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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제1장 정의定意 7 제2장 입증된 공무원의 유용성 21 제3장 공무원의 철학적 역사와 초월적 역사 35 제4장 구분 53 제5장 사무실 61 제6장 가공한 몇몇 존재들에 대하여 83 제7장 임시직 107 제8장 기도 117 제9장 사무직의 다양성 121 제10장 요약 159 제11장 국장 167 제12장 실장 173 제13장 사환 181 제14장 퇴직자 189 작품해설 발자크, 공무원 사회의 살갗을 벗기다 203 │2권│ 위조자들에게 알림 7 ----------------------------------------------- 첫 번째 종 논객 19 1. 신문 기자 23 2. 기자 겸 정치인 75 3. 팸플릿 작가 94 4. 공염불하는 자 100 5. 직에 연연하는 자 109 6. 하나만 우려먹는 자 112 7. 번역 기자 116 8. 신념 작가 118 ----------------------------------------------- 두 번째 종 비평가 129 1. 구식 비평가 135 2. 금발의 젊은 비평가 145 3. 대비평가 157 4. 문예 비평가 177 5. 군서 신문 비평가 200 결론 260 작품해설 발자크, 언론의 생리를 직격하다 271 |
Honore de Balz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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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을 최상으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살기 위해 봉급이 필요한 자, 자신의 자리를 떠날 자유가 없는 자, 쓸데없이 서류를 뒤적이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자. --- 1권 p.12 그렇다고 해서 제발 이런 원색적이고 처절하며 잔인한 말은 하지 마시기를. “우리 아이는 공무원이 될 거야!” 아, 나도 안다. 지금 이 시대에 행정직만큼 선망하는 게 없다는 것을. --- 1권 p.6 자리 경쟁은 이렇게 합법화된다. 관료가 된다는 것은 세비에 손댄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아무것도 안 하거나 해도 조금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의회는 신임자들의 적이 된다. 의회는 지출 경비를 감시하는 전문 조직을 만들고, ‘인건비 예산 삭감’ 같은 제목의 장을 만든다. 치사하게 수당을 흥정하는 것이다. 비밀 경비를 위해 돈을 구해야 하는 장관은 직원들의 예산을 삭감한다. 나폴레옹 시절은 황금기였다. 그처럼 행복했던 시대는 이제 꿈이 되었다. 사람들이 일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일자리는 무자비하게 사라져 갔다. 공무원만 상대하는 법률 사무소가 생겨났고, 의원들에게 봉사하면서 쓰는 돈은 보이지 않는 돈이 되어버렸다. --- 1권 p.40 오늘날 국가는 모든 다수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다수에게 복무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공무원은 두 개의 부정 사이에서 산다. 동정도, 배려도, 가슴도 없는 세상, 친구마저 없는 세상! 사람은 다 이기적이기에 어제 한 일을 내일이면 잊어버린다. 결국 사람은 다 맹목적으로 변해간다. --- 1권 p.50 따라서 가난한 임시직이야말로 유일한 임시직이다. ... 만일 갑자기 어떤 이상한 이유로 당신이 파리 도심에 아침 7시 반이나 8시에 나왔다가, 매서운 추위나 비 또는 악천후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도 짙은 담배 연기만큼이나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한 청년을 본다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아! 임시직이구나!’ --- 1권 p.110~111 그런데 1830년 다음과 같은 심오한 정치사상에 의해서만 생겨날 수 있는 큰 국가적 운동이 있었다. 바로 이런 사상이다. “너 거기서 나와. 그래야 내가 들어가지!” 이게 바로 모든 자유주의자를 이끈 기치였다. 관료 사회도 적잖게 동요했다. 바닥부터 정상까지 다 뒤엎어지는 대이동이 있었다. 상관 얼굴이 자꾸 바뀌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환에게는 이런 혁명이 좀 께름칙한 거였다. --- 1권 p.184 쥐들 가운데 특히 큰 쥐인 이 자는 자신을 신문의 혼魂이라 자부하니 정부 내각도 필요하면 그를 만나야 한다. 그가 중요한 인물이라면 바로 이런 점이다. 편집국 기자들과 수다를 떨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르면 무슨 대단한 사람인 양 각을 잡는다. 이른바 힘이 있거나 교활하다고 요약할 수 있는 자들은 보통 옆에 무희나 배우, 여가수를 끼고 있거나, 간혹 본부인을 끼고 있는데, 이 여자들이야 말로 신문을 움직이는 비밀 병기이다. --- 2권 p.24~25 야당 편 신문의 주필은 정부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 흠잡거나 비난할 게 없나, 꾸짖거나 잔소리할 게 없나 찾기 급급하다. 반면, 여당 편 신문의 주필은 정부를 방어하기 급급하다. 전자는 항상 부정문이고, 후자는 항상 긍정문이다. 당마다 특유의 문체가 있지만, 미묘한 농담濃淡을 두어 약간의 색을 조정하는 정도다. 