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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사할린 한국어 교육자 삶의 기억
1. 사할린 한인과 모국어 교육 2. 사할린 한인의 민족정체성과 한국어교육 3, 교육자 생애사 연구 경향 4. 사할린 한국어 교육자의 생애 연구방법 2장 공노원: 사할린 한국어교육의 산증인 1. 공노원의 어린시절 2. 공노원의 학창시절 3. 공노원의 사회생활 4. 공노원의 그리운 기억들 5. 공노원과 한국어교육 3장 박승의: 한국어교육의 맥을 잇는 운동가 1. 박승의의 어린시절 2. 박승의의 학창시절 3. 박승의의 사회생활 4. 박승의와 조국의 만남 5. 박승의와 한국어교육 4장 허남훈: 대를 이은 한국어 교육자 이야기 1. 허남훈의 어린시절 2. 허남훈의 의미있는 기억들 3. 허남훈과 한국어교육 4. 허남훈의 고국생활 5장 황은순: 다시 태어나도 한국어 교사로 1. 황은순의 어린시절 2. 황은순의 학창 시절 3. 황은순의 특별한 기억 4. 황은순과 조국 방문 6장 마무리 저자소개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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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일본의 영토였던 남사할린은 한인의 땀과 고혈로 얼룩진 역사의 현장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남사할린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보고이자 쿠릴 열도와 함께 태평양 방어의 거점이었다. 일본제국주의는 자원 개발을 위해 대량의 노동력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만주사변(1931년)을 시작으로 전쟁이 장기화되자 1938년에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였다. 일본의 본토와 식민지, 점령지를 대상으로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총동원 정책을 실시하였다. 한인을 동원하여 동원노무자, 군인, 군무원, 위안부 등으로 배치시켰다. 일본은 동원된 사람들에게 강제 노동을 강요하고 일정의 임금을 지불한다고 약속하였지만 현재까지 약속 받은 급여조차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와 기업에 1990년 초부터 소송을 하고 있지만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일관하여 패소하거나 기각되어 개인 청구권조차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인을 모집한 방식은 세 가지 방법 즉, 할당 모집(1938년~1945년), 국민 징용국민 징용(1939년~1945년), 관 알선(1942년~1945년)으로 진행되었다. 첫째, 할당 모집할당 모집은 조선총독부의주도로 노무자를 모집, 송출하는 방식이다(박봉수, 2016). 송출 지역과 할당 인원을 결정하고 허가하면 지역 행정 기관이 기업을 통해 모집 담당자와 함께 노무자를 송출하였는데 이때 수송책임은 행정기관과 해당 기업이 담당하였다. 둘째, 국민 징용은 국민징용령 및 국민직업능력신고령에 의해 일본 정부가 직접 선정하여 징용영장을 발부하고 송출하는 방식이었다. 행정기관이 직접 노무자 선정에서 수송은 물론 식량 조달과 인력 관리를 하였다. 셋째, 관 알선은 사업자 또는 대행 단체가 선정하면 조선총독부가 모집 지역과 인원을 결정하고, 조선총독부와 지방 행정기관, 경찰, 조선노무협회, 직업소개소 등이 협력하여 노무자 선정에서부터 송출하는 책임도 각 기관이 공동으로 담당하였다. 이처럼 많은 한인이 일제에 의해 남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되면서 본격적인 노동이주가 시작되었다. 사할린 한인은 탄광, 군수공장 벌목장 등에서 인권을 유린당한채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은 해상 연료 운반이 어려워지자 사할린 한인 노동자사할린 한인 노동자를 일본 큐슈로 이중 징용시켜 아직도 생사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에 유가족들은 ‘사할린주 한인 이중징용광부 유가족회’를 결성하여 적극적으로 책임의 소재를 규명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인들은 모두 본국으로 송환되었지만 한인들은 귀환시키지 않아 무참히 버림을 받았다. 심지어 일본으로 귀환하기 전 한인들이 소련군과 협작하여 일본인들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무고한 한인 27명을 무참히 사살하였다. 사할린 포자르스코예에는 그 때 희생당한 27인의 한인을 애도하는 비가 세워져 그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증명하고 있다. 사할린 한인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사할린에 억류되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아야만 했다. 사할린 한인들은 일본과 소련의 틈바구니에서 한인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국적자무국적자로 편견과 차별의 고통을 겪어 왔다. 그렇지만 사할린 한인은 강제징용이라는 긴 통한의 설움을 우리 민족이 지닌 고유의 성실함으로 극복하였고, 특히 자녀들을 위한 민족 교육민족 교육에 힘썼다(박봉수·김영순, 2016). 이런 노력들은 사할린 도처에 역사와 장소를 통해 알 수 있다. 한인 밀집 지역에 조선학교를 설립하여 모국어 교육뿐만 아니라 민족사상과 민족의 전통 문화교육을 추진해 왔다. 이런 추진의 중심에는 당연히 한인 교육지도자들이 기여해 왔다. 그 결과 사할린 한인들이 민족 정체성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민족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교육운동교육운동은 사할린 한인들의 자발적인 운동이었다는 것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한국이민사박물관, 2015). 