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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남자
조르주 페렉 연보 주요 저술 목록 작품 해설 |
Georges Per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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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땀에 흠뻑 젖어 있다. 너는 몸을 일으킨다, 너는 창문을 닫으러 간다. 너는 초소형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튼다, 너는 젖은 목욕 장갑으로 네 이마며, 네 목이며, 네 어깨를 닦아내린다. 양팔과 두 다리를 웅크린 채, 너는 폭 좁은 장의자에 모로 눕는다. 너는 두 눈을 감는다. 네 머리는 무겁고, 두 다리는 저릿저릿하다. --- p.18
너는 꼼짝하지 않는다. 너는 꼼짝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 너를 그대로 빼다 박은 사람, 섬세하고 유령 같은 분신 하나가, 어쩌면, 너를 대신해서, 네가 더이상 취하지 않는 동작들을, 하나하나씩, 해나갈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을 씻고, 면도를 하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너는 그가 계단을 뛰어내려가도록, 거리에서 달음질치도록, 달리는 버스를 재빨리 잡아타도록, 숨을 헐떡거리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시험장에 도착하도록 내버려둔다. 일반사회학 고등교육 자격증. 제일차 필기시험. --- p.19 너는 먹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거의 꼼짝하지 않고, 네 방에 머문다. 너는 대야를, 선반을, 네 무릎을, 금이 간 거울에 비친 네 시선을, 사발 하나를, 전기 스위치를 바라본다. 너는 거리의 소음에, 층계참 수도꼭지의 물방울 소리에, 네 옆방 남자의 소음에, 그의 목 끓는 소리에, 그가 서랍을 여닫는 소리에, 간헐적인 그의 기침 소리에, 그 집의 주전자가 슂쉭 끓어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너는, 천장 위에서, 가는 균열의 구불구불한 선을, 한 마리 파리가 그려보이는 하릴없는 노선을, 가까스로 가늠할 수 있는 그림자들이 번져나가는 모습을 쫓고 있다. --- p.22 너는 스물다섯 살이고, 스물아홉 개의 이빨을 갖고 있으며, 셔츠 세 장과 양말 여덟 개와, 네가 더이상 읽지 않는 책 몇 권과, 네가 더이상 듣지 않는 음반 몇 장을 갖고 있다. 너는 네 가족도, 네 학업도, 네 사랑도, 네 친구들도, 네 휴가도, 네 계획도, 다른 어느 것도 기억해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너는 여행을 했고 너는 네 여행에서 그 무엇도 가져오지 않았다. 너는 앉아 있으며 너는 오로지 기다리기만을, 단지 더이상 기다릴 것이 남지 않게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원한다: 밤이 오고, 시간이 울리고, 세월이 흘러가고, 추억들이 희미해지기만을. --- p.23 어느 목요일 오후, 폭 좁은 장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무릎 위에 펼쳐진 책 한 권, 멍한 시선. …… 너는 고작해야 희뿌연 그림자 하나, 무관심으로 딱딱해진 핵核 하나, 시선들을 회피하려는 특징 없는 하나의 시선일 뿐이다. --- p.26 도로 내려와야만 할진대, 네가 왜 가장 높은 저 언덕의 정상에 기어오르려 할 것이며, 일단 내려온 후, 어떻게 거기를 오르기 시작했는지를 주절거리며 네 인생을 보내지 않으려면 너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왜 너는 사는 척을 하는 것인가? 왜 너는 무언가를 계속하려는 것인가? 네게 일어날 모든 일을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 본문 중에서 그 무엇도 원하지 않기. 기다릴 것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기. 늑장 부리기, 잠자기. 인파에, 거리에 휩쓸리게끔 너 자신을 방치하기. 도랑을, 철책을, 배를 따라 물가를 좇기. 강둑을 따라 걷기, 벽에 찰싹 붙어 지나가기. 네 시간을 허비하기. 온갖 계획으로부터, 모든 성급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욕망 없이, 원한 없이, 저항 없이 존재하기. --- p.45 너는 희망하는 법을, 착수하는 법을, 성공하는 법을, 간직하는 법을 잊어버려야 한다. --- p.48 너는 혼자다. 너는 홀로인 사람처럼 걷는 법을, 한가로이 산책하는 법을, 주시하지 않고 바라보는 법을, 바라보지 않고 주시하는 법을 배운다. 너는 투명성을, 부동성을, 존재하지 않기를 배운다. 너는 하나의 그림자가 되는 법과 마치 돌멩이라도 된다는 듯 사람들을 쳐다보는 법을 배운다…… --- p.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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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의 사회학적 자전소설