각 당에는 제3의 입장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 편을 들건, 몇 년을 그렇게 쓰다 보면, 사설 담당자의 머리에는 못이 박혀 사물을 매번 같은 방식으로 보고 엇비슷한 문장을 쓰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 2권 p.33 공화파 정당은 이런 추종자들을 살피고 감시한다. 그들이 환상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어느 날, 공화당원이 길에서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민중사관을 가진 자였고 몸이 항상 앙상하고 빈약했다. “매수됐군.” 공화당원이 친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을 건넨다. “내가?” “그래! 왜 이렇게 살이 쪘어!” --- 2권 p.87 이들은 프랑스라는 피부에 달라붙어 사는 기생충으로 공공의 부를 좀먹으며 사반세기를 살아왔다. 움직여야 또 움직여지니 프랑스라는 피부를 쓸데없이 찌르며 괴롭하온 것이다. 자기 허영심을 채우느라 영토 확장도 지연시키고, 정복 기회도 놓치고, 사익이 공익을 지배하는 현 정치 체제의 부끄러운 모습을 잊게 할 작정으로 근질근질한 피부를 괜히 들쑤셔놓은 것이다. --- 2권 p.110 어제는 평가절하 했던 자를 오늘은 칭찬하는 것을 보았다. 지난밤 아니면 작년에 결투했던 동료와 다시 동맹을 맺는 것도 보았다. 그것뿐인가? 말도 안 되는 학설을 두둔하는 것도 보았다. 그것뿐인가? 말도 안 되는 학설을 두둔하는 것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문을 계속 구독하는 것을 보면 강력한 희생정신의 발로인지 인간 대 인간으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 2권 p.265 『기자 생리학』은 자신을 조롱한 자들에게 보내는 또 다른 조롱이자 풍자이며 명언이 솟구치는 풍자 문학의 전범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왠지 우울하고 쓰디쓰며 슬프기까지 하다. 그는 문단과 언론을 향해 복수의 펜을 휘갈기지만, 그 화살은 마치 자신에게 겨누는 듯 가학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발자크는 열정적이고 낙천적이며, 예리하고 단호하다. 이 괴물 같은 작가는 가장 심신이 지치고 곤경에 처했을 때 더욱 고무되어 탁월한 글을 뽑아냈다. --- 2권 「저자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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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란 무엇인가?”
소설가의 펜을 빌어 탄생한 또 하나의 『사회계약론』 책에서 발자크는 정권의 교체기와 새로운 체제의 형성기를 동시에 겪고 있는 당시 공무원 사회를 특유의 날카로움으로 호쾌하게 해부해낸다. 책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공무원이란 무엇인가? 어느 직급에서 시작해서 어느 직급에서 끝나는가?” 이 문장이 겨냥하는 궁극의 과녁은 바로 프랑스 국왕이다. 혹자는 프랑스 혁명의 시작을 1789년이 아니라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출간한 1762년으로 잡기도 한다. 역사에 남을 대혁명조차 발단은 거창한 행동이 아닌 발상의 변화에서부터 일어난다. 공무원의 현실 역시 국왕조차 공무원이며, 공무원 사회에 편입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시대의 발상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많은 새로운 변화가 그러하듯, 이 변화 역시 마냥 긍정적 결과만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이처럼 발자크는 이 책의 전제로서, 국왕조차 국가 세비를 받는 공무원에 불과하니 일정한 법의 감시망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명시하면서 “돈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고 세법과 형법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나름 이상적 사회’인 공무원 사회를 반어법적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 안에 있을 군상들을 맨 윗자리부터 가장 아래의 자리, 그리고 공무원이지만 공무원은 아닌 ‘비정규직’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직책별, 유형별로 하나씩 묘사해낸다. 마치 동물이나 식물 종을 품종이나 서식지에 따라 분류하고 서술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동물을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로 나누고 다시 육식동물은 사자, 치타 등으로 분류해 묘사하듯, 이 책은 숱한 공무원 품종의 생태와 특성에 대한 묘사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특별비서관은 “젊고 유능한 청년”으로 장관 대신에 기자의 표적이 된다. 그리고 언제든 장관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장관이 해야 할 “예와 아니오”를 대신 말해준다. 그러다 마침내 장관과 서로 거리낌 없이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이가 되며, 둘 사이의 거리감과 함께 양심도 내려놓는다. 기자와 언론의 생리를 직격하는 저널리즘의 고발장이자 명언이 솟구치는 풍자 문학의 전범! 발자크가 살던 집의 출입문은 두 개였다. 