물론 사할린 한인들에게 민족 교육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1963년 소련 정부는 조선학교 전면 폐교령을 내렸으며, 이에 따라 우리 민족의 정체성 계승에 위기를 가져왔다. 소련은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에게 모국어 교육 및 모국어 사용 금지 정책을 시작했다. 모국어 사용과 습득 기회를 박탈당해 온 한인들은 식민과 피식민의 관계에서 제대로 된 민족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사할린 한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주국 사회의 제한된 기회구조 내에서 신분상승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현재 사할린 한인 3세, 4세는 가정 내에서도 부모들과 러시아어로 의사소통하고 한민족의 역사, 문화에 관한 지식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계승은 어려운 실정이다(김인숙, 2012). 그 이유는 3세, 4세들의 한국어한국어에 대한 열정도 높지 않으며 한국어를 모국어로 여기기보다는 외국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임엘비라, 2010). 이는 사할린 한인들의 민족 정체성 해체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본 저술은 사할린 한인 사회에서 오랫동안 민족 교육에 힘 써 오신 4명의 민족 교육 지도자들의 삶을 다룬다. 이들의 공헌을 통해 사할린 한인 사회의 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며, 이런 그 들의 수고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재러 지역의 한국어교육한국어교육에 대한 연구는 주로 러시아 대륙의 한국어교육(빅토르 코쥐마코, 2006; 한용, 2010), 한국학에 관한 연구(권세은, 2012; 김경일, 2003; 김형규·장호종, 2008; 레브 콘체비치, 2007; 반병률, 2004; 장호종, 2006) 등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사할린 지역의 한국어교육에 관한 연구로는 민현식(1998), 임엘비라(2010), 조현용·이상혁(2011), 김인숙(2012) 등이 있을 뿐이다. 민현식(1988)은 사할린 지역의 한국어 환경에 대하여 조사하였으며, 임엘비라(2010)는 페레스트로이카 이전과 이후 사할린 지역의 조선학교 현황을 검토하였다. 또한 조현용·이상혁(2011)은 사할린 지역의 언어 환경과 한국어 교재의 문제점 파악에 주목하였고, 김인숙(2012)은 사할린의 한국어교육기관은 어떤 교재와 보조 교재로 어떻게 교육하고,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를 연구하였다. 이와 같은 선행연구에서는 한국어교육의 현황조사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한국어교육을 실질적으로 담당하였던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바로 한국어교육의 일선을 담당했던 한국어교육가들이 어떤 연유에서 이 일을 시작했고, 어떤 방법으로 한국어를 가르쳤고, 어떤 마음으로 임하여 왔는지 등에 관한 생애사적 내용들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사할린 한글 교육한글 교육의 역사적 증인으로 살다가 영주귀국한 모국어 교육 경험을 지닌 4명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사의 삶은 어떠하였는지를 생애사적 연구 방법생애사적 연구 방법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또한 이들이 노령자라는 점에서 사진을 통해 기억을 재생시키는 포토텔링 활용 방법포토텔링 활용 방법을 사용하여 역사의 상흔을 치유할 목적도 달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소련의 모국어 사용 금지 정책으로 25년 동안 민족어 습득의 기회를 박탈당해 온 척박한 환경에서 다음 세대에게 모국의 문화와 모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남다른 사명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들 한국어 교사의 기억을 기록하고자 한다. ---「사할린 한인과 모국어 교육」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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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기억하고 계승한다는 것
독일의 언어학자 훔볼트는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이 깃들어 있다.”라고 했다. 이는 언어 안에 한 민족의 삶과 가치가 함축되어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힘들고 척박한 역사 속에서 한국어의 계승에 일생을 바친 사할린 한인 한국어 교육자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사할린 한인 후속 세대들이 상호간 한국어로 소통하고 민족문화를 지켜나가기를 즐거워하는 배경에는 이들 사할린 한인 한국어 교육자들이 있다. 자랑스럽고 고마운 이들의 이름은 바로 공노원, 박승의, 허남훈, 황은순 님이다. 이들이 한국어 교육자로 사할린 한인 사회에 기여한 이야기를 네 개의 장으로 엮었다. 우선 1장 ‘사할린 한국어 교육자 삶의 기억’에서는 사할린 한인과 모국어 교육, 사할린 한인의 민족정체성과 한국어교육의 관계 등을 살펴보고, 이 책에서 활용한 생애사 연구 방법에 관한 선행연구와 생애사 연구의 방법론적 측면을 기술하였다. 