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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7
약어표 9 서론 _ 모더니티의 계보학 15 1장 _ 모더니티의 시작 41 서문 / 중심을 비운 무대 배경 / 시각적·철학적 경험의 역사성 / 유사의 경험 / 왕의 자리에 있는 유사의 인간 / 재현의 경험 / 재현의 가시성 / 재현이 왕의 자리를 차지하다 / 유사의 지속과 예술가의 신격화 / 인간의 경험 / 인간의 장소와 관람자의 위치 / 근대적 가시성과 재현의 붕괴 / 결론 2장 _ 단절 95 서문 / 해체적 관점을 위해: 고고학의 목적 / 고고학의 도구들 / 고고학과 회화 / 마네: 아르시브의 예술가 / 콰트로첸토 시대 회화의 관습 대체하기 / 재현 안에서 재현의 물질적 조건 나타내기 / 콰트로첸토 시대 조명의 도식 대체하기 / 추함을 이용하기: 마네의 「발코니」 / 관람자의 위치 / 타블로-오브제 / 힘의 놀이로서의 회화: 폴 레베롤의 작품 / 결론 3장 _ 비확언적 회화 157 서문 / 고전주의 회화의 두 가지 원칙 / 지시 대상을 침묵시키기: 유사와 상사의 구별 / 유사의 폐지에서 흉내 내기로 / 단어와 이미지의 습격: 분리 원칙의 소멸 / 클레와 분리 원칙: 읽어야 할까 보아야 할까? / 급진적인 공격 / 말과 이미지의 변형 / 캘리그램이 와해될 때 / 결론 4장 _ 반-플라톤주의 205 서문 / 플라톤주의의 윤리적 지향 극복하기 / 근대적 이미지 사유하기 / 들뢰즈, 푸코, 그리고 플라톤주의의 전복 / 앤디 워홀과 차이에 대한 사유 / 자유의 양식화: 제라르 프로망제 / 복장 도착자 이미지의 반-플라톤주의 / 이미지의 사건 해방시키기 / 사유와 감정 사이: 동일성의 창조와 이의 제기 / 이미지의 전략: 사유-감정의 창조 / 결론 5장 _ 견유주의의 유산 267 서문 / 『성의 역사』에 대한 수정 / 자기에 대한 근대적 의식 / 주체성과 미 / 미와 진실: 소크라테스의 사례 / 견유주의적 전복 / 역사를 초월한 윤리적 범주로서의 견유주의 / 근대 예술의 견유주의적 진실 / 가시적 진실로서의 파레시아 / 견유주의의 전략과 근대 예술에 대한 기대 / 결론 그림 목록 319 참고문헌 320 |
Joseph J. Tan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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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예술, 특히 현대 예술을 부당한 합의에 반대하는 능력, 우리의 관습에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지닌 반문화적 힘으로 이해한다. 푸코가 칸트의 철학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푸코에게 예술은 그것이 자리잡고 있는 윤리적-정치적 현실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푸코의 에세이들이 마침내 학계의 관심을 끌게 된 덕분에 이 주제에 대한 그의 사유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책 전반에 걸쳐 내가 주장하듯 푸코는 이 같은 계보학적 관점에서 근대의 이미지를 분석하려고 시도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역사적 특수성이라는 관점에서 예술을 사고하고 분석하려는 시도이자, 근대 예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예술 집합체에 형태를 부여했던 예술사 안에서 파열의 순간들을 지목하려는 시도이다.
