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Leo Lionni
레오 리오니의 다른 상품
김난령의 다른 상품
|
단 한 번도 음악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생쥐 제럴딘. 어느 날 식품 저장고에서 엄청 큰 치즈 덩어리를 발견한 제럴딘은 친구들에게 부탁하여 함께 자신의 은신처로 옮기고 치즈 덩어리를 떼어 나누어 준다. 치즈를 갉아 내면서 두 개의 귀를 보게 된 제럴딘은 계속해서 치즈를 쏠고 갉아 마침내 꼬리로 피리를 부는 치즈 쥐 조각상과 마주하게 된다. 치즈 쥐 조각상은 밤마다 제럴딘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제럴딘은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빠져들어 새벽까지 듣고 또 들으면서 멜로디를 외운다. 그러던 어느 날 양식이 떨어졌다고 치즈를 내놓으라고 몰려온 생쥐들과 마주한 제럴딘은 치즈를 줄 수 없다고 외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음악이니까. 음악이 뭐냐고 묻는 생쥐들에게 제럴딘은 용기를 내어 스스로 연주하는 것에 도전한다. 꼬리로 피리 연주를 하는 제럴딘을 비웃던 생쥐들은 부드럽고 은은한 음악 선율에 감동을 받고, 음악인 치즈 쥐를 지켜 주기로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생긴다. 제럴딘이 내 안에 음악이 있으니, 치즈는 마음껏 먹어도 좋다고 한 것이다! 생쥐들은 제럴딘의 연주를 들으며 배불리 치즈를 먹는다.
|
|
레오 리오니의 자아상이 녹아 있는 캐릭터, 제럴딘
디자이너이자 아트 디렉터로 일하면서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로도 활동한 레오 리오니는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작가이다.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레드릭》에서는 들쥐 프레드릭이 등장하여 겨울 양식이 떨어진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따뜻함을 전한다. 여기서의 프레드릭은 시인을 표상하면서 작가 자신을 나타내기도 한다. 《음악가 제럴딘》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헛간 구석에 사는 생쥐 제럴딘은 어느 날 커다란 치즈 덩어리 안에서 피리 부는 치즈 쥐를 발견한다. 마치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큰 돌덩어리에서 다비드 상을 끄집어낸 것처럼! 이는 신기하게도 레오 리오니의 실제 경험과도 연결된다. 조각가였던 리오니는 인도에 들렀다가 시타르라는 악기를 접하게 되면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음악의 선율을 리오니는 금실, 은실로 시각화했다. 레오 리오니는 이 작품을 통해 음악이 주는 감동과 음악가의 역할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다. 제럴딘이 음악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면 배를 주리면서도 음악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몰입이 존재한다. 이는 실제 삶에서 직업인이면서 예술인으로 살아간 레오 리오니가 추구하는 예술가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음악 예술을 나누는 따뜻한 사회를 꿈꾸며 레오 리오니는 예술을 논할 때 관계 속에서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나 혼자 만끽하는 예술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나누는 예술의 힘에 대해 자주 역설한다. 《음악가 제럴딘》도 예외는 아니다. 해외 저널에서 “우정과 나눔, 그리고 음악이 가진 마법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준 작품”(스쿨 라이브러리 저널)이라고 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 제럴딘은 혼자 사는 생쥐이지만, 외곬이거나 욕심쟁이는 아니다. 친구들과 치즈를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자기 안에 음악이 있음을 깨닫고, 더 이상 치즈 쥐의 연주를 들을 필요가 없게 되었을 때는 아낌없이 치즈를 내어 준다. 그리고 배불리 먹는 친구들에게 음악을 연주해 준다. 아마도 제럴딘은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즐거워하는 친구들의 모습만 봐도 배가 불렀으리라. 당장 배를 곯게 되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음악을 놓을 수 없는 것은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정신적 풍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은 메마른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