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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몸의 고유성
에피소드 1 | 메모하는 맹인 여성 갑자기 앞이 깜깜해지다 진공 팩에 보존된 능력 되돌아가 밑줄을 칠 수 있다 신체와 두뇌의 상호작용 이미지에 의한 피드백 종이뿐 아니라 책상까지 본다 그림 속에서 헤매다 매일 관광버스 단체 여행 중 여기저기 흩어진 나를 되찾다 에피소드 2 | 봉인된 색깔 0=짙은 분홍, 1=어두운 하양 점자를 만지면 머릿속이 번쩍거린다 머릿속 이미지 원하지도 않았는데 다가온다 색깔을 할당하다 머릿속이 번쩍거리는 현상의 원인 추상화의 중단 봉인된 색깔 색을 섞을 수 없다 비밀의 화원 에피소드 3 | 요령이 기능을 보완한다 제어라면 자신 있다 자동 제어에서 매뉴얼 제어로 하반신 과잉보호의 시기 다리의 재발견 기억과 현실의 어긋남 남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운동의 기억 환지 발가락과 발바닥 절단 이후에 생긴 요령 잘 쓰는 쪽 다리의 변화 에피소드 4 | 아프지 않지만 아픈 다리 선천적 장애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 다리의 기능이 팔에도 있다 계단에 착 붙는 움직임 어디까지나 자동 제어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다리 다리에 의식을 기울이다 오른쪽 다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아픈 것 같은 느낌 고무손 착각 현상 감각을 예측하는 뇌 에피소드 5 | 문화적으로 설치된 감각 집단적 기억 ‘자리가 다섯’인 레스토랑 경험의 패턴 서로 다른 묘사 분위기인가 추체험인가 등 뒤에서 느끼는 기척 추리소설과 보청기 후천적인 귀 갓난아기 같은 소리 들리지 않기 때문에 들린다 에피소드 6 | 장애와 테크놀로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손 몸속에 들어온 환지 시시각각 변하는 헛통증 팔의 마지막 기억 거실이 연구실로 변하다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장애와 테크놀로지 팔의 기억이 향하는 곳 에피소드 7 | 왼손의 기억이 없는 오른손 기억의 부재 의수와의 거리감 사회적인 기능 양손의 감각을 모른다 오른손이 왼손을 원하지 않는다 이름 같은 것 변화를 앞두고 에피소드 8 | 가상현실을 통한 훈련 전통 의상을 입은 구도자 목소리를 내어 내 몸을 깨우다 속세를 떠나서 헛통증 완화 VR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양손의 감각을 떠올리다 텔레비전 화면 한가운데 하얀 손 가상의 손 이미지를 교체했다 아무도 걸어본 적 없는 길 에피소드 9 | 저마다의 고통과 체념의 힘 ‘재일조선인 3세’ב난치병’의 이중 소수자 저린 발, 가는 손 샌드위치가 날아가버리다 의식하지 않는 기술 여름에는 장작불, 겨울에는 바늘 이것은 내가 아니다 몸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미 아픔은 나누어 가지고 있다 ‘헌신’도 아니고 ‘밀쳐내기’도 아닌 안심하고 절망하기 에피소드 10 | 말더듬의 플래시백 듣기 좋은 말투 보는 것조차 두렵다 일인칭 대명사를 통일하다 안정적으로 흔들리는 법 꽃이 말해주다 플래시백의 공포 끌려 들어가는 현상 말하는 시스템의 취약함 기억은 자신을 초월한다 에피소드 11 | 기억할 수 없는 몸 언어화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 도무지 알 수 없다 감을 잃어버리다 몸에 맡길 수 없는 어려움 자기 자신을 되찾는 탐정 객관과 실감의 격차를 메우는 법 에필로그 | 신체의 고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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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인 법칙이든 무의식적인 법칙이든, 우리가 경험을 통해 획득하는 규칙은 궁극의 로컬 룰(local rule) 같은 것입니다. 일제히 구호를 외치면 여러 사람이 같은 박자를 맞추기 쉬운 것처럼, 몸에는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합리적인 법칙도 있습니다. 반면 특정 사람에게만 통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이상해 보이는 로컬 룰도 있지요. 기업이나 관청 같은 사회적 단체의 로컬 룰은 해당 조직의 체질을 강하게 반영합니다. 마찬가지로 몸의 로컬 룰은 말 그대로 그 사람 몸의 로컬리티, 즉 고유성을 만들어냅니다.