이인칭으로 절대고독의 ‘너’를 포착하다 “네가 눈을 감자마자 잠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주인공 ‘너’는 스물다섯의 소르본 대학생이다. 파리의 한 후미진 칠층 고미다락에 사는 이 청년은 바로 저 문장에서부터 시작해 이 기이한 의식의 배회, 잠의 모험에 나선다. 그는 ‘일반사회학 고등교육 자격증’을 위한 일차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고, 관계를 확장하고 장래를 설계해야 할 나이에 있다. 그러나 주인공 ‘너’는 저 첫 문장에서 보다시피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름없는 어느 날, 새벽의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가물가물한 방을 훑어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의 초점만 맞추고 있다. 이제껏 세상은 이 젊은이에게 초점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다가가고 애를 써야만 볼 수 있는 피사체였다. 오늘 이 젊은이는 무심하게 자신을 방기해버리기로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아니, 이제 세상이 한낱 피사체(피투체)에 불과한 ‘너’를 포착해야 할 때이다. 거기서부터, 이 낡은 세계의 잠꼬대 같은 놀라운 모험이 시작된다. 페렉은 제사에서 카프카를 인용하며 이 여정의 감감한 지도를 다음과 같이 펼쳐보인다. “네가 집을 나갈 필요는 없어. 네 탁자에 앉아 그저 듣기만 해. 아니, 귀 기울일 필요도 없고, 그저 기다리기만 해. 아니, 기다리지도 말고, 오롯이 침묵을 지키며 홀로 있기만 해. 그러면 네가 그 베일을 벗길 수 있도록 세상이 네게 다가올 것이고, 세상은 달리 할 수 없기에, 경탄해 마지않으며, 네 앞에서 변형되기 시작할 거다.” ―프란츠 카프카, 『죄, 고통, 희망, 진리의 길에 관한 명상』 이 낡은 세계의 고독한 주인, 이십대 ‘너’의 무관심이 빚어낸 여기 『잠자는 남자』는 무관심의 수사학적 장소들, 무관심에 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조르주 페렉 이 젊은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고, 꼼짝없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 오직 쥐새끼처럼, 고양이나 유령처럼, 밤이 되어야 겨우 파리 시내를 나간다. 한번은 파리를 벗어나 시골의 부모님 집에도 다녀온다. 별다른 것도 없다. 친구들이 찾아와도 문을 열지 않는다. 하다못해 일층에 있는 우편물도 찾으러 내려가지 않는다. 거리의 누구와도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내버려둔다. 동공이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하도록, 급기야는 “너는 이제 눈알 하나에 불과하다.” 자신으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는, 잠들 수 없는, 눈알. 세계가 다가와 소곤댈 때까지, 이런 절대고독의 무관심 속에서 잠든 너를 톡톡 두드려 깨울 때까지, 주인공 ‘너’의 무심한 배회는 정처 없다. 미셸 페로가 말한 대로, 페렉의 이 소설의 제사에 인용된 카프카의 계획은 이렇게 성취된다. 실존주의자들이 무기력과 권태로부터 내지른 외침, 페렉이 이인칭으로 포착한 무관심과 절대고독의 외침은, 곧 이 낡은 세계에서 다시 새롭게 앓아내야 하는 모든 개인의 생(운명)을 겨냥하고 있다. “너는 더이상, 이 세계의, 역사가 더는 손길을 내뻗지 못하는 세계의, 비가 내리는 것을 더는 느끼지 못하는, 밤이 오는 것도 더는 느끼지 못하는, 익명의 지배자가 아니다. 너는 이제 더이상,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도, 맑은 사람도, 투명한 사람도 아니다. 너는 공포를 느낀다, 너는 기다린다, 클리시 광장에서, 내리는 비가 멎기를, 기다린다”(본문 122쪽) 위의 마지막 문장에서와 같이, 결코 잠자지 않는(못하는) ‘너’의 이 지리멸렬한 여정은 끝도 시작도 알 수 없는 진짜 모험이 된다. 즉 이 독백과 자기최면과 불가능한 말걸기가 오가는 종잡을 수 없는 중얼거림은, 한 개인의 삶을 골방에서부터 꺼집어내어 “익명의 지배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단독자로서, 이 광장의 빗속에서 공포와 기다림으로 혼자의 운명에 맞서게 한 저항의 언어가 된다. 수없는 패러디와 끊길 듯 말 듯 이어지는 문장 이 소설에서도 역시 페렉의 후기작에 나타나게 될 특징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책이 출간된 1967년, 페렉은 울리포에 가입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이후 울리포의 자장 아래 자신의 작품세계를 실험적으로 이끌어나갈 행보를 예감하게 하는 맹아가 깃들어 있다. 수없는 작가-작품의 패러디, 인용과 다시 쓰기 등 언어의 단순 조합을 통한 새로운 말의 창조 가능성을 일찌감치 페렉은 포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적 고백을 특징으로 하는 주관성의 일인칭도, 관조를 통한 객관성을 담보하는 삼인칭도 아닌, 이 양자를 버무려 의식의 다양한 층위를 포착해낼 수 있는 이인칭 화법을 구사함으로써 주인공이 취한 세계관인 ‘무관심’을 하나의 사건처럼 다룬다. 