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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 4
1부 불투명한 심연의 존재, 감각 사물 §1. 감각 사물에의 이력 ─ 13 §2. 심연의 불투명성, 또는 불투명한 심연 ─ 20 §3. 절대 이성에 따른 존재와 인식의 명증 ─ 26 §4. 실현 불가능한 이성의 욕망 ─ 33 §5. 칸트가 제시한 불투명한 심연의 존재 ─ 42 §6. 불투명성의 근원, 감각 사물의 영토 ─ 59 §7. 감각 자체와 더불어 지각되는 개별 사물을 무시한 사유들 ─ 71 §8. 감각 사물 ─ 84 2부 불투명성의 현상학 I. 후설: 불투명성의 실마리 ─ 97 §1. 후설의 명증성 원리 ─ 98 1) 후설의 명증성 정의 ─ 99 2) 충전적 명증성과 필증적 명증성 ─ 104 §2. 후설의 명증에 대한 물음 ─ 107 §3. 후설의 고뇌 ─ 110 §4. 원인상의 원초적인 불투명성 ─ 114 §5. 후설의 두 얼굴: 명증한 본질 필연의 세계와 불투명한 개별 착종의 생활세계 ─ 119 II. 하이데거: 존재의 불투명성 ─ 123 §1. 존재의 불투명성과 이해 ─ 124 §2. 현존재의 존재인 마음 씀과 존재의 불투명성 ─ 129 §3. 불안과 무를 통한 존재의 불투명성 ─ 134 §4. 불투명한 존재의 근원적 불투명성을 견뎌 내는 방책, 시작(詩作) ─ 140 III. 마르셀: 내 몸에서 열리는 신비 존재의 불투명성 ─ 145 §1. 불투명성의 형이상학 ─ 146 §2. 신비의 불투명성 ─ 163 IV. 사르트르: 주체의 투명성과 존재의 불투명성 ─ 167 §1. 존재의 근원적 우연성과 불투명성 ─ 169 §2. 의식의 대자존재성과 절대적 투명성 ─ 175 §3. 존재의 불투명성과 의식의 투명성 사이의 완전한 균열 ─ 179 §4. 즉자의 끈적끈적함, 충동 ─ 183 V. 메를로-퐁티: 몸과 살의 불투명성 ─ 187 §1. 존재 본질적 차이에 의한 몸의 불투명성 ─ 188 §2. 몸의 불투명성을 드러내는 개념들 ─ 191 §3. 살의 불투명성에 의한 존재론적인 전복 ─ 199 VI. 레비나스: 타자와의 관계의 불투명성 ─ 209 §1. 존재의 익명성 ─ 211 §2. 존재로부터의 존재자의 발생 - 히포스타시스(hypostasis) ─ 221 §3. 빛과 이성에 대한 비판 ─ 226 §4. 고통과 죽음의 타자성 ─ 228 §5. 타자와 타인 ─ 231 §6. 에로스적 공동체 ─ 236 §7. 마무리 ─ 238 VII. 리쾨르: 텍스트 세계의 불투명성 ─ 241 §1. 텍스트를 통한 주체의 매개적인 자기 이해 ─ 244 §2. 텍스트에서의 거리 두기 ─ 249 §3. 텍스트에 앞에서의 자기 이해의 전유 ─ 253 §4. 리쾨르의 신적 불투명성 ─ 257 VIII. 데리다: 현전과 부재 너머의 불투명성 ─ 261 §1. 후설의 의미 현전에 대한 비판 ─ 263 1) 현전 문제의 시발 ─ 263 2) 후설의 의미론 ─ 266 3) 후설의 기호론 ─ 268 §2. 후설의 음성 중심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 ─ 272 §3. 데리다의 근원 문자의 비현전 ─ 275 §4. 데리다, 부재의 불투명성 ─ 278 3부 불투명성, 심연 그리고 충동 §1. 탈-도구의 환원, 절대적 잉여인 감각 사물 ─ 285 §2. 감각 사물과 뇌 ─ 289 참고문헌 ─ 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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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일체의 존재를 통일하고자 하는 이성의 욕망은 존재적인 강압에 따른 것이 아니기에 존재론적으로 성취될 수 없다. 이에 이성으로서는 존재 자체가 자신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무작정한 우연성 즉 절대적 우연성을 지녔음을 ‘절대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존재의 그 절대적 우연성 앞에서 ‘아연실색 무릎을 꿇고서’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저 존재의 근원적인 모호함을 불투명하게 표상할 뿐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의식에서 발휘되는 인식을 위한 최고 능력인 이성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어마어마한 전투를 치렀지만, 결국에는 이른바 ‘존재의 심연’을 망연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 존재의 심연을 ‘불투명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일종의 ‘전쟁고아’와 같은 신세를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이성은 일체의 존재를 통일하고자 하는 욕망을 저버릴 수 없고, 존재의 심연을 향해 곤두박질을 쳐서라도 그 실현 불가능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몸부림치게 된다. 