--- p.20 인간이 출현하면서 「시녀들」 앞에서 추던 춤이 다시 한 번 중단된다. 관람자는 (즉 인간은) 화가를 (즉 재현을) 무시하면서 이 최고의 권좌와 관련된 모든 특권을 거머쥔다. 화가, 즉 실제 화가인 벨라스케스가 왕과 왕비를 캔버스에서 추방시켰던 것처럼 관람자, 즉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의 벨라스케스실에서 작품 앞에 서 있는 실제 관람자는 재현의 시대를 극복한다. 그리고 이후로 자주적인 행동으로 장면의 다양한 요소들 간에 관계를 확립하는 사람은 바로 이 관람자가 될 것이다. 장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에게 이 위치를 양보하라고 강요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는 이 위치에서 요구되는 모든 과제를 수행하도록 제작되었으니 말이다. --- p.83 회화가 더 이상 재현의 요구에 지배되지 않을 때 회화는 외부의 대상을 포착하려는 야심을 포기하게 된다. 포스트-재현적 회화는 미술품이 제공하는 장면이 더 이상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종속되지 않는 완전한 가상의 공간에서 작용한다. 아무튼 우리는 미술의 이미지가 이제 현실 자체에 힘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더니티의 시기에 미술은 그 모형을 추월하고 대신 그 자리에 자신을 내어 주려는 경향을 보인다. 푸코는 근대 문명의 이러한 시뮬라크르적 요소가 그렇게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파이프가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p.201 개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견유주의자들의 결심은 바르고 곧은 삶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키기도 한다. 철학적 전통 안에서 곧은 삶이란 개개인의 로고스와 비오스 사이에 일관성이 존재하는 삶이었다. 따라서 모름지기 철학자가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 해야 할 임무는 자신의 존재를 관습과 법뿐 아니라 본성에 맡기는 것이었다. 진실한 삶이란 한편으로 본성을 좇아 살기 위해 전념하고 자연스러운 가치관을 옹호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철학은 자연의 세계와 빈번하게 대립하는 인간의 관습과 사회적 법칙에 대한 존중을 드러낸다. 견유주의는 동물성을 열렬히 지지하는 가운데 바로 이 후자의 경향을 끊임없이 부인한다. 따라서 푸코는 개의 삶을 ‘짖기’와 ‘구별하기’로, 간단히 말해 선과 악, 악덕과 미덕,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을 구별할 줄 아는 것으로 묘사한다(GSA2: 3월 14일, 26). --- p.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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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기획,
예술을 통해 존재를 변화시키다 푸코는 어떻게 예술을 통해 새로운 사유를 꿈꿨는가? 『푸코의 예술철학: 모더니티의 계보학』의 저자 조지프 J. 탄케는 17세기 회화와 현대 미술에까지 이르는 대한 푸코의 방대한 예술 비평을 추적한다. 푸코는 자신의 저작들을 통해 독자들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길 촉구한다. 푸코 사유의 중심은 정상성에 대한 회의로서, 개성을 지닌 개개인이 근대 이후 자발적 복종에 이른 과정에 천착한다. 권력은 통치를 위해 이상적이고 표준적인 인간상을 만들고, 학교와 사회, 미디어를 통해 이 표준적인 인간상을 강요한다. 그러므로 개성을 지닌 인간은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표준에 도달하려 노력하고, 이제 국가는 더 이상 강압적으로 국민을 복종시키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여기는 사고체계, 가치관, 지식은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권력의 산물임을 밝히는 것이 푸코 사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틀을 해체하여 그 안에 감추어진 침묵의 소리를 드러냄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사고할 가능성을 열고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며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기 위한 모색이 푸코가 추구하는 철학이다. 푸코가 예술을 활용하는 목적 또한 권력에의 자발적 복종에서 벗어나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푸코는 계보학적 비판에 대한 개요에서 ‘미학적 경험’에 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데, 이는 우리의 존재를 고민하는 데 예술이 필수 요소임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에세이는 예술사나 화풍의 발전 혹은 변화를 언급하기보다, 푸코의 사유를 바탕으로 각각의 예술 작품이 새로운 존재 형태를 빚어가는 과정, 작품이 그 출현에 영향을 미치는 현장에 응답하고 그 현장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탐구한다. 작품은 그 자체로 실재하는 일련의 사건으로서 역사를 만들고 변형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에, 푸코는 역사적 특수성이라는 관점에서 예술을 사고하고 분석한다. 벨라스케스, 마네, 마그리트, 세계의 재현에서 재현의 파괴까지 1장에서는 푸코의 『말과 사물』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종합하면서 18세기에 근대 미술을 특징짓는 중심 주제인 유한성,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 회화의 물질성에 대한 강조 등이 출현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모더니티에 대해 설명한다. 「시녀들」은 『말과 사물』에서 안내자 역할을 하는 동시에 모더니티가 시작될 무렵 서양의 지식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시각적 형태로 보여준다. 푸코가 다루는 모더니티는 새로운 철학적 사고방식이 예시된 형태로서 세계 내 문제를 진지하게 숙고할 수 있는 구실이 된다. 푸코는 모더니티를 시대로 바라보기보다 에토스, 즉 현재에 균열을 내고 현재를 낯설게 만들며 현재를 철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게 하는 태도로 바라본다. 그러므로 푸코는 자신이 시도한 분석 형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개념으로 모더니티 개념을 제시한다. 2장에서는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을 다루면서 회화가 재현에 대한 요구로부터 멀어지게 된 과정을 탐구한다. 