또한 페렉에게 중요한 것은 ‘기억하기’이다. 그는 나치의 가스실에서 죽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평생 간직하고 살았다. 그는 한시도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며, 하루하루 망각의 잠과 세월의 더께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나는 기억한다”를 자신의 글쓰기 형식으로 승화시킨 작가다. 즉 망각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기억하기, 차이를 겨냥한 수없는 작가들의 잊힌 문장들의 귀환이다. 페렉 스스로도 카프카의 일기와 허먼 멜빌의 ‘바틀비’에 영향받아 이 작품을 썼노라고 밝힌다. 그러나 여기에는 카프카, 멜빌 외의 수많은 작가들―레몽 아롱, 카뮈, 사르트르, 대니얼 디포, 프루스트, 디드로, 아폴리네르, 라마르틴, 플로베르, 프레베르, 클레지오, 바르트 등―의 문장에서 차용한 흔적들이 감쪽같이 주인공 ‘너’의 내면세계로 편입되어 있다. 그리하여 주인공 ‘너’의 말과 ‘그들’의 말이 뒤섞이고 서로 넘나드는 특징적인 문체의 이 소설은, 깜빡깜빡 명멸하는 의식세계를 고스란히 반영하듯, 수없는 쉼표와 콜론과 세미콜론 등을 사용해 그려진다. 주인공 ‘너’의 동공(눈알)과 방과 창의 세계는 이 흐릿한 세계의 외곽을 다지는 작가의 눈이다. 이 소설은 그 눈의 이야기다. 세계가 한 인간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지, 초점을 맞춰가는 이야기다. 페렉은 이 혼자 남은 단독자를, 그 젊은이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이야기한다. 【조르주 페렉 선집】 03 『잠자는 남자』 조르주 페렉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온갖 문학적 실험에 몸을 던진 보기 드문 집념의 작가다. 45세 기관지암으로 죽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펼친 기간은 15년 남짓이지만, 소설과 시, 희곡, 시나리오, 에세이, 미술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쓰기를 했다. 1965년 첫 소설 『사물들』로 르노도 상을, 1978년 『인생사용법』으로 메디치 상을 수상했다. 매번 새로운 글쓰기에 도전해 다가올 시대를 예비했던 페렉. 그는 작가, 화가, 수학자, 음악가 등 여러 집단으로 구성된 실험문학모임 울리포Oulipo의 멤버였다. 그의 문학세계가 지닌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필 수 있는 【조르주 페렉 선집】(총8권)―『잠자는 남자』(1967),『어두운 상점』(1973),『공간의 종류들』(1974),『나는 기억한다』(1978),『인생사용법』(1978),『어느 미술애호가의 방』(1979),『생각하기 / 분류하기』(1985),『겨울여행 & 어제여행』(1993)―은, 문학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엿보게 하고 한 작가의 독창적 내면을 풍요롭게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번에 출간하는 페렉 선집 3권 『잠자는 남자』(1967)는 작가의 젊은 시절을 가늠하게 하는 사회학적 자전소설로, 이십대 중반 주인공 ‘너’의 파편화된 의식이 좇는 (반)의식 상태의 기행을 이인칭으로 풀어낸 독특한 소설이다. 1974년 베르나르 케이잔 감독과 공동 연출하여 당해 최고의 신진 영화인에게 수여되는 장 비고 상을 수상했다. 페렉은 자신과 똑같이 오른쪽 윗입술에 흉터가 있는 남배우 자크 스피세를 주인공 ‘너’로 발탁했고, 내레이션은 뜻밖에도 여배우 루드밀라 미카엘에게 맡김으로써, 이인칭 화법으로 쓰인 절대고독의 작품세계를 영화적으로 풀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문학동네의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은 문학과 인문학의 경계에서 지성과 사유의 씨앗이 된 작품들, 인문 담론과 창작 실험을 매개한 작가들로 꾸려진 상상의 서가다. 독일 시적 사실주의의 대가로 불리는 빌헬름 라베Wihelm Raabe, 기억하기와 기록하기의 문학적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입증한 제발트W. G. Sebald,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들이자 역사적 실험작을 내놓은 레몽 루셀Raymond Rossel,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 레몽 크노Raymond Queneau, 이탈리아 작가로서 사회문제를 비판적 의식의 정갈한 문체로 다뤄 긴 여운, 깊은 울림을 주는 안토니오 타부키Antonio Tabucchi, 역사와 문학의 박학다식을 절제된 산문으로 풀어낸 클라우디오 마그리스Claudio Magris,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의 보츠와나 작가로 인종차별에 맞서며 내재화된 정치 현안을 감성적 삶과 결부시킨 베시 헤드Bessie E. Head, 중국 현대문학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킨 문제 작가 옌롄커閻連科 등이 이 선집의 주인공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