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윤백남
윤백남은 백남白南 윤교중尹敎衆은 1888년 충남 논산군 성동면에서 윤시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열여섯에 도일渡日하여 스물둘에 도쿄관립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스물다섯 되던 1912년에 조일재와 극단 문수성文秀星을 조직하여 ≪불여귀≫ 등을 공연하며 신파개량을 시도하였고, 1916년에는 이기세와 예성좌藝星座를 조직하여 ≪코르시카의 형제≫, ≪카투샤≫ 등의 서구 근대극 공연을 시도하였다. 극단 해산 후 《매일신보》 기자생활을 하면서 ≪안조화≫를 시작으로 소설 집필을, ≪국경≫, ≪운명≫으로 희곡 집필을 시작하였다. 1920년에는 한국 연극사 최초의 본격적 연극운동론인 「연극과 사회」를 발표하고, 예술협회를 조직하여 민중극 운동에 나섰다.
1923년에는 민중극단 단원들을 주축으로 총독부 체신국 제작 ≪월하의 맹서≫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1925년에는 백남프로덕션을 창립하며 ≪총희의 연≫을 감독했다. 20년대 후반부터 신문연재소설과 야담 운동, 라디오 방송활동에 투신하여 ≪대도전≫, ≪흑두건≫ 등의 역사소설 창작, JODK 초대 제2방송과장 재직, 《월간야담》 주간 등 식민지 조선 대중문화계 전반에 발자취를 남겼다. 1936년부터 해방 전까지 만주와 간도에 거주하였다. 해방 직전 귀국하여 국민대학관(국민대학교의 전신) 설립운동에 관여하였고, 해방공간에서 야담 및 강연활동을 벌였다. 1949년 ≪회천기≫를 시작으로 신문연재소설 집필을 재개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군에 투신하여 중령으로 복무하였고, 1952년 전역 후 서라벌예술대학 초대학장으로 근무하였다. 1954년 9월 29일 서울 충신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소천하였다.
편자 : 백두산
백두산은 전북 부안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였고 동 대학원에서 「윤백남 희곡 연구: 문예운동과의 관련양상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1920~30년대 희곡과 연극, 공연문화에 대하여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