마네의 작품이 수세기 동안 내려온 시각적 전통을 어떤 식으로 파괴하는지 설명하고, 『지식의 고고학』을 중심으로 예술에 대한 푸코의 접근 방식을 설명한다. 마네가 회화의 재현적 요소를 버림으로써 서양 회화의 전통을 근본적으로 바꾼 과정과, 이어 폴 레베롤을 통해 파열과 단절이 이루어진 과정을 살펴보는 한편 포스트재현적인 작품을 통한 사유 방식을 고민한다. 가령 푸코가 예를 든 마네의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바탕으로 한다. 「올랭피아」는 1865년 살롱전에 전시되면서 엄청난 격분을 일으켰는데, 티치아노가 이상화한 여성상을 뚱뚱한 매춘부로 대체하고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용함으로써 분노를 촉발시켰다. 게다가 19세기 파리의 성매매 종사자를 통칭하는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여 매춘부가 사랑의 여신의 세속화된 모습임을 확인하게 했다. 이처럼 푸코는 권력의 장치를 넘어서서 사고를 전복시키고 경계를 허물어 침묵에 목소리를 부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다. 3장에서는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분석한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회화의 지시적 기능을 침묵하게 만든다. 마네와 마그리트 모두 재현에 의해 확립된 감상 양식을 조롱하는 작품들인데, 특히 마그리트는 작품과 세계의 관계가 서로 종속되지 않는 공간을 마련하고, 확언과 유사를 분리하며 상사를 창조함으로써 새로운 사유의 형태를 만든다. 마그리트는 회화가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에 대해 말할 권리를 취하면서 지시적 기능을 침묵시킨다. 이렇게 마그리트는 재현을 철저히 파괴함으로써 기계적인 생각을 멈추게 하고, 숨어 있는 목소리를 드러내며, 익숙한 영역에 자신의 작품을 한정시키지 않기 위해 확언을 중단한다. 감춰진 것을 드러내고, 낡은 도덕을 극복하다 4장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 능력을 기르기 위해 질 들뢰즈, 앤디 워홀, 제라르 프로망제, 듀안 마이클에 대한 푸코의 글을 소개한다. 듀안 마이클의 사진 작업을 살펴보면서 사진의 발전과 보급, 사진을 통해 어떤 형태의 새로운 보기가 가능해지는지, 그로 인해 회화는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 탐구한다. 또한 듀안 마이클에 관한 푸코의 에세이를 통해 ‘비신체적 물질성’에 대한 윤리적 평가에 관한 담론을 살펴본다. 사진과 회화는 역사적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안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새롭고 복합적인 이미지를 제공한다. 듀안 마이클의 작품은 낡은 도덕성을 거부함으로써 시뮬라크룸에 대한 윤리적 사유를 제공하고, 전통적 미학 담론과 대조적으로 이미지의 비실재성을 찬양하는 예술철학을 전개한다. 듀안 마이클의 이미지들은 작품의 사유-경험을 관람자의 정체성과 뒤섞으며 관람자를 자신의 한계 너머로 안내한다. 마이클의 실험은 정체성, 사유, 주체성이 그 자체로 환영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방식임을 환기시킨다. 정체성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사건을 비추려는 시도,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려는 노력, 타인과 우리 자신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는 이미지의 힘은 마이클 작품의 고유한 특징이다. 5장에서는 고대 견유주의에 대한 푸코의 해석을 통해 근대 예술 특유의 진실의 형태가 아스케시스(자기 수련)와 파레시아(진실 말하기) 사이의 연결을 어떻게 다시 전개하는지 살펴본다. 푸코에게 근대 예술은 진실 말하기의 반문화적 형태로서 근대 예술가들은 이러한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 윤리적 수고를 해야 한다. 이 훈련을 통해 예술은 문화적 변화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권리를 얻게 된다. 한편 푸코는 마그리트, 워홀, 프로망제, 마이클 등의 예술가들을 모네와 같은 모더니티의 영역 안에 포함시킨다. 그들의 제작상의 전략이나 외형은 크게 다르지만 고고학적 측면에서는 마네와 같은 유형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시뮬라크르적 문화의 산물은 예술이 포스트-재현적 운명을 펼치는 방법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한편 이들은 재현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려 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푸코는 예술적 삶, 예술가의 삶은 진정한 예술을 증거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견유주의적 생활양식이 모더니티 안에서 추구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견유주의는 아첨과 미사여구 없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솔직하고 거침없이 행동해야 한다는 삶의 태도를 지향한다. 견유주의에 따르면 예술가, 예술적 삶은 예술 작품과 불가분의 관계로, 진실하지 않은 말과 태도는 예술에 곧장 반영되고 나아가서 실존 자체가 예술이 된다. 이러한 견유주의 철학을 실천하려면 기존의 삶에 파열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 과정은 예술 작품이 모더니티로 향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새로운 윤리학으로 향하는 푸코의 미학 벨라스케스에서 앤디 워홀에 이르는 푸코의 비평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모더니티의 형성 과정이다. 푸코는 모더니티를 한 시대가 아닌 태도, 즉 한 사람이 현재와 맺는 관계로 바라본다. 그리고 예술이란 자신을 만든 현장과 그에 대한 응답을 모두 보여주므로 우리는 예술의 형성 과정에서 모더니티 그 자체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의 존재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된다.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소위 ‘미학적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푸코는 예술, 특히 현대 예술을 부당한 합의에 반대하는 능력, 우리의 관습에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지닌 반문화적 힘으로 이해한다. 역사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계보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주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미완으로만 여겨졌던 푸코의 미학이 어떻게 새로운 윤리학을 위한 단초가 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