--- p.15 친절한 도움이기는 하지만 당사자는 과잉이라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화장실에서 레나 씨는 빨리 볼일을 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는데, 도와주는 사람은 사정도 모르고 시시콜콜 화장실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레나 씨도 상대방의 친 절한 마음씨를 잘 알기 때문에 말을 끊지 못합니다. 마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지만 어디선가 필시 일어날 법한 일입니다. 결과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장애가 있는 사람을 연기하도록 강요받는 일이 벌어집니다. --- p.45~46 오마에 씨는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으면 본질적으로 몸에 대해 의식적으로 관여하기를 요구받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마디로 ‘자동 제어에서 매뉴얼 제어로 이행하기’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도 가능했던 일어서기, 걷기, 보기, 말하기 같은 동작을 의식적으로 제어하면서 실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p.78 헛통증은 절단 부위, 즉 환지가 ‘있느냐 없느냐’보다는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는 쪽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팔이나 다리를 이미 절단했음에도 뇌는 팔다리를 움직이라고 지령을 계속 내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팔다리가 움직였다는 감각 정보의 피드백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움직일 것’이라는 예측과 ‘움직였다’는 결과 보고 사이에 괴리가 일어나는데, 이 같은 불일치가 통증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뇌가 기억하고 있는 팔다리의 움직임’과 ‘팔다리의 현실적인 움직임’이 어긋나기 때문에 헛통증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 p.86~87 후천적 장애인의 몸에는 종종 ‘장애를 입기 전 몸의 기억’과 ‘현재의 몸’이 더블 이미지처럼 겹쳐 있습니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약간 불가사의한 갖가지 현상이 생겨납니다. --- p.101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중에는 어릴 적부터 수화를 통해 소통하면서 성장한 덕분에 수화를 쓰는 사람의 고유 한 감각 방식이나 정보 처리 방식을 발달시켜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청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수화라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보는 시각을 배우고, 수화를 바탕으로 한 문화를 통해 자기 자신을 형성해왔기 때문입니다. --- p.288 |
한 사람의 몸은 정말 하나뿐일까?
: 하이브리드 신체론에 관하여 바쁠 때 우리는 종종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물리적으로는 분명 단 하나의 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1인 1몸이다. 그런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저자는 한 사람의 몸이 마치 여러 개로 중첩된 듯 기능하는 독특한 현상을 발견해내고, 이를 ‘하이브리드 신체’ 혹은 ‘몸의 복수화(複數化)’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우선, 후천적 장애인의 몸에는 종종 ‘장애를 입기 전 몸의 기억’과 ‘현재의 몸’이 겹쳐져,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약간 불가사의해 보이는 갖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예컨대 성인이 되면서 시력을 완전히 잃은 시각장애인 레나 씨는 말하면서 언제나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단지 필기구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 전에 글씨를 썼던 곳으로 되돌아가 강조하기 위해 동그라미를 치거나 밑줄도 긋는다. 이전에 써놓은 글자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메모 행위가 영상처럼 기록되어 머릿속에 이미지로 저장되었음을 의미한다. 레나 씨는 손의 운동 기억을 단지 재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종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의 몸은 정말 하나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몸이 하나지만 실제로는 두 개의 몸을 사용하는 듯 보이거든요. 예를 들어 앞에서 얘기한 니시지마 레나 씨는 전맹(全盲)인데도 대화를 나누면서 메모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장애가 없었던 시절의 습관이 맹인이 된 지 10년이 지나서도 없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레나 씨는 앞이 보이지 않는 몸으로 살아가는 동시에 앞이 보인다는 전제를 깔고 몸을 다룹니다. (중략) 현재 살아가는 몸은 장애가 있다고 해도 기억 속에는 건강했던 시절의 경험이 쌓여 있습니다. 비장애인의 기억이 새겨진 몸으로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는 일, 이것이 그들의 몸이 하나가 아닌 둘로 보이는 원인입니다. ‘다중 인격’이 아니라 ‘다중 신체’인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후천적 장애인에게만 몸의 복수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 장애인에게서도 하이브리드 신체의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분척추증이 있는 간바라 겐타 씨는 상반신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감각이 없는 하반신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위아래로 전혀 다른 유형을 지닌 두 개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 때때로 그에게는 상반신에서 경험한 기억이 하반신으로 옮겨지는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통증의 경험이 그러한데, 간바라 겐타 씨의 발은 생리적으로 통증을 느낄 수 없지만, 피가 나는 것을 보면 마치 아픈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 중에는 독서를 좋아해서 책을 통해 비장애인의 관점이나 감각을 몸에 익히는 사람도 있다. 생리적으로는 장애가 있을지언정 문화적으로는 비장애인의 몸을 획득한 셈이다. 또한 비장애인 중심인 세계에 이물감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만의 몸을 만들어가며 공존시키는 수많은 사람들도 있다. 