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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허튼 노랫소리 제2부 남해의 노래 봄 바다 살비린내 175 점 하나 177 일출 179 彌助島의 하지 180 水墨의 비 오는 바다 183 펄떡이는 숭어 185 미조 앞바다 187 바다 낯빛 188 겨울 바다 189 눈길을 비워라 192 불두화 변주곡 194 관세음보살 불두화 196 낮달이 불두화다 197 일흔이 불꽃을 품을 수 있을까 199 忘我 - 203 새벽의 까마귀 204 태풍이 몰아치는 새벽에 206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거 208 세밑의 안부 211 屍 - 213 한 여자와 한 남자 215 消失點 - 216 사람을 긍정하라 217 물음이 사그라지다 219 붉게 호흡하다 221 늙은이의 눈물샘 223 덩어리 225 낯선 삶 227 사랑 230 그냥그냥 끼적거리던 어느 날 232 흰 돌이 236 의미의 값을 계산하기 239 해설 장석원 음악이여 입을 열어라 - 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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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 울었다. 아기였다. 아기이니 울었다.
그냥 울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울었다. 어른이 서러워 울었다. 사는 게, 숨 쉬는 게 좋아서도 울었다. 기쁘고, 화가 나고, 슬프고, 두렵고, 사랑하고, 싫어해서, 욕망이 있어 울었다. 울음을 뒤집으면 웃음이 되었다. 웃음의 그늘에 울음이 살고 있었다. 삶이, 웃음 옷에 숨꽃이 울음이었다. 울음꽃이었다. 울음은 꽃소리였다. 어려서부터 꽃을 땄다. 화환을 머리에 얹기도 하고 꽃다발을 품고 꽃길을 걸었다. 소리울음이 그대와 나를 오갔다. 춘삼월 벚꽃만큼이나 해 길이는 짧았다. *** --- 「허튼 노랫소리 12.」 중에서 소금쟁이. 물 위에서, 물을 디디면서, 뛰어다니면서,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 소리도 몽땅 삼켰다. 하늘을 쳐다보고, 물속을 꿰뚫어 보면서, 물도 아니고, 땅도 아니고, 허공도 아니고, 자기만의 평면 속에 살아가는 허깨비. 빠져 허우적거리지도 않고, 가벼워 날리지도 않는 자기 붙박이로 숨을 쉬는 도깨비. 자기이되 자기가 없는 諸法無我. 몸뚱이보다 기다란 네 다리. 실처럼 가느다란 다리. 모두 비웠다. 모두 버렸다. 모두 잊었다. 모두라는 단어도 사라졌다. 형해만을 보여 주는 존재. 있음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불안이나 걱정이 본디부터 존재하지 않는 곳. 세계 내 존재, 현존재라는 놀이언어가 없는 곳에 산다. 諸行無常. 걸어온 시간의 궤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소리조차 무거워 들을 수가 없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고 소금쟁이는 그만의 세계를 만들어 노닌다. 空으로 살아가는 소금쟁이. 부처가 연꽃을 들지도 않고, 마하가섭의 미소도 모르는 곳에 산다. 涅槃寂靜. 엊저녁에는 보살이 와서 소금쟁이를 바라보다 돌아갔다. 부처가 되리라. 저녁 범종소리가 멀리멀리 퍼져 나가다가 잔잔한 호수 수면에 이르러 소멸하는 곳에 소금쟁이가 산다. 소금쟁이는 하늘의 달빛, 물속의 달빛, 그 사이에서 산다. 月印千江之曲이 흐른다. *** 彌助島의 하지 지금껏 달려왔다 부풀어 오르기만 했던 뜨거움 쉼 없이 세차게 빛을 만들었다 무한의 어둠은 빛으로 얼룩졌다 울긋불긋 손 가는 대로 덧칠한 그림들이 온 누리를 덮었다 찢고 부수고 감췄다 걸어온 길들이 생각들이 바벨탑이 되었다 그리고 되풀이해서 무너졌다 선택은 언제나 당신이 하는 것 삶의 짓거리가 정점에 오른 일흔 살 하지에 미륵섬 어깨에 기대어 끝내 희망으로만 그려 본 빛을 하늘 끝까지 밝혀 본다 하늘이여! 