자군 결성 | 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정복 | 고전하는 2, 3차 십자군 | 그리스도교 도시를 공격한 4차 십자군 | 라틴제국의 붕괴 |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한 비잔틴군

02 허약해진 황제권
불신에서 초래된 내전 1, 2차전 | 성급한 제위 욕심에서 초래된 내전 3, 4차전 | 서방교회와의 통합 노력 |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경쟁심 활용 | 오스만튀르크 세력의 활용

03 이슬람 세력에 무릎 꿇은 비잔틴제국
오스만튀르크의 소아시아와 트라키아 점령 | 비잔틴제국, 튀르크제국, 티무르제국의 치열한 싸움 | 황제 요한네스 8세의 서방 원조 요청 | 튀르크족의 콘스탄티노플 공격 |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비잔틴제국 몰락의 상징 | 비잔틴제국의 몰락 원인

맺는 글_현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 《로마제국 쇠망사》

저자 소개 2

원저에드워드 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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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Gibbon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1737년에 영국 서리 주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탓에 웨스트민스터 공립학교를 중퇴했고, 열다섯 살이던 1752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14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스위스 로잔에 머물며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마스터했고, 이 시기에 볼테르의 클럽에 드나들며 계몽사상을 흡수했다. 1757년, 스무 살의 기번은 로잔에서 쉬잔 퀴르쇼를 만나 결혼을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이 시기에 사귄 스위스인 조르주 데베르당은 기번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기번은 1764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했는데, 로마에 입성하여 카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1737년에 영국 서리 주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탓에 웨스트민스터 공립학교를 중퇴했고, 열다섯 살이던 1752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14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스위스 로잔에 머물며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마스터했고, 이 시기에 볼테르의 클럽에 드나들며 계몽사상을 흡수했다. 1757년, 스무 살의 기번은 로잔에서 쉬잔 퀴르쇼를 만나 결혼을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이 시기에 사귄 스위스인 조르주 데베르당은 기번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기번은 1764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했는데, 로마에 입성하여 카피톨륨의 폐허를 본 순간 《로마제국 쇠망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자서전에 적고 있다. 1776년 2월에 출간된 《쇠망사》 제1권은 빅 히트를 쳤다. 1781년 3월에 《쇠망사》 제2권과 제3권이 나왔고, 이어 1788년 5월에 제4~6권이 출간되었다. 말년에 지병인 음낭 수종으로 고생하다가 1794년에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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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사학과 학사 졸업(1987년) 계명대학교 사학과 석사 졸업(1990년) 경북대학교 사학과 박사 졸업(2001년) 계명대학교 Tabula Rasa College 재직(2014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주최, 2008년 우수출판기획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2014년 세종도서 우수 교양도서 선정 [주요 논저] 『강대국의 비밀: 로마제국은 병사들이 만들었다.』(글항아리, 2008년) 『로마 검투사의 일생』(글항아리, 2013년) 『(동서양 고전 시리즈) 젊은 지성을 위한 로마제국 쇠망사』(두리미디어, 2013년) 「공성전을 통해 본 고
계명대학교 사학과 학사 졸업(1987년)
계명대학교 사학과 석사 졸업(1990년)
경북대학교 사학과 박사 졸업(2001년)
계명대학교 Tabula Rasa College 재직(2014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주최, 2008년 우수출판기획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2014년 세종도서 우수 교양도서 선정

[주요 논저]
『강대국의 비밀: 로마제국은 병사들이 만들었다.』(글항아리, 2008년)
『로마 검투사의 일생』(글항아리, 2013년)
『(동서양 고전 시리즈) 젊은 지성을 위한 로마제국 쇠망사』(두리미디어, 2013년)
「공성전을 통해 본 고대 동서양의 공학기술 활용성」(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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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5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92g | 139*200*30mm
ISBN13
9788977152700

출판사 리뷰

오현제 시대가 연 로마의 평화,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한 시기

만일 역사 시대로 들어와서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한 시기를 정하라고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사망에서부터 코모두스 황제(재위 177∼192)가 계승할 때까지라고 말할 것이다. _1부 본문 중에서