평생 빚더미에 허덕여야 했던 그는 날마다 찾아오는 빚쟁이들을 피해 뒷문으로 도망쳐야만 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칼로 할 수 없었던 것을 나는 펜으로 정복하겠다”라고 자신을 다잡을 만큼 습작에 열성을 보였던 그는, 첫 작품 『크롬웰』의 실패 이후 소설보다는 저널리즘이 돈이 된다고 판단해 문학판을 떠난다. 이후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는 저널리즘에 매료된다. 인간의 삶과 생존 방식에 대해 치밀하게 파고드는 그가 언론의 생리에 둔감할 리 없었다. 한때 “저널리즘이야말로 인간 지성의 총체”라 칭송할 정도로 발자크는 언론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쩌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권력이야말로 내리막길로 치달은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카드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발자크와 저널리즘의 관계가 뒤틀린 건 비단 『키뇰라의 재력』 초연 당시 파리 신문과 잡지가 쏟아낸 혹평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자신이 창간한 《르뷔 파리지엔》이 3회 만에 파산한 게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편집, 인쇄, 조판까지 언론이 탄생하는 전 과정에 참여했음에도 별다른 성과 없이 실패하자 그는 자신이 저널리즘 세계로부터 패배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때 시작된 저널리즘에 관한 분노와 원망은 『기자 생리학』의 집필로 이어진다. 그는 “다른 이들은 글을 너무 많이 써서 논객인데, 이 자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논객”이라고 신문사 주필을 꼬집고,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언론을 향해 “지금 파리 사설에는 상투적인 연설 투 같은 관습에 찌든 미사여구만 있을 뿐”이라며 날카로운 문장을 내리꽂는다. 자신을 공격한 비평가에 대한 증오가 저널리즘의 존재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발자크가 묘사하는 언론의 생리는 통쾌하면서도 우울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그가 문단과 언론을 향해 휘갈긴 복수의 펜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기자 생리학』이 오늘날까지 유효한 것은 문단과 언론을 향한 무차별적인 고발이 아닌 저널리스트로서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처절하게 해체하고 탐구한 끝에 얻어낸 연구서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지만 모든 게 자기 것인양하는 언론 200년 전 문장만이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뿐이다. 여전히 프랑스 저널리즘이 정치와 밀접한 걸 보면 신문사가 자신의 야심을 마음대로 발휘하거나 기자와 정치인이 공공연하게 결탁하는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닌듯싶다. 하지만 발자크가 가장 경계했던 것은 거짓을 선동으로 몸집을 키워나가는 언론이 아닌, 자기 취향에 맞는 신문만을 구독하는 강성 구독자들이었다. 이들은 아침에 ‘타르틴’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파리지앵처럼 신문을 자신의 옆구리에 꼭 끼고 다닌다. 발자크는 스스로 편향성을 자초한 이들을 ‘편집증 환자’라고 진단하고 측은하게 여긴다. 신문 구독과 정치 뉴스 소비만이 사상의 각성이라 믿는 이들은 자신들의 움직임이 프랑스 혁명 이후 더욱더 확고한 자유로 향하는 발걸음이라 믿는다. 하지만 빈껍데기한테 줄 자유는 없다. 언론은 “오직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만 자유로울” 뿐이다.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 민족을 죽이듯 언론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자유를 줌으로써”라고 칼을 꽂는 발자크의 명제는 뼈아프다. 이러한 강성 구독자들이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논객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고, 그들을 배부른 돼지로 만들 뿐이다. 이는 오늘날 대놓고 ‘구독’과 ‘좋아요’를 외치는 세상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타인을 억압하고 비난하는 걸 서슴지 않는다. 서로 편을 나누고 권력을 드러내며 집단 히스테리를 양성하는 것. 이제는 이반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언론이 종을 울리자마자 침을 흘리고 달려드는 이들을 보면 발자크는 뭐라고 말할까. 언론은 여자와 같다. 거짓말을 내놓으면서 그걸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들 때에는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오며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더욱이 이 투쟁에서 그녀는 항상 최고의 실력을 펼친다. 구독자는, 그러니까 대중은 부인한테 꼼짝 못하는 남편처럼 멍청하다. - 본문 265쪽, 「결론」 중에서 |