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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첫 번째 주제: 인식론 우리의 지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몸, 마음, 그리고 철학이란 언어와 세계는 어떤 관계인가 두 번째 주제: 사회 및 역사철학 노동은 자유의 실현인가 기술문명은 인간을 해방할 것인가 역사는 진보하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사회와 개인이란 무엇인가 유교적 근대화와 개인의 조화는 가능한가 세 번째 주제: 윤리학 양심,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인간은 본래 선한가 악한가 삶과 죽음, 그 너머는 욕망이란 무엇인가 네 번째 주제: 문화, 예술, 언어, 종교 문화적 다양성은 인정되어야 하는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언어란 무엇인가 점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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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원천으로서 경험
근대에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자연과학과 더불어 학문적 방법에 있어서 인간의 경험과 관찰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근대 경험론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로크(J. Locke)는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기초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인간의 모든 지식이 경험에 의존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와 같은 것이며, 거기에 후천적으로 감각과 반성에 의해 관념들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관념들을 토대로 지식이 성립된다. 감각적 경험을 지식의 출발점으로 삼는 로크를 비롯한 근대 경험론자들의 주장을 도외시하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외적 대상에 대한 판단을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상의 진리성도 감각적 경험에 근거해 설명하곤 한다. “소나무의 잎은 초록색이다”라는 아주 단순한 판단이나, 혹은 “장미는 늦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진다” 등과 같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하는 판단, 혹은 “철수는 죽는다”라는 개별적인 경험을 토대로 하는 귀납적 추론에 의한 판단은 모두 감각적 경험에 의존해 있다. 이와 같이 감각적 경험을 벗어나 대상에 대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지닌 감각기관을 통해 획득한 경험이야말로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해 동일한 경험을 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감각적 경험이 우리에게 항상 신뢰할만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고추를 어떤 사람은 맵다고 느끼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맵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바다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를 때로는 빗소리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감각적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은 감각적 경험에서 나타나는 개별적 차이나 착각을 해소하고, 감각적 경험으로부터 누구나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근대 이후 중요한 지식으로 간주되는 과학적 지식은 이러한 감각적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자연과학은 감각에 의해 수집된 경험적인 자료들을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함으로써 지식을 확장시킨다. 따라서 과학의 발전은 감각적 경험으로부터 출발할 뿐 아니라 오직 감각적 경험을 토대로 지속 가능하며,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학이 의존하고 있는 귀납적 방법은 개별적인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으로부터 보편적인 원리를 찾아냄으로써 확실한 지식을 가능하게 하며, 따라서 지식의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개별적인 감각적 경험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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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연구해 온 필자가 여전히 가장 난감해하는 질문 중의 하나가 “철학이 어떤 학문인가요?”이다. 단순해 보이는 이러한 질문이 난감하게 느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철학이라는 학문이 지닌 오랜 역사와 주제의 포괄성 때문인 듯싶다. 철학은 2,500년이 넘는 학문의 역사 속에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대답, 그리고 논의들을 포괄하고 있으며, 이처럼 오랜 역사를 통해 전개된 수많은 논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또한, 인간의 삶과 연관된 모든 사유와 고민이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는 학문의 특성으로 인해 철학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답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문제가 된다. 오랜 역사 동안 학문은 지속적으로 분화되어 왔으며, 인간의 삶을 다루는 방식 또한 다양화되었다. 이러한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사유를 철학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어려운 만큼, 필자는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래 철학 강좌, 특히 철학일반을 다루는 철학 교양 강좌를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선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철학수업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 학기 동안 철학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철학적 사유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이후 철학은 어떠한 방식으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에 접근하였는지를 설명하고자 시도하는 경우, 한 학기라는 시간은 2500년이 넘는 철학의 역사를 주마간산식으로 담기에도 너무나 짧으며, 더구나 이러한 시도는 학생들에게 수많은 철학자의 이름만 어수선하게 소개할 뿐, 진정으로 철학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데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철학서들이 일반적으로 지닌 난해함은 학생들이 철학에 접근하는 것을 더욱더 어렵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난해함은 잘못된 번역이 원인인 경우도 있지만, 개념에 대한 사전 이해 없이 내용을 파악하려 한다거나, 혹은 각각의 철학자들이 지녔던 문제의식은 배제한 채 추상화된 이론만을 이해하려 함으로써 야기된 경우도 적지 않다. 처음으로 철학을 접하는, 혹은 철학에 호기심을 느끼는 많은 학생이 유명한 철학자의 책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절망감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며, ‘철학은 어렵다’라는 선입견이 자명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자신의 시대를 사유 속에서 포착하는 것’이 철학의 과제라는 헤겔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철학은 오랜 역사 속에서 각각의 철학자들이 자신의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온 사유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철학자들은 자신의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철학적 사유의 중심에 놓기도 했지만,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접근 방식은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의식 속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각각의 시대가 안고 있었던 문제의식 없이 단순히 추상화된 철학적 이론만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철학적 가르침이 철학적 지식과 이론을 단순히 설명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철학교육은 단순히 철학적 지식을 전달하여 그것을 축적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함께 모색함으로써 무엇보다도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다양한 철학 이론을 소개한 개론서도 아니며, 여러 철학자의 철학적 사유를 심도 있게 다룬 이론서도 아니다.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보다도 ‘철학함’을 훈련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이 책은 현실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현실 속에서 ‘철학함’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주제들로 구성되었다. 목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다양한 현실적 주제들을 통해 철학적 사유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연결하고자 하였으며, 무엇보다도 토론을 통해 학생들의 사유를 확장시키고, 함께 논의함으로써 상호 소통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7개의 주제는 여러 철학자에 의해 논의되어 왔을 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다양하게 논의되는 주제들이다. 동양철학을 전공하신 분들과 서양 철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함께 책을 집필함으로써 독자들은 각각의 주제들에 대해 동·서를 넘나드는 철학적 사유를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철학자들의 글을 함께 싣지 못한 것이다.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철학자들의 글을 발췌해서 읽을 자료로 제공할 수 있었다면 독자들이 철학책을 접하는 데 있어서 일반적으로 지니는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감소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철학자들의 사유를 현실적인 문제의식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시도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이 책은 이전에 출판된 “철학의 이해”를 수정하고 보완해서 새롭게 출판한 책이다. 이전에 있던 주제들이 삭제 되기도 했으며, 대신 새로운 주제들을 담아내기도 했다. 학문연구와 강의에 분주한 시간을 쪼개어 원고를 집필하고 새롭게 수정해주신 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인문학 분야의 어려운 출판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출판을 기꺼이 맡아주신 조정흠 차장님과 교열에 애써주신 김주리 선생님을 비롯한 임직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20년 10월 정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