1부는 로마제국의 쇠퇴기를 다루기에 앞서 로마제국의 짧지만 강렬했던 영광의 시대를 먼저 기록하고 있다. 로마제국의 서막은 ‘존엄한 자’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즉위하여 로마의 제정 시대를 열면서 장식하지만, 진정한 대제국의 영광은 ‘로마제국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안토니누스 왕조 황제들의 시대부터 도래한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제국의 기틀을 닦고 초석을 세웠다면, 네르바에서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아누스까지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들은 로마를 강력하고 풍요로운 대제국의 반석 위에 올렸다. ‘로마의 평화’라고 일컬어지는 약 200년에 걸친 기간은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위대한 번영과 안정을 구현한 시대였다. 기번은 이에 대해 “그들의 치세는 통치 목표가 바로 전체 시민의 행복이던, 역사상 유일한 시대일 것”이라 말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훈련, 풍부한 상과 가혹한 처벌로 확립된 엄격한 지휘 체계는 로마가 광활한 영토를 획득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었습니다. 사실 훈련은 하기도 싫을뿐더러 병사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할 만큼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작은 모래알갱이가 모여 거대한 사막이 되듯이, 병사들의 용맹한 행동이 전장에서 당장에 주목받지는 못한다고 해도 그렇게 훈련이 잘된 병사들이 모여 전체 군대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또 지휘관들도 승진하거나 민간 관직을 맡는 데 군공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뛰어난 병사들을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방법, 아군과 적군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전술에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고, 이런 지휘관들이 존재하는 한 로마군은 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_1부 ‘엄격한 규율’ 중에서

로마제국이 번영한 이유가 뛰어난 황제들의 등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아우구스투스가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군제를 개편하고 엄격한 규율을 확립한 이래, 군대는 로마가 유럽ㆍ아시아?ㆍ아프리카 세 대륙에 이르는 대제국으로 발돋움하고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종교ㆍ언어ㆍ신분의 통합을 통해 로마를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묶으려는 노력이 하루아침에 그 결실을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다신교 사회였다고 하지만, 피정복민의 신을 자신들의 신과 동일한 반열에 올려 숭배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또 라틴어를 사용할 것을 강요할 수는 있었지만, 실제로 속주민들이 라틴어 속에 내포된 로마 문화까지 받아들이는 데는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피정복민에게까지 자신들의 시민권을 나누어주는 신분 통합 역시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정복자라면 취하기 힘든 정책이었습니다. 로마가 단순히 영토만 거대한 국가가 아니라 통합된 하나의 제국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런 포용과 관용의 자세에서 찾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_1부 ‘언어와 신분의 통합’ 중에서

로마가 화려한 성공을 거두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은 현명한 황제들과 강력한 군대를 뒷받침해 준 로마 시민들이었다. 로마제국은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수많은 로마 시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을 다하고 노력한 결과였다. 또한 주변국과 속주민, 이민족들까지 관용과 화합의 정신으로 아우르고 결속력과 통합력을 갖추어 나가면서 역사에 남는 대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이 이루어낸 찬란한 영광과 평화는 뒤에 올 쇠망사와 대비되면서 그 빛을 더한다. 또한 제국의 번영만을 생각하는 황제와 성실한 군대, 이민족에 대한 관대함, 풍요로운 경제와 통합과 풍요를 일궈낸 로마 시민들의 모습은 청소년들에게 앞으로의 역사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줄 것이다.

군인황제시대, 로마의 위기와 몰락의 징후가 시작되다

2부는 찬란한 영광과 평화를 뒤로 하고, 로마제국이 서서히 기울어가면서 몰락으로 향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번영기 때 로마가 현명한 황제와 용맹한 군대와 로마 시민들의 노력으로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면, 쇠퇴기는 그에 반하는 인간들의 적나라한 욕망과 음모와 투쟁으로 점철된다. 이런 기록들은 ‘그토록 화려하고 영광스러웠던 로마제국이 왜 몰락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변이면서, 동시에 ‘번영과 평화를 계속 영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역설적 답변이라 할 수 있다.

