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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와 네프스키 대로의 지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 네바 강의 경마 겨울궁전의 무도회 옮긴이 해제 테오필 고티에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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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꿈꾸어 오던 미지의 도시에서 처음으로 외출하여 이리저리 거리를 거니는 것은 여행자가 맛볼 수 있는 가장 생생한 즐거움들 중의 하나이고, 여행자에게 여정의 피로에 대한 대가를 갑절로 치러 주는 일이다. 밤의 신비와 환상적인 부풀림, 불빛이 뒤섞인 어둠 덕분에, 그런 즐거움이 밤에 훨씬 더 커진다고 말하면, 지나치게 멋 부린 표현이 될까? 눈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상상력이 채워 넣는다. 현실의 윤곽선은 아직 그다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고, 화가가 나중에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은 그림처럼 풍경의 초벌 그림이 대략적인 윤곽을 드러낸다. ---p.21
“뭐예요! 바로 숙소로 돌아가는 거 아닌가요?” “맞아, 이런 날씨에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을 바깥으로 끌고 다니다니! 사람들 귀와 코를 얼게 만들려고 작정이라도 했소?” “우리는 여러분께 ‘러시아의 겨울’을 경험하게 해주겠다고 약속 드렸고, 그 약속을 지키는 중입니다. 게다가 오늘은 기온이 영하 7~8도도 안 되니, 거의 봄 날씨지요. 네바 강에서 야영하던 사모예드들도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걱정은 잡아 매시고 용감하게 우리를 따라오세요. 트로이카의 말들이 문 앞에서 발을 굴러 가며 조바심을 내고 있잖아요.” ---p.67 빛 조각들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그림들을 만들어 내는 만화경, 또는 확장과 수축이 반복되면서 화포가 꽃이 되고, 꽃잎이 왕관으로 바뀌고, 이윽고 루비에서 에메랄드로, 토파즈에서 자수정으로 변하며 다이아몬드 주위를 태양처럼 선회하는 회전 채광판에나 비유할 수 있을까. 무도회장은 마치 황금과 보석과 꽃들이 어우러진 이동식 꽃밭처럼, 끊임없이 요동치며 변화무쌍한 빛의 아라베스크 무늬들을 만들어 냈다 ---p.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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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얼음의 도시, 탐미주의자를 매혹시키다!
은빛 지평선 위의 금빛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들은 아무 데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뿐이다. 유용한 것들은 모두 추하다”(『모팽 양』 서문 중에서)라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던 예술지상주의자 테오필 고티에, 그가 1858년 어느 날 네바 강 하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항구에 발을 딛는다. 이미 스페인, 알제리,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등을 두루 둘러본 그였지만, 이 북유럽의 도시가 품고 있는 차가운 대기와 순백의 풍경은 퍽 낯설고도 매혹적인 것이었나 보다. “저녁이 여명처럼 흰색인 그곳, 은빛 지평선 위로 보이는 그 금빛의 도시보다 찬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십 줄을 바라보는 이 원숙한 작가는 도시의 풍경들을 차분하면서도 섬세하게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잠시 물었던 담배 끝에 얼음이 맺힐 정도의 추위, 그 추위 속에서도 멋을 부리는 데 여념이 없는 여인들, 러시아 특유의 마차인 드로즈키의 구조, 중심가인 네프스키 대로의 활기, 얼어붙은 네바 강 위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경마 시합, 겨울궁전에서 벌어지는 귀족들의 화려한 무도회 등 19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풍물이 그야말로 눈앞에 보일 듯 생생하다. 여기서 우리는 서구화에 대한 열망과 러시아 전통의 정신이 결합하여 독특한 매력을 뿜는 한 도시를, 그리고 그 도시를 서술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한 작가를 동시에 만나게 된다. 여행을 갈구했던 유미주의자 보들레르가 시집 『악의 꽃』을 헌정하며 “완전무결한 시인, 프랑스 문학의 완벽한 마술사”라고 극찬한 작가, 엄격한 예술적 형식을 통해 극한의 아름다움에 가닿고자 했던 작가답게 고티에의 문장은 이 여행기에서도 빛을 발한다. 허투루 사용되는 수식구도 없고 모호한 채 넘어가는 법도 없는, 그러면서도 유머와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그의 담백한 서술은 왜 그에게 ‘유미주의자’라는 타이틀이 붙는지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모팽 양』과 소수의 단편을 제외하고는) 고티에의 작품 대부분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서, 이러한 그의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시적 정서를 짧은 분량이나마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고티에는 20대 후반 스페인에 다녀온 후의 변화를 두고 후일 이렇게 썼다. “이제 내게는 돈을 좀 모아서 어딘가로 떠날 생각밖에 없었다. 병적일 정도로 강렬한 여행에 대한 열정이 내 안에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여행이 그저 단순한 일탈은 아니었던 듯하다. ‘유용한 것들’만이 넘쳐나는 일상의 ‘추한’ 속물성으로부터 벗어나 절대적이고 순수한 아름다움의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 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연, 혹은 그의 문학과 상상력에 공급되는 링거액이 아니었을까. 백색으로 반짝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는 어쩌면 그런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지였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작가가 밟아 나간 여행의 흔적은 세계를 꿈꾸는 그의 방식과 다를 바 없다. 열광과 흥취, 시적 감수성과 인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그들이 여행에서 느낀 행복을 독자들에게 여과 없이 전하면서 삶과 행복에 대한 열정을 일깨운다. 뒤마의 말대로, “여행한다는 것은 완전히 말 뜻 그대로 ‘사는 것’”이지 않은가!! 우리는 어떠한 감각으로 여행을 할 것인가, 나아가 어떤 삶을 꿈꾸는가? ‘작가가 사랑한 도시’에 포함된 특별한 여행기들은 넘쳐 나는 오늘날의 여행 정보들만으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 주고 또 그것을 음미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