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에드몽 아부의 ‘오리엔트 특급’ 여행지도
출발 열차 안에서 루마니아의 여름궁전 불가리아 횡단 보스포루스 해협 이스탄불 울부짖는 성직자들 축제 옮긴이 해제 에드몽 아부 연보 |
박아르마의 다른 상품
|
나는 오리엔트 특급이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침대차회사는 유럽 대륙의 모든 철로에 자사(自社)의 열차가 돌아다니도록 하고 한 번의 여정에 차례로 여러 철도회사의 열차를 빌려 운행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회사는 전적으로 프랑스?독일?스페인?이탈리아?러시아의 것일 수 없습니다. --- pp.15-16
이곳에서 맛있는 커피를 대접받았습니다. 그에 앞서 장미향 나는 셔벗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과 ‘제벨’ 담배산악 지방에서 나는 아랍 지역의 잎담배에 꼭 필요한 물 한 잔을 받았습니다. 이 담배는 환대의식에서 투르크식의 긴 담뱃대를 확실히 대체했습니다. 예전에는 사소한 방문이라 하더라도 온갖 정성을 다할 뿐 아니라 온갖 요리를 접대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집에서 담배 접대를 담당하는 하인 ‘시부지’가 손에 긴 담뱃대를 들고 여러분에게 다가옵니다. 그는 정성스럽게 거리를 가늠하고 구리나 은으로 만든 작은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그곳에 담배통 일체를 가져다 놓습니다. 다음으로 호박湖泊으로 된 끝으로 교묘하게 반원을 그리면서 여러분의 입술에 정확하게 파이프를 대 줍니다. 그 일이 끝나면 그는 숯을 파이프에 넣어 줍니다. 우선 자신이 문지방에서 익숙하게 담배 피우는 것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담뱃대를 다 사용했으면 각각의 파이프를 긁어내고 씻은 뒤 좋은 향이 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호박으로 된 끝은, 그것이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었건 아니건, 세심한 유지?보수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니코틴이 언젠가는 그 안에서 엉겨 붙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을 많이 초대하는 집이라면 긴 담뱃대를 정성껏 다루는 담당자가 필요합니다. 담뱃대 50개를 쟁반 위에 늘어놓고 예를 갖추는 전통이 존중되는 동방의 환영의식이 지켜집니다. --- pp.92-93 |
|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13일의 유럽횡단 기차여행!!
꿈의 열차 오리엔트 특급, 개통기념 특별편 출발!! 꿈의 열차 오리엔트 특급을 타고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떠난다! 1883년 10월 4일,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에드몽 아부는 국제침대차회사의 초대를 받아 유럽 대륙을 횡단하는 13일간의 기차여행을 떠난다. 그는 최신식 침대차의 호화로움과 곳곳에서 만나는 산해진미를 마음껏 즐기면서도, 보불전쟁의 승전금으로 지어진 뮌헨 역의 군사시설 같은 분위기, 루마니아의 여름궁전 낙성식에서 만난 국왕 내외의 인상, 오스만 제국에게 착취당하는 불가리아 농민들의 궁핍한 생활 등을 기록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는 또한 총 13일의 여행기간 동안 4일을 체류한 콘스탄티노플에 대해서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은 600년 동안 유지되던 강대국이었지만, 19세기 말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연달아 패배함으로써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한 발칸 반도 내의 많은 영토를 잃은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아부는 그러한 상황을 언급하면서도 돌마 바흐체 궁전의 화려함과 쿠르트 바이람 축제 현장, 회교 사원의 광신적 분위기 등을 잘 전달하고 있다. 상세하면서도 역동적인 여행 에세이의 모범이다. 오리엔트 특급의 첫 승객, 에드몽 아부 에드몽 아부(Edmond About, 1828~1885)는 독일 국경과 가까운 프랑스의 마을에서 태어났다(이 지역은 보불전쟁 이후 독일로 할양된 지역으로, 그가 유럽의 정치 문제에 민감한 저널리스트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는 그리스에 관심이 많아 23세에는 그리스에 2년 동안 머물며 책 읽기와 여행을 했고, 이 경험을 토대로 『동시대의 그리스』를 쓰고, 이후 발표한 『산들의 왕』으로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는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와 친교를 맺을 만큼 유명한 인물이었고, 그 덕분에 1883년 오리엔트 특급 개통기념 특별열차의 손님으로 초대받았던 것이다. 《19세기》 지의 편집장이기도 한 그는 저널리스트답게 여행을 정확하게 기록했다.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세력 구도, 오스만 제국의 역사와 정치 등에 대해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음이 그의 여행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에드몽 아부가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에 갔던 시기는 오스만 제국과 프랑스와의 교류가 많던 시기였다. 오스만 제국의 ‘근대화 사업’에 프랑스 정부가 적극 협조했던 탓이기도 하고, 당시 이 지역이 유럽의 고고학자들에게 인기 있는 발굴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콘스탄티노플을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 부른 바 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콘스탄티노플의 19세기 풍경을 에드몽 아부의 여행기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