황제들은 군인들의 힘으로 제위에 앉더라도 어느 지역 어느 부대가 또다시 자신들의 군사령관이 약속하슴 물질적인 보상에 현혹되어 칼을 겨눌지 모르므로, 어느 황제든 제위는 언제나 불안정했습니다. 그렇다고 돈에 눈이 먼 군인들 모두에게 어느 군사령관보다도 더 많은 액수의 보상을 약속할 경제적 여유도 없었거니와, 군인과 군사령관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끊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지배력을 가지지도 못했습니다. 합당한 원칙에 따른 계승이 아닌 만큼 황제권은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었고, 군사령관에게 현혹되는 군인이 존재하는 한 황제의 재위 기간은 단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부 ‘군대에 좌우되는 제위’ 중에서

저자는 “인간의 모든 열정과 욕망 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반사회적이라고 하는 권력욕은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본능”이며, “로마제국의 야심가들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하는 권력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된 상황은, 황제의 계승원칙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권력에 대한 집착은 더 이상 충성스럽고 성실하지 않은 군대의 욕망과 결합한다. 황제들과 군대의 욕망이 야합한 결과는 제위와 목숨까지도 군대와 돈에 의해 흥정되던 ‘군인황제시대’라는 전대미문의 수치스러운 시기였다.

군단병이든 보조군병이든 모든 병사들에게 근위대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로마 시에 복무하면서 3배가 넘는 급료를 받고 있던 근위병들은 황제를 옹립하는 데 개입하면서 더 많은 상여금을 챙겼습니다. 반면 지나치게 덥거나 지나치게 추운 먼 변경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적은 급여와 상여금에 만족해야 하던 여타 군인들은, 스스로 황제를 옹립하면 근위대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근위병들이나 그들을 모방하여 정치에 개입하면서 안락한 삶을 요구하는 군단병들에게서, 훈련에 매진하면서 충성과 복종을 신조로 여긴 1세기 군인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_2부 ‘개혁을 싫어하는 군대’ 중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황제와 훈련에 매진하는 군대가 사라진 제국의 모습은 곳곳에서 균열을 만들면서 몰락의 징후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종국엔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제국을 지키지 못하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청소년들은 로마제국이 이처럼 “역사적으로 붕괴되는 제국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쇠망의 길을 걷는 것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평화에 대해 사유하고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서양 고대사의 한 축이 무너지다

3부로 들어가면, 로마제국의 몰락은 이제 필연적인 귀결로 보인다. 제위 분쟁이나 권력 다툼과 같은 내홍은 다반사가 되어 버렸고, 이민족과의 잦은 전쟁 역시 정해진 수순이었다. 저자는 이런 만성적인 문제들이 로마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했다고 진단한다. 너무 많은 문제가 산재하다 보니 내적ㆍ외적인 진통은 이제 고질병이 되어 더는 위기감이나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못하는 지경까지 몰고 갔다는 이야기다. 로마는 이제 사망 선고만을 기다리는 말기 환자나 다름없었다. “모든 것을 얻었으나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로마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또 하나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은 로마제국의 분열이었다.

비잔틴제국, 또 다른 로마제국의 영광과 상처의 길

4부에서는 기존의 역사관이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에 치우치는 바람에 서로마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비잔틴제국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실제로 기번은 비잔틴제국에 대해 “그리스 노예인 비잔틴인과 그들의 독창성 없는 역사”로 폄하했으며, “허약함과 비참함이라는 지루하고도 일관된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따라서 기번은 서로마제국의 몰락까지 400여 년의 역사를 38개의 장에 걸쳐 쓰면서 동로마제국의 900여 년에 달하는 역사는 그보다 적은 33개의 장으로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젊은 지성을 위한 로마제국 쇠망사》에서는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비잔틴제국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이와 같은 시각을 토대로 비잔틴제국의 영광과 상처의 기록을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자.

중동 지역에 새로이 등장한 이슬람 세력은 비잔틴제국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장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이슬람 세력이 비잔틴제국의 오랜 적인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아라비아 반도 전역을 차지한 후 무섭게 북상해 제국의 영토를 침입했습니다. 제국의 수도까지 위협하는 이슬람군과 이슬람에게 빼앗긴 영토를 재탈환하려는 비잔틴제국 간의 긴 싸움은 서로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그리스도 교권과 이슬람권의 치열한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된 것입니다.
_4부 ‘영토 팽창과 수성을 위한 노력’ 중에서

비잔틴제국의 역사에 그늘을 드리운 이슬람 세력의 대두는 세계사에서도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비잔틴제국과 이슬람의 대립은 영토 분쟁에서 시작하여 종교 분쟁으로 확대되었으며, 뒤에 십자군 원정으로까지 비화되는 기나긴 싸움의 전초전이었다.