2장부터 4장까지는 각 한국어 교육자의 생애사를 연대기별로 적었다. 2장 ‘공노원: 사할린 한국어교육의 산증인’의 생애사 주인공은 공노원이다. 그녀는 1941년 5월 사할린에서 5남 3녀의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유즈노사할린스크시 국립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화학교사의 길을 걸었다. 더욱이 24년의 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어를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사할린 한국어교육에 과감히 도전했다. 러시아 사할린에서는 사할린주 한국어교사협회장으로, 제9 동양 어문학교 한국어담당 교감으로, 삼육대학동양학과 과장으로, 사할린유치원 한국어교육 담당자로 활동했다. 공노원은 2007년 10월 영주 귀국하여 사할린 한국어교육협회 부회장으로 사할린 현지의 유치원한국어교육과 사할린 동포의 모국방문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한국어를 보급하고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녀는 한국어 교육자로 일제강점기 사할린 유족회 인천지부장으로, 동북아 평화연대 고려인 사업부 자문위원으로 일하면서 인천고려인문화원에서 고려인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3장 ‘박승의: 한국어교육의 맥을 잇는 운동가’의 생애사 주인공은 박승의이다. 박승의는 1942년 사할린에서 태어난 한인 2세대로, 75년을 사는 동안 국적이 6번이나 바뀌었다. 1945년까지는 일본인으로, 1945년 해방 후에는 무국적자로, 1958년부터는 북한 공민으로, 1970년에는 소련 노동자로, 1990년 소련 붕괴 후에는 러시아 연방 국민으로 살았다. 2010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부모님들이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박승의는 대학 졸업 후 교육자를 꿈꾸었으나 이방인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현실의 벽에 꺾여 꿈을 잊었다. 그리고 소련의 성실한 노동자로 20여 년을 살았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포기한 줄 알았던 꿈에 다시금 설레며 누구보다 열과 성을 다하여 한국어교육의 횃불을 들고 앞장서 왔다. 박승의는 사할린 한인에게 잃어버린 조국을 되돌려주기 위해 조국과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회복하는 길은 사할린에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한국어교사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한결같은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정진해왔다. 4장 ‘허남훈: 대를 이은 한국어 교육자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허남훈이다. 그는 사할린 원년 세대의 대표적인 한국어 교육가 중 한 분이다. 충북 충주시 소태면 야동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사할린으로 이주했다. 그의 아버지(허조)는 광복 이후에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할린동포들을 위해 토마리에 조선학교를 세웠다. 허남훈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프로나이스크 사범대학을 졸업하여 한국어 교사가 되었다. 그는 단순히 한글을 가르친 교원이 아니라, 평생을 바쳐 사할린동포들에게 한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킨 교육자였다. 그는 70여년을 사할린에 살다가 2009년 3월 영주귀국으로 조국에 돌아왔다. 허남훈은 한국에서의 남은 생도 누군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5장 ‘황은순: 다시 태어나도 한국어 교사로’의 주인공은 황은순이다. 그녀는 12남매 중 11번째 딸로 1938년 사할린 토마리 베린스크에서 태어났다. 황은순의 아버지는 북한 출신이고 어머니는 부산 출신임을 기억한다. 황은순의 부모님은 일제 시대에 일본 정부가 사할린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선전하였고 이를 믿고 이주했다. 황은순의 가족은 대가족 이었기에 그의 어린 시절은 늘 가난했다. 해방 후 조선학교가 생기고 황은순은 이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조선학교의 선생님들은 대개 북한에서 온 파견 노무자였거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고려인들이었다. 조선학교를 다녔던 탓에 소련어를 잘 못했다. 그래서 상급학교를 유즈노사할린스크 사범전문학교 조선어과를 가게 되었다. 이것이 한국어 교사가 된 이유이다. 황은순은 1960년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크라스오고르스크 10년제 조선학교의 담임교사로 한국어를 담당하면서 첫 교직을 시작했다. 그 첫 날의 사진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이들 네 분의 한국어 교육자들은 무엇 때문에 한국어교육에 헌신했는가? 이들은 왜 그렇게 고독하고 처절하고 힘든 길을 걸었어야 했는가? 이들에게 한국어 교육은 개인의 숙명은 물론 사할린 한인의 염원이었다. 