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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_《삼국유사》는 어떤 책일까
1부_나라가 세워질 때의 이야기들 01 최초의 나라가 열리다 단군 이야기는 신화일까 역사일까 단군조선의 의미와 고조선 사회 02 위만조선, 고조선을 잇다 위만조선과 한나라 전쟁의 진실 03 주몽은 고구려인들의 자부심 04 알에서 태어난 시조 05 조상의 나라를 되살린 백제 06 신비의 나라, 가야 수로왕의 탄생과 구지가|탈해와의 대결 바다를 건너 온 여인 죽은 뒤 더욱 신령스런 수로왕 2부_융성하는 나라 신라의 기록 01 탈해왕의 좌추우돌 일대기 호공과 탈해|노례왕과 탈해왕|경주 김씨 시조의 출현|죽어도 죽지 않은 탈해왕 02 해와 달을 움직인 연오랑과 세오녀 03 나라의 자존심을 세운 미추왕 미추왕과 석우로|나라를 지키는 영령 04 박제상은 충절의 화신이다? 05 거문고 갑을 쏘다 06 해괴한 소문의 주인공, 지증왕 07 이차돈, 불교의 기적을 일으키다 08 비운의 영웅, 진지왕 09 하늘이 내린 옥대 10 서동의 로맨시는 진짜일까 11 선덕여왕의 시련 임금의 자질론과 최초의 여왕 12 신이 돕는 자, 김유신 3부_삼국의 통일과 태평성대 01 통일의 영웅들 가장 유명한 정략결혼|백제는 왜 망했을까|통일인가, 매국인가|영우의 활약과 민중의 소망 02 문무왕의 어진 정치 화룡점정, 대업의 신화|문무왕의 선정과 거득공 03 태평성ㄷ를 연주한 피리, 만파식적 대왕암의 진실 04 푸대접받은 화랑, 죽지랑과 득오 화랑의 물락인가, 권력의 희생양인가 05 절세미인 수로에게 노래를 바치다 06 나라가 기우는 징조가 나타나다 4부_나라가 망하는 원인과 징조 01 먼저 궁에 들어간 임금, 원성왕 묘정의 구슬 02 영웅이 되지 못한 영웅, 장보고 03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이야기 04 과연 처용은 태평성대를 살았나 05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리다 신라의 종말과 새로운 영웅 06 마친내 무너진 신라 07 가엾은 완산 아이 견훤의 눈물 5부_나라의 불교 민중의 불교 01 계율이냐 중생이냐 그것이문제로다 02 고고한 스님 의상과 소탈한 스님 원효 03 재야의 고승, 혜숙과 혜공 04 표주박을 들고 교화를 베풀다 맺는 글_우리가《삼국유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 |
一然, 본명 : 김견명, 호 : 무극 · 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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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자신을 아유타국의 공주라고 소개하고 성은 허씨요, 이름은 황옥이라고 밝히는데, 아유타국이 고대 인도 중부에 있던 아요디아 왕국을 가리킨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나오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수로왕릉에 보이는 두 마리 물고기 무늬, 즉 쌍어문이 인도 아요디아 지방에서 지금도 흔히 발견되며 허황옥이 항해 중에 풍랑을 이기기 위해 싣고 왔다는 바사석탑의 돌도 인도에서 발견되는 돌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대단히 흥미로운 주장이기는 하나 이 주장은 4세기경 중국을 통해 고구려, 신라 순으로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기존의 학설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고, 김해 김씨의 시조가 인도계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하는 것입니다. 허 왕후가 1,900여 년 전 인도에서 온 공주라는 주장은 당시의 항해술로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믿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 중략 … 수로왕은 허 왕후가 가야로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도착 즉시 그녀와 결혼합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전부터 아는 사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생깁니다. 혹시 수로왕 자신도 중국에서 들어온 이주민이 아니었을까요? 정황상 그럴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사실 가야의 지배층이 북방 유목민족, 그중에서도 흉노족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또 가야가 일본을 비롯한 남방 계통과 북방 계통 등 여러 이주민이 거쳐 간 지역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가야가 있던 한반도 남부는 동아시아 해상 교통로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는 주장입니다. 따지고 들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이 가야의 역사입니다. ---젊은 지성을 위한 삼국유사 1부 6장 … 여왕은 왜 그렇게 사찰 건립에 매달렸을까요? 그 시대는 이미 신라가 부처의 이상세계라는 믿음, 즉 신라 불국토설이 일반화되었던 시기입니다. 신라가 불교의 이상 세계이므로 그 중앙에는 수미산이 있고 수미산 위에 도리천이 있다는 믿음이 상당히 퍼져 있었습니다. 여왕의 사찰 건립은 자신의 종교적 믿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시대적 흐름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왕의 사찰 건립은 불국토의 한 가운데에 자신을 둠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정당성을 알리려는 몸짓이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여기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낭산은 신라의 진산으로 수미산과 같은 신성한 곳이라는 믿음이 일반화되어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이 낭산에 능을 만들어 거기가 도리천이 된 게 아니라 이미 그곳이 도리천이 있는 수미산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 중략 … 선덕여왕 재위 기간 내내 자질 시비가 있었다는 것은 여왕 재위 16년, 즉 그녀가 죽던 해에 일어난 비담의 난이 잘 말해줍니다. 