비잔틴제국의 몰락, 역사 속으로 사라진 원대한 제국의 꿈

비잔틴제국은 생존과 더불어 몰락의 징후들이 잉태되고 있었고, 비잔틴제국의 역사가 곧 몰락의 과정이라는 기번의 말은 지나친 비약이지만 비잔틴제국의 말기가 서로마제국의 몰락과 상당 부분 닮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위 분쟁, 이민족의 침입, 이민족 부대의 중요성 등으로 서서히 땅과 조공을 주면서 쇠퇴와 몰락으로 향해 가는 과정은 동서로마제국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한 문명의 몰락에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 내우외환에 휩싸인 것입니다.
_5부 ‘허약해진 황제권’ 중에서

마지막으로 5부는 비잔틴제국의 몰락을 다룬다. 서로마제국이 붕괴한 뒤에도 천 년이나 더 이어진 비잔틴제국도 결국 멸망이라는 비극적인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비잔틴제국은 제위를 둘러싼 내전과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튀르크와의 전쟁이라는 내우외환의 위기를 겪으면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저자는 비잔틴제국의 돌이킬 수 없는 최후에 대해 무한이기주의와 안이하고 방심한 태도를 꼬집으며 쇠퇴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비잔틴제국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중세 유럽의 한 획을 그은 사건인 십자군 원정이었다. 십자군 원정은 성지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모였지만, 결국 자국의 이익만 챙기고 교세 확장을 꿈꾸는 여러 국가와 교회의 이기심과 인간의 적나라한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채 끝내고 말았다. 십자군의 무한이기주의는 비잔틴제국을 공격하고 콘스탄티노플에 라틴제국을 세우는 데서 절정에 달했다. 결국 여덟 차례에 걸쳐 행해진 십자군 원정의 실패로 비잔틴제국이 쇠퇴하고 이슬람 세력의 급부상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고 세계사의 지도가 바뀌게 되었다.

비잔틴제국은 종말을 고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비잔틴제국의 멸망은 그대로 한 문명의 몰락이자 한 역사의 몰락으로 끝이 났다. 저자는 앞서 서로마제국의 멸망에 대해 “제국의 절반을 야만족이라 경멸했던 게르만족에게 넘겨”주면서 “약소국이 영원히 약소국으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흥미로운 교훈”을 남겼다고 해설했다. 그리고 비잔틴제국의 멸망에 대해서도 경쟁적인 국제 질서 속에서 내전과 무의미한 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한 지배층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비단 비잔틴제국만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여러 국가에서 이런 불필요한 소모전을 계속한다는 것은, 역사가 과거의 사례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를 되돌아보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미 지난 역사의 기록인《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며, 고전과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비잔틴제국의 지배층은, 타국의 분열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기회로 삼으려는 경쟁적인 국제 질서 속에서 내전은 곧 국력 낭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좀 더 객관적인 우리의 눈에는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도 국력 회복이 어려운 상황에서 무모한 내전을 쓸데없이 왜 하는지, 국가가 무너지면 권력도 아무 소용이 없는데 왜 그렇게 근시안적인지 한심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비잔틴제국과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정부군과 반군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내전, 또 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적 격차에 따른 지역 갈등, 보수와 진보 세력 간의 정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습니.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지듯이 이런 분쟁이 국가 통합이라는 대의를 향해 발전적으로 나아간다면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겠지만, 자칫 개개의 이익을 위한 소모전일 뿐이라면 자제해야 합니다. 물론 무한이기주의와 권력 집착증으로 인한 소모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제라는 것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앞으로 더 발전하는 사회를 위해 한발 물러서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소모적인 분쟁이 얼마나 치명적이며 어떻게 국가를 망치는지를 비잔틴제국의 사례를 통해 절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_5부 ‘성급한 제위 욕심에서 초래된 내전 3, 4차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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