주름살 가득 늙은 구름은 새벽부터 나를 괴롭혔다 안간힘에 구름을 깨고 붉음을 뿌렸다 울먹울먹 메마른 노래의 빛방울이 바다 위로 흐드러졌다 기다랗게 환하게 그리고 뜨겁게, 바다는 眞如요, 파도는 無明이라 무명의 빛방울은 희디희게 탈색되었다 천천히 기울어 돌아갈 길만 남았을까 내가 뿌린 빛에 여름은 시작되고 태풍도 불어올 거야 기억들은 뜨겁게 세상을 달구겠지 회색 바다는 에메랄드빛을 지웠다 섬 뒤로 바다 그림자 어둡다 彌助, 미륵이 손길을 내민다 *** --- 「허튼 노랫소리 95. 逍遙遊.」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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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散詩는 허튼 노랫가락이다. 散調가 허튼가락인 것처럼. 시로 쓰인, 시로 불리고, 시로 읽히는 노래. 시이지만 산문이나 정형화된 시라는 형식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생김새를 갖는다. 생김새는 소리와 빛으로 이루어진다. 소리와 빛은 흐른다. 생동하는 우주 생명과 율파로 가득 찬 이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생김새를 빚어낸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생김새를 지닌다. 생김새는 그 자체로 생명을 품는다. 무수한 생김새가 하나의 생김새로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 이를 노래하는 시도 하나의 생김새로 그 흐름에 동참한다. 생김새는 모양새와 짜임새로 이루어진다. 생김새는 본디 흐르며 변화한다. 생김새는 열려 있음이다. 이 시집에서 새로운 모양새와 새로운 짜임새로 한껏 열려 있는 생김새가 드러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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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우리를 에워싼 “소리들”로 “우주” 삼라만상의 “생김새”를 받아 적으려는 저 “율파”의 움직임을 보라. 아니, “사람이 소리이고/소리가 사람이다”, “생명이/보고/듣고/만지고/느끼는 것/모두 가슴을 할딱거리는 숨꽃”에 깃든 원초적 생명의 권리장전을 온몸으로 느껴 보라. “살아감이 시나위./생명의 숨꽃, 시나위소리”일 수밖에 없을 “散詩”가 뿜어내는 空과 無明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라. 어쩌면 “허튼가락”의 “율파”가 흩뿌려 놓는 저 광대무변한 우주적 感應이야말로, “허상이었을까/헛된 거드름이었을까”라는 성찰의 시간을 읊조리도록 강제하는 존재의 불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휘어진 하늘길 따라/삶은 존재를 굶주린 채/하루의 노동을 마감”하는 덧없고 덧없을 우리 모두의 삶의 무게를 일깨우는 것일 수밖에 없기에.
그리하여, 이 시집은 나날의 생활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우리의 몸과 살을, 소리와 색과 문양이 단 하나의 “리듬”으로 여울져 흐르는 웅숭깊은 존재의 신비로 이끌어 갈 것이리라. 황봉구의 “散調”, “허튼가락”이란 이미 있는 것들의 나눔과 가름과 붙박임을 빠짐없이 가로질러, 세상의 모든 것들과 더불어 울려 나는 감응의 확산력을 내뿜으면서 크로스오버의 과감한 자취로 번뜩인다. 아니,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무수한 소리와 색과 문양이 하나의 “리듬”을 타고 흐르는 공감각의 터전 위에서 일렁인다. 그리하여 다시, 이 시집이 불러오는 저 현란한 엇갈림의 “리듬”이야말로 횡단성의 휘황한 빛살로 드리워질 것이다. - 이찬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