상대등이었던 비담은 여왕이 정치를 잘못하고 있다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비담의 난이 있기 4년 전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계속된 침략으로 당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냅니다. 이때 당나라 황제는 “그대의 임금이 여자이기 때문에 이웃 나라가 깔보는 것이므로 나의 친족을 보낼 테니 왕으로 세우라.”고 말합니다. 사신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젊은 지성을 위한 삼국유사 2부 11장 … 사람들이 그를 보는 태도는 용과 지렁이의 차이에 있습니다. 용은 한없이 신비한 존재로 평범한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렁이는 비범하긴 하지만 용보다는 격이 떨어지고 결국 비극적 운명을 맞을 것이란 의미를 내포합니다. 호랑이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것은 이런 비극성을 더욱 강조할 뿐입니다. ≪삼국사기≫에 없는 또 다른 부분은 견훤이 아들들에 의해 금산사에 갇히던 날 아침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때 민간에 떠돌았다는 짤막한 동요 한 토막은 그의 비극적 운명을 극대화합니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견훤과의 불화로 고려 왕건에게 의탁하였으므로 ‘아버지를 잃고 눈물 흘리는 가엾은 완산 아이’는 견훤을 상징한다고 해석하지만, ‘아비를 잃은’이란 표현은 아들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의지할 데 없는 견훤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호랑이의 젖을 먹고 자란 영웅, 창을 베고 누워 적군을 기다리던 담대한 사람, 팔공산 전투에서는 신숭겸, 김낙 두 장수를 죽이고 왕건조차 혼비백산하여 도주하게 만들었으며, 왕건에게 내 터럭 하나 뽑아 보았느냐고 큰소리치던 영웅이 늘그막에 절 방에 갇히게 되었으니 아비를 잃은 아이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의미입니다. 한편으로는 포석정에 난입해 경애왕을 죽인 악당으로 그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연민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젊은 지성을 위한 삼국유사 4부 7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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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민족의 옛 이야기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을까. 나라와 민족의 형성, 더 근본적으로 ‘나’의 뿌리를 알려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중국의 동북아공정,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등으로 우리 역사가 훼손되고 폄훼될 때라면 더욱 그렇다. 현존 최고의 한국 고대사를 다룬 삼국유사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 역사와 문화의 원류를 찾는 귀중한 역사 공부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견되는 우리 문화의 정수 서양 문화를 이해하려 할 때 꼭 읽을 책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을 꼽는다. 그렇다면 우리 문화에서 이와 같은 위치에 있는 책은 무엇일까? 바로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는 한반도와 만주를 근거로 삶을 영위해 온 우리 민족이 만들어 낸 고대 문화로부터 지금까지 문화의 저변을 이루는 전통으로 생생하게 살아 내려오는 한국 문화의 원천이다. ≪삼국유사≫에는 고대 국가들이 일어서고 무너질 때마다 나타난 진기한 신화와 설화, 새로운 영웅들의 이야기가 넘치며 고대 국가들의 흥망과 전통, 그리고 한국 고대 문화의 근간을 이룬 불교 문화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연 스님은 당시의 중국 중심주의 사관에 맞서 민족의식과 자주의식을 가다듬고 ≪삼국유사≫를 엮은 만큼, 우리의 과거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역사에 대한 바른 지식과 안목을 키우고자 한다면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한국 고대사의 정수를 담은≪삼국유사≫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고대사를 다룬 ≪삼국유사≫. 이 책은 고조선을 한민족 최초의 국가로 언급하고, 중국 은나라 왕족 기자가 조선을 다스렸다고 하는 ‘기자조선 설’을 뛰어넘어, 위만조선을 고조선을 잇는 나라로 기록함으로써 우리 고대사의 근간을 밝힌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가 탁월한 이유는 이뿐이 아니다. 신라, 고구려, 백제 등 고대 국가들의 역사와 지리, 문학과 종교 등 문화유산을 풍부하게 담고 있어 민족 문화의 원천 또한 명백히 알려주고 있다. 이처럼 훌륭한 고전 역사서를 읽는 것은 우리 역사와 문화의 원류를 찾는 귀중한 역사 공부가 된다. ≪삼국유사≫는 고려 시대에 일연 스님이 편찬한 책으로, 고려 정부가 공식적으로 편찬한 삼국 시대 역사서인≪삼국사기≫와 대비되곤 한다. ≪삼국사기≫가 신라 정통론과 유교적 사대주의에 입각해 편찬된 역사책이라면,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중국 중심주의와는 차별되는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한반도와 만주에 세워진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인정한 것도 그러한 역사의식 위에서 가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