이에 이성의 욕망은 존재의 심연을 향한 충동으로 급변한다. --- p.41 마르셀은 체화된 나 자신이 지닌 불투명성을 외부 세계의 불투명성에 대한 바탕으로 보면서, 제아무리 세계 자체의 저 내밀한 곳으로 파고 들어가더라도 결국 불투명성을 마주하게 될 것인데, 그 심연에서의 불투명성마저 체화된 나 자신에서 성립하는 내 존재가 갖는 불투명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후설이 의식 작용인 노에시스와 의식 대상인 노에마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지향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 것과 비교해 볼 때, 그 출발과 내용은 다를지라도 그 구조는 똑같다. 후설이 명증성을 중심으로 지향성을 제시했다면, 마르셀은 불투명성을 중심으로 지향 관계를 제시했다고 할 것이다. 마르셀이 제시한 이러한 불투명성의 지향 관계는 가장 명료하다고 여기는 관념들에까지 관철된다. --- p.159 메를로-퐁티가 제시하는 유기체의 행동에 관한 이러한 해석에서 핵심은 순수한 외부의 환경과 순수한 유기체 내부의 질서가 결단코 정확하게 구분될 수 없고,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각의 현상학』에 와서 ‘세계에의-존재’(l’etre-au-monde)라는 개념으로 발전한다. 이는 몸이 세계 속에 있으면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 세계에 적응함으로써 세계와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본질적인 성향을 지녔음을 말하고, 아울러 체화된 의식 역시 몸처럼 그러한 성향을 지니고 심지어 반성하는 의식이나 정신 역시 본질에서는 몸처럼 그러한 성향을 지닌다는 점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 p.193 레비나스는 유아론적인 자기의 물질성인 고독에 빠진 주체에게는 시간도 역사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제 ‘죽음=타자=미래=신비’를 통해 진정한 시간이 열리고 인간관계가 열리고 역사가 열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레비나스는 우리의 삶에서 사회와 역사가 작동하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이미 이러한 죽음의 사건이 늘 도래하고 있음으로써 작동한다고 말하는 셈이다. 우리 나름으로, 죽음의 사건이 도래하고 절대적인 낯섦과 타자성의 신비가 엄습해 오는 것을 불투명성의 사건으로 읽게 되면, 레비나스가 보는 사회와 역사를 지평으로 하는 일상은 곧 불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그러한 불투명성을 통해 오히려 고독과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 p.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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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 있는 것은 어둠이다”
심연을 품은 존재인 인간, 그 불투명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현실을 채우고 있는 불투명한 존재, ‘감각 사물’ 『불투명성의 현상학』은 후설부터 하이데거, 마르셀,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리쾨르, 데리다까지 8명의 유력한 현상학자들의 사유를 ‘존재의 불투명성과 심연’이라는 화두로 엮어 독자적 논의를 전개한다.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현상학은 불투명한 존재를 적발하고 그것이 왜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가를 밝히는 철학적 사유이다. 그렇다면 불투명성이란 무엇인가? 불투명성은 이성으로 대표되는 투명함, 명증함과 대조된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의 근원적인 불가능성과 ‘존재’의 무한 깊이의 심연 두 가지를 오가며 작동한다. 결국 우리의 인식은 존재의 근원적인 불투명성을 다만 명시적으로 확인할 뿐이며, 이때 ‘존재의 불투명성에 대한 명증한 인식’이라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불투명한 사태를 확인하는 계기가 곧 사물과 감각의 굳건한 결합, ‘감각 사물’을 통해서다. 감각 사물은 주체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순수 객관적인 사물도, 주체의 감각적 관념의 결과물만도 아닌 존재이다. 삶이란 근본적으로 불투명하다는 것, 그것이 진실 중의 진실이다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되는 이성의 논리는, 존재하는 사태는 근본적으로 명증하다고 전제해 왔다. 