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여는 글. 이제 ‘진짜 집’으로 돌아갈 때다
하나님께서 ‘한 집’에 살자고 당신을 부르신다 1 풍요의 집으로 중심을 ‘나에서 예수로’ 옮기는 영성 2 용서의 집으로 힘을 ‘미움에서 사랑으로’ 옮기는 영성 3 회복의 집으로 상처를 ‘회피에서 십자가로’ 옮기는 영성 4 기쁨의 집으로 일상을 ‘눌림에서 누림으로’ 옮기는 영성 어디든지 ‘예수님이 계신 곳’이 ‘나의 집’이다 |
Henri J. M. Nouwen
헨리 나우웬의 다른 상품
윤종석의 다른 상품
|
프랑스의 라르쉬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꼭 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예일이나 라틴아메리카나 하버드에서는 경험하지 못 한 일이었다.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삶에는 경쟁이 없었다. 그 새로운 친구들은 이름이나 신분과 무관하게 나를 따듯하게 맞아주었고, 함께 ‘시간을 허비하자’라고 집요하게 초대했다. 이를 통해 내 내면의 한 부분이 열렸다. 여태까지 나에게 막혀 있던 부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함께 살자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부드러운 초대를 들을 수 있었다.---p.15-16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면 기꺼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님, 이 30분을 주님과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제가 몹시 바쁘고 할 일이 많지만, 주님이 저를 사랑하시며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원하신다는 걸 믿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라. 조용히 그분의 음성을 들으라. 그분이 당신을 집으로 초대하신다. 점차 우리는 그 30분만이 아니라 온종일 자신이 그분의 집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자신이 주님의 집에 있음을 깨닫는다. 주님과 함께 기도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이 적대적이고 폭력적이고 경쟁적인 세상에서도 내 집에 거한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p.35 주님을 따른다고 해서 즉시 극적인 조치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작은 답밖에 모르면서 큰 질문을 던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내 전 재산을 처분하고 해외 선교를 떠나야 합니까?” 아니, 작은 걸음이면 된다. 평소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을 좀더 친절하게 대하라. 여기에 영적인 삶의 비결이 있다. 평소에 주님과 교제하며 사는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작은 걸음들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작지만 신실한 걸음들이다. 우리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그 걸음들을 내딛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작은 걸음들이 우리를 긴 여정으로 데려간다.---p.47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그분을 따라하고 그분의 행동방식을 모방한다는 뜻이 아니다. 누군가를 그저 따라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가꾸는 게 아니다. 그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나만의 독특한 모습, 나만의 독특한 성육신을 하나님의 사랑에 내어드린다는 의미다. 또한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그분이 그분답게 사셨듯이 나도 가장 나답게 산다는 뜻이다. 내 자존심을 버리고 사랑의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그 방법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다.---p.54 그랜드캐니언은 내게 이 땅의 한 상처처럼 보였다. 그 상처가 오히려 우리를 치유해준다. 그 이미지는 오래도록 나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도 그랜드캐니언과 같은 분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상처를 입으셨다. 그것은 모든 인류의 상처였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면 내 상처는 가벼운 짐이 된다. 또 하나 깨달은 게 있다. 나는 내 상처를 인정하되 그것 때문에 무력해지지 않을 수 있고, 상처를 품고 살아가되 거기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상처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이 그분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안다. 그 거대한 사랑이 나를 집으로, 즉 하나님의 삶으로 인도한다.---p.81 기도 중에 잡념이 든다면 이는 대개 우리가 현재를 떠나 과거나 미래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거나 내일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걱정한다. 잡념은 우리가 아직 온전히 현존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냥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온전히 현재 속에 있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알다시피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시기 때문이다. 기도란 하나님과 함께 현재 속에 있는 것이다. ---p.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