이 책에서는 이들이 겪은 생애 경험들이 어떻게 한국어 교육가로 열매 맺어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들이 한국어 교육자로 헌신하게 된 동기가 된 것은 부모님의 조국과 고향을 향한 향수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한국문화와 한국어교육의 전수를 몸소 현장에서 실천하시고, 은퇴하신 후에도 지속적으로 사할린 한인의 민족교육에 힘쓰고 있는 이들의 노력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들어 한류 열풍으로 한국문화와 한국어교육이 전 세계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한국어의 밝아진 현실은 이들 사할린 한국어 교육자들과 같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한국어교육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신 분들에게 분명 빚지고 있다고 본다. 어두운 한국어 교육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이들의 노력을 우리는 존중해야 하며, 그들이 지닌 ‘한국어 혼’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 최근 들어 정부와 한국어 교육학계에서는 신남방 국가 및 신북방 국가를 대상으로 한국어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정책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느 때보다 한국어교육의 극적인 확대가 전망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라는 교육학적 격언이 있다. 이를 염두하면 한국어 교사의 질적 향상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한국어 교육자를 꿈꾸는 학문수련자들이여! 이들 사할린 한국어 교육자들이 행한 ‘한국어 혼’을 부디 기억하길 바라는 바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인근에는 인천 남동 사할린 센터와 사할린 영주귀국자 집거 단지가 있어 이들과의 만남은 용이하였다. 무엇보다 사할린 한인 지역활동가인 디아스포라연구소 소장 박봉수 박사님은 이 분들과의 라포 형성은 물론 자료수집과 인터뷰 수행하기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일들을 맡아주셨다. 아울러 함께 자료수집과 전사록 분석 그리고 생애사 쓰기에 이르기까지 수고를 해주신 공동저자 임지혜 박사님과 김정희 박사님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약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교정본을 보면서 사할린 현장답사 지역이었던 유즈노사할린스크와 코르사코프 항구의 ‘망향의 동산’을 회상하였다. 동토의 땅 사할린... 바로 그 곳에서 열정을 바치신 한인 한국어 교육자, 이들은 한국어교육의 현장에 있는 우리에게 ‘한국어 혼’의 교훈이 되었다. 우리도 이 분들의 길을 따라 걸어 보자는 다짐으로 서문을 맺는다. 2020년 새해 아침에 저자 대표 김영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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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교육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하지만 쏟아지는 논문이나 보도 자료들을 보면 정책적 성과나 학습자들의 열기에 비해서 그 뒤에 자리한 교육자의 노고와 헌신은 상대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한 감이 있다. 언젠가 꼭 조명해보고 싶었던 한국어 교육자에 대한 연구가 본 『사할린 한국어 교육자의 생애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간의 한국어교육의 양적 성과에 대한 연구가 이러한 질적 연구로 전환되고 있는 점은 학술적으로도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에서 외로움과 고단함을 이기면서 묵묵히 교육의 길을 걷고 있는 수많은 한국어 교육자들이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의 가치를 다시금 다지고 이제 한국어교육이라는 거대 포장에 쌓여 있는 개개인의 가치와 동기, 그리고 열정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강현화 (세종학당재단 이사장,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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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할린 한국어 교육자의 생애 이야기』에서 우리는 사할린 한인 한국어 교육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제에 의해 동토의 땅 사할린으로 끌려왔던 한인들, 지치고 힘든 이들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민족혼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이 책에서는 평생 동안 한국어를 지켜나갔고 한국어교육에 헌신했던 네 분의 한국어 교육자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아울러 한국어가 모국과의 연을 이어주고 한인 사회의 끈이 되며, 민족 정체성 유지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또한, 이 책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연구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시사점을 주기에 관련 분야 연구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앞으로 다른 한인 이주민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한국어 교육자 생애사 연구가 이어지길 희망한다. - 김선정 (계명대 국제처장, 계명대 글로벌한국어문화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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