만약 어떤 사태가 명증하지 않다면 사태의 탓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사태를 명증하게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을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너머에서 찾는 ‘절대 이성’을 내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존재와 인식이 그토록 명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러한 명증성을 벗어난 불투명하고 어두운 영역이란 정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불투명성의 현상학』은 저명한 현상학자들의 사유로부터 불투명한 심연의 존재가 드러나는 대목들을 뽑아 논의를 전개해 나감으로써, 각 사상가들이 사물의 존재 앞에서 자신의 이성적 사유를 어떻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핵심 원인이 사물과 감각의 굳건한 결합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칸트가 말한 ‘사물 자체’에서 존재의 불투명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고, 그로부터 ‘감각 자체’에서 존재의 불투명성을 정립할 수 있었다. 현실을 채우고 있는 불투명한 존재를 ‘감각 사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이 감각 사물은 대표적인 불투명성의 현상학자라고 일컬을 수 있는 메를로-퐁티의 살 존재론에서 특별히 부각된다. 메를로-퐁티는 데카르트가 추구했던 명증성 내지는 투명성에 대립하면서 오히려 몸의 불투명성을 근본으로 내세우고자 했다. 결국 불투명성은 이성, 반성하는 의식에 대한 불투명성이다. 그리고 존재가 불투명하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세계 자체 역시 근원적으로 불투명함을 함축한다. 나와 세계의 불투명성을 투명하게 드러내기 그렇다면 근원적으로 불투명한 우리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불행한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불투명성을 긍정 또는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식하고자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삶의 근원적 불투명성이 오히려 인간과 세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살펴 온 존재의 불투명성에 견주어 보면, 언어는 근원적으로 불투명함을 바탕으로 해서 발설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성 내지는 지성으로써 고정할 수 있는 낱말이나 문장의 의미를 활용해서는 결코 시를 쓸 수도, 읽을 수도 없다. 하이데거의 이러한 시작으로서의 언어관에서 우리는 존재의 불투명함이란 기실 그 자체 그저 무의미함을 의미한다거나 도무지 넘어설 수 없는 단단한 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중략) 요컨대 근원적으로 불투명한 삶을 견뎌 내는 것은 우리가 겪는 인고가 아니라, 알고 보면 우리가 존재자 전체를 포섭하면서 그 전체의 밑바탕에서 움터 나오는 시적인 의미를 끌어들여 보호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저 불투명한 심연을 품은 존재에게로 넘겨주고 아울러 저 존재를 나의 존재로 넘겨받는 상호교환적인 거대한 작업이다. (143쪽) 존재의 정체를 파헤치고자 하는 것은 인식의 욕망을 가진 인간의 숙명이다. 그러나 존재는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무한한 깊이의 어둠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만다. 소크라테스는 “놀라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철학자의 상태”라고 말했다. 존재론적 우연 앞에 놀라움 혹은 물음을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재의 불투명성을 탐구하기를 권한다. 우리의 존재와 삶은 근원적으로 감각 사물이 가져다주는 강렬한 힘에 휩쓸리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불투명성을 극복하기보다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이 책은 ‘나와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막막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든든한 나침반과도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