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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물은 어떻게 존재하나
삼장법사와 손오공 ─ 014 본질 없음의 본질 ─ 019 나가르주나와 『중론』 ─ 025 형이상학의 수렁 ─ 031 2. 공은 무엇이 아닌가 여덟 가지 부정 ─ 038 『중론』의 변증법 ─ 043 존재와 비존재 ─ 048 색즉시공 ─ 055 3. 가는 놈은 가지 않는다 탄생의 비밀 ─ 062 무상과 공 ─ 067 가는 놈은 가지 않는다 ─ 073 과거·현재·미래의 몰락 ─ 078 4. 언어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주어와 술어 ─ 086 언어도단 ─ 092 선불교의 언어 ─ 097 공은 신비주의인가 ─ 103 5. 공으로도 윤리를 말한다 두 가지 진리 ─ 110 공의 실천 ─ 116 바라밀 수행과 무아윤리 ─ 121 죽음도 허무하지 아니한가? ─ 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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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말할 수도 있다. “저것이 있기에 이것이 있고, 저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이것이 소멸한다.” 지금 말하는 ‘나’는 시선에 따라 이것이고 또 저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을 알고 싶을 때, 거울 앞에 설 게 아니라 주위를 두리번거려야 한다. 이렇게 연기론은 타자에 대한 심각한 고려를 요구한다. 내 운명은 결코 내게 있지 않다. 그런데 ‘타자’는 무한히 번진다. 타자도 다른 타자를 통해서 성립한다고 할까. 이런 관계는 끝없이 계속된다. 그래서 견고하고 찬란한 타자나, 내 삶을 주재하시는 성스러운 ‘그분’ 혹은 내 안에 강림하신 ‘그분’을 상정할 수 없다. 그래서 ‘너’도 내 운명은 아니다. 불교는 초월자로서 실체나 내재성으로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 p.20
불교적으로 말하면 슬픔이나 기쁨은 삶을 떠받치는 하나의 형식이다. 이것을 전혀 무의미하다고 차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허구다.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에 우리는 자주 상처 나고 바보 같지만 그냥 당한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좀더 골똘히 생각하라는 바람이다. 나가르주나의 ‘사물이 공하다’는 주장은 철저하게 사물을 바라보라는 요구다. 실체론자나 본질주의자들은 저런 일자의 소멸을 상실이라고 하지만, 불교도는 그것을 자유라고 한다. 대단한 차이가 아닌가. --- p.36 공은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니라고 했다. 공은 사물의 실상이며, 그것이 일종의 태도가 되면 중도이다. 연기나 공, 그리고 중도를 하나의 묶음으로 취급하는 나가르주나의 의도를 간파해야 한다. 직관을 통해서 우주를 만나거나 신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우주나 신을 끊임없이 추상하는 나의 경향을 지우는 과정이다. 저런 습속들이 완전히 힘이 빠지면 우리는 공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지대에 진입하는 방식의 신비적 경험을 나가르주나는 경계한다. 그는 분명 ‘귀경게’에서 망상이 완전히 사라진 상황을 적멸, 즉 열반이라고 했다. --- p.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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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空 개념은 익숙한 사고에 대한 이의제기다!”
“손오공은 요즘 뭐하는지 모르겠다. 때 되면 한 번씩 텔레비전에 등장해 상상력을 자극했는데 요즘 도통 소식이 없다. …… 참, 그분 성함이 왜 오공(悟空)인가. 오공은 공을 깨닫는다는 말이다. 공은 또 무언가. 대승불교는 모든 존재가 공하다고 말한다. …… 대승불교에서는 ‘나’라는 실체 없음을 공하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주의해야 한다. 공이 있다고 표현하면 틀린다. 공이 있다고 하면 공이 실체라는 말이 되고 만다. 우리는 “무엇이 공하다”고 해야 한다. 자 그럼 오공씨의 이름은 ‘실체 없음을 터득하다’라는 뜻이다.”(본문 15~16쪽) 『공이란 무엇인가』는 불교사상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공(空) 개념을, 우리에게 익숙한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의 이름을 푸는 것으로 경쾌하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란 말은 유명하지만, 정작 공이란 어떤 것인지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한자가 빌 공이니, 비어 있는 것이 아닐까? 기(氣)나 에너지와 비슷한 건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저자 김영진이 말하고 있는 공이란 것은 익숙한 사고에 대한 이의제기이며, 존재의 본질은 사실 없는 것이고 슬픔도 기쁨도 알맹이가 없는 것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작동하는 것이다. 공은 세계를 보는 방식이자 삶의 방식이다! ‘모든 존재자는 서로 의존해서 발생한다’는 연기(緣起)법을 기반으로 해서 발생한 공 개념은 실체론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고, 고통의 극복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입장을 가질 수도 있다. 불교에서 시작된 개념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이렇게 ‘불교’와 ‘철학’이라는 이름에 눌려 혹시라도 그냥 간과해 버려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공이라는 개념은 삶을 개척하겠다는 불교인들의 불굴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며, 어떤 사건을 마주했을 때 감각이 과장되어 감정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딱 그 사건 만큼만 볼 것을 주장하는 삶의 방식이자 태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수도 없이 겪게 되는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감정이 어떤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삶을 떠받치는 하나의 형식이고, 그것이 반드시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허구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나가르주나(용수)의 “사물이 공하다”는 주장은 그런 허구에 계속해서 다치고 상처받지 말고 사물과 사건을 있는 만큼 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사물이 무상하다고 하는 것은 사물이 변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실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이란 것은 ‘사물이 다 껍데기’라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사물이 변하지 않고 소멸되지 않는 실체(본질)를 갖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세상에 영원하거나 제1원인에 해당할 만한 독립적인 실체가 없는 것을 불교에서는 ‘자유’라고 한다. 견디기 힘든 큰일을 당했을 때,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을 때 그때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 모든 사건을 정면에서 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보다 골똘히 생각하는 것. 사물을 철저히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길이며, 일상에서 ‘공’ 개념을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