생태심리학이나 신경심리학 등의 분야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미학을 전공한 저자가 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은 시각으로 서술하는 다양한 사례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전문가에게만 알려져 있던 현상을 신선하고도 쉬운 문장으로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지적인 탐구로 이끄는 책이다. 나와 다른 몸을 가진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 압도적인 고유성을 발견해내는 일 『기억하는 몸』은 다소 특수한 사례를 통해 기억과 몸의 관계, 그리고 경험이 만들어내는 신체적 지혜에 대해 고찰하지만, 여기에 담긴 통찰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사실상 세상에 특수하지 않은 몸이란 없기 때문이다. 당신과 똑같은 순서로 옷을 입고 똑같은 보폭으로 걸으며 똑같은 속도로 호흡하고 똑같은 각도로 컵을 기울여 물을 마시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무의식적인 습관이나 경험, 기억이 우리의 몸을 어떤 식으로 작동시키고 자기만의 고유성을 만들어내는지, 그동안 보지 못한 매력적인 방식으로 풀어가는 이 책은 또한 개개인의 차이에 온전히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타인을 섬세하게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몸짓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런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에 형성된 신뢰가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비판단적인 자세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누군가의 서사를 세밀하게 끄집어내며, 담백한 서술은 의도치 않은 경이를 불러일으킨다. 이에 소설가 김초엽은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장애인의 신체를 멸시하거나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신체만이 갖는 ‘압도적인 고유성’을 발견해내는 저자의 섬세한 시선이 책을 덮고 난 이후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면, 앞으로는 그에 대해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순히 잘 모른다기보다는, 애초에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고. ‘A 씨의 몸’은 실제 A 씨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는 본인이 아니면 ‘A 씨의 몸으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감각인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몸의 내력을 알게 된다면 더는 타자의 몸이 미지의 대상은 아닙니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말더듬이 당사자들과 이야기 나누었던 일화를 언급한다. “만약 눈앞에 말더듬을 고칠 수 있는 약이 있다면 먹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먹지 않겠다고 대답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장애는 보통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물론 많은 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며, 저자와 직접 대화했던 당사자들도 ‘애쓰거나 의식하지 않아도 말이 술술 나오는 감각’을 체험해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말더듬 증상이 영원히 사라지는 약은 필요 없다고 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장애 자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겠지만 저자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말더듬을 비롯해 어떤 장애를 가진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장애가 있는 몸과 더불어 살아가고, 무수한 탐색과 요령을 쌓음으로써,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편한 몸을 만들기 위해 분투해온 기나긴 시간의 축적이야말로, 유일무이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몸으로 그 사람의 몸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요? 한마디로 ○○이라는 ‘속성’이 아니라 자기 몸과 함께 지내온 ‘시간’이야말로 그 사람의 신체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요? (287쪽) 『기억하는 몸』은 시간의 축적을 통해 형성되는 몸과 정체성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기억만이 전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의 몸은 역동적이고 유동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몸에 개입할 수 있다. 시행착오 끝에 요령을 발견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기 몸의 가능성을 새로 발굴해낼 수도 있다.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몸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의식적인 개입이 가져다주는 인위적 결과로서의 몸이 공존한다. 바로 그 점이 인간 신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임을 보여주는, 놀랍고 경이로운 몸에 관한 기록이다. |
이토 아사가 들려주는 열두 장애인의 이야기에는 오직 그들의 개별적인 몸으로만 경험할 수 있는 고유한 감각 세계가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서로의 삶을 상상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지, 이해하기는 얼마나 쉽게 실패하고 마는지, 그럼에도 그 미완의 이해가 또 한번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확장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장애인의 신체를 멸시하거나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신체만이 갖는 ‘압도적인 고유성’을 발견해내는 저자의 섬세한 시선이 책을 덮고 난 이후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 김초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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